2009년 01월 통권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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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어떤 순간

주진우 | 2009년 01월

단편을 읽는 재미가 얼마 만인가? 마침 이태준을 읽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맛깔스런 동화집 하나가 나왔다. 이야기 여덟 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처지는 게 없다.

이번에는 그림 얘기부터 해야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은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 막막했다. 그냥 ‘참, 좋, 다…….’ 중얼거리고 나서 책이 주는 여운을 더 느껴 보고 싶었다. 한데 이승민의 그림 자체가 아주 좋은 서평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책 전체의 분위기를 잘 잡아내고 있다. 특히 인물을 표현한 그림들은 참으로 빼어나다. 저들마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의 ‘어떤 순간’을 포착하면서 그 안에 여러 색깔의 삶의 표정을 담아낸다.

자기 손에서 “십수 년 풀 멕인” 소를 옆집 아이의 실수로 잃은 할아버지가 “뭐 찾노? 소는 없다.”고 말하며 짓는 표정에는 너그러움 속에 깊은 상실감을 감추고 있다(「소」). 주정뱅이를 놀리는 동네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선한’ 장난기가 가득하다(「수정이」). 얼결에 다슬기 한 봉지를 받아 든 아이는 진짜 조금 있다가 그 봉지를 남에게 덥석 줄 것 같은 인상이다(「다슬기 한 봉지」). 미얀마 이주노동자인 또뚜야의 고향 어머니 얼굴은 먼 타향의 아들에게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기대고 서 있는 바나나 나무 잎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도망자」).

표정이 읽히기는 뒷모습을 그린 것들이 오히려 더하다. 터널 뚫는 다이너마이트 소리 때문에 조산기가 있는 염소를 경운기에 싣고 가는 이장 아저씨의 뒤통수는 걱정과 조바심이 가득하다(「다슬기 한 봉지」). 손녀의 팔짱을 낀 채 난간을 잡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의 굽은 등은 희미하게 빛나는 지상의 가로등 불빛과 대조된다(「콘서트」).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골목길을 걷고 있는 형제의 기우뚱하게 불안한 뒷모습은 그들이 잡은 손으로 해서 겨우 지탱되고 있는 듯하다(「돈 만 원」).

이러한 그림 속 표정들은 그대로 강무지의 이야기가 포착한 인생의 한 ‘단면’이다. 간난(艱難)과 여유, 선함 속 강단이 그림 속에, 그러니까 이 이야기들 속에 묻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설명하는 것으로는 왠지 부족하다. 그것은 그림들이 순간을 ‘겨우’ 붙잡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들은 곧 흩어져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이승민이 구사하는 수채 붓질 탓인가?

그런데, 막상 이야기 속 인물들은 현실의 슬픔과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고 낙천적이다. 「닭」에서 기윤의 사촌동생 은정이는 줏대도 있고 그 줏대를 현실에서 태연하게 밀고 나갈 배포도 있다. 아래의 대화는 은정이의 매력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오빠야, 나는 커서도 우리 마을을 지킬 거다. 아나?”
“아아……. 그 말이가……. 근데…… 삼촌 숙모도 아시나, 니 꿈을?”
“아, 답답하네. 내 꿈을 내가 꾸는데 우리 엄마 아빠가 무슨 상관이고?”

「수정이」에서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술주정뱅이 아빠와 함께 사는 수정이는 가겟집 아이를 돌봐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꿋꿋하게 산다. 「콘서트」의 ‘나’도 새아빠와 같이 살면서도 구김이 없을 뿐더러, 어른들의 욕망을 ‘너그럽게’ 이해하기까지 한다. 「도망자」의 미얀마 이주노동자 또뚜야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한국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하다.

그렇다고 그 인물들이 줏대만 세우는 사람들은 아니다. 자기 아빠와 의가 상한 큰 아빠의 생일을 위해서 닭을 잡고(「닭」), 옆집 아이의 실수로 정도 들고 살림 밑천도 되었던 소를 잃지만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봐 이를 모른 척한다.(「소」)

‘바통’ 대신 ‘다슬기 한 봉지’를 든 릴레이 경주 같은 표제작 「다슬기 한 봉지」는 이 책의 인물들이 ‘무엇’에 줏대가 있고, ‘무슨 일을 하는 데’ 꿋꿋한지를 잘 보여 준다. 방앗간 할머니가 개울에서 잡아온 ‘다슬기 한 봉지’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다시 방앗간 할머니에게로 되돌아온다. 몸 아파 누워 있는 할머니의 친구 - 마음 착한 마을버스 기사 - 인정 많은 진석이(책 표지 모델이기도 하다.) - 염소 새끼 걱정하는 이장님 - 왕년의 사우디 건설 일꾼 최씨 할아버지 - 어머니 뵈러 온 방앗간 할머니 아들 - 방앗간 할머니. 이 릴레이는 ‘자기 아닌 것’을 향한 마음의 이어짐이다. 그리고 그 다슬기는 방앗간 할머니가 “아직 물이 맑다. 그란데 우짜노……. 야들아 미안테이.” 라며 거둔 것들이다. 릴레이의 첫 주자(走者)는 사실 다슬기인 셈이다. 그 순환은 사실 이 동화책이 하나의 주제로 삼고 있는 생태계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면 동료 이주노동자를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쁘다 바빠, 테스 씨!」의 테스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어느 날 밤 “가지고 있던 것을 나누고 난 사람의 마음이 그렇듯,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뿌듯함이 온몸에 남”는 그런 삶을 살 것이다.

이 책의 인물들은 현실의 아픔과 고통을 이기고 선 ‘성공시대’의 주인공들이나, 그 현실을 무시하거나 초월하여 존재하는 ‘행복(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류가 아니다. 개발의 소음과 진동이 농촌 마을을 파괴하고, 이주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이 그들의 몸과 마음을 찢어놓는 현실은 이 책에서 그저 소재거나, ‘해피엔드의 반전을 위한 통속적 전반부’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엄연히 살아 있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직시’한다.

이야기들은 사실 현실의 천박한 모습과 상당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난개발, 보상금을 먼저 받아놓고 뒤에서 데모하는 어른들의 비겁함,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멸시 등이 모두 비판의 대상이다. 어찌 보면 비판은 쉽다. 술자리에서 시국이나 정치인들을 안주로 올려 욕하지 않는 어른들(특히 남성들)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작가는 남을 향한 비판을 전개하는 대신 ‘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져 놓는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땅에 뿌리박고, 안된 사람에게 ‘마음 한 봉지’를 건네며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이 이야기 바깥으로 나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후배 한 사람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그는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고, 그 속에 소금인형처럼 뛰어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런 그는 늘 밝고, 남을 정성껏 배려한다. 나쁜 마음들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그는 청계천에 있는 전태일 다리 동판에 이렇게 새겼다. ‘내가 일찍 태어나 당신의 친구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왜 이 인물들이, 그림처럼,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을 줄까. 그것은 아마도 소중한 것을 부여잡을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은 희망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희망의 조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한 순간, 이야기 속 인물들이 마주한 그 순간, 우리 대부분은 눈을 질끈 감고 그저 별 생각 없이 직장을 다니고, 돈을 불리고, 자기만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면서, 이를 외면하며 살지 않는가. 그 발견과 각성의 ‘순간’은 잡지 않으면 사라진다. 작가는 나와 함께 사는 것들(사람이든 자연이든)이 자신의 삶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 ‘순간’에야 비로소 자기 삶의 진정한 의미와 자존감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책 읽기를 포함해서)을 커 가면서 대부분 잊어버리지만, 어떤 한 순간을, 마치 그림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해 몸속에 저장해 두는 것 같다. 그것은 인생의 어떤 시기에 툭 튀어나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거나, 뒤바꾸기도 한다. 만약 동화책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최상이리라. 문제는 어른들이다. 점점 굳어져 가는 몸은 그 ‘순간’에 무감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수 있을까?

진석이는 땅에 엎드려 다슬기를 줍다 말고 갑자기 일어서서 마을을 둘러보았어. 아니나 다를까. 눈에 훤히 보이는 산이나 들, 사이사이 흘러가는 시냇물 그리고 여러 채의 집들이 진석이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것 같지 뭐야. (「다슬기 한 봉지」)

마을 어른들이 열 살짜리 어린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앉아 이런 말을 할 때, 그 아이 기분은 어떨 것 같습니까? 글쎄요, 이 세상에는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 여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내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뭐랄까요. 또뚜야라는 아이 하나가 작은 나무처럼 그 자리에 우뚝 심어진 느낌이랄까요. (「도망자」)
주진우│동화 속에서 삶의 소중한 단서를 발견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어린이와 책과 평화를 좋아합니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에서 일하며 ‘어린이 평화책 순회전시회’ 같은 일을 벌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