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통권 제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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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글 쓰기]
글 쓴 대로 실천하자!

송아름 | 2009년 01월

교실이 조용하다. 아이들이 이렇게 조용한 것은 참 드문 일이다. 오늘은 교과 수업도 없이 6교시를 꽉 채워 수업하는 날인데 아이들이 조용히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으니 쉬고 싶은 생각부터 든다. 하지만, 사제동행! 다른 것을 할 때는 아이들한테 설명만 해 주고 같이 하지 않더라도, 글쓰기를 할 때는 꼭 같이 한다는 여러 선배님들의 조언을 떠올리며 나도 내 자리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절반쯤 썼을 때, 다 썼다는 아이가 책상 앞에 와서 내가 쓰는 글을 들여다보더니 한마디 한다. “선생님, 다 가식인데요.”

국어 시간이나 온갖 대회 때 말고 이렇게 수업 시간을 내어서 교실에서 글쓰기를 한 것이 두 번째다. 발령 받은 첫 날에 아이들에게 ‘선생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 달라고 한 뒤로 처음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가슴이 뜨끔해졌다. 중간 발령이어서 아이들과 소통하기 너무 힘들었다고, 6학년이라서 수업 준비하기 벅찼다고, 매일 좌충우돌하는 아이들 생활 지도도 너무 어려웠다고 아무리 변명을 해 보아도 가슴이 뜨끔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이제 10개월 된 초짜 선생님 성적이 엉망이다.

낯선 곳에서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글쓰기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글쓰기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장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아니,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땡땡이 무늬 표지의 예쁜 글쓰기 공책을 아이들에게 선물하며 “우리 함께 글을 쓰며 삶을 가꾸어 나가 보자.”라고 다정하게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것일까. 아이들은 예쁜 공책을 좋아했지만, 글쓰기는 싫어했다. 몇 번인가 글쓰기를 시도해 보았지만 그 때마다 아이들은 “그딴 걸 우리가 왜 써야 되는데요?”, “이럴 시간 있으면 수업이나 해요. 만날 진도 느리다고 우리 탓만 하면서…….”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나는 아이들의 태도에 놀라고, 상처 받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나와 아이들 사이는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중 문제였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글쓰기 문제로 아이들과 틀어진 다음부터는 나도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사는 것이 더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씨름하며 6교시를 보내고 나면, 힘에 부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몸만 힘들면 그래도 좀 낫겠는데, 마음은 더 괴로웠다. 하루 종일 아이들한테 상처 받은 일과 내가 아이들한테 상처 준 일이 엉킨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마음마저 옭아매었다. 처음에는 교단일기를 쓰면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어른이지만 선생님을 처음 하는 거니까 잘 모르고 서툰 게 당연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얼른 자라서 이 아이들을 품어 줄 수 있을 만큼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매일 다짐하며 아이들 앞에 섰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혹시 교직이 내 길이 아닌 건 아닐까? 무슨 일이든지 3년은 해보고 나서 자기 길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는데, 내가 과연 3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런데 겨울 방학을 한 달 남짓 앞둔 어느 날, 우연히 김창완 밴드의 ‘열두 살은 열두 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살지’라는 노래를 들었다. 숫자 때문이었을까? 저절로 아이들 생각이 났다. ‘맞다. 우리 열세 살들도 열세 살을 살고 있지. 그 애들의 열세 살엔 무엇이 있을까?’ 선뜻 생각나는 거라곤 시험, 공부, 성적, 중학교, 빅뱅 정도가 다였다. 어쩌면 나를 만나서 더 가난했을 우리 아이들의 열세 살. 나는 아이들의 열세 살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었고, 열네 살에 가지고 갈 것들을 챙겨 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인 듯했다. 그래서 정말로 용기를 내어 글쓰기를 다시 해 보자고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2008년에 부족한 선생님 만나서 고생 많이 했지? 우리 2009년에는 제대로 살아 보자꾸나. 2008년에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 2009년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한 번 글로 써 보자.”

그리고 잠시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2008년을 돌아보며 21세기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받은 문화적 충격에 대해 한창 글을 쓰던 중이었다. 그런데 1등으로 쓴 녀석이 글을 내러 왔다가 내 글을 보고는 가식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 한마디로 교실은 다시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워졌다.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며 친구들의 글을 보고, “이 가식쟁이!”, “착한 척하지 마!”라고 서로 놀려 댔다. 제법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다가 금방 친구 놀리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들이 귀엽기도 했지만, 저러다 언제 철들겠나 싶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선생님 책상에 찰싹 붙어서 누가 제일 잘 썼냐며 물어보는 아이들을 겨우 집에 보내고 아이들의 글을 천천히 읽어 보았다. 그동안 너무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아이들의 글이 예사롭지 않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이들이 잘못을 해 야단칠 때마다 그들이 너무나 당당해서 요즘 애들은 어찌된 건지 양심도 없다며 혼자 분개했고,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리고 이렇게 양심 없는 애들이 어른이 되어서 사회의 주축이 되면 그 사회는 얼마나 더 살기 어려워지겠냐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글을 읽다 보니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잘못을 인정하기가 자존심 상하고 어려웠던 것이다. 내가 아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야단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구나 자기 허물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나도 그랬다. 중간 발령에 6학년 담임이라는 나쁜 조건에 기대어 나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 앞에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2008년에 있었던 일들을 반성한다면서 21세기 어린이 타령만 하고 있었으니, 아이들이 가식이라고 놀려도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시간에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2009년에 내가 어떤 모습을 간직해야 할지, 또 어떤 마음을 더 키워 나가야 할지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지난 시간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했다. 만화를 좋아하는 수향이는 정물화와 수묵화를 배워 보겠다고 했다. 평소에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다희는 가수가 되기 위해서 겨울방학에 SM 오디션에 꼭 합격하고 싶고, 시를 100편 써서 시집을 내겠다고 했다. 늘 조용하고 어른스러운 윤희는 평소에 꾸준히 공부하고 책을 많이 읽어서 2009년에는 후회하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예술중학교에 진학하는 현정이는 2009년 목표는 아니지만 열심히 피아노를 쳐서 쇼팽 콩쿠르에서 금상을 타고 싶다고 했다. 요즘 부쩍 이성에 관심이 많아진 지은이는 꼭 남친을 사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쓴 이야기는 역시나 공부에 관한 것이었다. 흥미도 적성도 제각기 다른데 아이들이 하나같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세상은 빨리 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참 안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정말로 아이들이 스스로를 위해서, 그 필요성을 느껴서 공부를 하기보다는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가족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부모님이 힘들게 돈 벌어서 공부시켜 주시니까’, ‘중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들 하니까’, ‘6년만 고생하면 앞날이 편하다고들 하니까’ 같은 이유들을 읽으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시험을 잘 치면 엄마가 피자를 사 주니까 ‘피자를 먹기 위해서’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도 있었지만, 중학교에 가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는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다.

10개월 동안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힘을 기르기를 원했다.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도 스스로를 위해서 하기를 바랐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현실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랐다. 그것 때문에 야단을 꼭 쳐야 할 것 같은 일도 많이 양보했고, 문제를 가진 아이일수록 나 자신을 더욱 낮추어 다가갔다. 하지만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내 마음이 아이들한테 잘 전해지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교사와 학생으로 만나게 되었는지, 왜 공부를 해야 하며,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아이들과 눈 맞추며 이야기하지 않은 채 날마다 수업 뒤에 숨어서 진도만 외쳐 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교사는 죄인이라던가. 이렇게 매일 부끄럽고, 미안한 직업을 나는 왜 선택했을까. 그런데도 아이들이 이런 나를 선생님으로 받아주고 인정해 주는 게 고마웠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의 글을 다시 읽어 보며 내 글을 마저 썼다.

2009년에 나는 우리 반 0번이 되고 싶다. 청소도, 체육도, 미술도, 뭐든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다움을 잃지는 말아야겠다. 2008년에 너무 고생했으니까. 그리고 나의 가장 좋은 벗 글쓰기를 아이들에게도 소개해 줄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지. 또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두고 싶다는 나약한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떤 아이를 만나도 바르게 자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의 힘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글만 번지르르하게 쓰고 말 것이 아니라, 쓴 대로 실천하며 살 것이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난 원래 공부 못해』(정소영 그림, 은이정 글, 창비, 2008)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송아름 | 교사가 된 지 이제 10개월입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과 티격태격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얼른 자라서 모든 아이들을 다 넉넉하게 품어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기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