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통권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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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희망을

정승혜 | 2007년 06월

“배고파요!” “초코파이 먹을래?” “네~~.”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다섯 시가 훌쩍 넘었으니 이른 저녁이나 간식을 먹지 않고 온 아이들은 배가 고플 만도 하다. 이럴 때 초코파이 하나씩 주면 입이 벌어진다. 출출할 때 초코파이나 비스킷이라도 먹으면 조금이나마 시장기가 가시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가끔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온다거나 아이스크림, 컵 떡볶이를 들고 온다. 용돈으로 사서 먹으며 오는 것이다. 특히 고학년 아이들은 종합 학원에 가는 날은 중간에 뭐라도 사먹으라며 엄마가 돈을 주신다고 했다. 학원에서 몇 시간씩 공부하다보면 배가 고프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아이들은 끼니 때가 가까워질 때라든가 훨씬 지났을 때 시장기를 느꼈다. 그럴 때는 군것질을 하거나 참았다가 집에 가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고 했다.

『꽃제비』 책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책 제목을 보더니, ‘꽃제비’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한 번도 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라면서 궁금하다고 했다. 짐작해 보라고 했더니, ‘꽃과 제비를 합쳐서 부르는 말, 꽃을 좋아하는 제비, 꽃 이름 가운데 하나, 제비 이름……’ 따위를 말하고는 뭔가 다른 뜻이 있을 것 같단다. 제목에서 받은 예쁜 느낌과는 달리 표지에 있는 아이 그림은 분위기가 딴판이라며 책장을 넘겨 보더니, 그제서야 어떤 이야기를 다룬 책인지 알겠다고 한다. 아까 너희들은 밥 먹을 때가 되어서 배가 고팠지만, 집에 가면 얼마든지 배불리 먹을 수 있잖아. 그런데 북한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늘 배가 고파서 쌀밥에 고깃국 한 그릇 푸짐하게 먹어 보는 게 소원이라는구나. 다음 시간까지 읽어 와서 함께 이야기 나눠 보자고 했다.

“선생님, 이 책, 작가 선생님이 지어 낸 이야기죠? 사실이 아니죠?” 아이들은 책 내용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다. 자기들끼리 동화니까 꾸며 낸 이야기지 사실이겠냐고 말한다. 그래서 『별 줍는 아이들』(2005 여름호)에 나온 「형진이」를 읽어 주었다. 『꽃제비』를 쓴 김바다 작가의 동시이다.

두 달 전 북한에서 내려온 / 형진이는 열다섯 살 / 키는 110cm / 정형외과에서 뼈 사진 찍었는데 / 성장판이 잠자고 있대요.

아홉 살부터 / 활발히 일해야 할 성장판이 / 영양 공급이 안 되어 /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대요.

치과에 가서 진찰 받았는데 / 이는 식물만 먹어 충치는 없지만 / 성장판이 잠자서인지 / 유치가 안 빠져 / 영구치가 못 나오고 있대요.

누렇게 탈색된 머리카락 / 핏기 없는 새까만 얼굴 / 굽은 등에 볼록 나온 배 / 몸 나이는 아홉 살 / 마음 나이는 몇 살일까요?

지금부터 / 영양공급을 잘 해서 / 잠자는 성장판을 깨워 / 키를 키우고 / 마음의 꽃도 피워야 한대요.


그리고 인터넷 신문을 검색해서 모아놓은 꽃제비 사진을 보여 주었다. 동상에 걸려 발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두 발을 드러낸 채 평양소주병을 끼고 광장을 기어 다니는 누더기 차림의 어린이들, 철길에 쓰러져 있는 여자 어린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어린이 사진을 보고서야 책 내용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라는 걸 믿는다. 아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비참하다고 했다. 한민족이지만 남과 북 어린이가 사는 모습이 굉장히 차이 나는 것이 가슴 아프다, 화가 난다, 말한다. 북한에서는 왜 아무런 대책도 안 세우느냐, 고아원도 없느냐, 어른들은 왜 안 도와 주느냐, 아이들을 그처럼 버려둘 수 있느냐며 울분을 토한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가여웠지만 동화니까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단다. 북한 경제가 어렵고 식량이 부족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책 내용처럼 그럴까 싶단다.

옛날 옛날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나무꾼이 살았다. 이렇게 시작하는 옛이야기 읽은 적 있지?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무뿌리며 껍질을 벗겨 삶고 말려서 빻아 가루로 만들어 비비떡을 해 먹거나 죽을 끓여 먹으면 변비가 생겨 똥을 잘 누지 못한대. 힘을 줘서 간신히 똥을 누면 딱딱하게 굳은 똥이 나오면서, 똥구멍이 찢어져 피가 나온다는 데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생겼대. 『꽃제비』에 나오는 아이들이 똥을 누지 못해서 파 주잖니. 우리 남한도 30∼40년 전에는 그랬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렇게 사셨단다. 지금 우리는 옛이야기에서나 볼 수 있고 뜻조차 잘 알지 못하는 친구가 많을 정도로 낯선 말이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말이겠지? 내 말에 아이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책을 읽고 온 아이들은 안타깝다, 마음이 아프다, 슬프다, 안됐다, 딱하다, 불쌍하다라는 말을 수없이 했다. 비비떡을 먹고 똥을 누지 못하자 나무 꼬챙이로 서로 항문을 파 줄 때는 더러웠지만 가난하게 사는 북한 동포들이 정말 딱했단다. 똥을 누지 못하고 배가 아파서 구르다가 끝내 죽고 마는 태주를 보며 불쌍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집에 있는 쌀을 주고 싶었단다. 그리고 자신들도 배불리 먹지 못하면서도 태희와 태주에게 국밥을 사 주는 민제나 중국에서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 주는 조선족 사람이 서로 도와 주는 모습을 보고는 반성했단다. 자신들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단다. 아마 살기 위해서 내 배부터 채우려고 했을 거란다.

태희와 아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경비병 눈을 피해 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할 때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중국에서 구걸해 모은 돈을 비닐 봉지에 싸서 삼킬 때는 정말 놀랐단다. 사람이 어떻게 비닐을 삼킬 수 있을까, 그러다 목에 걸려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했단다. 더 황당했던 건 태희와 아이들이 북한으로 돌아오다가 국경을 지키는 경비병에 걸려 매를 맞으며 똥을 누었는데, 똥에 섞여 나온 비닐 똥을 다시 삼켜 버릴 때였단다. 충격이었고, 상상할 수도 없단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돈을 가지고 집으로 가려는 아이들이 애처로웠고 부모님과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에 가슴이 찡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정사정없이 매질을 하는 경비병들, 아이들에게서 뇌물을 받고서야 매질을 멈추는 경비병들에게 화가 났단다. 아무리 몰래 국경을 넘었다지만 아이들을 그토록 때릴 수 있느냐, 뇌물을 받다니 정말 벼룩의 간을 빼먹는 못된 경비병이라며 흥분해서 한참 떠들었다. 돈을 가지고 집에 돌아온 태희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묘에서 울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북한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책을 읽고서야 조금 알겠단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살지 않겠지만 가난한 아이들의 삶은 자기들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독서 신문을 만들자, 그래서 더 많은 친구들에게 북한 어린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리자고 했다. 먼저 어린이 신문과 일간지를 보며 어떤 면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런 뒤 신문에 어떤 내용을 넣으면 좋을지 이야기하였다. 신문 이름, 발행일, 발행 호수, 발행인을 정하고, 날씨, 사건 보도 기사, 미담 기사, 등장인물과 인터뷰 기사, 네 컷 만화, 광고, 독자 투고, 우리들 솜씨 자랑을 넣기로 했다. 날씨는 주인공인 태희가 상황에 따라 마음이 변화하는 걸 날씨로 표현하자고 했고, 광고는 상품 광고와 공익 광고로 하자고 했다.

우선 공책에 기사 위치와 어떤 내용을 쓸 것인지 틀을 짜고 나서 도화지에 직접 손으로 썼다. 나는 책에서 그림 몇 장을 스캔하여 준비해 놓았던 그림을 주면서 자기가 쓸 기사 내용과 알맞은 그림이 있으면 붙이라고 했다. 신문을 완성하자 아이들은 친구들 것과 돌려보면서 서로 잘 만들었다며 칭찬했다. 나는 누가 더 잘 만들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며 만드느라 고생한 자신에게, 친구들에게 박수를 치자고 했다.

입쌀밥과 고깃국 한 번 먹고 죽는 게 소원인 사람들, 벗겨 낼 껍질도 없고, 새순이 올라오기도 전에 뜯어가 파란들을 보기도 힘든 곳. 학교 책상도 걸상도 땔감으로 쓰기 위해 몰래 가져가기 때문에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집안 살림살이는 물론 입던 옷까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에 내다 팔고, 학교에도 가지 않고 장마당을 나가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아이들. 가만히 앉아서 굶어죽느니, 죽음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넘어가 꽃제비가 되어 구걸한 돈을 모아 다시 돌아오는 아이들, 북한 여기저기에서 빌어먹고, 그렇게 작은 꽃제비가 번 돈을 빼앗는 큰 꽃제비들. 아이들은 먼 나라인 방글라데시나 르완다 아이들 이야기가 아니라 통일전망대에서도 보이고 금강산 관광도 할 수 있는 북한 아이들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더 안 좋다고 한다. 한민족이기 때문이리라.

자신들이 만든 신문에 북한 어린이를 돕자는 공익 광고를 만든 아이들 마음이 예쁘다. ‘우리가 500원짜리 컵 떡볶이 한 번 안 사먹으면 북한 어린이들은 두 끼를 거뜬히 먹을 수 있어요.’
정승혜│동화책과 동시 읽는 일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마냥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생활을 오랫동안 해 오고 있습니다. 동시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