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통권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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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 나들이

[도서관 나들이]
이야기 선생님으로 행복합니다

김은숙 | 2007년 06월

내가 태어난 곳은 첩첩산골의 시골마을이었다. 어릴 때 마을에서 접할 수 있는 책이란 몇 권의 위인전과 전래 동화가 고작이었다. 그러다 학교 도서실에서 새로 구입한 그림책들을 보고서 너무나 멋진 세상에 가슴 뛰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이 바로 『눈의 여왕』이었다. 아름다운 그림에 매료되어 나중에 크면 이 그림책을 꼭 가져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에게는 특별했던 책과의 만남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우리 파주시립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특별한 곳이 아니다. 그냥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문을 열면 바로 있는 곳, 창문을 통해서도 보이는 곳, 그곳이 파주시 중앙도서관이다. 이제 문 연 지 2년이 되어가는 이곳에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넓고 알록달록한 도서관을 처음으로 접해 본 시민들은 도서관을 놀이동산으로 생각하는 듯하였다. 도서관을 찾는 이들을 온종일 쫓아다니며 “그렇게 하심 안돼요, 안돼.”라고 통제하기에 바쁜 하루 하루였다. 과연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커다란 고민이었다. 단순히 시끄럽게 떠들고 무례한 이용자로만 대했기에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자 새로운 광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 주기 시작했다. “형석아. 오늘은 책 다섯 권 빌려가네? 에이 그런데 다 만화책이구나. 다음에는 이 책도 한번 읽어 보자.”라고 하면 형석인 “어, 어떻게 제 이름을 아셨어요?”라고 되묻는다.

아이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이고 이름을 기억하자 아이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와서 책을 읽어 달라고 하는 아이들과 책을 함께 정리해 주는 아이들까지. 무엇보다도 먼저 나에게 와서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서 놀라움을 느낀다. 이름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친구’라고 한다. 그러면 그 아이는 “저는 선생님 친구 아니에요. 제 친구는 혜진이에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다. 하하하……. 웃음이 난다. “사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구란다.” 이렇게 말해도 갸우뚱 하고 도망을 간다.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될 때 ‘사서’라는 이름표를 달 수 있는가 보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방황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이렇게 방황하는 것은 사실 책을 읽기 싫어서라기보다 어떤 책이 재미있는 책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 중에서 어떤 책을 읽는 것이 좋을지 도와주는 어른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이 책을 권해 준다 해도 권장 도서나 대중 매체 소개에 따른 선별이지,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책을 발견한 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신나게 책을 읽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2006년 3월부터 시작하여 이제 일 년이 지났다. 처음 이야기를 들려줄 때는 마치 무대 위에 서는 배우처럼, 아이들 앞에 서는 것이 긴장되고 걱정되었다.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한 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면 신이 나서 한 시간을 넘기기가 일쑤였다.

책에 있는 내용을 따라서 노래도 부르고 어떤 때는 줄다리기까지 하고 나면 아이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까맣게 반짝이는 눈들을 하고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나에게 안겨서 “이야기 더 해 주세요.” 조르며 웃음 짓게 하였다. 그래서 지금 나의 별명은 ‘이야기 선생님’이다.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이 이야기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정말이지, 행복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느낀 점인데, 수많은 이야기책들 중에서 아이들이 좋아했던 우리나라 그림책이나 이야기책을 꼽아 본다면 정말 열 손가락으로 충분하다. 최근에 어린이들에게 들려준 책들 중에는 『똥떡』(언어세상, 2003)만이 유일하게 우리나라 책이었다. 이 책 외에 내가 읽어 준 『고구마 방귀 뿡!』(꿈소담이, 2003) 『고 녀석 맛있겠다』(달리, 2004) 『11마리 고양이』(꿈소담이, 2006) 『난 병이 난 게 아니야』(한림, 1998)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한림, 1991) 들이 모두 일본 그림책이다. 그리고 이 말고는 모두 영미권 그림책인 셈이다. 초등학교 저학년과 유아들을 위한 재미있는 우리나라 그림책이 많이 출판되면 좋겠다.

이야기 들려주기 1주년 기념공연 「팥죽할멈과 호랑이」
‘이야기 들려주기’ 프로그램이 일주년을 맞는 날 어머니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팥죽할멈과 호랑이」 연극을 보여주었다. 어린이 실의 온돌 마루에서 펼쳐진 연극은 시골의 작은 운동회를 연상시켰다. 온 가족들이 함께 와서 우리의 어설픈 연극 「팥죽할멈과 호랑이」를 지켜보는 모습이 참으로 가슴 뿌듯하였다. 연극이 끝나자 아이들은 할머니를 괴롭힌 호랑이에게 쫓아가서 마구 혼내주는 것이 아닌가. 이에 주위 모든 사람들이 웃을 수 있었다. 가족들을 모이게 하는 힘, 책과 도서관의 힘이다. 그래서 어린이 실에서는 한 주간에 세 번 이야기 시간이 있다. 수요일과 목요일 토요일의 이야기 들려주기 시간은 아이들이 행복한 시간이다.

어린이 실의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초등학생들과 유아들, 그리고 부모님들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어린이 실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스스로 어른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렇지만 중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어린이 실의 책을 멀리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어린이들이 우선 읽어야 할 책인 것은 맞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어린이 책들이다.

어린이가 자라 청소년이 된다. 청소년이 된 뒤에도 어린이처럼 손길이 필요하지만 청소년에 대한 배려는 사실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어린이 실은 따로 있어도 청소년 실이 따로 있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실에서 청소년에 대한 서비스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간고사 기간의 청소년들은 도서관에서 문제아들이다.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을 마냥 내쫓을 수만은 없다. 도서관에서 쫓겨 나간 아이들이 갈 곳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에게 맞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에는 중·고등학생 언니 오빠들과 초등학생 동생들을 일 대 일로 연결하여 책을 읽어 주는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있다. 과연 어떠한 풍경들이 벌어질지 기대된다.

이제 어린이들과 만난 지 3년, 어린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 항상 꾸준히 공부하는 사서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어린이에 대해 공부하고 책에 대해 공부하자.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서만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고, 베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똥떡』(박지훈 그림, 이춘희 글, 언어세상, 2003)에서 가져왔습니다 ━ 편집부.
김은숙│파주시립도서관의 어린이 실인 ‘어린이 책 나라’에 근무하는 사서입니다. 아이들이 ‘이야기 선생님’으로 불러 주어 행복합니다. 나중에는 ‘이야기 할머니’가 되어 아이들에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이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