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통권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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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 문학의 부끄러운 유산]
문학성을 갖춘 부왜 문학의 교묘함
――부왜 문학 <6>

어린이문학회 콩세알 | 2007년 06월

일제 시대에 문학으로 부왜를 한다는 목적 아래 여러 편의 어린이문학 작품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그 수준이 낮았다. 부왜라는 주제를 작품 속에 충분히 녹여내지 못하고, 성급하게 외치거나 어설프게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 몇몇 작품은 부왜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만 빼면 지금 읽어도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문학적 형상화가 뛰어나다.

『동아일보』에 2회(1938년 3월 17일, 18일)에 걸쳐서 연재된 노양근의 동화 「울지 안는 대장」을 살펴보자. 덕룡이는 병정놀이에 관심 없는 친구들을 꾀어서 병정놀이를 하려고 한다. 아이들은 이미 대장처럼 차리고 온 덕룡이에게 할 수 없이 대장 자리를 맡긴다. 조금 놀다가 덕룡이의 호령에 맞추어 걷고 뛰는데 싫증이 난 아이들은 놀이를 그만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덕룡이는 아이들의 불만을 무시하고 신나게 호령을 하면서 달리다가 그만 바지가 벗겨진다. 아이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놀이를 그만하려고 한다. 부끄럽고 무안해진 덕룡이는 대장을 비웃는 졸병을 벌준다며 한 아이를 때린다. 맞은 아이는 제 형에게 그 사실을 이르고, 아이의 형은 덕룡이를 찾아와 덕룡이의 뺨을 몇 대나 때린다. 그러나 아직도 놀이에 빠져 있는 덕룡이는, 대장은 울지 않는다며 눈물을 꾹 참는다.

어린 아이들을 겨냥하여 씌어진 부왜 작품에서 병정놀이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다. 그러나 「울지 안는 대장」은 같은 소재의 작품들에 비해 재미있게 읽히는 편이다. 그 이유는 다른 부왜 작품들이 쉽게 범하는 잘못, 즉 병정놀이의 규칙을 일일이 설명하거나 군인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직접 말하는 것을 삼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병정놀이에서 대장인 덕룡이와 졸병인 아이들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주인공 덕룡이에 대한 유별난 애정을 통해 교묘하게 부왜의 뜻을 전달한다. 친구를 때려서 그 대가로 얻어맞고 있는 덕룡이를 ‘참으로 울지 안는 대장입니다.’하고 대견한 듯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룡이의 잘잘못은 따지지 않고, 그 씩씩함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독자는 덕룡이 같은 아이들이 커서 씩씩한 일본 병사가 되기를 바라는 일제의 속셈을 읽을 수 있다.

정비석의 「조춘(早春)」(『조광』 제8권 제5호, 1942년)과 안회남의 「바다로 가자」(『방송소설명작선』 조선출판공사, 1942년)는 나이가 좀 더 많은 소년이 읽을 만하다. 두 작품은 모두 소년이 주인공이다. 「조춘」에 나오는 소년은 가난해서 상급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학교 급사로 취직한다. 그러나 자신을 채용한 사람이 상급학교에 간 친구의 아버지인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아 넓은 바다로 나가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로 떠난다. 「바다로 가자」에 나오는 소년은 영웅이 되는 꿈에만 빠져 있어서 취직도 결혼도 하지 않고 매일 영웅소설만 읽으며 지낸다. 그러나 집에서 기르던 개가 꿩을 잡아온 것을 보고 소년도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지원병으로 떠난다.

두 작품은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무리 없이 읽힌다. 남루한 현실과 원대한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년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그려 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소년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에 물든 인물이 아니다. 그저 넓은 세계로 나아가 큰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평범한 소년일 뿐이다. 이 소년들이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마침내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은 자못 감동적이다. 그러나 여기에 두 작품의 교묘함이 있다. 두 소년이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넓은 세계, 즉 바다는 그 당시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두 작가는 ‘전쟁터로 가는 것’을 ‘바다로 가는 것’으로,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을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으로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다.

결국 부왜 문학에서 ‘문학성이 있는가?’ 라는 말은 ‘얼마나 교묘하게 부왜라는 주제를 전달하고 있는가?’ 라는 말과 같다. 앞에서 살펴본 세 작품은 모두 노골적이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문학성 없는 작품들이 마구 쏟아지던 시기에, 이처럼 ‘문학적인’ 부왜 작품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진지하게 부왜의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어린이문학회 콩세알│어린이와 어린이 문학을 사랑하는 진주 지역의 교사와 학부모, 대학생들의 모임입니다. 콩 한 알을 심을 때도 짐승들의 몫까지 생각했던 옛어른의 넉넉한 마음으로 어린이 문학을 소개하고, 창작하고, 비평하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