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통권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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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있는 풍경]
영어 때문에 혓바닥 자르지 마시라

박상률 | 2007년 06월

살다 보면 소설에서조차도 미처 다루지 못한 기상천외한 일이 많다. 상상력으로 먹고사는, 명색이 작가인 내 머리로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 많은 것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대한민국에 양인들 말인 영어가 들어와서 생긴 일도 그 가운데 한 가지이다.

듣자하니 영어 발음 좋아지라고 혓바닥 수술을 한다는 소리가 있다. 설마, 뜬소문이겠지 했는데, 사실이란다. 서울특별시하고도 강남 아이들이 그런다는 것이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내 머리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어이없는지고! 별의별 인간들이 떼거리로 몰려 사는 특별시에서는 워낙 특별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라 그냥 흘려듣고 말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영어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이제는 특별시에만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웬만한 보통시에서도 일어나는 보통 일이 되고 있다 하니 그냥 쓴웃음 한번 짓고 말 일이 아니다.

기왕 내친 김에 영어에 관한 기막힌 얘기 하나 더. 얼마 전 언론의 보도를 보니 제대로 영어를 구사하지도 못하는 외국인이 버젓이 보통시에서까지 영어 강사 노릇을 하고 있단다. 그들은 다만 물 건너온 ‘양인의 허우대’를 가진 까닭에 영어로 숫자 정도만 셀 줄 알아도 영어 강사 노릇을 할 수 있었단다. 초등학교는 물론 유치원에서부터 영어 과외니 뭐니 하며 난리법석을 피우는 현실이라 그런 양인의 허우대를 가진 ‘인종’들이 버젓이 ‘영어 선생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리라.

지금 대한민국은 가히 영어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영어를 배우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젊은이들은 영어 이름도 따로 지어 가진단다. 나아가 가게 간판에서 한글 이름이 점차 사라지고, 굵직한 회사들 이름도 영어 표기로 많이 바뀌었다. 심지어는 나라에서 운영하던 공기업의 이름도 내놓고 영어로 바꾸고 표기도 영어 약자로 쓴다. 그뿐인가. 특별시 서울의 잔치 이름도 영어로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다. 이러다간 대한민국 국호도 영어 식으로 바꾸어 표기하자고 할지 모르겠다.

모두들 영어, 영어 해대니 이젠 나이 드신 분들도 자기 아내를 이를 때 곧잘 ‘와이프’라고 한다. 필자는 오랜만에 만난 어느 친구가 말끝마다 ‘우리 와이프가. 우리 와이프가’ 해서 듣다못해 ‘그 사이에 아내가 양녀로 바뀌었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 어떻든 ‘아내’와 ‘마누라’와 ‘집사람’과 ‘안주인’은 다 집을 나가 버리고 ‘와이프’가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아내를 이르는 호칭뿐만이 아니다. 이제 한국인들은 일상 대화를 하면서도 꼭 양인들 말 한두 마디는 쓰려 한다. 특히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속이 터질 때가 많다. 오락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연속극이며 일반 교양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들도 우리 말로 할 수 있는 것을 꼭 혓바닥 굴려 영어로 ‘씨부렁’거린다. 그러다보니 텔레비전의 웬만한 프로그램 이름도 죄다 영어식으로 바뀌었다. 영어 홍수 속에 우리말 이름이 되레 낯설게 느껴질 정도이다. 왜들 이러나? 왜들 영어를 못해서 난리인가? 영어를 하기만 하면 저절로 밥 먹고 살 수 있나? 영어로 말하면 사람 값어치가 올라가기라도 하는 것인가?

영어는 그야말로 도구이다. 그런데 그 도구가 삶 자체를 지배하려 한다. 도구는 도구로만 쓰면 그만이다. 따져 보자. 대한민국이 제법 정보 산업 국가라 하는데 그 원천이 어디 있는가? 그쪽 방면 사람들 얘기로는 바로 우리 글인 한글이 정보 시대와 정보 매체에 맞아떨어진 게 정보산업 발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단다. 휴대전화니 컴퓨터니 하는 것들이 일상생활에 파고들고, 나아가 기술 수준이 높아지는 데에 한글이 공헌한 바가 많다는 것이다.

문자를 입력하는 기술이며 속도에 있어서 한글을 따라올 문자가 없다고 한다. 한자나 일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영어조차도 우리 글을 따라오지 못한단다. 이른바 정보 산업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문자 생활과도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남의 것을 따라가지 못해 안달이다.

외국어는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배워서 쓰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전 국민이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난리를 피우는 세태, 정말이지 ‘짜증’ 난다.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영어 공부해야겠다고 한 보도를 보면 ‘왕짜증’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외국인을 만나 대화를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대통령쯤 되면 외국어를 잘하더라도 직접 나서서 설칠 필요가 없다. 의전상으로도 외국어 잘하는 전문가를 내세워야 한다. 게다가 국제회의 가면 동시통역이 다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조차도 외국어, 특히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이니 일반인들이야 오죽하랴.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필요한 건 지금처럼 혓바닥 잘라서 양인들 발음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영어가 아니다. 대부분은 영어를 해독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말을 해야 할 때에라도 굳이 발음이 좋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식으로 하든 다 알아듣는다. 우리가 우리 말 할 때 사투리 억양이거나 발음이 특이하다고 해서 못 알아듣는가? 외국인이 한국 말을 할 때 말투가 어색하다고 해서, 혹은 더듬거린다고 해서 우리가 못 알아듣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흉보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서툴더라도 다 알아듣고 되레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도 그러면 된다. 영어 못해서 망신을 샀느니, 창피했느니 하며 전천후로 영어 열등감을 부추기는 ‘영어 업자’들의 농간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몇 해 전 외국의 어느 기구에서 발표한 것을 보면 세계 언중 가운데 한국어는 7,500만 명이 사용하고, 사용 순위는 11위라고 했다. 결코 만만히 볼 언어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말과 글을 가벼이 여기고 영어만 잘하면 되는 줄 안다.

영어 열풍은 필히 생활 양식이나 사람들의 가치관에 양풍을 불러 온다. 언어는 바로 문화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말글을 팽개치고 영어를 앞세우면 우리의 의식이나 생활이 언젠가는 양인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미 그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어를 잘해서 미국 대학에 들어가고, 영어를 잘해서 외국 기업에 들어가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것 대신 ‘아메리카’ 것을 최고 가치로 여기게 된다. 이미 한국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영어를 잘 하는 목적이 아메리카의 가치를 습득하자는 것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 아메리카라고 언제나 세계인의 부러움을 사지는 못한다. 흥한 것은 반드시 쇠하기 마련이다.

기왕 외국어를 하려면 영어에만 치우치지 말고 좀 더 다양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입만 열면 떠들어쌓는 ‘국제화’ 시대에도 맞다. 영어만 하는 건 ‘아메리카 제국주의’에 맞추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외국어를 하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깊이 알 수 있게 책을 읽고 해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입으로 하는 외국어 몇 마디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영어를 입이나 귀로 훈련을 한 적이 없어 이른바 ‘생활 영어’는 못한다. 그런데도 외국 여행을 다니는 데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내가 생래적으로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전라도 말투에 그대로 영어를 실어서 물어도 웬만한 양인은 다 알아 듣는다. 그러니 혓바닥을 굳이 어떻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럼 상대가 하는 소리는? 간단한 건 알아듣고, 잘 모르겠으면 수첩과 필기구를 내밀며 써달라고 한다. 그러면 의사 소통이 저절로 된다.

그럼 나는 영어를 어떻게 공부했는가? 그냥 서당 공부 식으로 막고 품었다. 30년도 훌쩍 넘은,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 저쪽의 시골 중학교에선 대한민국 정부의 ‘문교’ 혜택을 그다지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하여 영어를 배울 때 특별히 누가 가르쳐 줄 형편도 아니어서 한문 공부할 때처럼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운 게 그만이다. 그런 뒤 나중에 고등학교 때쯤에 영문법 책 좀 읽으니까 저절로 문리가 터졌다. 나는 영어와 한문을 그렇게 익혀 지금까지 ‘잘 써먹고’ 산다.

자꾸만 주입식 교육을 나쁘게만 말하는데, 언어 습득에선 그렇지 않다. 기본적인 것을 조금만 외워두면 그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된다. 특히 어려서 외운 것들은, 심지어는 내용상 아무 연관 없이 되는 대로 마구 계통 없이 외운 것조차도 평생 간다. 그러니 대한민국 학부모들이여, 어린 아이들을 외국어 학원으로 내보내고 외국으로 연수 보내고 혓바닥을 자르지 마시라. 그 대신 쉬운 영어 동화책 하나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게 하시라. 그러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다 하게 된다. 나중에 사업상 상담을 영어로 하게 되면 그땐 어려서 저장된 밑천을 바탕으로 자기 직업에 맞는 영어를 공부하면 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대부분은 양인을 만나 밥 한 끼 먹을 일도 없다.

또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우면 영어를 잘하나? 그렇지만도 않다. 일단 모국어를 확실히 해야 외국어도 잘 한다. 영어도 결국은 우리말 실력이다. 우리말은 되지도 않게 쓰면서 영어를 잘 할 수는 없다. 서당식 방법으로 익힌 외국어 실력으로 영어책과 한문책 번역을 적지 않게 한 필자는 감히 주장한다. 번역도 결국은 모국어 실력이더라고!

작가는 자기 모국어를 표현 수단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자기 모국어에 정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작가는 영어로 창작까지 하자고 한다. 그 작가가 영어로 창작을 하든 안 하든 그건 그 사람 자유지만 참 어이없는 생각이다. 외국어를 아무리 잘한다 해도 모국어와 함께 익힌 다른 것들까지 외국어 속에 들어 있을 수는 없다. 모국어는 그냥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작가에겐 더욱 더 그러하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미리 쓰는 방학 일기』 (김유대 그림, 박상률 글, 사계절, 2000)에서 가져왔습니다 ━ 편집부.
박상률│전남 진도에서 태어났습니다. 1990년 『한길문학』에 시 「진도아리랑」을 발표하면서 작품 호라동을 시작한 뒤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집 『진도아리랑』 『배고픈 웃음』 등과 소설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 동화 『바람으로 남은 엄마』 『미리 쓰는 방학 일기』 『개밥상과 시인아저씨』 등을 펴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