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2월 통권 제51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사진과 시
책 세상 나들이
특별 원고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우리 동화 깊이 들여다보기]
아버지의 압제가 부른 아이들의 초현실

손향숙 | 2007년 02월

판타지 논의에서 빈번하게 인용되는 용어들로는 톨킨의 “제2의 세계”와 어윈의 “불가능성의 게임”, 그리고 잭슨의 “전복의 문학” 등을 꼽을 수 있다. 일견 판타지에 대한 상이한 접근을 암시하는 이 세 용어는 판타지 논의를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의 관계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제2’, ‘불가능성’, ‘전복’ 등의 표현이 이미 ‘제1’, ‘가능성’, ‘전복의 대상’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용어들이 시사하는 바, 판타지의 핵심은 현실과 초현실의 긴장이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로 치환되거나 귀속될 경우 이를 본격 판타지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이성숙의 『화성에서 온 미루』와 공지희의 『영모가 사라졌다』는 본격 판타지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할 수 있다. 본격 판타지에서는 초현실 세계의 이야기만으로 작품 외적인 현실 세계와의 관계를 논할 수 있는 데 비해, 이 두 작품은 현실 세계의 이야기가 작품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초현실 세계는 이 세계에 침입하거나 이 세계를 위해 존재하는 세계로 그려진다. 아버지의 압제가 작품에 초현실 세계를 끌어들이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하나로 엮일 수 있는 이 두 작품에서 미루와 라온제나라는 초현실 세계는 현실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 긴장과 균형보다는 공감과 동질성을 추구한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현실이 뒤집힐 때의 묘미가 아닌, 흐트러졌던 질서가 바로잡힐 때의 위로와 교훈을 제공한다.

『화성에서 온 미루』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근대에게 화성에서 온 외계인 미루는 또 다른 자아이자 소망을 이루어 주는 존재이다. 텔레파시로 미루와 연결되어 있는 근대는 유리 상자에 갇힌 미루를 통해 아버지와 대면한다. 또한 “마술처럼” 미루가 자신에게 왔다는 사실은 근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 느낌을 준다. “별 볼일 없는 내가 최고가 되고, 최고라고 떠받드는 형이 별 볼일 없어지는” 마술을 바랐던 근대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버지에게 항상 “못난 놈”일 수밖에 없는 근대를 최고로 느끼게 해 주는 미루의 등장은 미루가 꼭 외계인이 아니었더라도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를 입증하듯 미루의 첫 등장은 파괴적이며 근대 가족은 미루를 침입자로 인식한다. 미루가 나타나던 밤 “대문 옆에 있던 감나무가 반으로 쩍 갈라져 모락모락 김을 뿜고 있었”으며 부엌에 나타난 미루를 반긴 것은 “엄마의 비명 소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침입이 꼭 파괴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쩍 갈라진 “감나무가 우리 가족을 구했다.”고 하는 삼촌의 말에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삼촌의 말은 물론 벼락이 지붕 위가 아닌 감나무에 떨어져 다행이라는 의미지만 갈라진 감나무와 미루의 관계를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결국 미루의 침입이 근대 가족을 구할 것이라는 암시를 읽을 수 있다. 근대가 학교 수업 시간에 미루 생각을 하다가 두 번 지적당하고 세 번 벌을 선다는 사실 역시 항상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학생으로 살기를 자처하는, 그래서 친구 하나 없이 고립되어 있던 근대의 삶이 미루로 인해 강제로기는 하지만 열려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책의 삽화도 이러한 변화를 드러낸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인물들은 혼자 있거나 네모난 틀 속에 갇혀 있다. 넓은 배경 속에 인물을 작게 집어넣음으로써 외롭고 힘든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기도 한다. 가족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에서는 근대와 미루만 색을 칠하고 나머지 가족들을 무채색으로 표현함으로써 가족과는 유대를 느끼지 못하는 근대가 미루와 한 편을 이루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렇듯 고립과 단절이 주조를 이루던 그림에 변화가 보이는 것은 근대가 첫사랑인 주희 누나와 함께 있을 때, 그리고 미루와 함께 있을 때를 묘사하는 경우들이다. 이런 그림들은 근대가 밝은 얼굴로 누군가와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미루의 침입으로 가능해지는 치유의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미루가 등장함으로써 묻혀 있던 가족 내 문제점들이 하나 둘씩 겉으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경우, 미루의 등장은 직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루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가 직장에서 놀림감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사장이 미루와 한통속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부사장과의 관계도 더욱 악화되는 것이다. 미루를 통해 초라하고 불안정한 아버지의 사회인으로서의 위상이 드러나는 셈이다. 미루의 우주선을 팔아 인생의 전기를 마련해 보고자 했던 삼촌은 결국 자신이 좋은 직장에 취직할 능력이 없음을, 형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매일 도서관을 가는 척했지만 사실은 동네를 떠도는 백수에 지나지 않는 존재임을 고백하게 된다. 근대의 형 수태 또한 일등과 부모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을 여학생 탈의실과 화장실에서 몰래 사진을 찍는 것으로 해소하려 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지금까지 쌓아 온 천재 우등생으로서의 이미지를 잃게 된다.

이렇게 가려져 있던 가족 내 문제들이 겉으로 드러나 문제로 인식되면서 근대 가족은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맞게 된다. 삼촌은 자신의 능력에 맞게 보험 설계사로 취직한다. 가족은 옛날에 살던 변두리로 다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는데, 이는 형의 교육이 더 이상 가족의 최고 관심사가 되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로부터 독자는 수태가 최고에 대한 부담에서 이제 다소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유리 상자에 갇힌 미루에게 고춧물을 부었던 아버지는 미루와 하나로 연결된 근대의 실신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희미하게나마 깨닫는다.

작품에서 아버지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버지가 실직하고 대신 어머니가 취업한 상황에서 “계획했던 가출을 하게 될지 지금은 모르겠다. 당분간은 라면 물도 못 맞추는 아빠를 도와 줘야 할 것 같다.”라는 근대의 말을 통해 아버지의 변화를, 이로 인한 부자사이 관계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아버지가 직장에서의 힘을 완전히 잃으면서 오히려 가족 내에서는 아버지로서의 위상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이는 가족 위에 군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단지 근대 아버지 개인의 문제는 아님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러한 작품의 결론은 미루의 입을 통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와 무관하지 않다.

미루의 침입과 이로 인해 드러나는 갈등과 갈등의 해소를 통하여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모든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껴안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루는 근대에게 “우주 생명은 있는 그대로 놓아 두는 게 가장 가치 있다는 거지.”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널 억지로 꿰어 맞추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라고 덧붙인다. 작품에 암시되는 근대 가족의 변화는 미루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실천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메시지가 미루의 입을 통해 이렇게 설교처럼 흘러나온다는 사실은 작품에서 미루가 맡은 역할을 암시한다. 미루라는 초현실적 요소가 근대라는 현실적 요소의 갈등과 깨달음, 그리고 치유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는 역할에 머물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초현실적 요소가 작품에 제시된 현실, 특히 가족 내 갈등을 드러내 폭발시켜 해소시킴으로써 가족을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교훈을 제시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화성에서 온 미루』는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오이대왕』을 꼭 닮아 있다. 오이대왕의 등장으로 호겔만 씨 가족에 일어나는 일들을 아들인 볼프강의 눈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초현실인 오이대왕이 억압받는 아들 볼프강이 아닌 억압하는 아버지의 또 다른 자아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화성에서 온 미루』와는 구별된다. 그러나 두 작품은 모두 군림하되 권위 없는 아버지와 가족들의 갈등이 미루와 오이대왕이라는 초현실적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증폭되다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며 마무리됨을 보여 준다. 초현실이 현실, 특히 가족의 메타포로 기능하는 두 작품을 읽으며 독자는 꼭 초현실적 존재들이 아니었더라도 작품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의문을 품게 된다.

공지희의 『영모가 사라졌다』에서 초현실 세계가 제시되는 방식은 앞의 두 작품과 다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가 팽팽한 긴장을 통해 공존하기보다는 한 세계를 위해 다른 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앞의 두 작품과 공통적이다. 『영모가 사라졌다』에서 초현실은 라온제나라는 세계로 제시된다. 현실 세계에 감춰진 입구를 통해 다다를 수 있는 곳이라는 점과 담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소설 속 인물들을 라온제나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초현실 세계가 작품에 들어오는 양상은 『화성에서 온 미루』나 『오이대왕』과 다르다. 또한 앞의 두 작품에서 미루와 오이대왕의 등장이 파괴적인 양상을 띠었던 것과 달리 라온제나는 인물들의 강렬한 소망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바로 이 점, 즉 인물들이 현실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숨어 들어가는 곳이 라온제나라는 설정이 라온제나의 판타지 세계로서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라온제나는, 판타지 세계는 그 나름의 규칙에 철저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하지 못하다. 현실에서 건너온 인물들 각자의 필요에 의해 이 세계의 규칙이 임의적으로 수정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라온제나에서의 시간의 흐름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병구의 경우 라온제나는 현실을 피해 들어간 곳이라기보다는 사라진 친구 영모를 찾아 들어간 곳이다. 엄마가 잠든 사이 몰래 집을 나와 영모를 찾으러 다니던 병구는 담이의 안내를 받아 라온제나로 들어간다. 그러나 병구가 라온제나에 머무는 동안 현실의 시간은 멈추어 있다. 담이는 그것이 라온제나가 병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반면 폭력적인 아버지와 뒤틀려 가는 자신을 피해 현실을 떠나고 싶었던 영모의 경우, 영모가 라온제나에 머무는 동안에도 현실의 시간은 흘러간다. 라온제나에서 시간의 흐름은 일정하지 않으며 인물들의 소망에 따라 앞으로 흐르기도 하고 뒤로 흐르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힘들어서 빨리 나이가 들어 죽음에 다가가기를 원하는 동안 영모는 할아버지가 되지만, 친구 병구를 기억하고 다시 병구와 놀기를 갈망하게 된 영모는 다시 아이가 된다. 로아는 어린 소녀에서 할머니로 변화한다.

이렇게 무원칙적인 시간은 라온제나라는 세계의 개연성을 떨어뜨린다. 아저씨가 된 영모를 영모 아버지가 못 알아본다는 설정과 할머니가 된 로아가 여덟 살 소녀일 때 로아를 쫓던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는 설정이 모순을 일으키는 것도 이 세계의 개연성을 해치는 요인이다. 이는 작가와의 공모를 통해 판타지 세계의 원칙을 충실히 따라가야 할 독자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라온제나는 현실 세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공간으로, 현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한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공간으로 추상화된다.

작품 여러 곳에서 라온제나는 어린 시절의 순수, 자연, 화해 등과 연결되어 제시된다. 할아버지로 변한 영모가 병구에게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라온제나는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적에 가졌던 기쁨을 되찾을 수 있고 자라면서 잃어버린 즐거움을 다시 찾아낼 수도 있”는 곳이다. 또한 “우리를 품었다가 다시 태어나게 해 주”기도 하며 그 곳을 찾은 사람으로 하여금 “온몸이 새로 깨어나는 듯 가벼워졌다.”라고 느끼게 해 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순수를 간직하고 있기에 놀라운 치유력을 발휘하는 곳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숲에 들어오니 고향에 온 것 같아. 그리고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고”라는 영모 아버지의 말은 라온제나와 그것이 간직하고 있다고 상정되는 어린 시절의 관념성을 드러낸다. 영모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배고픈 가난에 대한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현실과 격리되어 추상화된 어린 시절의 이미지를 라온제나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상성은 현실과 라온제나의 균형을 깨뜨린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화성에서 온 미루』나 『오이대왕』을 읽을 때와 같은 질문을, 즉, 라온제나가 왜 굳이 초현실의 외양을 갖춰야 했는지를 묻게 된다.

판타지란 “합의된 현실로부터의 일탈”이라고 했던 흄의 정의에 따르자면 『화성에서 온 미루』와 『영모가 사라졌다』는 판타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현실 세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판타지적 요소를 끌어들이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현실과 초현실의 팽팽한 긴장의 묘미를 살려 내지 못하고 있다. 억압적이지만 진정한 권위를 지니지는 못한 아버지와 그 때문에 고통 받으며 뒤틀린 상태로 성장해 가는 아들의 갈등이 판타지적인 요소를 잉태시키는 두 작품에서 초현실은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해, 혹은 현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용’된다. 두 세계가 긴장을 유지하며 공존하기보다는 초현실 세계가 현실 세계에 흡수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작품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미루와 라온제나라는 초현실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의미에서 이 두 작품은 본격 판타지로 분류되기는 어렵다 하겠다.
손향숙│영국 아동문학을 전공하였고, 서울대 초빙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 「소년과 제국 : 19세기 중엽 이후의 모험소설과 학교소설」, 「피터팬 신화의 현대적 재생산」, 「해리 포터는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남을 것인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