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4월 통권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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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우리 안의 보물을 찾아 떠난 여행]
동굴 속의 하늘나라 소년, 버들잎

김환희 | 2006년 04월

「연이와 버들잎」은 1914년에 채록된 구전 설화본이 있을 정도로 이 땅에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온 옛이야기이다. 일제 강점기에 출간된 손진태의 『조선민담집』과 박영만의 『조선전래동화집』을 보면 이 설화가 우리 나라 대표 민담으로 소개되어 있다. 착한 소녀가 사악한 계모의 학대에 시달리다가 멋진 남자를 만나서 구원받는다는 「연이와 버들잎」의 기본 설정은 「콩쥐팥쥐」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 두 유형의 설화는 전체적인 서사 구조와 분위기가 서로 많이 다르다. 「콩쥐팥쥐」에는 콩쥐의 죽음과 재생이 해학적으로 표현된 반면에, 「연이와 버들잎」에는 버들잎의 죽음과 재생이 비장미 있게 그려진다. 이 설화가 최초로 채록된 시기가 「콩쥐팥쥐」의 채록 및 뻬로와 그림 형제의 한국적인 수용보다 훨씬 앞서니까 우리 나라 ‘계모모해담’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인섭과 손진태의 책에 수록된 구전 설화본을 종합해서 줄거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연이는 친어머니가 죽은 뒤에 들어온 계모 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며 고생한다. 계모는 연이에게 온갖 힘든 일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겨울철에 산에 가서 나물(어떤 민담에서는 상추)을 뜯어 오라는 불가능한 일을 시킨다.

연이는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바위틈을 통해 동굴에 들어가게 된다. 동굴에 들어가니 봄기운이 느껴지는 싱그러운 넓은 들판에 초가집이 놓인 별천지가 펼쳐진다. 초가집에서 잘생긴 미소년이 나온다. 연이의 딱한 사정을 들은 소년은 연이에게 나물을 뜯어 주면서 언제든지 동굴 앞에 와서 “버들잎아, 연이가 왔다. 문을 열어 다오.”라고 주문을 외우면 문을 열어 주고 나물을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연이에게 물약(생명수)이 담긴 세 개의 병 ― 하얀 병, 빨간 병, 파란병 ― 을 주면서 잘 간직해 두라고 한다.

나물을 계모에게 갖다 주자 계모는 의심을 품고 연이에게 한두 차례 더 나물을 뜯어 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연이가 번번이 나물을 뜯어오는 데 성공하자 자신이 직접 연이의 뒤를 밟는다. 계모는 연이가 동굴 앞에서 주문을 외우고는 동굴 속의 소년과 만나는 것을 목격하고 집으로 먼저 돌아온다. 연이가 집에 왔을 때, 계모는 연이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고 욕하면서 흠씬 두들겨 팬다. 그 후 계모는 혼자 산으로 올라가 동굴의 입구에서 연이처럼 주문을 외우고 안으로 들어간다. 버들잎은 계모의 칼에 죽은 후 불태워지고, 초가집과 밭도 폐허가 된다.

다시 동굴에 온 연이는 버들잎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물병을 받은 생각이 나 품에서 물병을 꺼내 뼈만 남은 시신 위에 약물을 뿌린다. 하얀 병의 물을 뿌리자 살이 돋고, 빨간 병의 물을 뿌리자 피가 돌고, 파란 병의 물을 뿌리자 버들잎이 다시 숨을 쉰다. 깨어난 소년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비를 관장하는 선관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연이를 구하러 왔으니 같이 천상으로 가서 부부로 살자고 말한다. 연이는 버들잎과 함께 무지개를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간다.

이러한 내용을 지닌 「연이와 버들잎」은 계모의 사악함이 극단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구전 설화를 있는 그대로 동화로 만들기 쉽지 않은 소재이다. 계모가 버들잎을 칼로 찔러 죽이고 불을 지른다는 화소와 연이가 뼈를 감장해서 소년을 살린다는 화소에서 느껴지는 잔혹성과 비극성 때문인지, 이 설화를 동화로 다시 쓴 작가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원수와 박종현이 다시 쓴 동화가 두 권 정도 현재 시중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연이와 버들잎」은 계모를 지나치게 잔혹하게 그렸다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가 지니는 매력과 가치가 매우 크다. 유아나 저학년 독자들을 위해서 이야기를 일부 고쳐서 들려주더라도, 고학년 이상의 독자들에게는 구전 설화본의 맛과 멋을 온전히 살려서 이야기를 전해 줄 필요가 있다. 또 「연이와 버들잎」은 서사의 뼈대가 튼실하고 인물의 개성이 뚜렷한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가 구체성과 개연성을 보완한다면 멋진 창작 옛이야기나 판타지 소설로 변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연이와 버들잎」의 서사 구조가 보여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인 연이가, 콩쥐나 신데렐라가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버들잎과 결합한다는 점이다. 연이는 버들잎과 만나면서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소녀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타인의 생명을 구원하는 자립적인 인물로 변모한다. 사악한 계모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옛이야기에서 계모에 학대받는 신데렐라 형의 주인공들은 어머니의 혼령 내지 초자연적인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서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한다.

하지만 연이는 불에 타서 해골이 되어 버린 버들잎을 보고 울면서도 침착하게 뼈를 잘 수습하고 약물을 기억해 내서 소년을 소생시킨다. 연이가 자립성을 지닌 성숙한 인격체가 되어서 버들잎과 부부가 되어 승천한다는 설정은 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보나 교육적인 차원에서 보나 바람직하다고 평할 수 있다.

「연이와 버들잎」이 보여 주는 또 다른 매력은 연이가 삶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인격체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인물이 버들잎이라는 점이다. 이야기를 좀 더 주의깊게 읽다 보면, 버들잎은 연이가 무지개를 타고 자신과 함께 천상의 세계로 가기 전에 좀 더 자립적인 존재로 성숙하기를 바랐다는 느낌이 든다.

버들잎은 연이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신비의 약물이 담긴 병 세 개를 미리 준다. 또 연이에게 동굴에 들어올 때마다 입구에서 “수양수양 버들잎아, 연이 왔다, 문 열어라.”라고 외치라고 시킨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한 조선 시대에 여자가 대문에서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이름을 대면서 문을 열라고 외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버들잎은 연이가 신선한 산나물을 뜯으러 동굴 세계로 들어오기 전에 반드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주문을 외쳐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연이의 스산하고 척박한 삶에 위안과 온기를 가져다 준 인물, 연이에게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힘과 담력, 자기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 배짱을 불어 넣어 준 인물은 버들잎이다. 버들잎은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부드러운 품성과 유약한 신체를 지닌 여성적인 남자이다. 계모의 칼에 제대로 저항도 못한 채 맥없이 살해될 정도로 폭력에는 무기력한 인물이다.

버들잎은 주인공의 신분 상승을 돕고 계모를 단죄하는 여느 ‘백마 탄 왕자’는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홀로서기를 돕는 ‘소울 메이트’에 가깝다. 자신의 죽음과 재생을 통해 연이의 ‘홀로서기’를 자의반 타의반 도와 주고 함께 승천한 버들잎은 지금의 시대 감각에 부합되는 남성상이라 볼 수 있다. 연이와 버들잎의 쌍방향적인 사랑과 상생 관계가 현대적으로 잘 변용된다면 오늘날 독자의 마음 속에도 깊은 울림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연이와 버들잎」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상징 체계에서 볼 때 매우 독특한 설화이다.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수양수양버들잎’ ‘수양버들잎’ ‘반반버들잎초공시’ ‘버들이’ 등과 같은 여성적인 이미지를 지닌 이름을 붙인 옛사람들의 상상력이 흥미롭다. 우리는 ‘버들잎’ 내지 ‘버드나무’를 연상할 때 흔히 여자의 부드러운 몸매를 떠올리게 된다. “수양버들이 하늘 하늘 바람을 타고 하늘 하늘/물동이 이고 가는 처녀 치맛자락 하늘 하늘”이라는 노랫말, 아름다운 여인의 가냘픈 허리를 버들가지에 비유하는 관용적인 표현, 고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 화류계(花柳界)라는 단어 등은 한결같이 버들잎에 여성적인 이미지를 부여한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이상스럽게도 동굴 속의 하늘나라 선관의 이름을 버들잎이라고 지었다. 무엇 때문일까? 옛날 여자들도 오늘날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상한 마음씨, 부드러운 성품,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꽃미남’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혹시 「연이와 버들잎」에 우리 나라 여성의 심층 심리 내지 집단 무의식을 엿볼 수 있는 열쇠가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분석심리학자 이부영은 “민담 또한 꿈과 마찬가지로 고루한 시대의식, 경화되고 편협한 부권사회의 남존여비 경향을 대상(代償)하는 민족의 무의식을 대변하는 내용”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즉 “인간 정신의 통합과 전일성을 지향하는 집단적 무의식의 의도”가 민담에 표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설화에는 분석심리학자들이 주목하는 여러 상징들 ― 동굴, 뼈, 불, 생명수, 결혼 등등 ― 이 등장한다. 분석심리학자들은 보통 민담이나 꿈에 나타나는 동굴을 무의식의 상징으로 간주하고, 동굴 속의 남자를 여성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남성적인 내적 인격인 아니무스(animus)로 해석한다.

겨울 산에서 홀로 죽을 위기에 처한 연이가 동굴이라는 별천지에서 꿈결처럼 만난 버들잎은 한국 여성의 집단 무의식에 존재하는 아니무스 상(像)이 표출된 것일는지 모른다. 연이가 무당처럼 불에 탄 버들잎의 뼈를 감장하고 생명수를 뿌린 제의적인 행위는 혹독한 자기 정화와 치유의 과정을 통해 한국 여성의 내면에서 죽어가는 남성성이 소생되는 통과의례로 풀이할 수 있다. 또 연이와 버들잎의 결혼은 여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남성성이 여성성과 통합되어 온전한 자기를 실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연이와 버들잎」에 대한 깊이 있는 심리학적인 분석은 전문가의 몫으로 남기기로 하고, 다음 호에 게재할 글에서는 버드나무가 지닌 상징성에 대해서 살펴볼 생각이다. 버드나무는 서양에서 그다지 중요한 상징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와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이다.

우리의 전통문화 상징 체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나무들로 학자들은 보통 소나무, 대나무, 버드나무를 꼽는다. 「연이와 버들잎」을 읽고 난 뒤 내 뇌리에서 줄곧 ‘왜 옛사람들은 동굴 속의 하늘나라 소년을 버들잎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두루 찾아 보았더니 의외로 버드나무가 지닌 상징성이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버드나무가 우리 민족의 내세관을 잘 엿볼 수 있는 우주적인 상징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다음 호에서는 버드나무에 관한 민담과 신화를 몇 편 간략히 소개하면서 버드나무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 정리해 볼 생각이다.

1) Zon In-Sob, Yoni and Her Stepmother (Folk Tales from Korea, Hollym, 1980). 보통 어린이 책에는 주로 제목이 ‘연이와 버들잎 소년’으로 되어 있지만, 구전 설화본과 초기의 동화집을 보면 버들잎은 수식어가 아니라 소년의 이름이다. 따라서 「연이와 버들잎」으로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2) 이부영, 『한국민담의 심층분석』, 집문당, 1995, 47쪽.
김환희/비교 문학을 전공한 후 여러 대학에서 비교 문학, 어린이 문학, 유럽 문학을 강의해 왔습니다. 현재 제 문학 공부의 화두는 ‘옛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와 외국의 옛이야기를 비교하면서 우리 나라 옛이야기가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더불어 옛이야기와 창작 동화의 접목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