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4월 통권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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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읽었어요]
우리 모두 세상의 꼴찌들에게 박수를

김효민 | 2006년 04월

박민규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문학평론가 임헌영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실체’를 보여 준다. 프로야구라는 대리전을 통해 1등의 쾌감을 맛보고 싶었던 소년의 욕망을 옛 프로야구의 추억과 절묘하게 버무려 낸 이 성장담은 우리 모두가 마주하는 1등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데 대한 열등감, 그 삶의 실체가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유쾌하지만 처절하게 그려 낸다. 프로야구 출범 원년이었던 1982년, 인천을 연고로 한 삼미 슈퍼스타즈가 전·후기 모두 최하위를 기록하고, 한 해 건너뛰어 1984년에 또 다시 최하위를 기록하자 삼미의 열혈 팬이었던 소년은 깊이 모를 좌절에 빠지고 만다. 그 좌절은 소년을 일류대에 진학하게 만들고, 일류대의 특수효과로 국내 최대 대기업 입사를 통보받게 한다. 하지만 성장한 소년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제대로 버텨 내지 못한 채 1985년 삼미가 사라졌을 때보다 더 깊이 좌절하게 되는데,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삼미를 응원했던 벗 조성훈은 이렇게 말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 (중략)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미국의 주력 산업이었던 자본주의의 프랜차이즈, 그것을 통해 수입된 프로화가 정권에 의해 강조되자 이를 눈치 챈 유일한 존재가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였다는 조성훈의 발상은 이 작품의 백미. 미국과 국가의 음모로 ‘인생’을 살던 사람들이 ‘프로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조금은 황당한 논리가 씁쓸하다. 그것은 곧 프로화를 강요당하며 1등에 대한 욕망과 열등감으로 보내는 우리들이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실체를 희화화했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삼미’의 정신을 이어받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결성하여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자신들만의 순수한 야구를 즐긴다. 삶의 행복이란 이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즐거움에 있음을 나는 왜 여태 깨닫지 못했을까. 그런데 우리는, 순수했던 우리의 삶은, 언제부터 프로라는 억압의 삶을 살게 된 거지? 소설의 앞부분. 소년은 중학교 진학을 위해 아버지와 함께 교복을 맞추러 시내에 가는데, 아버지는 교복점에서 조금은 비싸지만 ‘엘리트 학생복지’를 주문하고, 제 아들이 알파벳을 알고 있음을 자랑한다. 그리고 교복점을 나와 연안부두의 횟집에서 아들과 마주 앉아, 현 인천법원의 김 판사가 파를 콧구멍에 끼워서 잠을 쫓았다는 것을, 아버지가 고등학교 동창인 부장에게 왜 회사에서 허리를 굽혀야 하는지를, 그것이 소년 때문에 참는 것임을 비장하게 이야기한다. “결국, 그래서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 알겠느냐?” 소년은, ‘언뜻,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부모는 이처럼 자신의 신념을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또한 소년의 선생님들도 프로의 삶을 강요하지는 않았을까. 이 책을 통해 뒤늦게 내 삶과 교육 방식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지난 해, 우리 반 아이들과 이미 많은 시간을 보낸 2학기 중순이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프로 정신을 강요했는지, 그것을 되짚어보는 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우리 모두 꼴찌 기러기에게 박수를』 본문 중에서

과정이 중요한 거지,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공부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일 뿐이야. 순위는 중요하지 않아. 그래서 선생님이 너희들 성적 평균 내지 말라고 하는 거야. 무엇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해 봐.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거잖아. 늘 웃으면서 살자. 나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자주 말하면서도, 시험 때가 되면 아이들의 즐거움을 빼앗았다. 중·고등학교에 가면 지금보다 더 힘들다며, 열심히 해야만 좀 더 발전할 수 있다며 프로 세계의 입문을 위한 정신 무장을 강요했던 적도 많았다. 다른 반과 달리기나 피구 시합을 할 때는 지는 날이면 아이들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인상을 쓰기도 했고, 축구 시합 때면 도지는 승부욕 때문에 경기에 재미를 붙이지 못해 느릿느릿 눈치를 살피던 정중이와 민우, 희승이(혹시나 이 글을 읽는다면 선생님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할게.)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었다.

가끔 지나치게 이기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냐, 아이들이 충고했을 때도 얼버무렸던 기억이 있다. 1등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의 즐거움을 이기는 것과 바꾸려고 했던 것이다. 과연 우리 반 아이들은 과연 나 때문에 몇 번이나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을까? 정말 걱정되었다. 며칠 동안 어떻게 잘못을 사과할까 나는 전전긍긍했다. 그만큼 나의 죄는 컸고, 죄책감은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용기조차 잃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 7반과의 피구 시합. 체조를 마친 아이들이 내게 달려왔다. 그 중 현진이가, “선생님, 오늘 지면 어떻게 되는데요?” 한다. 늘 시합 때면 지면 안 된다며 갖가지 협박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질 수도 있지. 시합 때마다 이길 수만은 없잖아. 그냥 열심히 하자.”

현진이도, 다른 아이들도 놀라고, 그러는 아이들을 보고 나도 놀라고. 나의 말에 아이들은 자극이 되었는지, 정말 그냥 열심히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고 말았다. 아쉬워하는 아이, 화를 내는 아이, 친구를 탓하는 아이들. 이건 모두 내 잘못이야. 교실에 와서 현진이가 다시 말한다. “선생님, 졌는데 화 안 나세요?” “응.” 아이들은 또 놀라고. 그러는 아이들을 보고 나도 또 놀라고. 아이들 모두를 앉게 하고 나는 내가 한 번도 1등을 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그간 아이들에게 저질렀던 잘못 모두를 고백했다. 그리고 정중히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내 말이 모두 끝나자 아이들은 쌓여 있던 원망을 한 번에 쏟아 내었고, 나에 대한 짓궂은 농담들로 자신들을 위로하려 했다. 정말 미안해.

『우리 모두 꼴찌 기러기에게 박수를』 표지
그리고 나서 나는 삼미에 관한 이야기와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우리들은 꼴찌들의 행복한 삶과 우리 모두 꼴찌이자 일등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 예림이의 “『우리 모두 꼴찌 기러기에게 박수를』이라는 책도 있는데.”라는 말에, 우리들은 만장일치로 함께 읽어 보기로 했다. 이 책은 늘 꼴찌만 하는 막내 기러기에 대한 이야기다. 여섯 개의 알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깨어난 막내 기러기는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답답한 알 속에서 깨어나 맞이한 새로운 세상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하지만 곧 엄마, 아빠 기러기를 따라 배워야 하는 삶의 기술들은 어렵기만 하다. 언니 오빠들과 다르게 늘 뒤처지는 막내 기러기는 걷는 것도, 헤엄치는 것도, 나는 것도 늘 꼴찌다. 그런 막내 기러기를 보는 가족들은 말한다. “우리는 늘 너를 기다려야만 하는구나!”

알에서 깨어난 막내 기러기가 느끼는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은 우리가 기대하는 아이들의 눈빛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세상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느껴볼 겨를도 없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순위와 1등만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내몬다. 어른들의 신념만큼 따라오지 못할 때는 “우리는 늘 너를 기다려야만 하는구나!” 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강요하고 싶을 때는 “결국, 그래서 사람은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 알겠느냐?”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세상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은 뒤에 둔 채 제가 배워 온 방식대로 또 다른 어른이 되어 가겠지.

이 책은 이유 없는 꼴찌예찬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은 내가 빠르기만 한 세상에 뒤처져 있더라도, 세상을 이해하는 속도가 조금은 늦더라도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 자칫 어두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주제를 유쾌하게 끌고 나간 힘은 아이들이 갖고 있는 생명력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기러기의 생태를 고스란히 전달해 주는 묘사의 힘과 사진이 말해 줄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한 세밀화는 작가의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해 준다.

나와 아이들 몇이 번갈아가며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막내 기러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기러기들의 생태에 대한 이야기에 조금은 지루해하던 녀석들은 막내 기러기의 힘겨운 배움의 시간들과 실수들을 보며 웃음을 짓고, 때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들의 삶과 많이 닮아서일까. 조금은 억지스러운 이야기의 마지막을 아이들은 참으로 좋아했다. 남쪽으로 이동하던 중 뒤처져 있던 막내 기러기 때문에 기러기 무리는 비행기와 부딪힐 뻔한 위험을 모면하고, 잠시 머무르던 중에는 무슨 일이 일이 생기는 즉시 다른 기러기들을 깨워 주기 위해 마지막까지 깨어 있던 막내 기러기가 사냥꾼들로부터 기러기 무리를 구하게 된다. 우리 모두 꼴찌 기러기에게 박수를.

내가 어른들에게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어른이 변하지 않고서는 아이들 역시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곧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삶을 살면서도 아이들에게 그것을 강요하는 어른들이 프로화 음모(?)의 피해자였다면, 이에 대항하여 아이들에게는 소소한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권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세상의 즐거움을 모르는 꼴찌이면서도, 공부를 못하는, 운동을 못하는 꼴찌들에게 어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아이들에게 『우리 모두 꼴찌 기러기에게 박수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산다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이며, 그 즐거움과 행복에 열정을 보태어 만끽하다 보면 막내 기러기처럼 값진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난 해 나와 함께 학교 생활을 한 아이들에게 정말 다시 한 번 미안. 우리 모두 꼴찌인 우리들에게 박수를, 세상의 꼴찌들에게 박수를.
김효민/거제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노는 게 남는 거라는 불변의 진리를 실천하기 위하여 아이들과 머리를 싸매고 잘 노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