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4월 통권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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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그림책에서 자아낸 역사 이야기]
별쟁이 할아버지, 탐사선으로 거듭나다!

서남희 | 2006년 04월

『갈릴레오 갈릴레이』 표지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태양계의 행성 아홉 개의 순서를 댈 때 앞머리만 똑 따서 이렇게 말하곤 하죠. 그런데 저는 늘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습니다. 과연 태양계 안에 행성이 아홉 개 밖에 없을까?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그만큼밖에 볼 수 없어서 그렇게 우기는 게 아닐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그 오랜 시기에 내가 살았다면 당연히 그렇게 믿었을 테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돈다고 믿었던 시기에 살았다면 또 그게 진실이라고 굳게 믿었을 테니, 지금 알고 있는 과학 지식도 반드시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 얼마 전 미국 천문학자들이 태양계의 열번째 행성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행성 지위를 얻게 될지 어떨지는 아직 모르지만, 행성의 선정 기준이 ‘명왕성보다 큰 천체’라니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모르죠, 과학이 발달되면서 앞으로 행성이 몇 개나 더 발견될지…….

피터 시스의 『갈릴레오 갈릴레이 Starry Messenger』의 원제목은 번역 제목과 달리 갈릴레오의 저서 제목인 ‘별세계의 전령’을 그대로 가져온 그림책입니다. 갈릴레오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서 일생을 그린 이 책의 그림은 매우 따스해서, 험난하고 어렵게 살았던 그의 인생을 보상해 주는 듯하답니다.

갈릴레이가 태어났을 때의 그림을 보면 별이 그려진 포대기에 폭 싸여 있지요. 그리고 조금 자라서는 다른 아이들이 땅따먹기나 굴렁쇠 놀이를 하고 있을 때 혼자서 땅에 별을 그리며 놀고 있답니다. 자라면서 갈릴레오는 수학과 물리학을 열심히 공부하지요. 그래서 재미있는 실험과 관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총명한 젊은이가 되었지요.

『갈릴레오 갈릴레이』 본문 중에서

병풍처럼 세 면에 나뉜 그림이 있지요? 왼쪽에는 램프가 흔들거리고 있고, 가운데는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져 있고, 오른쪽에는 갈릴레오가 대중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모두 갈릴레오가 이루어 낸 연구를 보여 주고 있지요. 왼쪽의 그림은 성당 안에서 흔들리던 램프를 관찰함으로써 진자의 법칙을 발견한 것, 가운데 그림은 피사의 사탑에서 포탄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함으로써 무거운 물체는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해 낸 것, 오른쪽 그림은 물에 뜨는 물체에 대한 토론을 통해 얼음은 밀도가 물보다 낮아서 더 가볍기 때문에 형태와 상관없이 물에 뜬다는 것을 증명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세 폭짜리 이 그림들은 딱, 성화의 세 폭 병풍과 같은 모양이지요. 즉, 이 시기까지는 갈릴레오의 연구가 교회의 믿음에 어긋나지 않았고, 교회가 그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갈릴레오는 먼 곳의 물체를 볼 수 있는 망원경에 대한 소문을 듣지요. 연구를 거듭해서 직접 망원경을 만들고, 그것으로 하늘을 살펴보며 관찰한 것을 기록하고, 마침내 『별세계의 전령』이라는 책을 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본문 중에서

하지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던 그 시대에, 최고 권력인 교회는 갈릴레오를 인정하지 않고 작은 집에 가둬 놓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 곳에서 못 나가게요. 어렸을 때 막대기로 별을 그리며 놀던 갈릴레오는 이제 나이 들어 지팡이를 짚고 좁은 뜰에 서 있군요. 그러나 그의 뒤로 펼쳐지는 광막한 하늘, 그리고 둥근 별 하나.

노란빛과 푸른빛이 도는 온화한 그림들과 달리, 실제 생활에서 갈릴레오는 매우 격하고 힘든 시절을 보냈답니다.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도시 ‘피사’를 아시지요? 갈릴레오는 1564년 2월 15일에 그 곳에서 태어났어요.(르네상스를 꽃피운 미켈란젤로는 사흘 뒤에 피렌체에서 사망합니다.) 아버지는 모직물 상인 겸 음악가였는데, 예술 가지고 밥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는지, 어려서부터 남달리 똑똑한 아들을 의사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열한 살이 되던 해에 갈릴레오는 수도원에 들어가 공부하게 됩니다.(그 당시 수도원은 교육 기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기의 갈릴레오는 그리스도에게 헌신하고 싶었던지 수도사로 꿈을 바꿉니다. 이런, 의사 되라고 공부하랬더니 수도사가 되겠다고? 사는 사로되 매우 다른 사로다. 화가 난 아버지는 아들과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피사 대학에 밀어 넣어 버리지요.

1609년에 갈릴레오는 네덜란드 인 안경 기술자가 멀리 있는 물체를 확대해서 가까이 볼 수 있는 장치를 발견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특허가 신청만 되어 있었지 아직 승인이 안 난 상태였지만, 만드는 방법은 극비였답니다. 망원경은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었거든요. 역사적으로 이 시기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끼리는 물론, 유럽 여러 나라들 간에도 전쟁이 끊이지 않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멀리 있는 적들을 볼 수 있는 망원경의 가치는 대단하다 할 수밖에요.

갈릴레오는 망원경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그 망원경이란 것을 한 번 본 적도 없는데 렌즈를 가지고 이리저리 실험을 한 끝에 3배율 망원경을 만들어 냈죠. 그것을 하루 만에 만들어 냈다니 천재성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노력을 거듭해 10배율 짜리를 만들어서 베네치아 정부에 가지고 갔지요. 덕분에 그는 상당한 돈과 서훈을 받게 됩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본문 중에서

여기서 만족했더라면 갈릴레오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그냥 이름이나 언급되는 인물로 끝났을 거예요. 갈릴레오의 역사적 중요성은 그가 망원경을 위로 돌려 하늘을 보았다는 데 있습니다. 앗, 이게 웬 일! 그는 달이 사람들이 당연히 생각하는 것처럼 매끄럽지 않고 지구와 마찬가지로 울퉁불퉁하다는 사실을 발견하지요. 게다가 보너스로 목성까지 관찰해 봤더니 목성이 네 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 때까지는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고 태양을 비롯한 다른 행성들은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게 상식이었거든요. 그것을 주장한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였고, 거기에 반기를 들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한 사람은 코페르니쿠스였는데, 갈릴레오가 관찰 결과를 놓고 보니 코페 아저씨의 주장이 맞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당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인정하는 교회가 지배하던 세상. 갈릴레오는 신실한 종교인이긴 했지만, 자연에서 발견된 사실과 성경에 명시된 진리 사이의 관계를 나름대로 이렇게 규명했답니다.

“나는 성서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자들은 수많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만을 추가하겠네. 이들이 매번 성서에 실린 글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만 집착할 때 말일세.”(『갈릴레오의 딸』, 107쪽)

즉, 지혜로운 성경학자들이라면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는 얘긴데, 코페 아저씨를 옹호한 데다, 나름대로 성경까지 언급하는 바람에 갈릴레오는 이단으로 몰립니다. 갈릴레오가 태어나기 전에 트렌트 종교 회의에서 오로지 교회만이 성서를 해석할 수 있다고 공표했었거든요. 감히 일반인인 너 따위가 성경 ‘해석’에 대해 왈가왈부하다니. 괘씸한지고!

이단이라니!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멀쩡한 사람도 이단으로 몰아서 강제 개종시키거나 화형에 처해 버리는 게 그 당시 이단 재판소였지요. 이미 1600년에 이탈리아 성직자이자 학자인 지오다노 부르노가 지동설을 지지했다가 사제직을 박탈당하고 로마에서 화형을 당한 일이 있었기에 갈릴레오는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갈릴레오는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대신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가르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지요.

그러나 갈릴레오는 오랫동안 연구를 갈고 다듬어 1632년에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가지 주요한 세계관에 관한 대화』라는 책을 펴냅니다. 펴내기까지 교회의 눈치를 숱하게 보았고, 피렌체의 신부 동의까지 받아 출판했건만 지동설을 본격적으로 지지하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교회는 눈을 흘겼습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밉보인 게 있었지요. 갈릴레오는 이것을 이탈리아 어로 썼거든요. 이탈리아 사람이 이탈리아 어로 쓰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요? 당시에 유럽 지식인들의 공용어는 라틴 어였습니다. 왕년에도 그는 『물에 뜨는 물체에 관한 논쟁』을 이탈리아 어로 쓴 바가 있었지요. 그는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일상적인 언어로 썼다고 말했지만,(밑줄 쫙!) 지식인들은 그것을 모욕으로 생각하고 반발했었지요. 우리 나라가 왕년에 한문을 진서, 한글은 천한 글이라고 여기고 한문만을 숭상했던 것과 같지요.(찌찌뽕!) 그러니 이탈리아 어로 쓴 『대화』를 보고 미워할 수밖에요. 종교 재판소의 신학자 나리들은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갈릴레오가 이 책에서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중략) 게다가 이탈리아 어로 책을 써서, 외국인이나 지식인에게 전파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이 아주 쉽게 뿌리내릴 수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러한 견해를 갖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갈릴레오의 딸』, 352~353쪽)

지동설을 전파하고 이탈리아 어를 썼다는 이유로 교회는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칠순이 다 된 병약한 갈릴레오 할아버지를 이단 재판소로 부릅니다. 고문이 두려운 갈릴레오 할아버지는 자기의 주장이 잘못이었다고 고백하지요. 다 알다시피, 전설에 따르면 그 말을 하고 돌아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얄궂게도 『대화』는 금서가 되는 바람에 암시장에서 12배나 오른 가격으로 팔렸답니다. 유럽으로 흘러간 그 책은 라틴어, 영어로도 번역되었고요. 금서는 이탈리아 안에서나 금서였던 거죠.

일본이 자기네는 아시아에 대해 잘못한 게 없다고 부득부득 우기듯이 가톨릭 교회도 오랫동안 갈릴레오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89년에 목성을 향해 우주탐사선이 출발하죠. 탐사선의 이름은 바로 갈릴레오. 수백 년 전의 별쟁이 할아버지는 이제 목성 탐사선이 되어 날아갔습니다. 그 후, 3년이 더 지난 1992년에야 비로소 바티칸에서는 갈릴레오는 무죄라고 공식적으로 성명을 냈답니다.

아, 그런데 ‘갈릴레오 갈릴레이’라는 이름이 참 헷갈리죠?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에서는 맏아들에게는 성(갈릴레이)에 약간 변화를 줘서 이름을 지어 준대요. 그래서 갈릴레이라는 성의 끝 자를 조금 바꿔서 갈릴레오라고 이름 지은 거랍니다.

참고 책과 사이트
『갈릴레오의 딸』 데이바 소벨 지음, 홍현숙 옮김, 생각의나무, 2001
http://inventors.about.com/library/inventors/blgalileo.htm
서남희/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 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고,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 『별을 헤아리며』와 『꿀벌 나무』를 번역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볕 드는 마루에서 만난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림책과 시, 바위산, 걷는 것과 잠자는 것을 아주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