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4월 통권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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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교과서에 실린 옛이야기 살펴보기]
옛이야기의 특권, 세상 뒤집기의 즐거움
――힘센 농부

서정오 | 2006년 04월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아주 힘이 센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농부는 힘자랑을 하러 한양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다가 다리가 아파서 소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데, 말을 탄 선비가 하인을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어디선가 도적들이 나타나 선비를 에워쌌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내놓아라.”
“아이구, 우리 나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하인이 부들부들 떨면서 빌었습니다. 그러나 선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도적들은 칼을 뽑았습니다. 이것을 본 힘센 농부가 소나무 한 그루를 뽑아 들고 달려갔습니다. 도적들은 깜짝 놀라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잠시 후, 선비가 침착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고맙소. 그런데 만일 당신보다 더 힘이 센 도적이 있었다면 어쩔 뻔했소?”
“무슨 소리요? 나보다 더 힘센 사람은 이 세상에 없소이다.”
선비는 빙그레 웃더니 옆에 있던 커다란 바위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당신도 이 바위를 들어 보겠소?”
농부는 한 손으로 바위를 들어올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써도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팔로 바위를 안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을 써 봤지만, 바위는 겨우 들썩할 뿐이었습니다.



문제를 하나 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호랑이와 토끼가 겨루면 누가 이길까? 참 싱거운 문제다. 그야 물론 호랑이가 이기겠지. 아니, 그와 같은 겨룸은 애당초 이루어질 수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 세상 얘기다. 옛이야기 세상에서는 언제나 토끼가 호랑이를 이긴다. 왜 그런가?

옛이야기는 상상력이 낳은 것이고, 상상은 자유롭고 발랄할수록 빛나는 것이다. 고단한 현실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은 늘 꿈꾸기를 즐겼고, 꿈과 상상력이 만나 이야기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통쾌한 ‘세상 뒤집기’가 일어난다. 현실에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꿈이 이야기 속에서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는 것이다. 옛이야기 세상에서 언제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세상 뒤집기, 또는 약자 편들기는 옛이야기의 특권이다. 이 권리를 허투루 여기고 내버리면 이야기에 생기가 빠져 못 쓰게 된다. 어리석은 호랑이가 꾀 많은 토끼에게 당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점잖은 호랑이가 철부지 토끼를 혼내 주는 이야기는 없다. 그 까닭은? 현실에서 언제나 강자에게 당하는 민중들(또는 아이들)이, 이야기 속에서조차 그들의 분신인 약자를 괴롭히고 싶을 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곳곳에 전해 오는 옛이야기 중에는 힘자랑 또는 힘겨루기에 얽힌 것이 많다. 그 중에 풍자성이 짙은 것으로 ‘힘자랑하다가 망신당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 유형에 나타나는 공통된 줄거리는 대개 다음과 같다.

(1) 힘센 사람이 힘자랑하러 집을 나선다.
(2) 도중에 저보다 힘센 사람을 만나지만 알아 보지 못한다.
(3) 그 앞에서 섣불리 힘자랑하다가 망신당한다. (또는 우연히 그의 힘을 엿보고 놀란다.)
(4) 다시는 힘자랑하지 않고 얌전하게 산다.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힘만 믿고 으스대는 사람을 풍자하려고 만든 것이다. 따라서, 힘자랑하는 사람은 (겉보기에) 강자요, 힘을 숨긴 사람은 (겉보기에) 약자여야 한다. 그래야 ‘대신 겪기’의 즐거움뿐 아니라 ‘세상 뒤집기’의 통쾌함도 제대로 살아난다.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자.1)

(앞 줄임) 그래, 그래 이 선부가 생각에 이거 전에 어는 양반도 호랭이가 뭣이 어떻다 카고 힘이 모지래는데 이게 내가 힘이 이간하구나, 내 힘을 안 부리고는 내가 몰라서 호랭이 카는 그기야 내 대갈빼기 쥐면 강새이 한 바리만침 만만을 쥐고 있이이 죽었는데, 그래 인자 아직을 먹고 나서 ‘에라, 이놈의 자석 보자. 나카머 힘 더 존 사람 얼매나 있는고.’ 싶어 힘불림하러 나갔거던.
힘불림하러 인자 어쩐 집에 저 왔더란다. 한낮 다 돼 가지고 인자 가인께 술집 주모가 술단지를 안고 담배를 푸무 이래 앉았거던. ‘아이구, 인자 술이나 한 잔 먹을, 먹어야겠다.’ 카고 드가인께, 그래 술로 한 잔 먹으미 이래 보인께, 아 이놈의 자석 이거 여여 곰배팔이 짱채다리 이놈아가 절쑥절쑥 저는 기 한쪽 팔을 몬 씨고, 한쪽 다리를 몬 씨며 쩔룩쩔룩 절미 왼쪽 저씨래이 나무 똥개이를 몽땅몽땅한 거를 어북 굵다 안 카나. 이놈을 가 오디 국솥을 인자 술국, 이거를 불을 모두는데 본께, 아이 성한 발로 요 요래 한쪽 모서리를 밟디 성한 손으로 나무 쪼록쪼록 째이께네 부석에 다 주옇거던. 째이께, 야 저놈아가 저것 곰배팔이 장채다리 저놈의 자식이 힘은 얼매나 신지 나무 똥개이를 째여서 마 저래 때노 카고, 그래 그놈아 불을 한 부석 모다 놓고 빗자리를 하나 들고 마당을 찔찔한데 마당 씰러 나가뿌거던. ‘에라 이놈의 자석, 보자. 나도 니러가 한번 째 볼?에.’ 이놈 빌어물 자석 두 번 달라들어 땡기 봐야 머 째지만 하만 어긋지도 안 하거던.
(가운데 줄임) 그래가지고 마 그래 그 선부가, ‘어뿔상 심불림하러 나가다는 이거 죽겠구나.’ 절마가 인자 말고 그래 하는 기라.
“그런 심 가지골랑 어데 가 심지 자랑하지 마라.”
이카더란다. 그거 어떡하다 싶어 마 그래 와가지고는 이땍 마마 다시 심불림도 해 보도 안 하고 내 힘 얼매나 되는지 이것도 모린다 안카나. 모리고, 그 이바구 다 했다.

이것이 ‘힘자랑하다가 망신당한 이야기’의 본보기다. 줄거리를 간추려 보면, 주인공인 힘센 선비(또는 힘장사)가 힘자랑하러 나섰다가 보잘것없어 보이는 상대에게 당하고 크게 뉘우친다는 것이다. 이 때 힘자랑하러 나선 이는 신분이나 물리력에서 당연히 강자이며, 그를 깨우치는 이는 ‘뜻 밖의’ 약자이다. 이 ‘뜻 밖’의 효과가 클수록 재미나고 신선한 이야기가 된다. 위의 이야기에도 힘자랑하러 나선 이는 선비고, 그를 깨우친 이는 곰배팔이 절름발이인 주막집 머슴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망신당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어떤 이야기에는 몸집 큰 힘장사가 지게꾼에게 당하고, 지게꾼은 늙은 농사꾼에게 당하고, 늙은 농사꾼은 시골 처녀에게 당한다는 식의 내림틀(점강구조)도 보인다. 강약의 차례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모습인데, 이것이 바로 풍자의 참모습이다.



자, 이제 교과서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자. 주인공이랄 수 있는 농부는 힘자랑하러 한양으로 가다가 우연히 선비를 만난다. 갑자기 도적떼가 나타나 선비가 곤경에 빠지자, 농부는 그를 구하려고 힘을 쓴다. 그런데 도적이 물러가자, 선비는 오히려 한 손으로 바위를 들어 보이는 ‘힘자랑’을 하며 농부를 훈계한다.

농부는 비록 힘자랑을 하러 집을 나섰지만, 풍자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착한 인물이다. 농부는 선비를 위기에서 구해 주려고 힘을 썼을 뿐이다. 그런데 선비는 왜 자기의 힘을 내보였는가? 도적들은 이미 물러가고 위험이 사라진 상태에서, 다만 농부에게 ‘당신보다 더 힘이 센’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보여 주려고 그런 것이다. 농부를 깨우쳐 주려는 선의가 들어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좋게 보아도 이건 ‘힘자랑’일 뿐이다. 풍자의 주체와 대상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두 주인공들은 처음부터 신분의 높낮이가 다르다. ‘하인을 데리고’ 다니는 ‘말을 탄 선비’와, 혼자서 걸어다니다가 ‘다리가 아파서’ 쉬는 ‘산골 마을’ 농부를 견주어 보면 분명히 농부 쪽이 약자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자리가 뒤바뀌어 놓여짐으로써 ‘강자가 약자를 풍자하는’ 어색한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읽는 아이들은 통쾌함을 느끼기보다는 몹시 무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스스로를 약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언제나 이야기 속 약자와 한몸이 되는데, 강자에게 무안을 당한 약자의 처지가 되고 보면 무안하고 불편하지 않겠는가.

한 가지 덧붙이자면, 교과서에 실린 이야기가 백성들 사이에서 구전돼 온 우리 옛이야기인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2)

1) 『한국구비문학대계 7-14』 경북 달성군 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99∼104쪽.
2) 이 글을 쓰면서 『한국구비문학대계』(정신문화연구원)와 『한국구전설화』(임석재)를 비롯한 자료를 여럿 뒤져 보았지만, 아직 이런 꼴로 받아쓴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했다. 혹 다른 구전자료나 문헌자료에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서정오/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교육대학교와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이 지역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줄곧 가르쳤습니다. 1984년 『이 땅의 어린이 문학』에 소년소설을 발표하면서 동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특히 옛이야기를 새로 쓰고 들려주는 데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 『옛이야기 들려주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서정오 선생님의 우리 옛이야기』 『옛이야기 보따리』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