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4월 통권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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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우리 동화 깊이 들여다보기]
어떤 모성의 캐릭터를 꿈꾸고 있나요

이재복 | 2006년 04월

그렇군요. 우리가 만난 지가 벌써 10년이나 되었군요. 은행골 마을 도서관에서 ‘성남 동화 읽는 어른’들을 만나온 지가. 격달로 우리는 동화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이 따로 없고, 학생이 따로 없는 그런 자리에서 동화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나는 늘 그렇듯이, 어머니들이 하는 이야기를 주로 듣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달마다 불러 주어, 그 부름에 응해서 살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10년이라. 그래도 뒤돌아보면 그냥 단숨에 흘러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그렇게 긴 기억의 꼬리를 남기고 저만큼 흘러가 있습니다.

그래요. 그 10년 동안 여러분과 나눈 동화 이야기를 통해 나는 먼저 사랑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하려면 그래도 이 정도의 뚝심은 있어야 하지 않나, 10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불러 주고 그 부름에 응하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바쁘다 핑계대지 않고 굴복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오늘도 문득 듭니다.

『산곡 외계인』 표지
오늘은 『산곡 외계인』을 읽고 이야기하기로 하였지요. 이 작품은 진작 좀 같이 읽고 토론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금이라도 읽은 게 다행입니다. 한 작가가 열심히 쓴 작품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될 때 참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작품은 좋은데, 독자들은 그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서요. 『산곡 외계인』은 이야기 시작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가질 법한 고정 관념을 깨는 인물이 나오니까요. 작품의 시작이 이렇습니다.

“도둑질을 해서라도…….”
아이들 눈이 동그래졌다.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기범이는 교탁에서 내려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리에 가 앉았다. 아이들은 그 때까지도 동그랗게 뜬 눈을 기범이에게서 떼지 않았다.

학교에서 자기 꿈을 얘기하는데, 기범이란 아이는 도둑질을 해서라도 부자가 되고 싶단 말을 한 것입니다. 이 말은 보통 아이들이 갖고 있는 도덕 관념을 깨는, 그야말로 학교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금기의 언어를 지금 기범이는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한 장면만 보더라도 기범이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작품을 쭉 읽다 보면 기범이는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풍자의 화살을 날리는 비판적인 인물로 나오고 있습니다. 기범이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 나오는 아이들은 모두가 나름의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속도도 아주 빠릅니다. 각 장면마다 펼쳐지는 이야기도 역시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기 위해 한 장면만 더 옮겨 보지요. 기범이가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욕을 먹고 화가 나서 집을 뛰쳐나와 태수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태수야. 욕 좀 해 줘.”
“또?”
태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기 싫은 얼굴이었다.
“그래. 아버지가 뱉어 내는 욕에 상처 받기 싫어. 그러려면 익숙해져야 돼. 그러니까 빨리 아무 욕이나 해 보라구.”
기범이가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바보! 더러운 놈! 깡패!”
태수가 기범이에게서 눈을 비껴 내리깐 채 욕을 하기 시작했다.
“개자식! 멍청이! 얼간이!”
기범이가 맞받아서 욕을 했다. 기범이와 태수는 이런 식으로 땀이 흠뻑 날 때까지 서로에게 욕을 해 댔다. 처음엔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벌렁벌렁했는데, 이젠 익숙해져서 그런 증상도 없었다.
기범이는 욕을 하는 동안 자꾸 엄마 생각이 났다.
“내 강아지, 사랑하는 내 아들, 귀여운 내 새끼!”
엄마가 기범이를 부르던 다정한 말들을 이제 들을 수 없다.
그런 말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왔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산곡 외계인』은 주인공들의 내면 성격이 드러나는 삶의 순간들을 위와 같이 작가가 세밀하게 묘사해 나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아이들이 겪는 사건들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 분이 『산곡 외계인』을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작품이 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고 그냥 묻혀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며 내게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 작품이 언제 나왔는지 보니까 2004년 7월로 되어 있습니다. 책이 나온 지가 이제 겨우 일 년 반 정도 되었으니, 어린이 독자나 동화 읽는 어른들이 관심 밖에 둔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좋은 작품은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지 결국은 읽힌다는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은 내적 진실의 힘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비평가의 조명을 받든 아니든, 광고가 받쳐 주든 아니든 독자들의 입소문에 의해서 비록 속도는 느릴지 모르지만 꾸준히 퍼져 나가겠지요. 어찌 되었든 이 작품의 생명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독자들이 야, 이 작품 참 재미있네 하고 선뜻 달려들지 않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요. 나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흥미롭게 읽히면서도 작품을 다 읽고 났을 때, 뭔가 감동이 덜한 이유는 무얼까 생각해 보았는데요. 아무리 해도 이 작품 속 어른들의 삶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기범이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입니다. 아버지의 학대에 못 이겨 엄마는 기범이를 버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아내에 대한 분풀이를 기범이에 해 대는 못난 아버지입니다. 태수의 엄마는 심한 노동에 병이 들었고, 이 아이들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주인집 할머니는 아들이 감옥에 가고, 그 아들을 기다리며 악착같이 살지만, 인색하고 욕심 많은 노인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어느 누구도 아이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마디로 옛날 기처 제도의 상상력이 지배하던 시대의 인간 관계에 그대로 매몰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아내와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아내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 여성들에게는 크게 두 가지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대 잇기, 그리고 또 하나는 노동력 제공입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면 그 여자는 온갖 학대를 당하다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할 권리가 남자에게는 주어졌습니다. 처를 마음대로 종처럼 부리다 버릴 수도 있다는 이런 사고가 남자의 정신에는 배어 있고, 그런 정신에서 나오는 권위와 권력의 언어가 남자의 내면 무의식을 지배하면서 오늘날까지도 알게 모르게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기처 제도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기처 제도가 낳은 상상력은 아직도 남성의 몸에서 떠나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기범이 엄마, 태수 엄마, 주인집 할머니의 삶은 남성 중심의 가족 제도에 갇혀 한 발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그런 암울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견뎌 내는 삶을 강요받던 시대의 모성이 그대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지요.

작품을 끝까지 읽어 보면 아이들은 모두가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기범이는 도둑질은 그만 하고 태수와 같이 신문을 돌리기로 하였습니다. 태수는 원래 빛이 되는 성격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끝까지 이 성격은 변함이 없습니다. 태수의 동생 태희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 냅니다. 아이들의 삶은 희망으로 열려 있는데, 어른들의 삶은 여전히 과거 기처 제도의 상상력에 갇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이들과 어른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 관계가 일어나서, 아이들이 어른의 굳은 고정 관념을 깨는 무언가 뒤집기의 상상력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린이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아동관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시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관에 대한 탐구 또한 필요합니다. 이 작품 속 어른들이 살아가는 시공간은 남성과 여성이 성의 경계를 넘어서 우정의 관계로 거듭나는 그러한 밝은 세계로 열려 있지 않습니다. 남성이 권력 언어를 사용하며 여성을 종처럼 부리던 그런 지난 어두운 시대 시공간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야말로 지난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후일담’ 문학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시대의 삶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 자체가 한계가 있단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난 시대의 삶을 이야기하더라도, 그 삶의 시공간이 오늘 우리네 삶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 이야기는 단순히 후일담 문학이 아닌 오늘 우리 삶의 간절한 바람을 드러내는 내일을 지향하는 문학으로 읽힐 것입니다.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 작품이 흥미진진한 이야기 요소와 속도를 갖고 있음에도, 그래서 책을 잡으면 술술 읽히는데도 불구하고, 왜 독자들의 관심을 확 잡아끌지 못하는지는 어른의 삶이 바탕을 두고 있는 시공간이 너무 과거에 갇혀 있어, 오늘 우리네 삶에 대한 어떤 지향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이 문학은 모성과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모성에 대한 탐구는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모성은 고정된 관념이 아니라, 삶의 변화에 따라 늘 새롭게 태어나는 하나의 시대 정신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산곡 외계인』에 보면 주인집 할머니가 나오는데요. 자식에 대한 한을 품고 사는 할머니입니다. 감옥에 간 자식을 두고 미움과 안타까움을 가지는 건 어머니라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런 자식이 출소해서 집에 왔을 때 안 본다고 쫓으니까, 자식이 그냥 돌아가요. 가고 나서는 또 보고 싶어 울고 합니다.

이 아들이 출소하고 나서 동네에 도둑이 들었다고, 경찰이 할머니 집에 와서 아들 수소문을 하고 하는데,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에고 에고, 어디 내 아들이 하고 싶어 했나? 온 동네 잠긴 자물쇠 따 주다 배운 도둑질이지. 누가 열쇠 잃어 버리고 우리 아들 찾아와 자물쇠 따 달라고 한 겨! 허엉─. 누가 그런 손기술을 가르친 겨. 허엉─.” 이 할머니가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자물쇠를 차고 다니고 하는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며칠이 지나서 다시 아들이 할머니를 몰래 찾아왔습니다. 이 날 할머니는 애지중지 기르던 닭을 잡아 찜을 만들어 먹이는데요. 이런 할머니의 모습에서 요즘 아이들은 어떤 모성의 힘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모성이 하나의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내는 정신으로 승화되는 지점이 있으면 좋을 텐데요. 할머니는 자식을 끼고 밥을 해서 먹이고, 온갖 고통을 견뎌 내는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하는,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보아 왔던 생물학적인 자리에서 본능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희생양의 모습으로만 그려지고 있는 건 아닌지요. 이런 할머니의 모습은 남성 중심 사회가 강요한 모성 이데올로기의 신화가 낳은 결과물은 아닌지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서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를 향하고 있어요. 미래를 지향하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읽고 나면 참 마음이 답답합니다. 인물에 대한 동정의 상상력으로 인해 공감하는 그런 눈물이 아니라, 아직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봉건적이고 삐뚤어진 가족 제도에 갇혀 가장 사랑해 주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할 식구끼리 오히려 괴로움을 주며 자기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보이는 점이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지요.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표지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를 읽었습니다. 도우미 할머니로 이 땅에 온 마고할미의 이야기인데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산곡 외계인』에 나오는 인물이 생각났습니다. 『산곡 외계인』의 할머니는 자식을 기다리며 그렇게 우울하고 인색하게 살아가는데, 도우미로 남의 집에서 일을 보아 주는 마고할머니는 상상력이 전혀 눌려 있지 않아요. 이 마고할미 캐릭터가 일상의 가족 풍경에서 벗어나서 사회 제도 속으로 넓게 파고 들어가 거기에서 생기는 삶의 탐구를 더해 나가면 좋겠는데, 이건 앞으로 숙제겠지요. 이 작품은 이 작품대로 그냥 읽고요.

『산곡 외계인』 속의 할머니는 기처 제도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한 삶을 산 우리 현실 속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는 제도에 의해 희생되기 이전의, 어쩌면 훼손되기 이전의 건강한 내면을 가진 모성의 본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제는 우리도 뭔가 잃어 버린 모성의 본질을 찾아가는 그런 캐릭터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본능적인 관계의 그물에만 갇혀 있는 존재에서 조금 더 넓게 세상을 관찰하고, 목숨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기 내면과의 대화가 가능한 상상력을 가진 할머니 캐릭터를 창조해 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까지 우리 할머니들에게는 역사의 짐이 너무나 무거워서 개인의 상상력이 허용되지 않는 그런 틈바구니에서 그야말로 생존의 싸움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밥의 문제를 비롯해서 이데올로기 갈등을 겪는데, 여성의 몸은 가장 먼저 전쟁터가 되었던 거지요.

『환절기』(박정애 지음, 우리교육, 2005)란 작품을 읽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이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그래, 여자의 몸은 전쟁터란다. 우리가 꿈에서도 원하지 않은 남자들의 전쟁이 우리의 몸뚱이 위에서 벌어지지. 여자가 자기 몸뚱이를 원치 않은 전쟁터로 빼앗기는 일은 우리 세대에서 그쳤어야 하는 건데, 아직도 그런 일은 이 세상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구나.” 예전에는 할머니들이 일본군에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는데, 요즘은 여전히 여자의 몸에 또 다른 형태의 성폭력을 비롯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성에게도 아래와 같은 수용의 법칙이 적용되는 삶에 대한 자기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햇살과 당신의 생명과 건강에 감사하라. 일용할 양식과 삶의 즐거움에 감사하라. 감사해야 할 이유를 모른다면, 그 잘못은 그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마이클 가레트 저, 이순주 역, 『도시에서 자연인으로 사는 법』, 고려문화사, 2005, 25쪽.)

지금까지는 어린이 문학에서도 여성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삶의 굴레에 갇혀 있는 모습을 주로 그렸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었고, 또한 그렇게 여성이 살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외부 현실이 강요한 결과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자기 불행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른 삶의 원칙이 적용되는 물음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린이 문학에서 이제는 모성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면서, 그만큼 기쁨과 불행도 자기 내면에서 찾아 가는 주체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성은 고정된 관념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새로 태어나는 시대 정신이 되어야 하겠지요. 『산곡 외계인』에 등장하는 할머니와 마고할미 사이에는 무수한 어머니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엄마의 마흔번째 생일』에서 자기 일을 찾아 남성 중심의 가족 제도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는 엄마의 캐릭터는 이 두 극단의 모성 사이에서 어디쯤 자리잡고 있는 걸까요.

지금 글을 쓰는 작가들은, 또 동화를 읽는 어른들은 어떤 모성의 캐릭터를 꿈꾸고 있나요. 어떤 부성의 캐릭터를 꿈꾸고 있나요. 어린이를 걱정하기 이전에 먼저 어른들이 자기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고백하는 글쓰기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이재복/1957년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나 서울교육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한국 어린이 문학사 정리와 판타지 동화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10년 남짓 어린이들을 가르치다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발행하던 월간 『어린이 문학』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달마다 「이야기 밥」이라는 소식지를 내고 있습니다. 대표 작품으로는 『북한동화선집』 『뚱보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 『우리 동화 바로 읽기』 『우리 동화 이야기』 『우리 동요 동시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