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4월 통권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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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틀에 박힌 생각을 두드려 봐!

편은정 | 2006년 04월

발단이나 절정이 없는 책을 읽을 수 있나요? 자신이 서 있는 위치 말고 옆사람, 뒷사람이 서 있는 위치에서 사건을 이해할 수 있나요? 무엇이 진짜인지 가려낼 수 있나요? 전혀 다른 방식의 생각들을 견딜 수 있나요? 이 질문들은 하나의 질문으로 다시 물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틀에 박혀 있지 않나요? 익숙한 건 좋지요. 쑥스럽지 않아서 편하고, 매사에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 편합니다. 편함은 무감각을 낳지요. 편해지는 동시에 무언가를 보고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감(感)과 비판력은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자신이 그 공간에 파묻혀 있는지, 익숙한 사고 방식이 자신에게도 굳게 작용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내가 여기에, 해도 해도 똑같은 생각들 속에, 그러니까 이 공간에 파묻혀 있다고 느끼게 하고 다시 한 번 나를 환기시키는 계기 말입니다.

이슈트반 바녀이는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입니다. 독특한 발상과 세밀하고 세련된 삽화, 애니메이션처럼 밝고 대담한 색채 감각에서 광고장이의 냄새가 났습니다. 광고로서 한 번 뒤집어 보는 발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크게 새로울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어린이 책에서 그의 발상과 시도, 그 생각을 전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은 새롭고 특별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에 두고 엮어지는 그림책에서 이런 발상을 대하는 것이 반갑습니다. 발단도 절정도 없고, 예상을 벗어나고, 다 읽고 난 후에 이게 다인가, 이게 진짜인가 하는 의심만 남기는 책. 낯설음과 당혹스러움을 선사하지만 하나의 게임처럼 즐기게 됩니다. 

한 면에는 검은 색이, 한 면에는 다채로운 그림들이 펼쳐집니다. 첫번째 그림은 커다랗게 확대되어 있습니다. 활을 쏘는 남자가 그려진 그림의 일부이지요. 활을 쏘는 남자는 손목시계의 그림이었고, 그것은 이집트의 벽화를 탁본하는 남자의 손목에 있고, 남자가 있는 방은 커다란 오벨리스크의 극히 작은 부분입니다. 오벨리스크는 커다란 광장에 있고, 광장 장면은 원통형의 조형물에 갇히고, 이것은 영화 세트장의 소품입니다. 영화 세트장 너머 밀림이 펼쳐지고, 밀림은 배 위에 실어진 짐 궤짝에 그려진 그림일 뿐입니다. 궤짝이 실린 배는 소년이 장난치는 인공 연못을 떠다니는 장난감이요, 소년은 지금 막 그려지고 있는 그림 속 인물 중 한 명입니다. 화가가 있는 화실은 한 집, 집은 섬처럼 보이는 곳의 한 구역, 또 이 모든 것은 한 여인의 부채에 그려진 그림에 불과합니다. 시선은 점점 멀어지며 커다란 것을 바라봅니다. 책은 어둠 속으로 떠나는 지하철의 불빛 두 개로 마감하고 있지만, 그게 과연 끝일까요? 보이는 이것들이 다일까요?

그림은 아름답다, 감동적이다 같은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이 객관적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의 장면들은 모두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표정과 동작의 변화도 없습니다.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니 시간이 주는 생동감이나 여유도 없지요. 그야말로 납작한 평면처럼 메마르고 움직임이 없는 책. 아이러니하게도 감정 없는 그림 속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감지됩니다. 진실도 상대적일 수 있다고 말하는 소설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몬』과 진실은 저 밖에 있다고 열심히 외치던 TV 외화 시리즈물이 떠오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진실이 무엇인지 주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을 찾으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진짜냐고,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다냐고 물을 뿐이지요. 그런데 그 질문들은 잠시 후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진실이냐고요. 어떤 답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질문 자체가 당혹스럽습니다. 내 것이 진짜가 아니라면,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면 그게 무언지,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 역시 책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책은 질문만 던집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역할입니다. 낯선 방식의 시각 체험이 질문을 던지고, 질문은 틀에 박힌 생각들을 건드립니다. KO급 정도의 강한 충격은 아니었지만, 현재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데는 부족함이 없지요. 가벼운 펀치에 맞은 것 같았는데 계속해서 머리를 두드립니다. 시각 여행을 통한 생각의 환기-다른 글 없는 그림책들과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굳은 머리를 건드려 준 게 흐뭇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생각의 폭이 일정한 틀에 갇혀 있어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니 반가울 리 없죠. 그런 허탈한 심정을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찾아보는 것으로 채워 봅니다. 이런 요소들이 메마른 그림에 풍성한 상상력을 깃들여 주고 있지요. 고대 암벽화, 매머드, 이집트 벽화, 만화 주인공 펠릭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 오벨리스크, 하늘에는 고무 회사인 굿이어의 로고가 새겨진 비행선이 날아다닙니다. 영화 세트장에 있는 원통형의 조형물에서 나폴레옹이 콩코르드 광장을 의기양양하게 가로지릅니다. 위에 쓰인 연도 1789년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때이고, 아래에 쓰인 1836년은 오벨리스크를 콩코르드 광장에 가져다 놓았던 해입니다. 화려하게 치장된 코끼리 위에 앉아 있는 이들 중 한 명은 놀랍게도 알프레드 히치콕입니다. 짐 궤가 놓인 배를 보면 다음 배경으로 타이나 베트남이 펼쳐질 것 같지만 저쪽에는 유럽 중세의 십자군 배도 보입니다. 뿐인가요? 다음 장으로 넘기면 허클베리 핀이 살았던 시절, 미국 뉴올리언스를 운행했을 증기선도 볼 수 있지요. 저 멀리 후지산이 있고 일본 여인의 뒷모습이 보이는 그림을 보며, 이 책의 정갈하면서도 원색적인 느낌이 일본 목판화인 우키요에와 닮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림 속 낱낱의 소재들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얼기설기 얽힌 문화 코드들을 풀고 맞추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암호처럼 호기심을 자극하고 퍼즐처럼 한 편의 그림을 만들어 내도록 부추깁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의 일이 한 장면 안에서 벌어집니다. 온갖 시대와 지역을 총집합한 이슈트반 바녀이는 정말이지 잡식 성향입니다. 그만큼 작가는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톡톡히 받은 사람이지요. 숨은 그림 찾기처럼 아직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싶어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게 만듭니다.

쏟아질 것 같이 너무 많고 너무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 차고 넘치는 이미지와 상징 들을 차곡차곡 쌓아 장면 하나에 가두어 버린 솜씨가 좋습니다. 또 이 책이 던지는 가벼운 펀치는 생각의 파장을 일으키고 수면 아래의 생각들을 불러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걱정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을 환기시키는 이슈트반 바녀이의 방법들은 우선 반갑고 즐겁습니다. 케케묵은 생각을 깨뜨리는 생동감 넘치는 시도들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편은정 | 오픈키드 컨텐츠팀입니다. 자유분방한 상상력, 통통 튀는 이벤트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