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4월 통권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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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서평

[이 달의 서평]
오천 년의 그리움

최선숙 | 2006년 04월

 보물창고가 하나 있는데요. 흔히 우리 민족이 가진 상상력의 보고라 일컫는데, 열어 보셨는지요? 안내자가 꼭 필요한 책이어서 아직 제대로 만나지 못한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고대 역사와 문화를 가장 잘 전해 주는 대표적인 고전 『삼국유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삼국유사』는 13세기에 고려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역사책입니다. 하지만 역사책의 전통적 편찬 절차와 고전적인 편집 양식 따위에 거리끼지 않고 자유롭게 쓴 책이지요. 몽고 침략기인 암울한 시대에 일연은 김부식과 같은 유학자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여러 신화와 설화로 우리 고대사를 서술하였습니다. 왜였을까요? 그건 일깨움과 자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민족혼을 일깨우려는 자주적인 의식을 갖고서 민족 수난기를 극복하려 했던 것이지요.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오랜 기원을 드러내려는 저술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일연, 참 매력적인 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인 고려 희종 2년 1206년에 경주 장산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김씨이며, 이름은 견명입니다. 14세에 출가하여 선종의 구산문 가운데 가장 세력이 컸던 가지산문에서 수행에 힘썼지요. 22세에 선과에 급제한 뒤 개성 선월사, 청도 운문사 등 여러 절에서 수행했습니다. 일연은 32세에 삼중대사, 41세에 선사, 54세에 대선사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충렬왕 15년에 84세를 일기로 군위 인각사에서 입적하였으며 나라에서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그의 저서는 100여 권에 이르며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제자백가를 비롯한 당시의 학문에 정통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삼국유사』를 열어 봅시다. 『삼국유사』는 모두 5권으로, 왕력,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의 9개 편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안내자를 만나야 합니다. 한글로 옮겨줄 전문가지요. 거기다 어린이용이라면 더 쉬운 우리 말이 필요해집니다. 이 문제는 뒤로 미루고 일단 책 자체를 살피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군요.

  왕력 편은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에서 고려 태조의 재통일에 이르기까지 삼국은 물론 가락국, 후고구려, 후백제 등의 약력을 중국의 연대와 대조하여 도표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기이는 이상한 것을 기록한다는 의미로, 단군신화와 삼국의 건국신화가 실려 있습니다. 신화와 역사를 엮어 신화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민족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기이 편에는 기이한 신화와 더불어 신라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 여러 왕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신라의 비중이 큰 것은 일연이 살았던 지역적 한계이기도 하지요. 

  흥법은 불법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불교가 삼국에 어떻게 들어왔고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순도, 난타, 아도 등의 불교 전래 과정과 이차돈의 순교와 그 뒤 불교가 공인되고 발전하는 과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탑상 편은 사찰, 탑, 불상, 종 등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구려의 영탑사, 황룡사 9층탑, 오대산 월정사 등 수많은 불교 유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단순히 불교 유적 유래담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불교 유적이 갖는 영험에 대한 설화로까지 이어집니다.

  의해는 부처님의 가르친 뜻을 풀이한다는 의미로, 불교를 쉽게 풀이하고 그와 같이 실행하여 일반인들을 일깨워 준 고승들의 전기가 실려 있습니다. 원광법사, 자장율사, 원효대사, 의상대사의 전기뿐 아니라 유가종의 대현과 화엄종의 법해 등의 전기도 실려 있습니다.
 
 신주 편에는 신통한 주술에 관련된 스님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스님들은 경을 읽어 병을 치유하기도 하고 귀신을 쫓기도 하지요. 토착 민간 신앙의 불교 내부로의 흡수라고도 볼 수 있는데, 밀교적이기도 합니다.

  감통은 부처에게 감응하여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감통 편은 일반 민중들의 불교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종교적 실천, 그 결과로 얻어지는 소원의 성취를 다루었습니다. 불법의 영험은 부귀나 권력을 넘어서 형식과 의례에 얽매이지 않고 참된 믿음이 있는 곳에 언제나 깃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피은 편에는 세속을 피해 숨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세속을 피해 살았던 사람들이 은거하게 된 이유와 그 행적이 그려져 있습니다.

  효선 편에는 효를 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충효라는 기본 윤리를 벗어나지 않은 우리나라 불교의 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삼국유사』는 우리 나라의 고대사 연구뿐 아니라 문학, 언어, 민속, 종교, 고고학, 지리학 등을 연구하는 데 있어 아주 귀중한 사료입니다.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우리 나라 고대의 역사와 문화, 종교를 이야기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현재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여러 판본들은 원문이 워낙 난삽하고 오자와 탈자가 많아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러 전문가들이 한글로 옮겼고,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책으로도 편집되어 나온 책이 여럿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필 책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요, 국문학자들이 옮기고 서정오 선생이 쉬운 우리 말로 다시 쓰고, 오래 전부터 우리 고전 속의 설화들을 그림으로 그려온 이만익 화가의 그림이 더해진 ‘어린이용’ 『삼국유사』입니다. 

  이 책은 원본에서 간추려 두 권으로 구성했는데, 왕력 편을 제외한 원전에 실린 140여 편의 이야기 가운데서 28편을 골라 소개합니다. 살피다보니 이만익 화가가 1980년대부터 『현대문학』을 통해 발표한  ‘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 작품 40편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책의 뒤쪽에 실린 ‘삼국유사 그림 원화방’에서 이 그림들을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이야기들이 실렸는지 살펴볼까요. 단군왕검에서 시작하여 각국의 건국신화를 만날 수 있고 김유신, 선덕여왕, 김춘추, 만파식적, 선화공주와 서동, 월명사, 죽지랑, 수로부인, 거타지, 처용, 이차돈 등의 이야기입니다. 어린이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습니다.  

  이 책에서 빛을 발하는 건 쉬운 우리말과 상상력을 촉발하는 그림들입니다. 한국적 미감을 담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이만익 화가가 찬란한 원색과 단순하고도 절제된 선으로 만든 ‘우리의 얼굴’ 들은 강렬하면서도 정답습니다. “좋은 그림은 개인의 소리가 아닌 사회의 소리여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이만익은 웅녀, 주몽, 유화, 수로부인 들에 제 얼굴을 주었습니다. 하나도 모나지 않은 이 평면적 얼굴들에서 우리는 먼 역사 속의 인물뿐 아니라 나의 얼굴, 내 이웃의 얼굴들을 만나게 됩니다. 화가가 그림 아래 붙인 글은 매혹당한 자의 설렘과 부끄러움이어서 어린이들이, 아니 어른들도 금방 알아채기는 힘들겠지만, 이 무궁무진한 보물을 보물답게 하네요.

최선숙│오픈키드 컨텐츠팀장. 재미있는 일이 더 많아지는 세상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