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통권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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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그림책에서 자아낸 역사 이야기]
루비와 황금산

서남희 | 2006년 02월

『루비의 소원』 표지
화려 장중한 빨간 대문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있는 여자 아이.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죠? 시린 임 브리지스가 글을 쓰고 소피 블랙올이 그림을 그린 『루비의 소원』의 주인공 아가씨인 루비입니다. 표지를 넘기면 붓 한 자루가 얌전하게 놓여 있지요. 루비 양이 바늘 대신 잡고 싶어하는 붓입니다. 또 한 장을 넘기면 엄마가 루비 양에게 평범한 푸른 옷을 입히고 있고, 평범해지는 게 싫은 요 깜찍한 아가씨는 빨간 머리띠를 뒤에 감추고 있습니다. 이 그림책에 따르면, 빨간색은 축하의 색입니다. 아이들은 설날에 행운의 돈이 들어 있는 빨간색 봉투를 받고 신부들은 결혼식 날 빨간색 옷을 입지요. 그런데 루비 양은 언제나 빨간색 옷을 입고 싶어한답니다.

황금산에서 큰 부자가 되어 돌아온 할아버지의 자손은 100명이 넘습니다. 커다란 집에서 루비는 남자애들과 함께 가정교사에게 글을 배우지요. 붓글씨를 제일 잘 써서 칭찬받지만, 여자애들은 주로 요리와 집안일을 배워야 해서 루비는 공부하랴 밤늦게까지 수놓으랴 참 바쁩니다. 때가 되면 남자애들은 대학에 가고 여자애들은 결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루비는 마땅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한탄하는 시를 썼고, 그것을 할아버지가 읽게 되지요.

할아버지 앞에서 루비는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차별받고 있는 점 ─ 즉, 추석날 월병을 반으로 갈라 먹을 때도 남자애들은 노란색 소가 들어 있는 부분을 먹고, 등 축제 때도 여자애들은 평범한 종이 등을 들지만 남자애들은 화려한 금붕어, 수탉, 용 등의 모양을 한 등을 든다고 지적합니다. 그런 걸 마냥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할아버지는 그때야 비로소 이게 차별이라는 것을 깨닫지요.

이 이야기는 할아버지가 루비를 결혼시키는 대신 대학에 보내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대학에서 온 입학 허가서가 들어 있는 빨간 봉투를 받는 루비는 더 이상 어린 애가 아니라 늘씬한 처자로 자라 있군요. 자랑스럽도다.

『루비의 소원』 본문 중에서

이 책을 보는 이들은 성차별을 이겨 내고 여자로서 대학에 간 루비 이야기에 관심을 쏟겠지만, 제게는 ‘황금산’ 이야기가 쏙 들어왔습니다. 만약 할아버지가 그 곳에 가 보지 않았고, 우물 안 개구리로만 있었다면 차별에 대해 억울해 하는 루비의 마음을 담박 알아 줄 가능성이 거의 없었을 것 같거든요.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이십 몇 년 전에, 군산에서 뱃길로 여섯 시간 떨어진 어느 섬에 갔다가, 바다가 보이는 초등학교 교실 뒷벽에 ‘장래 희망’이라는 주제의 그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선장’ 그림과 ‘간호사’ 그림들만 있었는지……. 그 때는 텔레비전이 아직 섬을 점령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 작은 섬 밖에 나가 보지 못한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은 남자애들은 선장, 여자애들은 간호사였던 거죠.

여느 중국인들은 그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살았겠지만, 루비의 할아버지는 젊었던 시절에 남달리 멀리 황금산까지 갔다가 부자가 되어 돌아온 인물입니다. 이 그림책에서는 황금산이 ‘캘리포니아’를 말한다고 나왔지만, 좀 더 좁히자면 1849년 골드러시 당시의 샌프란시스코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늙은 호랑이가 담배나 뻑뻑 피고 있던 아시아 대륙에서 망망대해를 건너 말도 풍습도 통하지 않는 미국까지 갔을 정도니 루비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모험심으로 펄펄 끓던 사람, 맞지요?

샌프란시스코는 1840년대 초기만 해도 불과 수백 명이 살던 한적한 항구였습니다. 그 일대의 너른 땅에 스위스 인 존 서터라는 사람이 거대한 농업 왕국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난데없이 그의 고용인 중 하나인 제임스 마샬이 1848년에 완두콩 반 만한 금 알갱이들을 땅에서 줍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던 일 관두고 당장 눈이 벌개져 금 찾아다닐 것만 같지만, 이 둘은 금이 별로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 땅을 거대한 농지로 만들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들은 금을 주웠다는 사실을 비밀에 붙입니다. 물론 소문이 솔솔 퍼져 나가긴 했지만, 그 소문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요.

골드러시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꽹과리 치는 사람이 필요했죠. 바로 존 브래낸이라는 사람이 그 역할을 합니다. 그는 온 샌프란시스코 거리를 내달리며 마샬이 금을 발견했다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증거로 사금병을 보이는 것을 잊지 않았죠. 그래서 이 지역으로 금을 채취하러 나라 안에서는 물론 중국, 칠레, 멕시코,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터키 등 온 천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골드러시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금을 채취하는 중국인 Copyright:The Sacramento Bee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대응방식은 참 가지가지였습니다. 우선 존 서터는 그 땅을 끝까지 농지로 쓰려고 발버둥치다가 망했습니다. 야채를 심어 봤자, 먹을 게 부족한 광부들이 와서 제멋대로 뽑아가 버리곤 했으니까요.(참고:그 당시는 무법의 시대.) 둘째, 금을 캐는 대신 다른 일로 떼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었죠. 존 브래낸만 하더라도, 금이 발견되었다고 마구잡이로 소리지른 건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 용의주도하게 금 채취에 필요한 도구들을 몽땅 사재기해 놨으니까요. 20센트에 사들인 사금 채집 접시를 그는 무려 75배를 붙여 15달러에 팔아먹었답니다. 또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천막 천으로 청바지를 만들어 광부들에게 팔아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지요. 여자들 또한 자기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 광부들에게 밥해 주고 빨래해 주는 일로 돈을 벌기 시작했지요.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집안일이 사회경제적 효용성을 획득하는 순간이었죠. 셋째, 금을 캐긴 캐되, 남을 시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노예제가 있었던 남부에서 온 사람들은 노예를 대동하고 와 그들을 시키기도 했고, 개인은 물론 영국 회사에서 중국인들을 일꾼으로 모집해 와 일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사실 중국 젊은이들이 ‘금산’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는 건 미래에 대한 위태로운 도박이었지만, 내전과 여러 자연 재해들로 삶이 힘들었으니, 그들은 잃을 게 없었습니다.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파키스탄 젊은이들이 용병이 되기 위해 무거운 짐을 들고 산을 오르는 테스트를 받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2006년이나 된 지금도 산업이 발달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없어 남의 나라 가서 목숨 내놓고 용병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19세기 중반에는 상황이 어떠했겠습니까…….

1852년에 이만 오천 명의 중국인이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부자가 되어 가는 경우가 정말 정말 드물듯이, 당시에도 금을 캐서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한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요. 그래도 가끔은 꿈을 이룬 사람들도 있긴 하지요. 그런 경우가 부풀려져 전해지는 게 문제지만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낡은 오두막에서 살던 광부 세 명이 집을 팔았다. 중국인들이 그것을 25달러에 사들였다. 광부들은 흐뭇하게 그 돈을 받고 근처 술집에 가서 한바탕 웃어 제쳤다. 중국인들은 그 집의 권리를 취득하자마자, 마룻바닥을 다 뜯어 냈다. 그리고는 전 주인들이 바지를 벗을 때 마룻바닥 틈으로 떨어졌던 사금가루를 긁어모았다. 그것으로 중국인들은 300달러를 벌었다.”

그런데 이삭줍기를 했든, 제대로 금을 채취했든, 금을 모은 중국인들이 자기 나라까지 그걸 가져가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떼강도의 시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사람에겐 꾀주머니가 있는 법.

“중국인들은 금을 일단 샌프란시스코로 가지고 가서 그걸 녹여 냄비, 프라이팬 등으로 만들었다. 고향으로 떠나는 배에 탄 그들을 본다면, 그들 손에는 더럽고 거무튀튀한 요리 도구 같은 것이 들려 있었을 것이다. 고향에 되돌아가서 그들은 다시 그것들을 녹여 금으로 환원해 냈다.”

사실 이렇게 고향에 돌아간 사람들은 드물었습니다. 멀리까지 와서 병들어 죽은 사람들도 많았고 인종 차별로 온갖 고통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자마자 하도 근면하게 일을 하다 보니 백인 경쟁자들의 분개를 샀고, 1849년에는 중국인 캠프에서 60명이 내쫓기기도 했죠. 1852년에 백인 광부들은 여기저기서 수 백 명의 중국인을 내쫓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1862년에 ‘반 쿨리 클럽’이 결성될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금광이 말라붙어 대륙횡단 철도 공사장으로 흘러들어간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루비의 할아버지는 그래도 운 좋게 금을 갖고 고향으로 돌아온 극히 일부 사람들에 속해 여생을 중국에서 부유하게 보낸 겁니다. 어린 루비의 마음에 바글바글 끓는 성차별에 대한 억울함을 이해한 것도, 그 자신이 바깥 세상에서 인종차별을 뼈저리게 겪어 봤기에, 또 그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살려 경제 활동에 눈뜬 여자들을 보았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루비가 대학에 갈 수 있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준 것은 아마 황금산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황금산에 간 중국인들의 이후 이야기는 소년 소설인 로렌스 옙의 『용의 날개 』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골드러시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중국인 촌에서 살아가던 이민자들의 꿈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금 전반의 역사를 보려면 메리디스 후퍼의 그림책 『금의 역사 』를 권합니다.

참고 사이트
http://www.pbs.org/goldrush
http://www.calgoldrush.com/part3/03asians.html
http://www.calgoldrush.com/part3/photos/chinese01.html
서남희 /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 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고,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 『별을 헤아리며』와 『꿀벌 나무』를 번역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볕 드는 마루에서 만난 그림책과 작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림책과 시, 바위산, 걷는 것과 잠자는 것을 아주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