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통권 제39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사진과 시
책 세상 나들이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책 세상 나들이

[진회숙의 음악 여행]
프로코피에프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

진회숙 | 2006년 02월

오케스트라는 아주 다양한 악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바스와 같은 현악기와 플루트, 피콜로, 바순, 오보, 클라리넷과 같은 목관악기, 혼, 트롬본, 트럼펫, 튜바와 같은 금관악기, 팀파니, 북, 심벌즈, 마림바와 같은 타악기가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악기이다. 워낙 악기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 모든 악기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악기 사진이 들어 있는 책을 읽어 주며 마치 시험 공부하듯 악기에 대해 공부하게 하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악기의 본질은 소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악기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음악 공부의 기본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그냥 소리만 들려주는 것은 지루함만 더할 뿐이다.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모종의 장치가 필요하다. 그 모종의 장치란 무엇인가. 바로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러시아의 작곡가 프로코피에프는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해 이 분야에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다. 바로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이다.

『피터와 늑대』 표지
『피터와 늑대』의 줄거리는 러시아의 동화 작가 블라디미르 바긴이 쓰고, 음악은 프로코피에프가 썼다. 블라디미르 바긴은 러시아 북부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어린이 책의 미술 감독으로 일해 온 그는 구 소련 시절 정부가 최고의 삽화 작가에게 주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양이가 온다』라는 책의 삽화를 그린 후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최근까지 미국의 버몬트 주에 살면서 『호두까기 인형』 『커다란 당근』 등의 동화에 삽화를 그렸다.

한편 음악을 맡은 프로코피에프는 1891년 우크라이나의 손초프 가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인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 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 후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36년 다시 소련으로 돌아왔다. 이 시절 그는 스탈린 정권의 독재와 지나친 간섭으로 예술가로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 어떤 작품은 연주가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그는 오히려 주옥 같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 냈다. 대표작으로 「고전교향곡」, 발레 음악 「로미오와 줄리엣」,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 등이 있으며 1953년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러시아 동화와 러시아 음악을 각각 대표하는 두 거장이 만나 음악 교육의 모범이 되는 작품을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피터와 늑대』이다. 『피터와 늑대』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인물의 캐릭터를 각각 그 특징에 맞는 음색의 악기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가장 효과적인 악기 교육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나레이터가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 동안 상황에 맞추어 다양한 악기들이 등장한다. 여기서는 등장인물이나 동물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악기가 나오는데, 매사 낙천적인 성격의 피터는 경쾌한 바이올린으로, 완고하고 걱정이 많은 할아버지는 깊고 강한 음색을 가진 바순으로, 귀엽고 작은 새는 맑고 경쾌한 플루트로, 고집스러운 오리는 빽빽한 음색의 오보에로, 호시탐탐 작은 새를 공격할 기회를 노리는 고양이는 스타카토의 클라리넷으로, 짐승들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늑대는 음흉한 음색의 호른으로, 그리고 용감한 사냥꾼은 힘찬 팀파니 소리로 묘사하고 있다.

숲 속 작은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피터는 할아버지(바순)로부터 늑대가 올지도 모르니 문단속을 잘 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 피터는 작은 새 한 마리가 풀밭에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에 앉아 즐겁게 지저귀는 것을 보았다(플루트). 늑대를 걱정하며 집안에 앉아 있기에는 너무 좋은 날씨라고 생각한 피터(바이올린)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어기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서는 오리(오보에)와 작은 새(플루트)가 서로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피터와 늑대』 본문 중에서

바로 그 순간 피터의 눈에 살금살금 연못 쪽으로 다가가는 고양이(클라리넷)가 들어왔다. 작은 새를 잡기 위해서이다. 고양이가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을 본 피터가 작은 새에게 조심하라고 외쳤다. 그 바람에 고양이는 작은 새를 놓치고 말았다.

그 때 할아버지가 오셨다. 할아버지는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피터에게 화를 냈다. 피터와 할아버지가 문을 잠그고 대문 안으로 사라지자 커다란 늑대 한 마리(프렌치 혼)가 숲 속에서 나타났다. 그리고는 달아나는 오리를 따라잡아 한 입에 삼켜 버리고 말았다.

대문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피터는 어떻게 하면 늑대를 잡을 수 있을까 궁리했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작은 새에게 늑대를 유인하도록 한 다음 미리 준비해 놓은 올가미에 걸리게 하는 방법이다. 피터의 계략에 늑대가 넘어가고 말았다. 작은 새를 쫓아가다가 그만 올가미에 걸리고 만 것이다.

『피터와 늑대』 본문 중에서

사나운 늑대를 잡은 피터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늑대를 앞세우고 걸었다(바이올린 합주). 그때 사냥꾼들이(팀파니) 나타나서 늑대를 자기들에게 넘기라고 했지만 피터는 늑대를 동물원으로 보내기로 했다. 동물원으로 옮겨지는 동안 늑대의 뱃속이 계속해서 꾸르륵거렸다. 오리(오보에)가 배 안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늑대는 결국 오리를 뱉어 냈다. 피터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오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꽥꽥거렸다.

『피터와 늑대』는 그냥 동화를 듣다 보면 저절로 다양한 악기의 특성을 알게 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피터와 늑대』는 그냥 이야기 줄거리만 읽어서는 안 된다. 해설과 음악이 곁들여진 음악과 함께 들어야 한다. 시중에 여러 종류의 『피터와 늑대』가 나와 있는데 이 중에는 음향 자료 없이 그냥 책으로만 나온 것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음향 자료가 첨부되어 있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피터와 늑대』를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자료도 있다. 바로 영국 로열발레학교 학생들이 공연한 「피터와 늑대」 DVD이다. 이 DVD는 아이들의 눈과 귀를 동시에 즐겁게 해 준다. 공연에 참가한 발레학교 학생들은 비록 어리지만 전문 발레리나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 주고 있다. 학예회 수준이 아니라 전문가 수준이라는 얘기다. 특히 고양이 역을 맡은 발레리나의 연기가 일품이다.

춤과 연기만이 아니다. 안무와 의상, 연출도 매우 훌륭하다. 연못을 상장하는 하늘색 의상, 총을 겨누고 팀파니 소리에 맞추어 등장하는 사냥꾼들의 위풍당당한 모습, 완고한 할아버지의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작은 새의 경망스러운 몸짓, 피터의 의기양양한 자세, 짐짓 교활해 보이는 고양이의 눈길, 음흉한 늑대의 표정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완벽하다.

음악은 비록 귀로 듣는 것이지만 보다 효과적인 음악 교육을 위해서는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요즘은 도움이 되는 자료가 꽤 나와 있다. 물론 다른 교육 자료에 비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지만 부모와 교사가 관심을 갖고 찾아 보면 의외로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료들을 찾아 내 교육에 활용하는 것은 물론 어른들의 몫이다.

연습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억지로 피아노 앞에 앉히는 것보다 훨씬 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음악을 즐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는 아이들의 음악 교육에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진회숙 / 이화여자대학교 음대에서 서양 음악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음대 대학원에서 국악 이론을 전공했습니다. 1988년 「한국 음악극의 미래를 위하여」라는 평론으로 월간 『객석』이 공모하는 예술 평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방송국 음악 프로그램의 음악전문 구성작가와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진회숙의 클래식 오딧세이』 『나비야 청산가자』 『영화로 만나는 클래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