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통권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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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읽었어요]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

최종득 | 2006년 02월

“자, 이번 읽기 시간에는 시를 창의적으로 읽고 서로의 생각이나 느낌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 공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읽기 교과서에 실린 시를 다 같이 한 번 읽어 볼까요?”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시작했지만 아이들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입으로는 시를 읽고 있지만 얼굴은 그다지 밝지가 않다. 아이들도 교과서에 실린 시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시 읽기가 끝나자마자 바른 말 잘하기로 소문 난 민기가 손을 들고 말을 한다.

“선생님. 설마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가지고 우리 생각이나 느낌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겠지요?”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다. 다른 아이들도 다 똑 같은 눈빛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데 이럴 때면 괜히 당황스럽다.

“당연하죠. 여러분이 그럴 줄 알고 내가 다 준비를 했죠.”

그러면서 ‘아이마음 동시 그림책’ 시리즈를 들어 보였다. 그제야 아이들 눈빛이 빛난다. 일단 딱딱한 교과서를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 안심이 되고 그림책 같은 시집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 옆에 꼬옥 붙어 잤어요』 표지
이 시리즈는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 『엄마 옆에 꼬옥 붙어 잤어요』에는 어린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동시 20편이, 2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에는 어른으로 자라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일러 주는 동시 20편이, 마지막 3권 『너는 커서 뭐 할래?』에는 어른이 생각하는 참된 어린이의 모습을 그린 동시 20편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먼저 우리 반 열세 명을 세 모둠으로 나누고 모둠마다 동시 그림책을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책을 받자마자 서로 읽으려고 야단이었다. 처음에는 글자만 읽던 아이들이 시간이 갈수록 시 분위기에 맞게 목소리도 바뀌고, 시를 읽으면서 몸으로 행동까지 하는 것을 보았다. 「시준이 그림일기」를 읽던 지인이는 시를 읽다가 짝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시 내용처럼 안기기까지 했다.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이 자유롭게 동시를 느낄 수 있도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켜만 보았다.

시 느낌을 살려 시를 읽는 아이들 목소리만으로도 교실은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즐거웠다. 누구 하나 장난치거나 말썽 부리는 아이 없이 모두 시를 듣고, 시 읽기를 반복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친구가 읽은 시가 좋으면 손뼉도 치고, 작은 목소리로 시가 좋다고 고함도 질렀다. 친구가 낭송하는 시가 마음에 들면 자기도 읽고 싶다고 하며 자기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낭송을 하였다. 이렇게 한 시간 동안 시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살며시 교사로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번 시간 학습해야 할 목표도 생각나고, 우리 반 아이들이 좋아하는 시가 어떤 시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모둠별로 가장 좋은 시 한 편을 뽑고, 그 시를 창의적으로 발표하자고 했다. 이미 아이들은 시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별 불평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조금 전까지 그렇게 좋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여기저기서 아이들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 시 하자, 재미있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독특하게 잘 말했잖아.”
“아이다, 재미는 있지만 감동이 없잖아. 이 시 말고 딴 시 찾아 보자.”

모둠마다 시 한 편을 고른다고 난리다. 교실이 무슨 시장 통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름대로 열심히 이야기 나누고 있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야단도 못 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었다.

‘과연 아이들이 시 한 편을 제대로 고를 수 있을까?’보다는 ‘이러다가 싸움 나는 것 아닐까?’ 하고 내심 걱정이 되었다.

드디어 발표 시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어느 모둠부터 발표를 할까?” 하고 물어 봤더니 1학년 학생도 아닌데 서로 자기 모둠이 먼저 할 거라고 한 손도 모자라 두 손을 번쩍 든다. 할 수 없이 책 순서대로 발표를 하기로 했다.

먼저 『엄마 옆에 꼬옥 붙어 잤어요』를 읽은 모둠은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스럽게 잘 나타난 「점치기」를 가장 좋은 시로 뽑았다.

엄마가 시장에 간 사이 / 동생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 울리지 말고 / 잘 데리고 놀랬는데 // 이 말썽꾸러기 / 찾기만 해봐 가만 놔두나 // 어디로 갔는지 / 손바닥에 침을 뱉어 / 점을 쳐 보았다 // 침이 / 사방으로 튀는 걸 보니 / 온 동네 다 돌아다니나 보다 - 신천희, 「점치기」

발표는 한 아이가 시를 읽고 다른 두 아이가 시에 따라 역할극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동생 역을 맡은 아이가 교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쓰레기통도 엎고, 사물함 문도 활짝 열어 놓고, 책상과 의자도 엉망으로 해 놓고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형 역을 맡은 아이가 나와서 쓰레기통도 바로 해 놓고, 사물함 문도 닫고, 책상과 의자도 줄을 맞춰 놓고는 동생을 찾는 시늉을 하다가 도저히 못 찾겠다는 듯이 실제로 손에 침을 뱉고는 손으로 딱 쳤다.

순간 침은 사방으로 튀고 역할극을 지켜보던 우리 반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자기 옷에 침이 튀었다는 둥, 자기 입에 침이 들어갔다는 둥 한 마디씩 했다. 이런 어수선한 틈을 타 동생이 들어왔다. 들어 온 동생에게 형은 어디 갔다 왔냐며 반가운 얼굴로 침 묻은 손을 동생 역을 맡은 친구 얼굴에 부볐다. 순간 교실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아이들이 왜 웃는지 모르는 채 동생 역을 맡은 아이도 따라 웃었다.

두번째로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를 읽은 모둠은 자식을 때리고 나서 마음 아파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표현한 「흔들리는 마음」을 가장 좋은 시로 뽑았다.

공부를 않고 / 놀기만 한다고 /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다. // 잠을 자려는데 / 아버지가 슬그머니 /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자는 척 / 눈을 감고 있으니 / 아버지가 /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 미워서 / 말도 안 할려고 했는데 / 맘이 자꾸만 흔들렸다. - 임길택, 「흔들리는 마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표지
이 모둠은 세 명의 아이들이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 은혜를 배경 음악으로 부르고 혜지가 시를 낭송했다. 그런데 시를 낭송하다 말고 혜지가 울먹울먹 하더니 이내 울기 시작했다.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 생각이 났다는 혜지는 시를 다 낭송하지 못하고 결국 자리로 들어갔다. 우리 반에 아버지 없고, 엄마 없는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숙이고 따라 울었다.

마지막으로 『너는 커서 뭐 할래?』를 읽은 모둠에서는 용칠이의 착한 마음이 잘 나타난 「우리 마을 용칠이」를 가장 좋은 시로 뽑았다.

1. 용칠이 / 바보 용칠이 // 친구라곤 / 까만 / 염소 두 마리 // 음메- / 청을 높여 우는 / 소리만 들어도 // 배고픈가, 아픈가 / 고삐에 감겼는가 // 척척 알아내는 / 참 용한 / 우리 용칠이. // 2. 용칠이 / 바보 용칠이 // 아이들이 먹는 / 사탕이나 아이스크림 // 눈 빠지게 바라보다 / 침만 흘리다 // 빈손 싱겁게 내저으며 / 뒷산으로 내닫더니 // 가슴에 가득 / 꺾어 안고 온 / 부끄러운 얼굴처럼 / 붉은 진달래 // 나도- / 나도- / 손 내미는 아이들 // 꽃처럼 웃으며 / 나누어 주는 // 참 환한 / 우리 용칠이. - 김재수, 「우리 마을 용칠이」

이 모둠도 역할극을 했는데 용칠이 역을 맡은 승재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개그맨 흉내를 내면서 용칠이 역을 해 금방 전까지 우울했던 교실이 금세 웃음으로 가득 찼다. 아버지 생각으로 가득 찬 혜지도 승재가 하는 바보 연기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그 이후로 승재 별명은 용칠이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해서 우리 반 시 수업은 끝이 났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고 했는데 아마 우리 반 모두 엉덩이에 자그마한 뿔이 났을 것이다. 시 때문에 울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참 행복한 수업이었다.

『너는 커서 뭐 할래?』 표지
사실 시를 창의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읽는 사람의 경험이나 상상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시를 이해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교과서에 실린 시는 우리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이나 상상을 끌어내기에 적합한 시들이 아니다. 내가 봐도 이해하기가 힘든 시도 있고, 어린 아이의 말장난 같은 시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 경험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어른의 생각을 애써 가르치려는 시들도 많다. 물론 한두 편 정도 좋은 시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한두 편만으로 우리 아이들이 다양한 생각으로 시를 읽고 느끼게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 반은 국어 시간 두 시간을 통해 적어도 스무 편 이상의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이나 상상에 비추어서 좋은 시를 직접 고르기도 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다.

좋은 시가 어떤 시인지 가르치기보다 좋은 시를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만 해도 우리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시를 읽고 시를 즐긴다. 딱딱한 교실에서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한두 편의 시를 40분 동안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봤자 아이들은 시를 더 멀리할 뿐이다. 아이들이 가장 쉽게 쓸 수 있고,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우리 교사들이 싫어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국어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내게로 왔다.

“선생님. 그 동시집 우리 좀 빌려 주면 안 될까요?”
“안 되긴 왜 안 되겠니? 어서 가져가서 보렴.”

쉬는 시간에 쉬지도 않고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인다. 국어 시간에 읽지 못한 시를 읽는다고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시집을 들고 있다. 이 다음 수업 시간 중에는 아이들이 화장실에 몇 명이나 간다고 할지 걱정이다.
최종득 / 거제에 딸린 작은 섬에서 아이들과 시 공부를 함께 하며, 바다를 사랑하는 섬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교사가 되기 위해 즐겁게 놀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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