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통권 제39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사진과 시
책 세상 나들이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우리 동화 깊이 들여다보기]
자아를 찾는 아이들이 가는 길 - 몸, 말, 책

김서정 | 2006년 02월

동화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주체성 있는 아이를 만나는 일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도덕과 윤리와 상식의 굳은 틀을 뒤집어쓴 밀랍인형 같은 아이가 아니라 제 생각과 제 느낌, 자기 자신만의 의문과 불만과 희망과 욕망으로 좌충우돌 세상과 부딪치며 자신을 세워 나가는 아이와 마주치면 눈앞이 환해진다. 고인 물 가득한 탁한 연못에 피어나는 연꽃 같다고나 할까. 그 연꽃을 자세히 보기 위해, 그러니까 그 아이가 어떻게 자기를 피워 올리고 주위를 향해 열어 나가는지를 보기 위해 책 속의 이런저런 대목들을 짚어 보고 들춰 보며 나아가는 일은 마치 작은 탐험처럼 설렌다.

2005년 한 해 나온 동화 중 그렇게 주체적인 자아 성찰과 성장의 과정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눈에 띄는 책이 세 권 있었다. 『겨울 해바라기』와 『받은 편지함』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다. 이 이야기들의 특징은 아이들이 주위와 부딪쳐 가면서 자신을 세워 가고 드러내는 과정에서 각각 몸과 말(글)과 책이라는 뚜렷한 모티프를 일관되게, 조직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동화 평가의 기준이 이제는 단순히 주제와 소재의 의미 있음을 넘어서 구사되는 언어의 개성이나 창조되는 인물의 밀도, 서사 구축 전략 등의 요소로까지 넓혀져야 하는 시점에서, 개성 있고 탄탄한 이야기 전개 과정을 보여 주는 이 작품들의 등장은 상당히 반가운 일이다.

『겨울 해바라기』 표지
『겨울 해바라기』는 우리 동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이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몸’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최근 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인 입양아 문제와 고등학생의 임신이라는, 동화가 다루기에는 상당히 민감한 청소년 성 문제를 두 축으로 삼는다.(해외 입양이나 청소년 임신, 출산 문제는 최근 대중 매체에서 너무 감상적, 자극적으로 다루어지는 바람에 본격적인 탐구와 언급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상투화되어 버린 듯하다.) 평범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는 초등학교 5학년 사내아이인 동준이의 일상으로 뛰어드는 이 두 소재는 얼핏 보아서는 서로 연관이 없는 듯하지만, 동준이의 시선으로 이끌어지는 몸에 관한 탐구는 그 소재들을 유기적으로 엮으며 끌고 나간다. 그 문제들은 발생지가 몸이며, 그것이 야기하는 혼란과 고통이 몸 위에 뚜렷한 상처로 나타나며, 지켜보는 동준이에게도 몸의 통증으로 스며든다는 점에서 긴밀하게 얽혀 있다. 무엇보다도 동준이에게 일어나는 외면의 변화와 내면의 갈등, 그로 인한 혼란과 슬픔, 분노 등은 몸에 대한 주시, 몸의 변화와 아픔에 대한 인식을 통해 꿈틀거리는 육체적 표현들을 얻는다. 그리고 그 표현들을 통해 동준이가 겪는 혼란과 아픔과 깨달음 들은 독자의 몸으로 건너온다. 예로 들 수 있는 대목들은 이렇게 많다.

노르웨이로 입양 갔다가 친부모를 찾아 한국으로 오면서 잠시 자기 집에 머물게 된 철현이를 맞는 동준이의 긴장은, “내 속에 있던 물이 전부 오줌으로 빠져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요의로 나타난다. 가엾은 아이니 잘 대해 주라는 어른들의 당부에 오히려 반발심이 일어 쉽게 마음을 내 주지 않으리라 별렀지만, 첫 만남에서 동준이의 그 위악적인 경계심은 힘없이 허물어진다. “저리 환한 미소. (……) 눈이 시려서 그 애를 똑바로 못 보겠는데, (……) 내 어깨에 철현이의 팔이 둘러졌다. 내 볼에 닿은 철현이의 귀가 꽃잎처럼 부드럽다. 철현이한테서 해바라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렇게 동준이는 철현이를 좋아하게 된다. 어른들의 충고나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당위성에서가 아니라 몸의 소통을 통한 마음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 소통은 설득력이 있고 지속성이 있다.

그 뒤 동준이가 철현이와 마음을 나누게 되는 통로는 대부분이 몸이다. “나를 보는 안경 속 철현이 눈은 촉촉하고 진한 밤색이다. 촉촉하고 진한 밤색, 착한 색.” “철현이의 눈도 잠겨 있는 것 같다.” “그 아줌마가 꼭 철현이의 친엄마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철현이 배꼽을 꼭 봐 줬으면 좋겠다.” “거의 다 해져서 손톱도 별로 안 남은 피투성이 엄지손가락이 뚱뚱 부어 있다. 손가락이 구부러지는 관절 부위는 아예 다 벗겨져서 주름도 없이 허옇다.” “무언가 목을 콱 막더니, 눈물이 나면서 어지러웠다. 나는 뒤로 넘어지면서도 철현이 오른손을 놓지 않았다.” 같은 표현 속에는 철현이에 대한 애틋함, 서운함, 애정, 안타까움 같은 감정이 또박또박 배어 있다.

한편 여자친구를 임신시키고 책임을 회피해 가출하게 만든 고등학생 사촌형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고스란히 몸으로 쏟아진다. 형은 동준이의 우상이다. 그런 형이 무책임하고 비겁한 짓을 저질러서 동준이를 화나게 한다. 동준이의 분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날아가 형의 몸에 꽂힌다. “지민이 형 까만 뒤통수가 아주 못났다. 밉게 생겼다. 목, 어깨, 등, 팔, 엉덩이, 다리 그런 것도 전부 너무너무 밉다. 너덜너덜한 붕대가 둘린 주먹도 아주 못났다. 저런 등이 아니다. 저런 머리, 저런 팔, 저런 다리, 저런 주먹이 아니다. 내가 좋아했던 지민이 형은 저런 몸이 아니다.”는 대목은 대단히 역동적으로 동준이의 감정을 폭발시킨다. “눈에서 불이” 날 정도의 배신감에 그예 울음을 터뜨린 동준이가, 이유를 묻는 식구들에게 하는 대답도 “엉엉! 무, 무릎이, 아, 아파서……. 진짜 아파서”이다. 머릿속의 생각을 몸이 대신 받아 주고 마음속의 느낌도 몸이 대신 말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말 대신 드러내 주는 몸의 역할은 동준이가 수두에 걸리는 장면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난다. 형의 아픔, 자신의 아픔, 엄마를 찾지 못한 철현이의 아픔이 복합적으로 뭉쳐 동준이의 몸에 수두를 일으킨다. 수두는 지독한 열과 가려움증을 수반한다. 이해 못 할, 무정한, “말도 안 되”는 세상 일이 그렇게 동준이의 몸을 괴롭힌다. 그러나 동준이는 열과 싸우고 가려움증을 견디는 것으로서 그 혼란을 정리하고 세상을 이해하며 나름대로 의미를 찾아 낸다. 형의 아기가 어떻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아 동준이를 헷갈리게 하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노르웨이의 가족에게 돌아가는 철현이와의 이별은 우울하고 슬퍼서 “자꾸 목이 뻣뻣해”지고 “아프”지만, 그래도 그 애는 수두를, 그 혼란과 열병을 이겨 내고 “풀쩍풀쩍 뛰”어다닌다.

그러면서 동준이가 깨닫는 것은, 사람들은 “함께, 지금, 장래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한 때 아픔이 그 개인의 단편적 숙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연속적, 유기적 문제라는 것이다. 이 주제는 어김없이 몸으로 투영된다. “몸은 한 번도 안 쉬고 늘 변하는 것 같다”, “아기였던 내가 할아버지 윤동준이 될 때까지, 매일매일 또 한 번도 안 쉬겠지.”라는 것이다. 나는 그냥 고정된 나가 아니라 “너무 이상하”게 변하는 존재다. 나 혼자가 아니라 아기 윤동준에서 할아버지 윤동준까지, 아주 복합적인 존재다. 아이의 몸이 그렇게 변하고 퍼져 나가듯이, 아이의 생각도 변하고 퍼져 나간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한 인물의 내적, 외적 변화와 성장을 추상적이고 상투적인 정서와 관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도구로 하는 구체적이고 개성적인 감각의 묘사로 생생하게 그려 나간다.

『받은 편지함』 표지
한편 『받은 편지함』은 한 아이가 친구의 이름을 써서 동화 작가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가상의 자아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이다. 엄마가 죽고, 아버지는 어렵게 돈벌이하러 다니고, 언니가 어린 여동생을 보살피며 살림을 하는 빈곤층 결손 가정 아이는 그다지 드문 소재가 아니다. 이 드물지 않은 소재로 드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모티프가 ‘거짓말’이다.(이 점에서 이 작품은 역시 결손 가정 아이가 동화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되어 외견상 비슷해 보이는 미국 동화 『헨쇼 선생님께』와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헨쇼에게 편지를 보내는 주인공은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 라든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이해해야 한다.’는 교훈을 끌어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것은, 참과 거짓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현실과 허구 사이의 괴리감이다.

주인공 순남이가 만들어 내는 허구의 토대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다. 가난해서 컴퓨터도 없다는 것, 좋아하는 책도 마음껏 사 볼 수 없다는 것, 학원에도 다닐 수 없다는 것,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싫은 것은 제 이름이다. 이름이란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결정하고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부호이니, 이름이 싫다는 것은 제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제 이름이 싫고 부모가 싫고 환경이 싫은 아이들이 왜 없겠는가. 이런 문제를 다룬 동화도 많지만 대부분의 동화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그래도 네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주위와 화해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가는 여기에서 아주 대담한, 대단히 문학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또 다른 너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또 다른 자아를, 화장실에서 교복을 사복으로 갈아입고, 가발 쓰고, 화장하고, 하이힐을 신는 식의 변장이 아니라, 가상의 나를 설정해서 그 안으로 들어간 뒤 계속 키워 나가는 심리적 방식으로 만들어 낸다. 얼핏 빨강머리 앤이 떠오르지만, 순남이는 앤의 경우와 다르다. 혼자만의 공상이나 사정 다 아는 친구와의 수다가 아니라 자신을 그 인물로 믿고 있는 한 수신자를 향한 지속적인 허구 구축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거짓말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종이 위 컴퓨터 자판이 남이 쓰다 버린 고장 난 실제 자판으로, 실제로 이메일을 써서 보낼 수 있는 우체국 무료 컴퓨터 자판으로 발전하듯 순남이의 가상 자아는 그렇게 발전하고, 순남이의 죄의식도 커져서 결국은 학교에도 못 갈 정도로 열병을 앓게 된다. 그 인물이 완전한 허구 인물이 아니라 자신이 부러워하는 친구라는 점도 순남이의 가상 자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감당하기 힘든 무게를 안긴다. 앤의 발랄한 공상 속 자아와 달리 순남이의 서글픈 동경 속 자아는 열등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아마도 순남이가 혜민이를 모델로 삼지 않고 아주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냈다면 순남이는 그렇게까지 괴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그 거짓말은 들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랬다면 거짓말은 거짓말로만 그치고 순남이는 가상 자아에게서 헤어나지 못한 채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에서 그저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가상 자아로 있으면서 받은 기쁨과 선물이 결국은 현실의 자아를 위로하고 채워서 힘을 얻기 위한 수단임을 깨닫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허구가 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토록 위축되어 폐쇄적으로 지내던 순남이가 그 홍역 같은 사건을 치르는 과정에서 제 껍질을 벗고 경계를 허무는 것을 보면 그 깨어짐은 필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깨어지기 위해 허구의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생각 없고 어리석어 보이는 아이의 즉흥적 거짓말도 때로는 가만히 지켜보아 주어야 함을, 그러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태를, 깨지는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막아야 함을 이 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의 하나는, 아마도 이 작품에서 순남이에게 가짜 자기를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고 결국은 그것을 깨뜨려 주는 역할을 한 동화 작가의 말처럼, “그 속에서 진짜 네 모습”을 보아 내는 어른의 눈일 것이다. “바로여도 좋고, 한 달 뒤여도 좋고, 일 년 뒤여도 좋으니…….언제라도 좋으니, 네가 네 진짜 이름으로 보내는 메일을 받아” 보기를 희망하는 어른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라도 괜찮”다며 기다려 주는 태도야말로 아이들이 마음껏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헤매면서, 자아를 쌓고 허물면서 성장하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거짓말을 거쳐 진실에 이르게 하고, 허구 속에서 참된 자아를 찾게 하는 이 역설의 메시지가 온화하고 부드러운 문체에 실려 긴 여운을 남긴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표지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의 모티프는 책. 그리고 이번에는 아빠가 죽고 엄마와 아이가 단둘이 외롭고 어렵게 사는 결손 가정이 배경이다. 하지만 그 결핍과 어려움과 외로움은 간결하고 탄력 있는 문장 덕분에 최소한의 배경으로만 그칠 뿐 어떤 감상이나 연민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이 작가는 그야말로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어휘를 구사해서 하고 싶은 말을 꼭 필요한 만큼만 한다. 살짝살짝 끼워 넣는 유머와 능청이 이야기를 더욱 생기 있게 만드는데, 이 모든 기법은 그가 사사한 린드그렌을 연상시킨다.

이 책의 주인공 비읍이는 꽤 맹랑한 녀석이다. 책 첫머리부터 “나는 그럭저럭 아빠 없는 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문제는 엄마”라고 단언한다. 엄마는 아빠가 죽은 줄 다 아는 아이에게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며 거짓말을 하고, 아빠 말만 나오면 너무 슬퍼하는 바람에 알아서 입 다물게 한다. 그 덕분에 이 아이는 한 이야기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으면서도 동시에 “슬펐다”는 것을 느끼고 알 정도로 조숙해져 버린다. 엄마가 텔레비전 드라마만 보고 책은 한 줄도 읽지 않는 게 못마땅한 비읍이는 “읽어 본 책을 뭐 하러 돈 주고 사니?” 하는 엄마의 ‘잔소리’에 “신어 본 신발을 엄마는 뭐 하러 돈 주고 사?” 하며 ‘말대꾸’해서 엄마의 부아를 돋운다.

“린드그렌 선생님 책을 눈앞에 두고 사지 않는 건, 목마를 때 물을 두고 마시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아이는 린드그렌에 빠져든다. 이 아이가 하는 말, 머리에서 맴도는 생각, 행하는 행동, 만나는 사람 모두 린드그렌의 책 속 구절이나 인물과 얽힌다. 머리가 자라면 “내년이면 삐삐처럼 양갈래로 땋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고, “언제나 린드그렌 선생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니 그렇게 너그러워”지는가 하면, 책 덕분에 상상을 많이 하면서 “상상을 하는 동안 나는 행복”하다고 느낀다. 더 나아가 린드그렌 선생님에게 편지까지 쓰는데, 편지를 쓰고 나면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처럼 쓸쓸하지 않”고 “계속 기분이 좋”다. 그런가 하면 린드그렌의 헌 책을 갖다 버리라는 엄마의 야단에 울컥하고 뛰쳐나와 펠레처럼 가출을 계획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읍이가 책 속에 빠져 현실을 잊는 몽상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린드그렌의 책은 현실의 거울, 돋보기, 현미경, 안경의 역할을 하면서 아이가 현실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길잡이가 된다. 감정과 생각이 끊임없이 섬세하게 분화해야 하는 성장기 아이에게 린드그렌의 책은 그 분화가 결 곱게 이루어지도록 방향을 잡아 준다. 린드그렌 덕분에 “상상하는 힘도 세”진 비읍이는 장화 살 돈도 없을 만큼 가난한 친구의 마음을 상상해 본 뒤 그 아이 마음이 상할까 봐 그토록 기대하던 장화 신고 물웅덩이에서 뛰는 놀이를 포기한다. 페르 영감이 유언을 남기고 죽는 장면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유언도 못 남기고 죽은 아빠를 생각하며 연민의 정을 느낀다. 린드그렌 책의 그런 순응적 역할은 가출 장면에서 이렇게 명료하게 드러난다.

린드그렌 선생님은,
가출하는 애들 얘기를 재미있게 읽고,
가출하고 싶으면 머릿속으로 가출하는 상상을 실컷 해서,
‘왼쪽 가슴 아래쪽이 무엇에 세게 부딪힌 것처럼 아픈 것’을 낫게 한 다음에,
진짜 가출은 하지 말고,
자기 잠옷 입고 자기 침대에서 양말 벗고 자라고 쓰신 것이었다.

그러나 린드그렌 책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비읍이가 린드그렌 책조차 뛰어넘게 만드는 것이다. 글짓기를 하면서 무심코 린드그렌의 글 한 구절을 베껴 쓴 비읍이는 그 글짓기가 상을 받고 게시판에 걸리자 죄의식에 괴로워한다. 괴로운 나머지 “린드그렌 선생님 책도 읽기 싫”어질 정도이다. 책의 그늘이 너무 짙어져 현실을 가릴 정도가 되자 린드그렌의 책은 단호히 그 그늘을 거두어 간다. 스스로를 벌주기 위해 저녁을 굶고, 산타클로스의 선물도 포기한 비읍이는, 산타클로스는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동시에 ‘표절’ 사실도 고백하게 된다. 상상의 힘이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린드그렌의 죽음과 함께 비읍이는 “스웨덴으로 가서 선생님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구슬”을 깨뜨리고, 그와 함께 “편지도 그만 쓸” 것을 선언한다. 보내지 못할 편지를 모아 놓은 상자를 “벽장 깊이 넣”은 비읍이.

린드그렌의 책과 얽히는 아이의 삶을 교묘하게 축조해 놓은 이 책은 주제와 소재와 문체가 모두 하나의 중심을 향해 뻗어 있는, 보기 드문 견고한 구조를 보여 준다. 그러면서 책이 한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명료하게 그려 낸다. 말을 보태고 뺄 것도 없이, “그때 누가 와서 ‘이 책에서 어떤 점이 가장 좋았나요?’ 하고 물었다면 나는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에 빠지는 것’이 뭔지 가슴과 머리로 깨달았다.”는 대목이 이 책의 전부를 대변해 준다. 책이 무엇이고, 글 쓰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슴과 머리로 깨달은 것처럼 보이는 이 신예 작가의 등장이 반갑다.
김서정 / 동화를 읽고, 쓰고, 옮기고, 가르치고, 평론하는 일로 몹시 바쁜 (척하는) 아줌마입니다. 지은 책으로 『용감한 꼬마 생쥐』 『나의 사직동』 『믿거나 말거나 동물 이야기』, 평론집 『어린이문학 만세』 『멋진 판타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어린이문학의 즐거움』 『용의 아이들』 『일주일 내내 토요일』 『미오 나의 미오』 등이 있습니다. 숙명여대 겸임교수이고, ‘김서정동화아카데미’에서 동화를 가르칩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