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4월 통권 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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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지도의 이론과 실제]
문학 교육은 듣는 문학 시기부터

이재복 | 2005년 04월

아이들은 처음에 어디로 이야기를 받아들일까요. 그렇습니다. 귀로 받아들입니다. 아직 글을 깨우치기 이전의 어린이들은 귀로 이야기를 듣습니다. 글을 깨우치기 이전의 아이들도 얼마든지 문학(이야기)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로 이야기를 듣는 시기에 있는 아이들을 ‘듣는 문학 시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시는 분들은 이 ‘듣는 문학 시기’란 말을 잘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글을 깨우치기 이전의 아이들도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 이해하고 듣습니다. 듣는 귀만 열려 있으면 얼마든지 문학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문학 교육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이 듣는 문학 시기입니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아이들 가슴에 문학의 씨앗은 이 듣는 문학 시기에 거의 다 심어진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럼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봅시다.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 듣는 문학 시기를 얼마나 제대로 거쳤습니까. 여러분들은 글을 깨우치기 이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까. 흔히 어렸을 때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고 하는데, 아마 이건 동화 속 이야기일 뿐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자란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기억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이야기를 거의 듣고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책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책은 구경도 하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내 몸 속에 동화의 언어가 많이 들어 있지 않고, 이렇게 개념에 의지해 쓰는 비평 언어만 잔뜩 들어 있는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이야기를 듣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몸 속에는 사람(목숨)이 울고불고하며 살아가면서 느끼는 사람 냄새 나는 감성의 언어가 부족한 것이지요.

듣는 문학 시기를 거치면서 어느새 아이들은 글을 깨우칩니다.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 아이들은 혼자서도 책을 읽습니다. 혼자서 책을 읽는 시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그럼 어느 시기에 있다 말할까요. 그렇습니다. ‘읽는 문학 시기’에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처음에는 듣는 귀로 이야기를 받아들이다가, 점점 자라면서 귀와 함께 읽는 눈으로도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지요. 이래서 문학을 즐기려면 귀가 먼저 뚫려야 하고, 그 다음에 눈이 반짝 뜨여야 합니다.

동화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니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책을 잘 읽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책을 읽힐 수 있겠느냐구요. 글쎄요. 책방에 가면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지도하는 교제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가끔 내용을 보면 책 읽는 요령을 가르치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만, 과연 책 읽기에 무슨 요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보다는 문학에 대한 본질을 알면, 아이들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예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책을 잘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에게 책 읽기를 시킨다고 억지로 많은 책을 쥐어 주고, 독후감을 쓰게 한다고 그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방법보다는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가 과연 어린 시절 듣는 문학 시기를 제대로 거쳤는가부터 살펴보면 좋겠지요. 아마도 대부분 책 읽기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듣는 문학 시기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을 겁니다. 마음에 문학의 씨앗이 심어 있지 않으니 자연 책 읽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단순히 오락의 기능을 담당하는 책들은 물론 어떤 아이들이든 즐겨 읽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책이란, 정신의 놀이(!)가 가능한 책을 말하는 것이지요.

아직도 독서왕을 뽑는 학교가 있습니다. 많은 책을 읽는 아이에게 상을 주는 것이지요. 참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발상은 책 속에 모든 길이 있다는 책 지상주의에서 나오는 건데요. 책이 중요하지만 아이들은 책도 읽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해야 합니다. 책이 다는 아닌 것이지요. 한 아이가 다독왕으로 뽑히려면 그 아이는 과연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 걸까요. 그 책 목록 속에 정말 정신 놀이가 가능한 책은 얼마나 들어 있는지, 그리고 정작 그 아이가 그 책을 얼마나 즐겁게 읽은 건지, 숙제를 위한 책 읽기나 상을 타기 위한 책 읽기는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읽는 문학 시기에 들어섰는데도 동화책을 주면 참 읽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일단 이런 아이들은 듣는 문학 시기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이니까요. 다시 그 시기를 거치도록 해야겠지요. 그러니까 아무리 아이가 컸어도 책을 그냥 읽으라고 던져 줄 게 아니라, 어른이 읽어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른은 들려주고, 아이는 마음 편히 듣는 자리에 서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빠른 시간 안에 아이가 어린 시절 건너뛰었던 듣는 문학 시기를 경험하도록 해야겠지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판타지 동화 세계』란 책에서도 얘기했는데요. 본회퍼 목사는 세상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봉사는 듣는 봉사, 들어 주는 봉사라고 하였습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나에게 들어 주는 봉사를 해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은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을 위해 들어 주는 봉사를 해 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들어 주는 봉사를 할 때 ‘나’는 말하는 사람보다 낮은 자리에 서는 것이고, 이는 달리 말하면 말하는 사람에게 먹히는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나의 귀를 빌려 주는 시간이고, 나의 시간을 나누어 주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어른은 동화를 들려주고, 아이는 듣습니다. 이때 동화를 들려주는 사람은 자기 얘기를 가만히 들어 주는 어린이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지금 엄마의 얘기를 들어 주는 봉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동화를 들려주는 엄마가, ‘야, 너 나한테 고마워해라, 이렇게 너를 위해서 바빠 죽겠는데 동화를 들려주고 있잖니.’ 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되겠지요. 이렇게 높은 자리에 서서 동화를 들려주면 그런 마음이 금방 동화를 들려주는 목소리에 나타날 테니까요. 그러면 동화를 듣는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편하게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한 편의 동화를 들려주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시간으로 치면 아마 5분에서 10분 정도가 걸릴 겁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가만히 동화를 듣습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듣는 봉사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아이들은 커서도 자연스럽게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자리에 서게 될 겁니다. 그러니 이렇게 남보다 낮은 자리에 서기를 즐겨하는 아이들 마음에 어찌 평화의 씨앗이 심어지지 않을까요. 더불어 사는 마음이 심어지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독서 인증 제도를 시행한다고 해서 한동안 말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을 몇 백 권을 정해 놓는답니다. 그런 다음에 책을 읽었나 안 읽었나 시험을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거지요. 추천된 책마다 문제가 입력되어 있는데, 그 문제를 몇 점 이상 맞은 아이한테는, 책을 읽은 걸로 간주한답니다. 그러면 독후감과 같은 문장으로 답하는 시험은 어떻게 치는가 보았더니 이것이 참 어이가 없습니다.

한 아이가 독후감을 썼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독후감을 평가할 때는 일일이 기계가 다 읽어 보기는 힘드니까요. 기계에다 아이가 쓴 독후감을 입력시키면, 기계는 독후감에 꼭 들어가야 하는 키워드(중심 말)가 있는지를 살핀다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쓸 때는 이런 중심 말이 몇 개 이상 들어간 아이의 글에는 점수를 주어서 역시 독서 능력을 인증해 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문장에 들어 있는 생각의 깊이나, 문장의 맛이 아니라, 한 문장에 들어 있는 중심 단어의 숫자를 보고, 독서 능력을 인증해 준다는 건데요.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던 것인지 참 답답하기도 하구요. 문학을 시험 성적을 위해 계량화하다 보니까, 문학의 본질 자체를 잃어 버리고 마는 거지요.

이야기가 잠시 곁 길로 빠졌는데요. 다시, 듣는 문학 시기에 있는 아이들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 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의 문학 교육에서 듣는 문학 시기가 아주 중요하다면, 그 시기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가. 구체적인 작품이 문제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의 옷을 입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이 있지요. 흔히 옛이야기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글의 옷을 입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창작 동화라고 하는 작품들이 바로 그런 겁니다.

듣는 문학 시기의 아이들한테는 말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렇다면 말의 옷을 입고, 긴 시간의 무게를 견뎌 온 옛이야기가 듣는 문학 시기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가장 알맞은 형식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듣는 문학 시기에 있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당연히 옛이야기입니다. 귀로 듣기에 가장 알맞은 형식의 이야기가 바로 옛이야기인 것이지요. 그래서 동화 공부는 또 옛이야기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면 옛이야기 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문제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각론인데요. 다음 호에 이어가 보지요.
이재복 / 1957년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나 서울교육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어린이 문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한국 어린이 문학사 정리와 판타지 동화 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10년 남짓 어린이들을 가르치다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발행하던 월간 『어린이 문학』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달마다 「이야기 밥」이라는 소식지를 내고 있습니다. 대표 작품으로는 『북한동화선집』 『뚱보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 『우리 동화 바로 읽기』 『우리 동화 이야기』 『우리 동요 동시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