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4월 통권 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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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상 책 나들이]
누군가를 위해 짓는 집

한양하 | 2005년 04월

‘나도 저런 집에서 살아 보았으면…….

도시를 벗어나 자동차로 달리면 여기저기서 멋진 집들이 눈에 띈다. 언덕 위의 하얀 집, 통나무로 지은 묵직한 집, 아담한 정원이 아름다운 집…… 거의 잡지에 실릴 만한 멋진 집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저런 집에서는 누가 살까?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유지비도 만만치 않을 거야. 정원 관리를 하자면 보통 부지런해야 되는 게 아닐 걸. 이런 생각까지 꼬리를 문다.

그래서 도시를 벗어나서 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사실 집이란 게 사람이 쉬고 먹고 잘 수 있는 곳이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도 집의 가치는 생각하는 경우마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다.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들에는 어떤 기능과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다더라 하면 귀가 솔깃해지고, 누구는 어느 아파트를 분양 받아서 얼마를 벌었다더라 하면 마음 속으로 부러움을 품는다. 한편, 누구네가 시골에 멋진 집을 지어서 들어갔다는 소식도 주변의 화젯거리가 된다.

우리는 우선 쉼터나 보금자리로 집을 생각하지만, 한 걸음 나아가서는 더 아름답거나, 더 편리하거나, 남들과 다른 가치를 가진 특별한 집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사람이 갖는 이런 욕심을 나쁘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 집에 대한 이러한 관심과 욕심들이 우리들 세상에서 아름다운 집을 만들어 냈으니까. 이마저 없었다면 우린 아직도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서로 이나 잡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림책에서도 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많다. 그 가운데 『고딕성당』과 『그림 옷을 입은 집』은 집의 남다른 가치와 아름다움을 특별히 일깨워 주는 책이다.

『고딕 성당』 표지
『고딕성당』을 처음 접하게 되면 누구나 ‘웅장하다’는 느낌을 표현한다. 건축을 전공한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첫 작품인 『고딕성당』은 펜 끝 하나로 역사를 이루어 가는 작품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실제 이런 건물이 있어서 그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연구해서 지은 사실 그림책인가 싶었다. 그런데 다시 읽어 보니 책 속의 쉬트로 대성당은 작가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작가는 고딕 양식으로 지은 다른 성당에서 자료를 조사하여 쉬트로 대성당을 작품 안에서 건축해 낸 것이다.

이 책에는 성당을 짓기로 결정하는 과정부터 일할 사람들을 선정하고 일할 도구, 땅 고르기 등 성당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성당 공사가 진행되면서 주교가 바뀌기도 하고 재정이 바닥나 중단되기도 하며, 건축 과정에서 사고로 죽는 일꾼도 있다. 이 작품은 건축물이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을 하나도 빼놓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욕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고딕성당』은 위대한 건물이란 만드는 사람들의 노고와 만드는 목적에 따라 시간의 경계 없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 건물이 어느 한 개인을 위한 집이었다면 완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신앙심을 담아 집을 지은 것이다.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신에게 최고의 것을 바치려고 했다. 그래서 그 시대는 하느님의 은총이 넘치는 13세기로 설정되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지어 신께 바치려던 사람들의 마음을 작가는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인간의 신앙과 노동이 웅장한 성당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놀라움, 그리고 그 웅장함이 작가의 손 끝에서 빚어졌다는 사실이 읽는 이를 압도한다. 이런 그림책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그림책에는 비슷한 책이 없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 우리의 석굴암이나 불국사도 아름다운 건축임에는 틀림없으나 왜 아름답냐고 하면 확실하게 대꾸할 말이 없다. 실제 경주에 가서 직접 보더라도 우리 대부분에게는 그 건물의 가치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안목이 부족하여 그저 둘러보는 수준이다. 전문성을 가진 작가들이 우리의 건축물이나 문화재를 소재로 그림책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 옷을 입은 집』 표지와 본문

『그림 옷을 입은 집』은 단청으로 아름답게 탄생한 집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를 찾으러 가는 아이가 낡은 집에서 하룻밤 쉬게 되는데 꿈에 노인이 나타나 집을 살려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면 엄마를 만나게 될 거라고 하여 아이는 노인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한다. 집을 깨끗이 치운 아이는 소나무 한 그루를 그리고서 또 잠이 들었다. 꿈 속에 나타난 희한한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게 된다. 봉황, 구름, 연꽃, 나비, 여의주를 문 용을 낡은 집에 하나하나 그려 넣기 시작한다. 빨강, 노랑, 하양, 파랑, 검정의 다섯 색깔이 어우러져 화려한 그림이 탄생한다. 결국 소년의 마음이 집을 살려 낸 것이다.

집을 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집을 살리는 주체는 사람이다. 사람이 집에 살아야 집이 산다. 우리 옛집들은 사람이 살지 않을 때 금방 폐가가 된다. 이 책에서 나오는 집은 보통 사람의 집이 아니라 부처님이 사는 집이다. 그 집을 살리는 방법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단청은 궁궐이나 절에서 다른 집과 다른 특별한 아름다움을 지닌 집으로 치장을 하기 위한 것이며 물기와 벌레로 집이 삭는 것을 막아 주는 물감을 재료로 써서 집을 보존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단청이 가진 오색은 단순한 색깔이 아니라 동, 서, 남, 북, 중앙을 가리키는 방향과 청룡, 백호, 주작, 현무, 황룡과 같은 상상의 동물과 연계하여 오방색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오색찬란한 그림으로 특별한 아름다움을 부여받아 집은 살아날 수 있었다. 바로 부처님의 집을 살리려는 소년의 마음이 집을 살려 낸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림 옷을 입은 집』에서는 기둥머리에 용을 그려 넣고 『고딕성당』에서는 지붕의 버팀 벽에 이무기 돌을 부착한다는 것이다. 집을 아름답게만 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용감한 상징물을 만들어 위엄을 갖추고 사람들의 마음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는 데서 동양과 서양의 공통된 가치관이 보였다. 임금님이 살았던 경복궁 지붕에는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 손오공, 사오정, 삼장법사 등의 잡상을 세워 나쁜 귀신을 물리치게 했다고 하니 집은 사람의 정신 세계를 지켜 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숨어 있는 집』 표지
『고딕성당』과 『그림 옷을 입은 집』이 신들을 위한 특별한 집이라면 『숨어 있는 집』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집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숲 속 오솔길 옆 조그만 집에 혼자 살고 있는 할아버지는 너무 외로워 나무 인형을 만든다. 그나마 할아버지를 위로해 줄 수 있었던 나무 인형이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어느 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가족이 없는 그 집은 할아버지에게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 뒤 집은 벌레들과 담쟁이 덩굴이 살기 시작한다. 버려진 나무 인형은 낡아 가는 집을 바라볼 뿐이다.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찬 집에 어느 날 집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고 가족들이 그 집을 보고 간다. 이듬해 봄이 되었을 때 가족이 찾아와 집을 단장하며 살기 시작한다. 숲 속에 숨어 있는 집을 발견한 사람들이 집을 살려 낸다는 것이다.

『숨어 있는 집』에서 집은 인형들의 마음과 동일시된다. 집은 말할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무생물이다. 말 못하는 집 대신 집 안에 있는 인형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여 줌에 따라 숨어 있던 집이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할아버지가 나무 인형에게 말을 걸어 줄 때 나무 인형은 행복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벌레들의 집이고 풀과 나무들의 집이었다. 인형들은 자기들만의 집으로 삼지 못하고 그저 집과 같이 낡아져 간다. 그 집을 찾은 사나이에 의해 사람이 살 만한 집으로 가치를 인정받았을 때 인형은 다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숨어 있는 집은 가족의 행복을 담아낼 때 집의 가치를 다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만든 나무 인형 가족은 뜨개질하는 엄마, 삽을 들고 일하는 아빠, 가방을 맨 아이로 행복해지고 싶은 할아버지의 소망을 담은 인형이다. 나무 인형들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집에서 살고자 할 때 숨어 있는 집은 더 이상 숨어 있는 집이 아니다. 화목한 가족은 도시 집과 시골 집에 관계 없이, 평수와 층수에 관계 없이 새 집과 낡은 집에 관계 없이 집을 행복하게 만든다.

“볕바라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작년 겨울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이 이끄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이 진주에 왔을 때, 박남준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모악산 골짜기에 깃들어 살던 박남준 시인은 햇볕 하나 들지 않는 집에서 거의 몸에 곰팡이가 슬 정도로 지냈다고 한다. 후배와 지인들이 염려하여 억지로 하동 악양에 있는 낡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하는데 집을 옮기니 햇볕만 쬐도 배가 부르다고 한다. 어두컴컴한 집에서 살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집만큼 사람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도 없다. 햇볕 잘 드는 집에만 살아도 행복할 듯한 사람들이 있고, 이에 더해 넓고 편리해서 우리 가족 살기에 딱 좋은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 경제적 가치도 더해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집을 바라기도 한다. 집을 가지고 싶은 사람의 욕심이 이러므로 집을 짓는 사람들은 더욱이나 후딱 지어서 돈 많이 벌고 또 헐어서 더 높고 큰 집을 지으려고 하지나 않을까. 책을 만드는 이가 그림책 앞장에 누구에게, 혹은 누구를 위하여라고 밝히면서 책을 만들 듯 집을 짓는 사람도 누구에게, 누구를 위하여 짓는다면 그 자체가 아름다운 집의 기초 공사이지 않을까.
한양하 / 아줌마들과 어린이 책 공부를 하면서 삶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늦깎이로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는, 바쁜 척하는 아줌마입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