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4월 통권 제29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으로 보는 우리 세상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어린이 서평

[오석균의 동화 읽기]
모든 전쟁은 범죄다

오석균 | 2005년 04월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역사』 제3권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벌어졌던 한 전투의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젊은 병사가 적군의 병사를 죽였다. 그러나 젊은 병사는 곧 그 병사가 오래 전에 헤어진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양쪽 군대는 큰 충격을 받고 잠시 전투를 중단한다. 전쟁의 죄악이 ‘가족 살해’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일종의 범죄라고 말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다시 다음 범죄를 행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전쟁은 범죄다. 전쟁은 단숨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파괴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끝없는 고통과 불행으로 몰아넣는 전쟁은 좀처럼 제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언제나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라고 거창한 구호를 외쳐 댄다. 하지만 개인들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전쟁의 상황으로 끌려 들어간다. 역사상 불멸의 전쟁 영웅들을 찬양하는 수많은 노래들이 지어졌지만, 어쩌면 이 점이야말로 권력자들이 시인을 아끼고 보살폈던 진짜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푸른 꽃』에서 군주로부터 사랑받던 중세의 시인들을 동경하는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의 열광에 동의하지 않는다. 빛나는 예지와 고귀한 충동, 신비한 환상을 노래하는 그의 작품도 잔혹했던 십자군 원정을 찬양하는 봉건성과 결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화를 모든 문학의 으뜸으로 내세운 그의 주장이 오늘날 우리 어린이 문학에서도 즐겨 인용하는 레퍼토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약 트로야 전쟁을 호메로스의 시각이 아니라 이름 없는 병사들이나 민중의 눈으로 보았다면 어떤 서사시가 씌어졌을지를. 그리고 역사상 크고 작은 전쟁들을 아이들의 눈으로 보았다면 어떤 기록이 남았을지를.

윤정모는 일제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분단으로 이어지는 우리 현대사의 뚜렷한 상처 지점들을 다뤄 온 작가이다. 주어진 상황이나 그려진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상처 지점의 가장 안쪽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작가가 『전쟁과 소년』에서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흔히 ‘6·25동란’으로 불리는 한국 전쟁이 작품의 배경이다.

전쟁이 끝난 지 어언 반 세기가 흘렀지만, 그때의 엄청난 비극과 참상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현실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그토록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한 것일까. 한국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국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강대국들이 벌인 패권 다툼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역사학자들이 정리한 논리적인 설명이다. 이렇게 압축된 설명에는 당시 사람들이 겪었을 충격과 분노, 고통과 슬픔이 담겨져 있지 않다. 결국 그때 그 상황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서 우리에게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보여 주는 것은 문학의 몫으로 남는다.

『전쟁과 소년』의 사건이 펼쳐지는 공간은 그 시기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그러나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는 고즈넉하고 평온하던 이 마을을 비껴가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황급히 짐을 꾸려 피난길에 오른다. 하지만 필동이네 가족은 떠나지 못한다. 필동이 어머니가 아기를 낳으려고 막 진통을 시작한 것이다. 필동이에게 전쟁의 느낌은 처음에는 쓸쓸함과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하루 해가 짧을 정도로 들판으로 개울로 쏘다니면서 함께 뛰놀던 동무들이 그립다. 안마당과 뒤안만 빙빙 돌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필동이는 울타리 밖으로 지나가는 낯선 군인과 눈길이 마주친다. 씩 웃으면서 자기에게 모자를 벗어 흔드는 그 군인을 보며 필동이는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을 느낀다.

필동이는 살그머니 사립문 밖으로 나와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가까운 산에 있는 절까지 가게 된다. 그곳에서 필동이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낯선 군인들의 대장과 주지스님 사이에 전개되고 있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권총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참이나 쏘아보던 대장은 마침내 절에서 철수하기로 결정을 내리면서, 스님에게 뜻밖의 부탁을 한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만나러 남쪽으로 내려오다 길에서 죽은 여인이 있는데, 그 여인의 아이를 당분간 맡아 달라는 것이다. 대장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얘기하면서도 말꼬리를 흐리는데, 그 아이란 바로 자신의 딸이다.

스님이 필동이네 집으로 데리고 온 그 아이는 별난 점이 많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말을 시켜도 통 입을 열지 않고, 밥을 차려 줘도 맨밥만 꾹꾹 삼킨다. 하지만 아이들끼리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필동이는 곧 그 아이의 이름이 담선이고, 나이는 자기보다 두 살 아래인 일곱 살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담선이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입술을 앙다물고 있었던 이유도 짐작하게 된다. 담선이는 자기 말투에서 ‘이쪽’이 아니라 ‘저쪽’ 군인의 딸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일부러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필동이에게 마음을 연 담선이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한꺼번에 복받치면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 놓는다.

그때 갑자기 필동이 마음에 뭔가 ‘쿵’ 하고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천둥처럼 울린 것이었다. ‘우리 아부지도 군인인데……. 우리 아부지도 죽어 뿔면 우짜노?’

필동이는 얼마 전 국군으로 전쟁에 나가게 된 자기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러면서도 이내 아버지들은 다른 편에 있지만, 아이들의 처지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면서 의도한 구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른들은 총부리를 겨누고 증오하지만, 아이들은 서로 감싸고 사랑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냥 응석둥이에 철부지 노릇을 할 나이에 때 이르게 속 깊어진 아이들이 안쓰럽다. 필동이는 스님을 통해 담선이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되지만, 이 사실을 담선이에게 말해 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주겠다며 꽃을 꺾고 있는 담선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필동이는 자기가 꼭 담선이를 지켜 주겠다고 속다짐을 한다. 남몰래 담선이의 상처를 보듬어 안는 필동이의 모습이 의젓하다.

이 아이들은 그 뒤 어떻게 세상을 살아 냈을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가슴이 한없이 막막해진다. 작가는 화해적인 결말을 통해 비극 속에서도 다시 움트는 희망의 씨앗을 만들고자 했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이기에 정작 참혹하고 끔찍한 장면들은 원경으로 물러나 있다. 그러나 전쟁에서 최대 희생자는 아이들을 비롯하여 가장 여리고 약한 사람들이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아이들도 이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될 수 있다. 아니, 그때보다 더 큰 비극이 벌어지면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희망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야만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구호와 명분을 내걸지라도, 모든 전쟁은 범죄다.
오석균 |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어린이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틈틈이 외국 어린이책을 우리 말로 옮기고 있습니다. 『인간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필요로 하는가』『책과 인쇄의 역사』『호야와 곰곰이의 세계지도 여행』『나도 엄마처럼 클 거야!』 『스타킹을 뒤집어쓴 미미』 등을 우리 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