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9월 통권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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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그림책 들여다보기]
도레미처럼 쉽게 차근차근

최수연 | 2004년 09월

오선지 위에 음표처럼 걸려 있는 여섯 글자, ‘나의 바이올린’.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에 흠뻑 빠져 있는 한 여자아이가 보입니다.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그린 여자아이와 바이올린뿐 나머지 공간은 하얗게 비어 있는 이 그림책의 표지를 오래 들여다봅니다. ‘나’와 ‘바이올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상상의 날개를 꿈쩍거려 봅니다. 바이올린의 우아한 선율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이길 바라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음악회장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여자아이가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그러나 금세 아이의 웃는 얼굴이 보입니다. 음악회장도, 바이올린 연주도 처음 접한 ‘나’는 ‘소리’에 사로잡힙니다. ‘나’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결혼하고 싶어졌고,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부모님은 선뜻 바이올린을 사 주고 아이는 학원에도 다니게 됩니다. 바이올린은 꾸준히 연습해야만 연주 실력이 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어라고” 연습합니다. 물론 “아주 잘 될 때도 있지만, 머리를 쥐어뜯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바이올린과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선생님께 야단을 맞거나 “바이올린과 헤어지고 싶고” “학교 끝나고 제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으면” 할 때도 있었으나 다시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됩니다.

간절히 바라는 일은 꼭 이루어질 거라고 믿으면서도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나’에게도 찾아옵니다. 하지만 바이올린 연주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도 선생님에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걸” 보이지 않으려 하고, 너무나 뻔한 말을 하는 어른들을 뒤로 하고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마음을 스스로 다잡는 아이의 모습이 의젓합니다. “바이올린을 지하 육만이천백사십팔 미터 아래로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보다 “손가락이 덜덜 떨리고 들어붙는 것 같”아도 다시 한 번 바이올린을 잡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절실했기 때문이었겠지요. 또한 한계에 다다랐을 때 여유를 갖고 차분히 숨을 고르는 법을 배우는 것도 자기 안에서 이루어진답니다. ‘나’ 역시 문제가 생겼을 때 끝없는 좌절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책을 읽거나 악보를 익히며, 또는 바이올린 거장들의 명곡을 들으면서 다시 바이올린과 만날 때를 기다립니다. 결국 ‘나’는 오케스트라 속에서 당당하게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림책 뒷부분에 마련된 ‘이 그림책을 이렇게 읽으세요!’를 보면 아이가 바이올린과 친구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도 악수를 청합니다. 악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음악의 가치를 강조하는 화려한 문장이 없어도 이 그림책은 생생하게 우리 곁으로 다가옵니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쏟아야 하는 땀과 눈물의 소중함을 쉽고 유머 넘치는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의 작가들도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합니다. 도, 레, 미, 파…… 계 이름을 소제목으로 달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도레미처럼 쉽게” “미야옹” “파리 잡는 것보다 어려워요” “돌봐 줄게!”…… 한 음씩 높아지면서 바이올린과 점점 깊어 가는 우정을 나누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졌습니다.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그린 그림에서는 포근한 질감이 느껴집니다. 아이가 바이올린 연주를 익히면서 겪는 어려움과 극복의 과정을, 그리고 열정과 행복감에 빠져드는 모습을 친근하게 보여 주는 것은 물론이지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건네 주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은 어떤 일이든 열정적으로 해 나갈 각오가 되어 있다면 자신을 믿고 꿈을 믿으며 쓸데없는 걱정을 앞세우지 말고 나아가라고 등을 떠밀어 줍니다. 그리고 바이올린도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좌절도 넘고 또 넘어서서 차근차근 꿈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주 쉽게 보여 줍니다. 표지를 보며 꿈쩍거렸던 상상의 날개로는 감쌀 수 없을 만큼 크고 은은한 감동이 숨어 있는 작품입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좋은 책을 읽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을 갖게 되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 싶은 마음으로 『열린어린이』 편집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