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9월 통권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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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예술책 들여다보기]
안다는 것, 그건 친해진다는 것

최선숙 | 2004년 09월

그림 속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 있어서 우리가 알아챈 것은 늘 다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다 알 수 없어서 더욱 매력적이고,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 더 경탄하게 되니 명화일 테지만요. 모든 것이 그럴 테지만 알고서 보면 그림들이 훨씬 친근해집니다. 해독되지 않는 아름다움과 맞닥뜨렸을 때, 돌아보면, 그 순식간의 맹렬한 몰입감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탐구심이 타오르지요. 더 알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은 거지요. 이 마음의 움직임은 경탄과 해석의 기호들을 만나게 합니다. 나보다 먼저 공감한 자들, 나보다 먼저 마음을 내놓은 자들이 해석해 놓은 것들이 갑자기 눈앞에 수두룩합니다. 이 때 약간 당혹하지요. 우선 반가워서 마음이 뜨거워지다가 한 발 늦은 자의 시샘으로 모든 해석들을 거부하고 싶어진다면 말입니다. 안다는 것이 얼마간 느낌을 배반할 때도 있지만, 안다는 것은 분명 친해지는 것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린이를 위한 미술관 안내서를 여러 권 썼는데, 어린이들이(어른들도) 그림을 보며 궁금해 할 것들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이 갑니다. 책을 따라가 보지요. 먼저 ‘이야기’가 들어 있는 그림들을 만납니다. 아, 이 책에서 다루는 그림은 모두 서양화라는 건 아시지요?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를 들으면 그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펼쳐질 때가 있지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랍니다. 그 장면을 그려 보고 싶은 거지요. 신화나 전설, 옛이야기, 역사적 사건들을 많이 알고 있으면 이처럼 이야기를 담은 그림들을 더 잘 만날 수 있답니다. 그러다 보면 화가가 작품을 그렸던 시대도 보이고, 기법도, 화가만의 독특한 해석도 보이기 시작하겠지요. 이렇게 그림은 한아름의 이야기 보따리랍니다.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는 어느새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림일 때 특히 그렇지요.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그려졌을 당시 그림이 너무나 실물처럼 정교해서 사람들이 제 눈을 의심했다는군요. 이 정교한 그림 속에 화가는 많은 숨은 뜻을 놓아 두었대요. 500년 전에 그려진 이 그림 속의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다 보면 그림이 더욱 재미있어집니다. 가령, 그림 속에 같이 그려진 강아지는 충성과 정절을 나타내고, 벗어 둔 두 켤레의 신발은 신성한 장소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관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런 해석이 가능해지면서 이 그림이 약혼식이나 결혼식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그림 뒤에는 숨은 뜻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이 그림 속의 정교한 샹들리에와 거울은 광학 기구를 이용해 그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화가들만의 비법을 알아 내려는 시도와 해석들은 거듭됩니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두터운 물감 밑에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이처럼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부분도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 있지요. 자외선 사진으로 찍어 보면 밑그림이 보이는 그림들이 있답니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우리는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물감을 바르는 순서는 어땠는지 등 많은 것을 알 수 있지요.

물은 무슨 색깔일까요? 르누아르는 빛의 변화에 따라 물 색깔도 쉴새없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 냈지요. 인상주의 화가들은 야외로 나가 세상의 사물들이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연구하면서, 색채들이 내는 효과를 알아 냈습니다.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을 바꾸자 눈에 비치는 그대로 색채의 힘을 보여 주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여기서 우리가 궁금해 할 물감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물감을 내는 안료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연자색은 연자벌레에서 얻었고, 진청색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나는 라피스라줄리라는 광물에서 얻었고, 검정은 숯을 굽거나 뼈를 태워서 얻었답니다. 라피스라줄리는 너무 비싸서 파랑은 수백 년 동안 화가들의 골칫거리였답니다. 한편 고흐는 색채에 자신의 느낌을 담아 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색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쓴 거지요.

짐작이 가시지요? 이 책이 그림에 대해 뜯어본 것들 말입니다. 이 책은 그림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궁금증들을 풀어 냅니다. 눈을 속이는 그림에 담긴 원근법의 원리, 평범한 것을 담기도 하고 독특한 것을 담기도 하는 그림의 소재들, 그림에 일상의 풍경이 등장한 배경, 인물화와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의 마술, 빛의 효과, 구성과 균형 등을 그림을 통해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림의 쓰임새와 미술관의 역사, 미술관 복원실 훔쳐보기까지 가능합니다. 책의 구성은 하나씩의 주제를 정해 살펴 보면서, 오른쪽 면에는 그림을 전면으로 보여 주고 왼쪽 면에는 부분도를 크게 부각시켜 독자들이 그림의 질감을 느껴 보도록 배려합니다. 어느 미술관에서건 명화들을 만나면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지게 만들어 줄 책입니다.

오픈키드 컨텐츠팀장.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했습니다. 딸아이에게서 그림책 독법을 배우기 바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