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8월 통권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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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작가를 찾아서]
생태 세밀화의 세계를 이루는 그림 작가 이태수

김원숙 | 2004년 08월

이태수 선생님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았다가 문득 생각하였습니다. 계곡의 저 바위들은 언제 어떻게 이 자리로 굴러와 이런 편안한 풍경을 이루었는가. 어찌 잘 알아 흐를 곳은 흐르고 고일 곳은 고여서 시원한 물소리로 갖은 시름을 씻어 주는가. 잠시 몸 쉬어갈 너럭바위를 만드는 데 들었을 억겁의 세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 텐가.

이렇게 자연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건넵니다.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서로 어우러지는 자연입니다. 그 자연의 힘을 우리 아이들이 느끼고 살면 좋겠습니다. 그런 바람은 우리 눈을 자연을 다룬 책으로 향하게 합니다. 나무들이 마음껏 제 푸르름을 자랑하는 초여름, 자연을 그리는 작가를 만났습니다. ‘세밀화’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태수 선생님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많이 사랑받아 온 ‘도토리 계절 그림책’ 시리즈와 ‘자연과 만나요’시리즈 등 여러 생태 정보 그림책을 내셨고 『잘 가, 토끼야』와 『잃어버린 구슬』 같은 그림책에서 그림을 그리신 분입니다.

작업실 모습들

일산에 있는 선생님의 작업실을 찾아가 뵈었더니 선생님은 얼마 전 도시의 생태를 담은 그림책 한 권을 마무리하시고 지금은 늪을 다루는 그림책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 표지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라는 책입니다. 어린이 신문에 연재했던 것을 엮은 것입니다. 도시 주변 이야기, 도심 속 생명 이야기입니다. 2000년 5월에 괴산에 내려가 반 년 정도 살다가 왔습니다. 그 때 집 주변, 들판, 산 이렇게 집을 중심으로 조금씩 멀어지는 자연 이야기를 시리즈로 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서울로 올라온 이후 도심 속 생명 이야기를 그리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글은 그림 그리면서 남겼던 메모를 정리한 것입니다. 지금은 우포 늪을 중심으로 늪 일반을 살펴 보는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올 봄까지 1년 내내 취재한 것입니다. 작년에 날이 안 좋아 취재가 부족한 부분이 있고 해서 작업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이전에 펴 낸 그림책들이 도시 아이들에게는 다소 먼 자연의 모습이었다면, 이번 그림책은 도시 아이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이란 것이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 줄 수 있고 삭막해 보이는 도시 속에서도 자연을 발견하는 눈을 갖게 해 주리라 기대됩니다.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그리기까지는 그림에 대해 지닌 생각과 어린이 책에 대한 고민이 바탕에 있어야 가능했다고 합니다.

“그림은 여럿이 같이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벽화 같은 것을 보아도 그렇고…… 미술 작품이 처음부터 개인 소유물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그림을 개인의 투자 물로 보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림은 같이 보는 것이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무렵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내 아이한테 보여 주려고 고르다 보니 고를 만한 책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그림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은 나눠 볼 수 있는 책이라서요. 그림책 가운데서도 자연에 관련된 책이 특히 없었지요. 외국 그림책들이 있기는 했는데 우리 자연하고 너무 달라요. 우리 자연을 보여 주어야 되겠다 싶어서 자연스레 그 쪽으로 관심을 기울인 거죠.”

미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던 미술 학도에게, 그림책 세계가 새로운 길을 보여 주었나 봅니다. 화가로서의 인생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여럿이 함께 보고 즐기는 그림에 대한 선생님의 갈망이 더해져 그림책에서 활로를 찾게 되었나 봅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자연을 그리게 된 배경에는 백학 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영향도 컸던 것 같습니다. 황해도 황주에서 사과밭을 가꾸다 남쪽으로 내려와 목수 일을 하시던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5·16 때문에 사업에 실패한 이후 ‘제일 정직한 것이 농사다.’라는 생각으로 친척 한 분이 살고 계신 비무장 지대의 백학 마을로 이주하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비무장 지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더 궁금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승용차로 1시간 정도 되는 거리의 가까운 곳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오지였습니다. 전기가 초등 학교 5학년 때야 들어왔어요. 호롱불 밑에서 살았지요. 그것도 군 부대로 들어온 전기를 전봇대 하나 더 세워서 겨우 끌어온 것이었지요. 기차도 없고 버스도 하루 두어 번만 들어와, 소가 끄는 마차를 타고 다녔지요. 중학교도 없고 초등 학교 하나만 있었습니다. 군 부대에서 발급하는 통행증이 없으면 마을에 못 들어갔습니다. 온통 지뢰밭이어서 지뢰 사고도 많았지요. 빨간색 삼각형에 하얀색으로 지뢰라고 글씨가 씌어 있었어요. 사람들이 나무 하거나 나물 캐다가 욕심에 한 발짝 더 내디뎠다가 변을 당하곤 하였지요. 저희 어머니도 어린 나를 업고 나물 캐러 산에 들어갔다가 바로 발밑에 지뢰가 있는 것을 보고 돌아 나왔다고 하셨습니다. 수류탄 안전핀에 줄을 연결해 놓은 것도 많았고요.”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상처의 땅이자 전쟁의 흔적에 아슬아슬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땅, 백학 마을. 그 곳에서 자연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자연을 그리는 일에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먼 거리 걸어오고 걸어가고, 동네 애들이랑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고 붙어다니고 그러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집안 일이 없거나 들판에 곡식이 없을 때는 삐라를 주우러 다녔습니다. 저 먼 꼭대기에서 뭔가 반짝반짝해서 쳐다보면, 삐라들이 흩어져 내려오면서 멀리 퍼졌지요. 그 삐라를 찾으러 뛰어다녔습니다. 주워다가 면 사무소나 헌병대에 갖다 주면 공책 주고, 얇은 아트지에 군인 훈련 사진이 들어 있던 『자유의 벗』이라는 책자도 주고 그랬어요. 그 때는 컬러 사진이 귀했던 시절이라 삐라를 주워서 사진 구경하는 것이 대단한 재미였어요. 물론 삐라 내용에는 관심도 없었구요. 그 때 자연 속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몸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도시에서 산 사람과 시골에서 산 사람이 그린 그림은 느낌이 사뭇 달라요. 도시에 산 사람은 모양은 똑같이 그려도 전체를 보면 느낌이 다른 게 있어요. 보리라도 보리가 아닌 듯하지요. 어릴 때 하나하나 뜯어보며 살지는 않았지만 자연의 느낌들을 몸 속에 갖고 있어서 그것을 그림에 반영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느낌이 몸에 배는 것 같아요.”

취재하며 직접 찍은 생태 사진들 / 그림 그리다 손을 풀 때 접은 종이접기 작품들

몸에 배인 자연을 세밀하게 그려 낸 세월이 15년 가깝습니다. 자연을 정확하고 자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애쓰며 보낸 시간들입니다. 자연을 그리는 일이라 취재가 중요한 작업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그림책 작업을 하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일화들도 그 시간들에 추억처럼 묻어 있다고 합니다.

“뭘 하든지 다 취재하는 것이 기본이죠. 할미꽃 그릴 때였어요. 할미꽃들이, 제가 어릴 때는 밭둑에서도 많이 자랐는데 이제는 무덤에나 가야 있어요. 무덤가엔 햇빛 잘 들고 약도 안 치니까 거기만 사는 거지요. 그래서 할미꽃 채집하려고 이 무덤 저 무덤 다녔어요. 그랬더니 누가 신고를 했나 봐요. 그래서 경찰서 가서 신원 조회하고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장소를 고를 때도 이야기와 어울릴 곳을 찾아 다녔지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거나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묻기도 하고 오지 안내하는 책자 보고 찾아가고 그러죠. 이 곳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곳 가고. 『우리 순이 어디 가니』 그릴 때도 기자 친구에게 충북 제천을 소개받아 갔는데 그 곳이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운학리라는 곳을 발견해서 그 곳을 그렸지요.”

산양의 흔적을 찍은 사진들

사연이 많으면 정도 더 깊어지는 것인지. 취재하면서 겪은 어려움만큼 그림책 작업에 대한 애정도 더 커졌나 봅니다. 그런 만큼 선생님은 세밀화의 전통과 세밀화가 걸어온 길과 나아가야 할 길, 세밀화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문제 등 세밀화와 관련한 생각도 많으셨습니다.

“세밀화 작품들은 우리 나라 역사 속에 이미 있었습니다. 궁궐도, 행차도 같은 것들이 다 세밀화의 전통 속에 들어가지요. 우리 회화 역사에서 신사임당 같은 화가들도 세밀화를 그렸다고 하겠습니다. 그림책에서 저보다 먼저 활동했던 사람들도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광고 쪽으로 옮겨갔지요. 세밀화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세밀화는 자세히 그렸다는 말이니까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세밀화는 특정한 조건이 없는 말이지요. 세밀화라도 어떤 생각으로 출발했느냐가 문제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생태 세밀화입니다. 생태 세밀화의 역사를 말할 때는, 객관적인 근거와 기준을 가지고 자연의 모양과 색깔에 접근한 것을 추려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세밀화에 대한 용어에서도 신경을 써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어 문제 이야기 뒤에 선생님은 우리 나라 생태 세밀화와 도감 작업에 대한 바람을 덧붙이셨습니다.

“외국에서는 학자와 팀을 이루어서 도감 작업이 진행되도록 지원한대요. 학자는 자신이 아는 지식을 자료로 제공하고 표본까지도 제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작가 혼자서 그 일을 다 해야 되니까 힘이 많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쌓이는 게 있다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습니다. 요즘 도감이 많이 나오기는 했어도 우리 손으로 만든 도감은 아직 몇 개 안 됩니다. 그래서 그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니까, 사람 이야기와 같이 가는 자연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 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림 기법도 여러 실험을 거쳐 다양하게 나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자연의 재현에 더 많이 매달려 있지만, 앞으로는 작가의 감성이 풍겨 나오는 세밀화 작업이 되게 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감성이 배어 있는 생태 세밀화를 그려 내고 싶으시답니다. 그 의지가 있으니 앞으로 우리 생태 세밀화 세계는 더 튼실하게 일구어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컬러 사진 보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로부터 인사동을 기웃거리던 청소년기, 그리고 그림을 향한 늦은 출발…….

“당시는 공학도가 각광받던 때였고, 공고나 상고에 가서 전교 30% 순위 안에 들면 동일계 대학에 특차로 진학할 수가 있어서 공고에 가려 했어요.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그렇게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니까 더 고민해 보고 결정하라고 말리셨지요. 그래서 일반 고교에 가게 된 건데, 그림 할 생각은 안 했었어요. 막연하게 미대는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했지요. 그냥 중학교 때부터 주말마다 인사동 가서 화랑 돌고 헌 책방 돌아보고 종로 서적에 가고 그러기만 했지요. 그림 보는 게 즐거웠어요. 용돈을 모았다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인상파 전시회나 로댕 전시회 등이 열리면 갔지요. 청계천엘 가면 외국 화집 뜯어진 것을 낱장으로 싸게 살 수 있어서 흥미 있는 그림이 보이면 없는 돈에 그걸 사곤 했어요. 그리고 고등 학교 입학 시험 본 후 2~3개월 동안 서예를 배운 정도였지요.

그런데 고등 학교에 진학하니까 학교에서 수채화를 시키지 않고 유화를 시키대요. 거기에 제가 흥미를 느꼈나 봐요. 고 1 때 덕수궁엘 가서 풍경화를 그렸는데 저한테 대상을 주더라구요. 다른 사람 안 그리는 것을 그려서 그랬던 것 같아요. 문을 통해서 뒤에 보이는 것을 그렸었어요. 그러다가 급성 간염에 걸려서 보름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뭘 해야 될지 생각하다가 무슨 마음에서인지 생명이 긴 일을 해 봤으면 좋겠다 싶었고, 그럼 그림을 해야 되겠다 마음 먹었지요. 부모님의 반대가 컸어요. 겨우 설득해서 그림을 시작하고는 화실에서 여자 애들하고 말 한 마디 못 나눴어요. 모자 눌러쓰고 들어가서 내내 그림만 그리다 나왔지요. 나중에 얘기 들으니까 내게는 아예 말을 못 붙였다고 그러더라구요.”

뒤늦게 꽃피운 그림을 향한 꿈. 그래서 선생님은 힘들더라도 지금껏 그림 그리는 일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림에 대한 조용한 열정을 지닌 선생님에게 작년에 내 놓으신 창작 그림책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이제 생태 세밀화에서 창작 그림책으로 그림의 영역을 넓혀 나갈 생각이신지 궁금했습니다.

준비 중인 늪 그림책
“창작 그림책은 당분간 안 하려고 해요. 재주가 없는 것 같아서요. 나중에 제 이야기로 한두 권 정도만 해 보려고 해요. 시간이 충분하면 될 것도 같은데 현실이 그렇지 못해요. 코드가 전환되어야 하고, 시선과 내용이 다르게 변해야 하는데 그게 휙휙 바뀌지가 않아요. 그래서 어설픈 느낌으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창작 그림책은 많은 시간을 갖고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자제하려 합니다. 대신 자연과 관련된 그림책을 하고 싶습니다. 자연을 좀더 풀어서 보여 줄 수 있는 창작 그림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괴산에서 도둑 고양이하고 싸운 얘기, 아파트에 둥지 틀었던 황조롱이 얘기……. 섬에 매력을 느껴서 섬의 생태를 기록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작은 단위지만 섬에는 바다에서 산꼭대기까지 생태가 다양하게 있거든요. 설악산에서 산양의 흔적을 찾다가 산양과 마주치게 되는 이야기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웃집 할머니 드로잉
앞으로 그리고 싶은 책 이야기를 마치고 선생님 작업실 사진을 찍다가 벽에 붙어 있는 드로잉에 눈길이 갔습니다. 선생님이 괴산에서 살 때 이웃집에 사시던 할머니 그림이랍니다. 마당에 열린 대추를 따 드렸더니 저녁 때 좋은 것만 골라서 갖다 주셨다는, 곡절 많은 인생을 사셨어도 마음은 여전히 따스한 할머니시랍니다. 할머니의 따스한 그 마음을 그림책에 담고 싶다는 꿈도 살짝 펴 보이셨습니다.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 작가의 감성이 배어 있는 세밀화,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야기들을 그림책에 담고 싶다는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습니다. 신비한 자연을 우리 아이들이 느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애쓰는 선생님 모습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던,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태수 선생님은 어린이들과 자연 사이에 튼실하고 따스한 징검다리를 잘 놓아 주시리라 믿으며 작업실을 나왔습니다.
김원숙 / 오픈키드 도서 컨텐츠팀장. 대학에서 정치 외교학을 공부했지만 아이들과 놀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어린이들과 더불어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오래 하였고 지금도 어린이 책에 파묻혀 지냅니다. 우리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으며 행복하기를 바란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