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2월 통권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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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어린이-동화는 무엇을, 왜, 어떻게 말하는가]
아이들 모두 행복한 ‘노마’가 되었으면

노경실 | 2004년 02월

아침마다 파주 출판 단지로 가기 위해 자유로를 달린다. 속도 자유, 차선 자유라 해서 자유로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듯이, 여기서 나는 거의 날마다 크고 작은 교통 사고를 목격한다. 심지어는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은 젊은 장교와 사병들이 3명이나 목숨을 잃은 현장을 숨 죽이며 지나기도 하고, 도로 한가운데 장난감처럼 옆으로 누워 버린 하얀 다마스 안에서 -다행히 목숨을 잃은 사람 없이-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빠져 나오는 것도 보았다. 물론 이 모든 사고의 대부분은 인재이다.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짙은 안개와 이른 아침마다 서리로 살짝 얼어 버리는 도로이다. 안개와 살얼음판의 도로. 이것은 마치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우리네 인생이란 앞으로 앞으로 가야 한다. 순례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호흡 있는 자들은 순례자이다. 어린이들은 어린 순례자일 뿐이다.

『몰라쟁이 엄마』표지
그런데 여기 이상한 나라가 있다. 이 나라의 어린 순례자들은 그들이 마지막에 도착하는 그 성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아니 순례를 시작하기도 전에 고층 아파트에서 허공으로 던져지며, 한겨울 차디찬 강물 속으로 내던져지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허공 속에서 온 몸을 떨며 살려 달라고 울부짖고, 어떤 아이들은 몇 알의 약에 취해 있다가 겨울 강물 속에서야 얼어 가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 한마디 못 한 채 고통을 폐 속까지 채우고 만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도대체 이 나라의 어른들은 어떤 색깔의 심장을 지녔기에 우리 아이들의 비명 소리를 하늘에 울리고 우리 아이들의 고운 꿈을 강 바닥으로 내던지는 것인가!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떤 모양의 꿈을 꾸기에 우리 아이들의 여린 살덩이를 흙탕물 범벅인 강의 제물로 바치며, 한겨울 차디찬 바람 속으로 재처럼 날려 버리는가!

이 나라 사람들 : 먹고 살기 힘들어서입니다. 이젠 지쳤습니다. 배고픔도, 추위도, 돈으로 인한 가위눌림도 없는 세상으로 가고 싶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계속 산다는 것은 공포일 뿐입니다.

저 나라에 가 있는 이 나라 사람들 : 아이들만 놔두고 나 혼자 죽을 수 없어서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 해 줄 바에는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슬픈 명일 추석」 중에서
와글와글…… 이유도, 변명도, 호소도, 몸부림도, 억울함도 있겠지만 사실은 너무도 살고 싶었던 작은 불씨 같은 소망들로 어른들은, 부모들은 늘 말이 많다. 그런데 이런 괴로운 말소리들을 다 가라앉히며, 한 사람이 걸어온다. 그는 가슴에 작은 책 한 권을 안고 있다. 그는 이태준 선생이다. 그가 가슴에 안고 있는 책은 『몰라쟁이 엄마』라는 그의 글 모음집. 그 분의 여정은 적어도 문학을 사랑하여 지금 이 책을 펴든 사람이라면 너무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여 사족은 달지 않겠다. 나는 게으름 탓에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파주에서 오랜만에 서울에 나온 나는 서점에서 여러 권의 책을 샀는데, 그 중 이태준 선생의 수필집과 『몰라쟁이 엄마』를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그 분이 힘든 삶을 살아 가는 이 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용기를 줄 것 같다는.

‘ 얘야, 넌 왜 심통 난 얼굴이니? 엄마한테 혼이라도 난 거니? 그런데 말이야, 너에게 가족이 있니? 그리고 너에게 어머니가 계시니? 그렇다면 그것으로 너는 모든 것을 다 품을 수 있는 신비하고 예쁜 마법의 보자기를 하나 가진 것이란다. 그러니까 말이야, 너는 네가 꿈 꾸는 것을 모두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안고 산다는 거란다. 그러니 그만 죽 삐져 나온 입을 풀고, 노인네처럼 주름 잡은 이마를 쭉 펴거라. 그런데 저기 혼자 돌아 앉아 있는 아이야, 얼굴 좀 이리 돌려보렴. 얘야, 너에게 가족이 없니? 그리고 너에게 어머니가 계시지 않니? 그래서 네 눈이 젖어 있구나. 쯧쯧, 잘 씻지 않아서 손등이 텄구나. 그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 마음도 마음이지만 눈도 손등도 모두 아프겠구나. 그래도 마음껏 울려무나. 그렇다면 네가 보고 싶어하고 함께 살고 싶어하는 그 눈물만큼 그 아픔만큼 네 살아 가는 날들이 소중하고 단단하게 하루하루 이어져 갈 거란다. 엄마가 없어서 쓰라린 네 가슴의 상처만큼 너는 삶을 예쁘게 가꾸어 가는 인내심을 얻을 거란다.’

이런 생각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며, 억지 감정이 아니다. 지하철이 어느새 백석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나처럼 출입문 앞으로 다가오는 대여섯 살 된 여자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그리 따뜻해 보이지 않는 보라색 패딩 점퍼에 할머니들이 몇 년은 했음직한 얼룩얼룩 닳은 자국이 선명한 검은 빌로드 목도리를 작고 가녀린 목에 칭칭 감고 있었다. 아이가 그러하니 그 엄마는 어떠했으랴. 앞가슴에 여러 가지 생활의 흔적과 아이의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시커매진 검은 점퍼와 요즘 보기 힘든 고동색 솜 누비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나마 엄마는 목도리도 하지 않았다. 이 늦은 시간에 모녀는 어디에서 오는 길일까. 그들 옆에 서 있는 나는 제법 품질 좋은 코트에 부츠를 신고 한껏 멋을 낸 차림새였다.

그런데도! 그 아이에게 물어 보아라. ‘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가 누구인가?’라고. 그 아이는 “엄마!”라고 단호히 대답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가 누구인가’라고 물어 보아라. 그 아이는 “우리 엄마!”라고 단박에 답할 것이다. ‘이 추운 겨울밤에 누구와 함께 어디로 갈 것인가’ 물어 보아라. “우리 엄마랑 우리 집에 갈 거야!”라고 아이는 자랑스레 말할 것이다.

「어린 수문장」 중에서
이태준 선생의 『몰라쟁이 엄마』가 그렇게 답했고, 그런 이야기를 우리 가슴이 아릴 정도로 조근조근 그러나 결코 잊혀지지 않을 울림으로 들려주고 있다. 「어린 수문장」에서 새끼를 잃은 어미 개의 심정을 보자. ― 그 후 며칠 못 되어 나는 웃말에 갔다가 그 어미 개와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식 하나를 그처럼 비참한 운명으로 끌어 낸 나임을 아는 듯이 불덩어리 같은 눈알을 알른거리며 앙상한 이빨을 벌리고 한 걸음 나섰다 한 걸음 물러섰다 하면서 원수를 갚으려는 듯한 기세를 돋구고 있었습니다. ― 선생은 이름도 없는 한 어미 개의 분노를 우리들의 평범한 어머니들의 서러움으로, 결국은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절대적인 그리움으로 말하고 있다.


그 그리움은 너무 간절하다 못해 절망이 되어 우리들의 가슴을 뒤흔든다. 「슬픈 명일 추석」에서 엄마 없이 몰인정한 친척집에 얹혀 사는 을손이와 정손이는 날마다 배고픔과 갖은 학대로 어린 아이들임에도 가슴이 피멍이 들 정도이다. 이 가련한 남매가 하소연 할 곳은 엄마 무덤 앞 뿐이다. 그곳이 산 속이건, 늑대가 우글 거리는 곳이건 ‘우리 엄마가 여기 있다.’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남매는 마음껏 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작가는) 남매를 불쌍히 여긴 것인가, 이 글을 읽는 우리를 고통받게 하려는 것인가 ― 아, 늑대들에게 죽을 것을 알면서도 소리치며 그 무서운 산골짜기를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깊은 산골짜기는 을손이의 정손이 부르는 소리도 아주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밤은 소리 없이 깊어 갔습니다. 그들의 엄마 산소 앞에는 을손이와 정손이가 먹으려던 떡바가지만이 무심한 달빛에 그들을 기다리는 듯이 놓여 있었습니다. ― 이 글이 씌어진 때는 1929년. 외세로 인한 백성들의 가난과 절망, 혼란……. 그러나 나는 굳이 이런 것들을 선생의 동화 읽기에 결부시키고 싶지 않다. 정손이와 을손이의 아픔과 그들의 죽음(혹은 고통), 엄마의 부재로 짓밟혀지는 삶……. 이런 것이 어찌 일제 상황이니, 심지어는 계급 사회, 자본주의, 제국주의, 사회주의니 하는 명제 아래에서만 해석해야 하고 공감해야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겨울에도, 배가 고파도, 꿈 속에서도, 매를 맞아도, 그리고 일제 시대이건, 물질 만능 시대이건, 우리들의 엄마는 엄마이다!

「엄마 마중」 중에서

그 엄마를 한 아가가 추운 겨울 날, 혼자서 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다. ‘엄마 마중’을 나온 것이다. ― 이내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 우리 엄마 안 오? ” “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차장은 ‘ 땡땡’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이 차장도 ‘땡땡’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 전차가 또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 하고 이번 차장은 내려와서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 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하고 갔습니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 이 글의 마지막 장면은 1938년에 쓴 글과 2002년에 그린 신가영 씨의 그림이 하나가 되어 영원히 ‘엄마’를 기다리는 인간의 운명을 말하는 듯하다. 이 ‘운명’은 마치 우리 한국인들에게만 업보처럼 따라 다니는 지겹고도 아름다운 동앗줄이 아니런가.

이태준 선생은 『몰라쟁이 엄마』에서 가난하거나 엄마 없는 어린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아무런 강요 없이 우리에게 전해 준다. 그런데도 글을 읽고 나면 우리의 가슴이 아리다 못해 쓰라리고, 책을 저도 모르게 꼭 껴안을 것이다. 마치 내 아이를 품에 안 듯, 마치 우리의 등 굽고 가슴이 말라 버린 어머니에게 용서 바라는 마음으로 안기는 듯.

「몰라쟁이 엄마」 중에서

그런데 ‘노마’라는 아이가 있다. 노마는 「몰라쟁이 엄마」의 주인공이다. 아무리 보아도 노마네는 부자도 권세가도 아니다. 단지 노마에게는 ‘엄마’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12편 이야기 중 가장 ― 유일하게― 밝고, 가슴을 아프지 않게 한다. ‘엄마가 있는 노마’는 그래서 장난도 치고, 떼도 쓰며, 요구도 할 줄 안다. ― ‘이런! 엄마는 몰라쟁이인가, 죄다 모르게. 그럼 엄마, 나 왜떡 사 줘야 해. 그것도 모르면서…….’노마는 떼를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 엄마가 있는 아이, 그 아이는 노마다. 이 세상의 노마들은 웃고, 졸라 댄다. 요구하고, 응석을 부린다. 세상이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노마들 앞에서 꼬리를 내린다. 세상은 노마들 곁에서 오히려 아양을 떨기도 한다. 그래서 노마들은 가끔은 건방지고, 시끄럽고, 얄밉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노마’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감히 나는 선생의 글 앞에서 말한다. 선생은 진실로 어린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며, 그네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해 주며, 우리 어른들에게는 죄의식을 갖게 하는 글을 쓰신 것이라고. 이 글을 읽고 우리 아이들에게 일말의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에게도 무정한 자이리라! ― 선생님, 죄송합니다. 지금도 이 땅에는 밥을 굶는 아이들이 있으며,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의 손에 의해 이리저리 내던져지는 가련한 아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어린이와 어린이 문학을 제 면류관으로 삼으려는 저희들을 마음껏 꾸짖어 주십시오.
노경실 /『중앙일보』(동화)와 『한국일보』(소설)로 등단하였습니다. 출판 일을 하면서 열심히 글을 쓰고, 시시때때로 그림책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권의 장편 소설과 많은 동화책을 냈습니다. 도스토에프스키와 반 고흐와 체 게바라와 로알드 달 그리고 희진이와 현호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