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2월 통권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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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동시/동요집 들여다보기]
피어라, 들꽃들아

최선숙 | 2004년 02월

산 속의 작은 학교에서 태어난 동시들이 자꾸 눈을 슴벅이게 합니다. 전교생이 육십여 명 남짓한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선생님의 마음에 비친 시편들을 모아 보니 ‘들꽃 초등 학교’였답니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이름 불러 주지 않아도 거친 들판에서 꽃을 피워 내는 들꽃들입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 남들도 다 그렇겠지 생각했던 것들, 평범한 행복이 간절한 소원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내 첫 번째 소원은 아빠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내 두 번째 소원도… 아빠 엄…마와 함…께 행…보…하……//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네가 책상에 엎드렸을 때……”(「선생님의 고백-3. 세 가지 소원」중에서)

시인은 분명 자괴감에 시달렸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시가 다 무어라 말인가, 수백 번을 되물었을 것입니다. 시인은「선생님의 고백」으로 시작해서 안타까움에 위로를 얹어 나갔고, 아이들이 겪는 아픔을 차곡차곡 만나 갔습니다. “지금은 비록 거친 현실 속에서 힘겹지만 꿋꿋하게 자라서 향기로운 꽃을 피우리라는 기대와 바람”이 시가 되었습니다. 마흔네 편의 시가 담긴 시집은 5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2부에서는 ‘빈 책상’이 상징하는 친구들의 떠남을, 3부에서는 나름의 고민과 바람을, 4부에서는 내 주변의 이야기를, 5부에서는 산마을의 자연을 담았습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휴전선에서 더 가까운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적암 초등 학교가 현실의 학교입니다. 지금 여기의 한 작은 학교가 오롯하고 무척이나 쓸쓸합니다. 부모님이 안 계시거나 헤어져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열 명도 채 안 되는 한 학년에 여덟 명이나 됩니다. 시적 화자인 아이들은 내남없는 불우를 자신의 이야기로 들려주기도 하고 친구의 얘기로 들려주기도 합니다.

“저것 봐./꽃다지가 볼에/밥풀을 가득 달았잖아.//민들레는/꽃으로 징검다리를 놓고.//오늘 혹시 들 끝에서/징검다리를 건너/집 나간 엄마가/돌아오지 않을까.”(「생일」중에서)

“엄마가 해 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싶다”로 끝을 맺는 위 시를 비롯한 1부에 실린 일곱 편의 시들에는 눈물이 묻었습니다. 스스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슬픔들을 다만 견디고 있습니다. 섣부른 희망도 원망의 말도 않는 이들은 참 착합니다. 너무 착해서 도리어 착잡해집니다. 2부에 그려진 학교의 모습 또한 한없이 쓸쓸합니다. 하나씩 둘씩 전학을 가서 교실이 텅 비어 버릴 것만 같은 아픔과 친구를 잃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전학을 오는 친구들은 또 얼마나 아프게 섞여드는 과정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2학년에 전학 온 작은 애/절대 건들지 마/3학년 대장 덕희도/팔을 물렸대//돌주먹 움켜쥐고/눈물 괸 눈 부릅뜨고/맞아도 맞아도 파랗게 덤벼든다지”(「전학 온 애」중에서)

아이들다운 고민이 담긴 3부에서는 시가 조금 경쾌해집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심각하다고 털어놓고, 편애하지 말라고 선생님께 건의하기도 하고, 엄마 대신 준비물을 몰래 챙겨 주신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도, 학교 뒷문 밖에 서 계시는 엄마의 마음도 다 압니다.

“전학을 가도 마음까지 가는 것은 아닌가 봐//공부 시간에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고//교실 문을 열던 선생님 따라 우리들 눈도 둥그레졌지//몇 달 전에 서울로 전학간 혜선이가//조금은 낯설어진 얼굴로 복도에 서 있는 거야//친구들 보려고 일찍 조퇴하고 왔다면서”(「 전학을 가도」중에서)

전학을 가도 마음을 가져가지 못하고 두고 가는 곳, 그 곳의 이웃들이 그려진 4부의 시들에도 애달프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보일 듯 말 듯 묻어 있습니다. 교실 밑 바람구멍에 살던 집 없는 누렁이, 외로움이 무언지 알게 해준 새끼고양이, 금방이라도 병이 나을 것만 같은 누나가 따다 준 빨간 알약 같은 산사과, 버스 옆자리에서 내 작은 어깨로 가만히 받쳐 준 방글라데시 아저씨의 잠든 얼굴, 할머니 무덤에 함께 묻힌 검둥이, 길 잃은 양 같은 사람들의 삶이 마음을 적시며 이야기를 만들어 가게 합니다. 산마을의 자연을 담은 5부는 간소합니다. 사계절을 한 편씩 노래하고, 꽃과 짐승들도 불러냈습니다. 이 곳에 담을 시들이 훨씬 더 많았겠지요. 하지만 너무 아프고 슬퍼서 위로해야 할 삶들이 너무 많아서 자연은 차라리 간소해집니다.
오픈키드 컨텐츠팀장.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했습니다. 딸아이에게서 그림책 독법을 배우기 바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