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통권 제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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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창작 동화 들여다보기]
내가 너의 집이 되어 줄게

최수연 | 2003년 11월

마음에 비밀과 불만이 쌓일수록 사람들과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단짝 친구하고도 서먹서먹해지고, 가족은 서로 상처를 건드릴 뿐입니다. 이게 아닌데, 내가 왜 이럴까, 곰곰이 돌아볼 새도 없이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마음에 덧문을 닫아버린 예지도 그러합니다.

예지는 집도, 학교도 다 싫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 경희는 예지가 이사한 집에 놀러 가겠다고 합니다. 예지는 경희에게 거짓말로 둘러대며 집에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단짝 친구 경희에게 좁고 지저분한 집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그래서 많이 속상합니다. 말끔한 양복을 입고 회사에 다녔던 아빠는 이제 허름한 작업복을 걸치고 하루종일 꽃무늬, 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다리미질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소리와 라디오 소리, 그리고 옷감 먼지와 뒤섞인 채 엄마는 숙제 해라, 가방 챙겨라 잔소리만 합니다. 예지에게 세상은 구질구질하고 우울한 곳입니다.

예지는 자기처럼 외톨이인 깜지를 사귀면서 다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엽니다. 깜지는 초록 눈빛에, 온몸이 새카만 고양이입니다. 언제까지나 깜지를 지켜주겠다고 다짐하는 예지의 마음이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합니다. 깜지를 보살피는 마음이 바로 예지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위로를 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는 고양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주인집 눈치가 보여서 깜지를 내보냅니다. 엄마는 셋방살이가 끝나고 집이 생기면 다시 애완 동물을 키우자고 하지만, 예지는 깜지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꿈속에서도, 낯선 시장 길에서도 깜지를 찾아 헤매는 예지. 어릴 때 정을 주며 키우는 동물 친구가 아이에게 얼마나 각별한지 섬세하게 드러납니다.

겨울을 나야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지는 경희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기를 내 편지를 써서 화해를 청합니다.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깜지도 무사히 되찾고, 예지의 마음에 다시 친구와 가족을 향한 사랑이 자리를 잡습니다. 예지는 하나뿐인 다락방에서 엄마 아빠와 같이 지내는 것이 여전히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가족, 친구와 나누는 마음이 바로 예지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외로운 여자아이의 마음을 세세하게 살핀 문장이 부드럽고 따뜻합니다. 작가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내내 꽃밭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책이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사랑을 먹고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랐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마음이 깃든 집이 되는 것. 모든 관계 속에서 참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최수연 | 대학에서 문예 창작학을 전공했습니다. 오픈키드 컨텐츠팀에서 어린이 책을 마음껏 읽고, 즐겁게 글을 쓰며 일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세상과 내면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러는 데 자신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쓰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