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7월 통권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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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 이야기]
좋은 어린이 책을 통한 변화

안영신 | 2003년 07월

사실 나는 어린 시절에 책 한 권 읽어 본 적이 없는(한 권도 읽지 않았다면 거짓말일까? 그런데 사실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감동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고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불행히도 모른 채 어른이 되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어느날 새로운 계기를 맞았다. 편안한 모습으로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를 세상의 전부로 알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 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엄마이고 싶은 걸까? 나를 전적으로 믿을 만큼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일까? 꼬리를 무는 자문에 답을 찾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싶었고 그래서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주로 육아, 부모 교육, 그림책 관련 이론서들을……. 대부분의 초보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육아에 관련된 모든 정보에 목말라했다. 특히 아이 교육에 관한 정보에는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덤벼들게 되었다.

『우리 아이, 책 날개를 달아주자』와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 등 독서 교육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읽어 대 어느 정도 갈증을 채울 만큼 읽었다고 뿌듯해하며 여유롭던 중, 『그림책 사냥을 떠나자』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언가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는 얄팍한 마음으로 책을 펴 들었는데, 그런 마음은 금세 무색해져 버렸고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고 말았다. 이 책은 이제껏 읽었던 그림책 이론서와는 분명 다른 시각을 갖고 있고 우리에게도 그 다른 초점을 제시해 준다. 그림책 한 권 한 권에 아이들의 눈높이와 감수성으로 다가가게 한다. 그래야지만 진정으로 그림책의 참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아직 그 참맛을 잘 모른다. 그만큼 순수함이 떨어져서일까? 어쨌든 그 참맛은 무슨 맛일까? 달콤한 맛일까? 궁금하다.

『그림책 사냥을 떠나자』『우리 아이, 책 날개를 달아주자』『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표지

이 책은 네 가지 테마별로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준다. ‘1부 희망원에서’ 소개하는 그림책들은 진정한 봉사에 대하여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과 입양아들의 정체성 찾기와 같은, 주로 아이들의 현재 상황에서 위로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 『순이와 어린 동생』은 우리 아이도 무척 좋아했던 책이다. 하야시 아키코의 그림책은 아이들 모두 열광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책에서 또 보게 되니 반가웠다. 당연히 행복해야 할 아이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많이 있다. 불행할 듯한 희망원 아이들도 한 편의 아름다운 그림책을 통해 행복할 수 있고,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역시 책은 영혼의 양식인가 보다. 내 아이에게 좋은 그림책을 많이 보여 주겠다는 욕심으로 거실 책장 한가득 메운 그림책을 보며 뿌듯해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순이와 어린 동생』표지와 본문

‘2부 여행을 하며’에서는 저자가 여행을 하며 만난 다국적 그림책들을 소개해 준다. 그 가운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가 돋보인다. 주인공 비보 씨는 깔끔하고 예민한 성격의 치과 의사이다. 어느 날 비보 씨의 치과에 이상한 노파가 찾아온다. 한눈에 보아도 가난해 보이는 노파가 아픔을 호소하며 제발 한번만 봐 달라고 애원하는 통에 의사는 하는 수 없이 노파의 썩은 이를 뽑아 준다. 그런데 노파는 치료비 대신 무화과 열매를 건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무화과는 그것을 먹은 사람이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아주 특별한 무화과였다. 무화과의 비밀을 안 그 날부터 비보 씨는 잠들기 전에 자기 암시를 건다. ‘나는 부자다, 나는 부자다.’ 자기 암시 훈련에 성공하자 의사는 정말 부자가 되는 꿈을 꾼다. 날마다. 이제 드디어, 무화과를 먹고 꿈을 꾸면 다음날 비보 씨는 진짜 부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먹으려고 식탁 위에 올려 놓은 무화과를, 그만 비보 씨가 키우는 작고 볼품없는 개가 날름 먹어 버린다. 그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기상천외한 이야기, 독특한 기법의 그림도 아주 인상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표지와 본문

‘3부 아이와 함께 책을’에서는 저자가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보았던 그림책들을 소개한다. 나도 나중에 아이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면, 아마도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즐겁게 보던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것이다. 그때 어떤 책을 보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겠지만 그 작고 오동통한 손으로 함께 책장을 넘기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은, 이 다음 내가 할머니가 된 후에라도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다. 3부에서는 그림책들을 감칠맛 나게 소개해 준다. 특히 어른들이 쉬쉬하며 애써 감추려하는 설명하기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혼, 성교육 등)들을 즐겁고 통쾌하게 그린 작가 배빗 콜의 그림책 『따로 따로 행복하게』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요즘 이혼하는 가정이 부쩍 늘고 있는 추세인데, 그런 가정의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의 이혼을 자신들 탓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공개적으로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부모의 이혼을 당당하게 ‘주관’한다. 부모의 이혼이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든 큰 상처가 되고 이웃과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이 책은 이혼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나와 다름이 ‘틀린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한다.

『따로 따로 행복하게』표지와 본문

‘4부 그림책 vs. 그림책’에서는 마치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의 영화 대 영화를 연상케 하듯 그림책들의 신나는 한 판 대결이 벌어진다.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로 「늑대와 아기돼지 삼 형제」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가 나쁘게만 알고 있던 늑대도 할말이 많은가 보다. 누구나 다 자기 입장이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바로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 vs. 『아기늑대 삼 형제와 못된 돼지』. 우리가 알고 있던 온순한 돼지와 비열한 늑대가 아닌, 포악한 돼지와 점잖은 늑대의 모습은 우리에게 또 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서는 그 동안 우리에게 나쁘게만 인식되어 온 늑대의 새로운 면을 볼 수 있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표지와 본문

『아기늑대 삼 형제와 못된 돼지』표지와 본문

이외에도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리디아의 정원』 vs. 『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 같은 책을 두고 편집을 다시 수정 보완하여 만들어 새로운 느낌을 주는 (『달 사람』 vs. Moon Man) 책들도 이채로운 대결이었다.

『리디아의 정원』『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달 사람』표지

저자는 아이처럼 신나게 보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그림책 소화 방법이라고 꼽는다. 그림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공감하기 쉽도록 아주 따뜻하게 이야기를 풀어, 마치 옆집 선배 아줌마의 경험담을 듣고 있는 듯 편안하다. 이렇게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따뜻함이 있는 책이 한 권 더 있다. 바로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이다. 이 책은 쿠슐라라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그린 실화이다. 쿠슐라는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장애아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쿠슐라의 부모는 포기하지 않고 아이의 상황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아낌없는 사랑을 준다. 그리고 쿠슐라에게 또 다른 세상, 그림책의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 준다. 부모의 애절한 사랑과 노력 끝에 쿠슐라는 8개월즈음부터 그림책을 보고 반응하기 시작했고, 만 2년 6개월∼만 3년이 되어서부터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다. 존 버닝햄의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모리스 센닥의 『꼬마 곰』 시리즈, 마리 홀 에츠의 『나랑 같이 놀자』 등.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검피 아저씨의 뱃놀이』『꼬마 곰』『나랑 같이 놀자』표지

그림책을 꾸준히 보면서 쿠슐라는 놀랍게도 또래 아이들과 비교하여 거의 뒤지지 않는 언어 능력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한다면 장애가 많이 가벼워질 거라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쿠슐라의 부모가 그림책을 열심히 보여 줌으로써 딸의 삶이 풍요로워진 것이다. 쿠슐라의 장애는 책을 통해 크게 치료되었고, 이제는 성인이 되어 한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책이 있어 인생이 아름답고 살맛 나는 쿠슐라는 분명 행복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기특하고 사랑스런 쿠슐라를 보며 맘이 흐뭇해지기도 했다.

“책은 남을 이해하려고 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던 나도 드디어 ‘책’이란 것을 느끼게 되고, 세상에는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의 입장이 되어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리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 자신도 모르게 변해 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모두가 가능하게 된 것은 아마도 우리 작은 공주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지연아! 고맙구나.”
안영신/ 신문사에서 편집 디자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네 살난 딸내미랑 그림책 보는 재미에 하루하루가 즐겁답니다. 아이와 더불어 새로운 ‘책 맛’을 찾으며 즐기는 행복한 엄마입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