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7월 통권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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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내가 꼭 만들고 싶은 어린이책]
감성과 흥분이 풍성한 인문 예술 책

김소원 | 2003년 07월

어린이 책으로

나는 지금 어린이 책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가만히 나를 되돌아보면 이렇게 어린이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정말 ‘나’인가 할 때가 있다. 어렸을 때 어린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아직 결혼도 안 해 아이도 없는 내가 말이다.

나의 첫 직장은 출판사였다. 거기서 만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어찌어찌 하여 어린이 책 출판사로 들어갔고, 그러다 보니 어린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린이 책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자연스런 고민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러다 그 친구는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엮고 돌베개에서 펴 낸 『어린이와 책』 1·2권을 보게 되었다. 친구는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바라보고 있는 어린이, 어린이 책에 대한 관점에 동의한다며 그 모임에 가입을 하였다. 일 주일에 한 번씩인 모임인데 그 모임이 너무 좋단다. 나는 거의 아무 생각 없이 친구 따라 강남 갔다. 단지, 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도움이 되겠군 하는 정도의 생각만을 품고서 말이다.

『어린이와 책』 1·2권
야근도 많고 하여 모임에 자주 빠지기도 하였는데 웬일인지 그만두지는 않고 계속 나갔다. 그러다 보니 읽은 어린이 책들이 쌓여 나가게 되었고, 그 책들을 통해 나도 어린 시절 이런 책들을 읽고 자랐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우연히 대학 동창을 만났다. 그 친구 역시 같은 일을 잠시 했었고, 일 외에는 다른 만남을 갖지 않았던 동창이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동창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옛 시절에 내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빨리 가자”였다고.

그 말을 듣고 보니 대학 시절의 불안감이 생각난다. 여기에 있으면 저기로 가야 할 것 같아 불안했고, 이것을 하고 있으면 저것을 해야 할 것 같아 불안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그것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늘 쫓겨만 다녔다. 그러면서 일상의 삶을 즐기지 못한 채 그렇게 지나와 버린 것이다.

좋은 어린이 책은 인생을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좋은 어린이 책은 소중한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한다. 좋은 어린이 책은 우리의 가슴을 요동치고 마음 설레게 한다. 좋은 어린이 책은 사랑, 슬픔, 분노의 감정을 일깨우고, 우리를 정의 편에 서게 한다. ‘아, 핵심은 어린이 책이었구나.’ 그렇게 해서 난 어린이 책 세계로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은 어린이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나무숲은 어린이 책 편집자로서 처음 일하는 곳이다. 요사이 성인물(? 야릇한 이미지의 그 성인물이 아닙니다) 편집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편집자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해 주는 일이 어린이 책 편집인 것 같다.

문학을 사랑하다

처음 어린이 책에 관심을 가지면서 제일 관심 분야는 역시 ‘문학’이었다. 인간은 본시 이야기를 사랑하여 입에서 입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 왔는가. 텔레비전에서 드라마가 안방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는 것 또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리라. 보지 말라고 보지 말라고 해도 어린아이들까지 드라마를 좋아한다. 어린이도 이야기를 사랑하니까. 사실 제일 이야기를 사랑하는 층은 바로 어린이들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읽기의 재미와 긴장, 기대, 두근거림, 슬픔, 분노, 사랑 등 많은 감정을 겪게 되고, 정의를 사랑하고 삶에 대한 희망과 설렘으로 가슴을 메울 수 있다. 훌륭한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가치들이 숨어 있다가 읽는 이의 가슴에서 빛을 발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등등을 느끼며 삶의 지표를 하나씩 하나씩 마련하게 된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트리갭의 샘물』 『사자왕 형제의 모험』 『라스무스와 방랑자』표지

어린이 문학 작품들은 나의 열등감을 극복하게 해 주고, 풍요로운 삶을 느끼도록 도와 주었다. 이원수,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 아동 문학이 그나마 그 위치를 자리잡고 있는 것이리라. 근대 아동 문학을 모은 『나비를 잡는 아버지』에서는 우리 아동 문학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또 『트리갭의 샘물』 『사자왕 형제의 모험』 『벽장 속의 인디언』 『라스무스와 방랑자』 등등. 정말 이 어린이 문학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지금 어떠했을까 좀 아찔하다. 내 어린이 책 읽기는 거의 문학으로 치중되었고,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권하는 책도 대부분은 문학으로 치중되고 있다.

인문 예술 책으로

『어린이 미술관』시리즈
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는 현재까지 『어린이 미술관』이라는 시리즈의 책만 출판하였다. 현재 기획 준비 중인 책들도 예술 관련 책들이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필요하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서도 내 관심은 인문 쪽에 가 있다 보니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 출판사 책은 한 권 한 권 만들어 내기가 정말 힘들다. 이런 책들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직 경험도 없고, 어린이 책에서 주류가 아니다 보니 정보도 약하다. 게다가 이런 인문 예술 책은 전문적으로 비평하는 이도 없다.

모든 편집자가 그러하겠지만 인문 예술 책은 매 순간마다 수많은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가령, 아이들이 도저히 이해 못할 듯한 단어가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를 달까, 문장 속에서 아이들이 추론하게 해 줄까, 편하게 앉아서 보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사전 찾는 수고를 하도록 할까, 그런데 가뜩이나 책 안 읽는데 그렇게까지 하면 더 책을 안 읽을 텐데…… 등등.

또 디자인은? 우리 책은 언뜻 보면 아이들 손이 가지 않는 책이다. 뭔가 재미 없고,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 일반인들로부터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이거 어린이 책 맞아?” 이런 말을 들으면 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어린이 책이 어때야 하는가, 어린이 책은 꼭 아기자기한 디자인이어야 하는가, 복잡한 구성과 디자인이어야 하는가, 내 생각은 정제된 느낌의 책도 충분히 어린이 책일 수 있고, 그러한 책도 어린이들이 접해 봐야 한다는 쪽이다. 그래도 늘 자신은 없다. 이론적 근거 없이 직감으로 생각하는 거라서. 그리고 나만의 시각으로 어린이를 바라보나 하는 의문이 들어서다.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화가 정선』『아이를 닮으려는 화가 이중섭』표지와 본문

어린이 인문 예술 책은 어찌 만들어야 하는가? 그것에 관한 이론적 근거 틀을 마련하고 하나의 고전이 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 분야의 비평가가 하루속히 나오기 바란다. 그리하여 문학 책을 보면서 느끼고 겪었던 수많은 감정들과 흥분들을 담고 있는 인문 예술 책,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김소원/ 나무숲 출판사의 편집 팀장입니다. 뭐든지 재미있어 하며 즐겁게 지내는 편인데 요새는 좀 가라앉아 있습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면서도 술 마시는 걸 좋아한답니다. 좀 알딸딸한 상태를 좋아하는 거지요. 가장 동경하는 사람들은 일명 딴따라 예술인들이랍니다. 회사에서는 ‘지각대장 소원’이고요. 신나게 즐기는 속에서 감동을 전하는 어린이 책을 만들고 싶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