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7월 통권 제8호
여름 방학 권장 도서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특별 원고
열린 주제 열린 글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작가를 찾아서]
자연의 품처럼 편안하고 소박한 그림 작가, 양상용

김원숙 | 2003년 07월

양상용 선생님
그림을 그리시는 양상용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갔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실은 길음역 부근에 있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비탈진 길을 십여 분 걸어 올라가면 있는, 오래된 연립 주택 3층이 선생님의 작업실이었습니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는 벽, 거실 바닥에 놓인 화구들은 여기가 바로 동양화를 전공하신 분의 작업실이다, 하고 노래하는 것 같았습니다.

바깥을 바라보고 놓인 앉은뱅이 책상과 그 위에 놓인 화구들, 책장들이 편안하게 자리잡은 화가의 작업실을 휘∼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시게 된 배경부터 묻습니다. 선생님은 당연한 질문을 받은 듯 “그림을 어려서부터 좋아하였습니다. 형과 동생도 다 그림을 잘 그렸는데 저만 그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일찍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특별히 동양화를 전공하신 이유를 여쭈었습니다. “양화 쪽에 관심이 갈 만한 세대였고, 양화도 자유롭기는 하지만, 동양화의 자유로움이 더 좋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십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선생님의 작업실 공간이 동양화의 자유와 여유를 좋아하신 선생님의 마음과 닮았구나 싶습니다.

양상용 선생님, 하면 보리 출판사에서 나온 들살림 시리즈의 그림책 두 권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 그 책들에 얽힌 이야기들에 대해 묻습니다. “『고구마는 맛있어』를 그리기 전에 취재를 반 년 정도 다녔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보았던 것들도 큰 역할을 했지요. 그것들을 바탕으로 하고 여러 가지 자료의 도움을 받아 작품이 나왔습니다. 제일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마 제 자신의 어릴 때 기억인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많이 차지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고구마는 맛있어』표지와 본문

선생님은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부모님은 서울로 올라가시고 선생님과 형님은 할머님 댁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들로 냇가로 뛰어다니며 꽃도 보고 풀도 보고 물고기도 잡고 마음껏 자연을 즐기셨다고 합니다. 자연과 함께 지냈던 이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자연을 무대로 한 선생님의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그런데 빠르게 도시화되어 가는 현실 때문에 이제 어린 시절에 보며 자란 자연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곳이 드물어졌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그려서 보여 주어야 하는 선생님은 그 점이 무엇보다 어려웠다고 합니다. 철저하게 사실성을 담보하여야 하는 어린이 책의 특성 때문에 더 많은 조사를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구마 밭을 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제가 고구마 밭을 그린다고 하니까 친구가 불러서 전라도의 어느 농장 주변을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가축 사료를 마련하기 위해 심어 놓은 고구마 밭이라 너른 땅에 고구마만 쭉 심어 놓아서 고구마를 가꾸며 살아 가는 시골 풍경과는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의정부에 누가 고구마 밭이 있다고 해서 가 보기도 하고 전라도 송정리에도 가고 그랬더랬습니다.”

작업실의 화구와 책장

한 권의 그림책이 나오기까지에는 많은 조사와 노력이 숨어 있었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완성되어, 아이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 고구마와 관련된 여러 정보도 주는 책으로 탄탄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고구마는 맛있어』. 이 책이 나오고 나서 선생님은 같은 기획물인 들살림 시리즈 세 번째 작품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그림책이 바로 『냇물에 뭐가 사나 볼래?』입니다. 선생님은 『냇물에 뭐가 사나 볼래?』 작업을 하면서 참으로 즐거웠고 그래서 이 책에 애정도 많이 간다고 하시면서 시원스레 웃으십니다. 이유를 여쭈었더니 어린 시절 냇가에서 놀았던 기억과 낚시를 즐기시는 선생님의 취미를 드십니다.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다가 작업이 쉬이 안 풀리면 마음 맞는 분과 함께 훌쩍 낚시를 떠나신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시간만 나면 물에 가서 놀았고, 또 지금은 낚시를 하러 다니면서 물고기들을 많이 보아 왔기에 물고기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낚시 가서 정작 물고기를 잘 잡지는 못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고 말씀하시면서도 낚시터에서 가졌던 여유와 편안함을 생각하시는지 선생님은 소탈한 웃음을 연방 쏟으십니다.

『냇물에 뭐가 사나 볼래?』표지와 본문

그리고 다시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 한 자락을 꺼내 보이십니다. “어릴 때는 디딜강에서 많이 놀았습니다. 집에서 15리 되는 남평장을 갈 때면 할머니는 저희더러 남평장 가기 전에 있는 디딜강에서 놀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가 오실 때까지 그 물 맑은 곳에서 놀았지요. 우리는 월남붕어라고 불렀는데, 각시붕어라고도 하고 버들붕어라고도 부르는 물고기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물고기들은 어집에 들어가 사는데, 정말 색이 예뻤습니다.”

한번 숨을 고르시고 선생님은 특유의 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로 물고기 그림에 대한 말씀을 이으십니다. “그런데 같은 물고기라도 사는 곳에 따라서 색이 조금씩 다릅니다. 가재도 보호색을 찾아가느라 색이 변합니다. 메기도 계곡에 사는 것은 시커멓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을 그릴 때 자기가 보았던 주관적 색채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고기 그림 그릴 때면, 보았던 물고기 색이 아른아른 하니까 그때 그랬지, 하면서 다시 한번 취재하고 색을 그리는 겁니다. 즐겁지요. 어릴 때 기억도 나고요.” 『냇물에 뭐가 사나 볼래?』는 선생님의 추억까지 되새길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고 하십니다.

작업실 한켠의 어항과 돋보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이 가는 일을 하는 거라고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게다가 그림을 보다 정확하게 그려야 하겠다는 의욕도 넘쳐서 선생님은 취재하러 가서 잡아온 물고기 몇 마리를 작업실 한 켠에서 기르고 계셨습니다. 작은 어항에는 밀어, 기름종개, 우렁, 다슬기, 미꾸라지 들이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를 그릴 때는 수염 하나, 지느러미 하나, 점 하나 정확하고 세세하게 그려야 하기 때문에 어항 곁에는 늘 돋보기를 두신답니다. 돋보기로 물고기를 살피고 또 살피며 그림을 그리셨다고 합니다. 어항 옆의 긴 책장에는 선생님이 쓰시는 큰 돋보기가 ‘맞습니다!’ 하면서 떡 하니 놓여 있습니다.

“물고기 그림 그릴 때는 무거운 것도 안 들었습니다. 무거운 물건 한번 들고 나면 한동안 팔이 떨려서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가 없거든요. 화선지에 하는 작업이라 한번 버리면 복원하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집에서 참 나쁜 남편이 되었습니다.” 자연의 한 생명을 그리는 작업에 쏟은 남다른 정성과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아이들이 보기 좋은 학습 그림책으로 꾸며져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냇물에 뭐가 사나 볼래?』본문 중에서

돋보기로 살피고 살펴서 그린 학습 그림책을 내놓으신 선생님은 세밀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에 기초해 다시 한 마디 덧붙이십니다. “세밀화에도 다양한 표현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우리 옛 그림에는 세밀화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유럽이나 일본에도 다양한 세밀화 작업들이 많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서 느껴지도록 표현된 세밀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냇물에 뭐가 사나 볼래?』 속에도 오랜 취재 작업이 숨어 있습니다. 수달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라서, 수달을 직접 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합니다. 섬진강 지류에 있는 강을 찾기도 하고, 수달 똥을 발견했다는 곳을 찾아가기도 하였지만 직접 수달을 보지는 못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진을 보면서 수달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이 자연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좋은 책에 그림 그리시는 선생님이 애초 어떻게 어린이 책 작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개인적인 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일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이란 게 있으니까요. 주변에 어린이 책 분야에서 일하는 선배나 동료들이 많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우리 역사를 담은 동화책 『아, 호동왕자』에 그림을 그리면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바람의 아이』『아, 발해』『태조 왕건과 삼국통일』『새벽을 여는 온조』표지

선생님의 첫 작업이 역사와 관련된 일이어서 그런지 역사를 다룬 동화책에 그린 그림이 꽤 많습니다. 발해 이야기인 『바람의 아이』 『아, 발해』를 비롯하여, 『태조 왕건과 삼국통일』 『새벽을 여는 온조』 같은 책들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있어 당연한 문제이지만, 특히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는 일에서는 사실성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역사와 관련된 그림을 그리면서 개인적으로 도서관을 찾아 많은 공부를 하셨다고 합니다.

“주인공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타고 그때 어떤 깃발을 썼는지 제대로 알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자료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온조와 비류를 그리면서도 많은 갈등이 있었어요. 제가 연구한 바로는 온조와 형 비류는 나이 차이가 많아서 처음에는 비류를 수염 있는 모습으로 그렸더랬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보는 책이라 비류를 늙은 사람처럼 여겨지게 그림 그린다는 것이 어색하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여서 비류를 수염 없이 다시 그리셨다고 합니다.

『이삐 언니』『순복이 할아버지와 호박순』『무서운 학교 무서운 아이들』『열한 살 아름다운 시작 1·2』
표지

선생님이 그리신, 역사를 다룬 동화책에는 나라를 세우는 과정을 빼놓을 수 없어서인지 전쟁 장면이 많고, 또 그래서 그림에 속도감과 운동감이 확연히 느껴진다고 말씀드리니 편안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역사 동화 이외의 다른 동화들에 그림을 그리셨던 이야기로 화제를 바꿉니다. 그리고 동화에 그림을 그릴 때 장면 포착을 어떻게 하시는지 여쭈었습니다.

“일을 맡으면 원고를 먼저 십여 번 읽습니다. 이야기에 빠져 들어가는 수밖에 없지요. 혼자 궁리하는 시간이 많은 편입니다. 마음에 궁리한 걸 뭉쳐 놓았다가 풀어 가는 스타일이지요. 궁리하다 보면 그림이 떠오릅니다. 스토리 흐름에 따라 20컷 정도 머리 속에 그리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정작 스케치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일에 전적으로 몰입합니다. 그림을 시작하면 끝내야지 직성이 풀리지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오전에 작업을 시작해서 밤 늦게까지 꼬박 하루를 일에 매달리는 셈이지요.”

밤을 새우다시피 하여서 작업에 몰두하여 일을 마치신다는 말씀입니다. 긴 궁리가 오히려 빠른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는 선생님만의 작업 방식인 것 같습니다. 『이삐 언니』 『순복이 할아버지와 호박순』 『무서운 학교 무서운 아이들』 『아이스케키와 수상스키』 『물싸움』 『흰빛 검은빛』 『여우고개』 들이 그런 긴 궁리를 거쳐 나온 장면들을 담고 있는 어린이 책들입니다.

『흰빛 검은빛』『물싸움』『아이스케키와 수상스키』『여우고개』표지

선생님이 그림 그리신 어린이 책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장난스런 질문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책에서는 눈꼬리가 올라간 아이들이 많다고, 눈꼬리가 올라간 사람이 보면 거울을 보는 듯해 기분이 언짢을 것 같다는 말을 스치듯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그랬어요?” 하고 오히려 반문하시면서 “인물을 그때 그곳, 배경에 맞는 인물로 그리다 보니 그랬나 봅니다.” 하십니다. 인물을 그릴 때 모델로 삼는 사람이 있으시냐고 연이어 질문 드렸더니 “얼굴 모양은 딸을 생각하면서 그리지요.” 하시며 흐뭇한 웃음을 지으십니다.

선생님의 딸 지명이
작업실에 놓인 액자의 사진에서는 눈이 동그란 선생님의 딸 지명이가 웃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들에서 보았던 예쁜 소녀 얼굴이 바로 지명이에게서 나왔나 봅니다. 장난스런 대화를 마치고 곧 그림의 시점 문제로 화제를 옮겨 갔습니다.

“저는 영화나 만화에 사용하는 기법을 그림에도 적용하고 싶습니다.” 시점에 대한 선생님의 관심은 영화에 두었던 관심의 깊이에서 나온 거라고 하십니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대단한 영화광이셨지만 요즘은 바빠서 여섯 살 지명이와 같이 본 「이웃집 토토로」와 한두 편의 영화가 고작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생님의 작품들
“그런데 「이웃집 토토로」에서 자전거 타는 장면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아이가 안장에 못 앉으니까 옆으로 다리를 걸고 타던 거요. 우리 어렸을 때도 그랬었거든요. 영화 보면서 어린 시절 생각이 났어요.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 『냇물에 뭐가 사나 볼래?』에 그림을 그리면서 물고기 잡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더없이 즐거웠다고 하시던 선생님의 마음과도 통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그 말씀에 이어 앞으로 어떤 그림책 작업을 하고 싶으신지, 그림책 속에 어떤 세계를 담고 싶으신지 여쭈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어린이 책을 생각하면 딸이 인정하는 책, 딸이 보고 웃었으면…… 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제 그림책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친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자연 그림책을 계속 그리고 싶습니다. 자연은 교감할 수 있는 대상인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는 늘상 집 앞에서 물고기들과 나무들을 보면서 자랐는데, 이제 우리 아이들은 특별한 계기를 만들어 줘야 겨우 보고 느낄 수 있으니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지요.” 자연 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았던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지금 선생님 작업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그 즐거운 기억들을 마음에 다시 그리게 하는 일이기도 하여서 그림책 작업이 즐거우시다는 선생님. 추억이 소중해서, 그런 추억을 제대로 가질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이 안타까워서, 더욱 자연을 담는 그림책에 애착을 느끼시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이 느끼셨던 자연의 너른 품을 느끼게 해 주고 싶으시다는 꿈. 우리는 곧 선생님의 새 그림책 속에서 그 꿈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림책 작업 이외에도 동양화에서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듯한 근대 미술에 대해서도 앞으로 더 공부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 있는 우리 옛 작품들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아서요. 그리고 옛날 그림 형식을 빌려서 지금의 서울 풍경을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산 자락이나 청계천, 달동네 같은 곳을 생각합니다. 꼭 문화재가 있는 곳이 아니고 옛날처럼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려 보고 싶다는 욕심입니다.”

선생님의 서예 작품
선생님의 계획을 듣고 나서 선생님 작업실 여기 저기를 카메라에 담다가 화선지에 쓴 붓글씨들을 봅니다. 붓글씨도 쓰시냐고 놀란 눈을 하였더니, 그림 공부를 하면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고 하십니다. “쓰는 게 아니라 그냥 보고 그리는 거지요, 뭐. 서예 하시는 분들이 보면 웃습니다.” 하는 겸손한 대답을 하십니다. “쓴 지는 1∼2년 정도 되었습니다. 체계 없이 쓰고 있습니다. 기초부터 하지 않고 마구 마구 하는 정도입니다. 세밀한 그림을 그리면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매우 느린 그림이 세밀화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초서가 반대로 세밀화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에 오히려 역설이 있다 싶어서 작업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지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벽에 붙은 작품 여러 점을 잠시 감상합니다. 그리고 어린이 책 작업을 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보기 위해 그림들을 붙였던 흔적들이 남아 있는 벽을 카메라에 담고는 선생님 사진도 찍겠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사진 찍는 일이 무척 쑥스럽다고 어색해 하십니다. 굳이 선생님을 자리에 앉으시라고 하고는 몇 장의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작업실 마당 한 구석, 지명이와 같이 심고 가꾸는 상추밭 앞에서도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상추밭 앞에 선 선생님
인터뷰를 마치고 가방을 정리하는데, 선생님은 너무 낯간지러운 이야기는 안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연의 모습처럼 소박하고 자연과 하나인 듯 편안한 모습으로 사시는 선생님의 성품 때문에, 예쁘게 꾸민 이야기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기를 바라시는 거로구나 짐작합니다. 자연에서 자랐고 그래서 그 자연을 그림에 담고 싶다는 선생님의 뜻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 가려는 선생님의 삶의 모습이 앞으로의 그림책에서도 그대로 보여지기를 바라며 해질 무렵 선생님의 작업실을 나섰습니다.
김원숙/ 오픈키드 도서 컨텐츠팀장.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지만 아이들과 놀기, 책 읽기를 좋아해서 어린이들과 더불어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오래 하였습니다. 지금은 오픈키드 도서 컨텐츠팀을 총괄하면서 어린이 책에 파묻혀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으며 행복하기를 바란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