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7월 통권 제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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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우리 그림책 들여다보기]
작아지고 더 소중해지고

최선숙 | 2003년 07월

집으로 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늘 가는 길이어도, 높이높이 올라가야 하는 시멘트 계단만의 길이어도요. 그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산을 접어 든 아이가 계단을 오릅니다. 유치원을 마치고 언덕 위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고여 있다 계단을 내려가는 빗물도 만나고, 재재발발 바쁜 개미들도 세다 가지요. 오늘은 페인트를 새로 칠하는 샛길 울타리는 얼른 지나치고요, 누군가가 떨어뜨린 곰돌이 머리핀은 후후 불어서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잘 있도록 한쪽으로 옮겨 주어요. 계단에 돌부리처럼 툭 튀어나와 있는 혹부리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아요. 모르는 척 지나가면 넘어뜨리기도 한대요.

바람이 불고 나무들이 흔들립니다. 고운 색깔 숲을 만나면 쉬어 가요, 계단도 좀 쉬게 하고요. 이제 저 아래로 유치원이 보입니다. 커다란 미끄럼틀이 조그만해요. 발 밑에서 제비꽃을 봤어요.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고 물어 보아요. 왼쪽 오솔길엔 다람쥐가 달려가요. 가만히 앉아서 보면 단풍잎은 바람에 춤추고, 그림자 단풍잎은 햇빛에 춤추는 것도 보여요. 하얀 꽃이 조롱조롱 핀 아카시아 향기가 발돋움하게 해요.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 쪽지가 비를 맞은 걸 보니 백구도 비를 맞았겠죠. 어서 돌아와라, 말하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계단을 마저 오릅니다. 이제 다 왔어요. 어제처럼 그제처럼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요. 고양이 친구예요. 둘이 함께 앉아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멀리 산들도 보이고 바람에 날아가는 구름도 보입니다.

비 그친 뒤의 신록과 그처럼 빛나며 환해지는 기운을 포착한 상쾌한 그림책입니다. 늘 가는 길의 낯익은 정겨움 속에서도 새로 만나는 것들이 있지요. 내가 미처 못본 것도 있고, 나도 모르게 와 있는 것들도 있지요. 일상은 늘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뻔하지만 새로 만나는 것들이 있어 즐거워지고 늘 기다려 주는 누군가가 있어 더 다정해집니다.

섬세한 발걸음을 따라가는 수채화가 햇빛과 놀고 있는 그림자처럼 잔잔하게 출렁여 옵니다. 주인공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마치 책을 보고 있는 내가 계단을 오르듯 만드는 그림 구성이 돋보입니다.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늘 높은 곳으로 오르고 오르는 것밖에 달리 할 일이 없는 양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파른 현실이더라도 주위에 눈길을 주고 가만히 앉아 내려다보는 일, 모든 것이 작아지고 더 소중해지는 순간입니다.
오픈키드 컨텐츠 팀장.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했습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하다 재미있는 어린이 책을 실컷 보려고 오픈키드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딸아이에게서 그림책 독법을 배우기 바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