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3월 통권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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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읽었어요]
그림책과 놀며 자라는 아이

강경범 | 2003년 03월

힘든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는 작은 얼굴이 있다. 세 살짜리 엄살 공주 우리 딸. 벨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공 굴러오듯이 내게로 달려와 안겨 버리는 딸내미.

아이는 돌도 안 됐을 때부터 책을 가지고 놀아서 그런지 그림책을 읽어 주면 무척 좋아한다. “책 읽자∼” 하면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들고 와서 내 무릎에 착 앉는다.

내가 어릴 적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누나들이 쓰는 교과서를 읽거나, 이웃의 친구에게서 위인전 몇 권을 빌려 보는 것이 책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이런 내 경험 때문인지, 우리 딸아이에게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그림책을 많이 읽어 주고 싶고 그림책을 읽는 것은 내게도 큰 즐거움이다. 딸아이에게 하루 삼십 분 정도 그림책들을 읽어 주다보니 내게도 그림책을 고르는 나름대로의 안목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어린아이들이 보는 책은 그림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색채가 너무 화려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아이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단순 명료하며 그림이 복잡하지 않은 그림책들을 읽어 주려 한다.

우리 딸아이에게 자주 읽어 주는 책 중에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이라는 책이 있다. 치과에 가기 싫어하는 악어와 손님인 악어를 무서워하는 치과 의사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전개된다. 이 책은 볼 때마다 킥킥 웃게 만드는 장면들이 많다.

『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표지와 본문

서로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무서워하는 모습, 치료받던 악어가 아프다며 치과 의사의 손을 꽉 물어 버리는 모습, 다시 치료하자며 서로 다짐하는 모습 등등. 군더더기 없이 큼직큼직한 그림들과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까지도 담백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우리 딸에게 읽어 주는 단골 메뉴 중에 『부엉아, 우리랑 놀자!』 『거북아, 정말 고마워!』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우리 집에 오랜만에 놀러 온 큰 누님이 가져다 준, 조카들이 물려준 그림책이다. 조카 녀석들이 어찌나 많이 봤는지,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책인데, 우리 딸도 시도 때도 없이 꺼내 보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재잘재잘 꼬마책’시리즈 가운데 두 권으로, 아내는 그림이 촌스럽다고 하지만 내 눈과 딸아이의 눈에는 좋게만 보이는 그림책이다.

‘재잘재잘 꼬마책’시리즈『부엉아, 우리랑 놀자!』, 『거북아, 정말 고마워!』표지

『거북아, 정말 고마워!』는 친구들과 놀던 거북이가 고양이와 여우에게 이른바 왕따를 당하지만, 우박이 떨어져 친구들이 곤란에 빠지자 친구들을 자신의 등껍질 밑으로 피신시킨다는 내용이다. 자신을 외톨이로 만든 친구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친구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거북이의 착한 마음이 전해지는 책이다.

『부엉아, 우리랑 놀자!』는 낮에는 잘 볼 수 없는 부엉이를 위해 동물 친구들이 안경에 까만 색을 칠해 밤안경을 만들어 준다는 내용이다. 이 책은 내가 우리 딸에게 의도적으로라도 많이 읽어 주려고 하는 책이기도 하다.

『부엉아, 우리랑 놀자!』의 본문

18개월부터 사시 교정을 위해 안경을 쓰게 된 아이에게 안경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 주고 안경 쓰는 불편함을 덜 느끼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경을 쓰고 좋아하는 부엉이의 모습이 나오면 딸아이는 자신의 안경을 가리키곤 한다. 아마도 자기처럼 안경을 쓴 부엉이가 친숙하게 느껴지나 보다.

저녁 식탁에서 아내는 아이의 안과 정기 검진을 다녀왔다면서, 우리 딸은 눈이 더 심하게 안 좋은 다른 아가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이가 안경을 처음 썼을 때, 눈물이 핑 돌던 일이 생각난다. 처음엔 수시로 안경을 벗어서 내동댕이치던 아이도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안경을 익숙하게 잘 쓰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민감해 하던 아내도 이젠 그런 일에 크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아빠인 나도 새해엔 우리 딸이 그림책의 주인공 부엉이처럼 마음씨 고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며 씩씩하게 잘 자라길 바랄 뿐이다.

『거북아, 정말 고마워!』의 본문
강경범/평범한 직장인으로 결혼 삼 년 만에 태어난 딸아이의 탯줄을 자르던 순간을 잊지 못하며, 딸아이와 숨바꼭질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입니다. 출장 가서도 집으로 거는 전화에 제일 먼저 딸의 안부를 물어 아내에게 핀잔을 듣곤 한답니다. 올해에는 딸아이에게 건강한 동생을 선물해 주려고 금연과 운동을 목표로 정해 두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