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3월 통권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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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꼼꼼히 들여다보기]
따뜻한 과학 그림책 『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

엄혜숙 | 2003년 03월

『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표지
씨앗의 생명력은 놀랍다. 한겨울 내내 가만히 있다가, 봄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연두색 새싹으로 변한다.

수천 년 동안 묻혀 있던 고대의 유물 속에 씨앗 몇 개가 있었는데, 이 씨앗을 심었더니 ‘싹이 돋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수천 년 동안 씨앗은 잠자고 있었을 뿐, 죽은 게 아니었다. 여전히 자기 속에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무심히 보아서 그렇지, 모든 씨앗에는 이처럼 놀라운 생명력이 숨어 있다. 춥고 삭막한 겨울을 넘기고, 봄이 되어 적절한 환경만 조성되면, 씨앗은 언제 어디서라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무럭무럭 자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들도 어찌 보면 씨앗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작지만, 그 속에 무한한 생명력을 담고,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 말이다.

물음과 궁금증

이 그림책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표지에서 “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하고 물은 다음, 연거푸 속표지에서 “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하고 묻는다.

제목이 연거푸 두 번 나오는 거지만, 그림책을 보는 사람은 이 문장을 보면서 ‘정말 이 씨앗은 무슨 씨앗일까? 이 씨앗에서 무엇이 자랄까?’하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 다음에 본문을 보면, “꽃이 되고 싶을까?”라는 문장과 함께 움직이는 듯한 꽃 모양이 담긴 씨앗 그림이 나온다.

또 한 장을 넘기면, “나무가 되고 싶을까?”라는 문장과 함께 움직이는 듯한 나무 모양이 담긴 씨앗 그림이 나온다. 이렇게 씨앗에 꽃과 나무 모양을 넣어 표현함으로써 씨앗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1. 2) 표지부터 이 장면까지는 누군가 몹시 궁금해 하면서 씨앗을 관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림 1>


<그림 2>


씨앗의 땅 속 생활

그 다음부터는 씨앗의 일생을 보여 준다. 맨 처음 장면은, 어느 가을날 씨앗이 땅에 떨어진 모습이다. 갈색 톤의 화면을 보면, 땅 속에 있는 씨앗 주위로 흙이 움직이고 있고, 그 위에 있는 하늘에는 구름이나 바람 같은 게 떠 있다. 그런데 갈색 땅은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지만, 갈색 하늘은 낯선 표현이다. 이렇게 하늘 빛깔을 주관적 색채로 표현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씨앗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존재로 인식하게끔 한다. (그림 3)

<그림 3>


다음 장면을 보자. 이번 장면은 겨울이다. 보라색이 가미된 화면을 보면, 땅 속에 있는 씨앗은 가만히 있고, 그 위에 있는 하늘에는 눈이나 바람 같은 것이 몰아치고 있다. 씨앗 주위에는 유달리 보라색이 짙게 나타나 있고, 땅과 하늘에도 보라색이 감돌고 있다. 바람이나 눈도 보라색이다. 이처럼 보라색은 추운 한겨울을 표현하는 색깔인 것이다. 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색이 온통 보라색임에도 불구하고 씨앗은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림 4)

<그림 4>


다음 장면을 보자. 이번에는 봄이다. 연두색으로 물든 땅과 하늘에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씨앗도 어느덧 연두색으로 물들고 있다. 연두색 새싹을 예감하게 하는 빛깔인 것이다. 봄날, 물기를 머금은 땅과 하늘, 씨앗을 모두 이렇게 연두색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주관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림 5)

<그림 5>


다음 장면에서는 햇볕이 씨앗에게 하는 일을 보여 준다. 봄비가 씨앗에 물기를 머금게 해 주었다면, 햇볕은 땅을 데워 주어 씨앗의 껍질을 터지게 한다. 화면을 보면, 땅은 어느덧 붉은 색조로 가득하고, 하늘에는 노란색과 붉은색이 넘치는 생명의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붉은색을 띠게 된 씨앗이 터지면서 하얀 뿌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 장면을 보면, 씨앗 주위의 땅이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다. 엄청난 에너지가 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림 6)

<그림 6>


다시 한 장을 넘겨 보면, 씨앗이 땅 속에서 흙을 비집고 땅 위로 나오는 모습이 나온다. 땅 속에서는 뿌리가 아래로 쭉쭉 뻗어 내려가면서 양분을 빨아들이고, 씨앗은 어느덧 새싹이 되어 땅 위로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씨앗이 새싹이 되어 땅으로 나오는 데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글을 보면,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땅 위로 땅 위로 밀어 올려.”라고 되어 있는데, 그림에서는 씨앗 주위에 있는 땅과 하늘이 모두 움직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장면에서야 땅은 다시금 갈색으로 돌아와 있고, 하늘도 옅은 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다. (그림 7)

<그림 7>


새싹에서 다시 씨앗으로

땅 위로 올라온 씨앗은 이제 더 이상 씨앗이 아니다. 새싹이다. 여태까지는 씨앗 한 알에 초점을 맞추어 씨앗의 땅 속 생활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는 여러 개의 새싹이 땅 위에 솟아있는 모습을 펼친 화면으로 보여 준다. 씨앗이 온 힘을 다해서 땅 위로 나왔더니, 자기만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여러 친구들이 땅 위에 올라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연초록 새싹들은 마치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그림 8)

<그림 8>


다음 장면을 보자. 어느새 싹은 자라서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씨앗을 중심으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 싹이 자라는 과정은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 꽃을 보니, 봉숭아 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앞에 나왔던 씨앗은 봉숭아 씨였나 보다. 이미 꽃이 진 자리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이 열매 속에는 ‘씨앗이 꼭꼭 숨어’ 있다. (그림 9)

<그림 9>


다음 장면을 넘겨 보면, 봉숭아 열매가 탁 터져 버리고 여기에서 수많은 씨앗이 튀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한 알의 씨앗에서 이렇게 수많은 씨앗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림 10)

<그림 10>


우리 곁에 있는 식물과 씨앗들

한 장을 더 넘겨 보자. 여태까지의 그림이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데 반해서 이 화면의 그림은 객관적인 세밀화로 그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에 있는 식물들의 씨앗이 한 화면에 담겨 있다. 모양도 제각기 다르고, 크기도 제각기 다른 씨앗들. 글을 보면, “풀도 나무도, 채소와 곡식과 과일도 처음에는 한 알의 씨앗”이었다고 되어 있다. 제각기 씨앗 맺는 시간은 다르지만, 우리 곁에 있는 식물들의 씨앗들을 모아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림 11)

<그림 11>


씨앗들은 풀이 되기도 하고, 채소가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한다. 씨앗이 되고 싶은 대로, 아니 씨앗 속에 담겨 있는 그림대로 제각기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나무들은 모여서 숲이 되기도 한다. (그림 12. 13. 14. 15.)

<그림 12>


<그림 13>


<그림 14>

<그림 15>


맨 마지막 장면은 다시금 씨앗 한 알로 돌아온다. 땅 속에 있는 씨앗 한 알이 싹틀 날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또 다른 생명의 이야기를 낳을 소중한 씨앗인 것이다. (그림 16)

<그림 16>


따뜻한 과학 그림책

『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는 흔히 보는 과학 그림책과는 다른 면이 있다. 씨앗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알려 주기보다는 씨앗을 매개로 하여 생명의 본질을 보여 주고자 하는 그림책인 것이다. 이러한 면은 그림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본문 처음에 등장하는 씨앗 그림을 보자. 씨앗은 자기가 되고 싶은 것, 자기가 꾸는 꿈 속에서 미래를 선취한다. 꽃이 되고 싶은 씨앗은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싶은 씨앗은 나무가 된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그 꿈은 씨앗 속에 담긴 유전자 정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책은 이러한 과학적 설명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을까?”라는 물음과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독자에게 정보를 객관적으로 알려 주기보다는 씨앗에서 시작하는 생명의 드라마에 독자가 함께 동참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림의 전체적 방향도 객관적 사실을 표현하는 쪽이라기보다는, 계절을 비롯한 환경의 변화와 씨앗의 변화를 보여 주면서 주관적인 색을 선택하여 표현하는 쪽이다. 즉 가을은 갈색, 겨울은 보라색, 촉촉한 봄비 내리는 봄은 연두색, 따뜻한 햇볕은 빨간색과 노란색 등을 사용하여 한껏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주조가 이러하기 때문에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표현된, 우리 곁에 있는 여러 씨앗들이 모인 그림이 이 그림책에서는 오히려 낯설다. 어울리지 않고 튀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씨앗처럼 아이들은 꿈꾸며 자란다. 알맞은 환경이 되면 자신의 특성을 한껏 드러내고 무럭무럭 자라 풀처럼 되기도 하고, 꽃처럼 되기도 하고, 나무처럼 되기도 한다. 자기의 꿈대로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메시지를 『씨앗은 무엇이 되고 싶을까?』에서 보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엄혜숙/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오랫동안 어린이 책을 기획하고 만들었습니다. 어린이 책 기획, 글쓰기, 번역하는 일 등을 하고 있습니다. 인하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다니면서 아동 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는 『두껍아 두껍아』『혼자 집을 보았어요』가 있습니다. 엮고 번역한 책으로는『이야기 이야기』『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