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3월 통권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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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우리 그림책 들여다보기]
따끔한 우화가 생생한 아름다운 그림책

최선숙 | 2003년 03월

표지에 크게 그려진 눈 감은 소의 얼굴이 평안하고 정겹습니다. 쓰다듬어 보고 싶도록 생생한 질감의 털빛, 어진 눈을 내리덮은 눈꺼풀 아래로 섬세하고 긴 속눈썹이 불러일으키는 아늑함이 고운 빛깔의 바탕과 퍽이나 잘 어울렸습니다. 이 평온을 건드려 깨뜨릴 날것, 모기가 날개를 팔랑거리며 소의 콧잔등에 막 내려앉으려는 찰나입니다. 구성력이 예사롭지 않은 표지 그림 위에는 크기를 달리해 모기와 황소를 대비시킨 제목이 앉았습니다.

기대와 설레임으로 책을 열면 면지 가득 먼동이 터 옵니다. 한지가 몇 번이고 머금은 색들이 하늘빛을 품어 냈습니다. 이야기는 반 세기도 더 전의 우리 우화입니다. 1949년에 현동염이 쓴 작품인데 우리 입에 낯설게 감겨 오는 말들이 있어 새삼 정신이 번쩍 듭니다. 풍자하고 빗대어서 깨우치는 바가 재미있고, 글에서는 시대를 겨냥한 정신과 힘이 느껴집니다.

이런 글에 그림작가는 과연 어떤 해석을 더해 그림을 펼쳐 갈까? 우리 전통 회화 기법과 사실주의에 기반한 그림을 그려온 작가가 선택한 사실성에 혀를 내두릅니다. 황소를 이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림에 그 성품까지 담아냈으니까요. 옛 초상화와 자화상이 퍼뜩 떠오릅니다. 수염 한 올까지 세듯이 그려냄으로써 대상의 정신까지 담으려 했던 그 눈빛과 마주했을 때의 생생한 전율 말입니다.

황소의 선하고 우직한 눈매며 여물을 씹고 있는 입매가 가위 압권입니다. 1년 여를 공들인 작가의 노고가 만들어 낸 세밀한 한국화가 캐릭터의 성격을 생생하게 살려 냈습니다. 말 많은 물것들, 모기와 파리를 세밀화로 그리되 글에 나타난 성격까지 부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생각하며 새삼 감탄합니다. 깃털이 제법 닭꼴을 갖추어 가는 중병아리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여물죽, 외양간의 거미줄까지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합니다.

사실성이 획득해 낸 진정성을 따라가며 우리 정서와 우리 글의 멋을 한껏 맛보는 아름다운 우리 그림책입니다. 하지만 좋은 것을 보면 욕심이 더 나 언제나 안달하는 자, 있기 마련이지요. 원작을 좀 더 쉽고 그림책에 맞게 재구성했으면 어땠을까요? 이 그림책이 '작가 앨범'이 아니라 '민들레 그림책' 시리즈로 묶인 까닭에서 말입니다. 안달하며 들볶는 자, 이렇게 한 마디 해 봅니다. "모기야, 파리야, 입 좀 반만 다물어라."
오픈키드 컨텐츠 팀장.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했습니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일하다 재미있는 어린이 책을 실컷 보려고 오픈키드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딸아이에게서 그림책 독법을 배우기 바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