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03월 통권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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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작가 노경실이 권하는 우리 동화 ]
숨은 이야기꾼을 만나는 기쁨

노경실 | 2003년 03월

매월 나에게 주어진 이 ‘한 페이지’를 위해 내가 우선 생각한 것은 ‘소소한 이유로 다른 책들 밑에 감추어져 있거나, 세상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책의 발견’이란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책, 어느 추천 목록에 빠짐없이 올라오는 책보다는, 어느 연유에서인지 우리가 가까이 하지 못했던 책의 발견! 그래서 교보문고의 어린이 책 코너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책꽂이를 서성이던 나는 유효진이라는 낯선 작가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요즈음 어린이 책의 특성이, 내용을 알기도 전에 외형에서 오는 첫 느낌으로 그 책의 질에 대해 미리 짐작하게 하는 현실인지라, 처음에는 『뜸부기형』에게 보내는 나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러나 책 구경 나온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밀리면서 몇 페이지를 넘기던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책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오랜만에 동화책 읽는 즐거움에 푹 빠져 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일곱 살짜리 디도와 그 아이의 형인 남도는 어머니와 산다. 그런데 불행이란 게 늘 혼자 오지 않는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이번엔 엄마의 신장에 문제가 생긴다. 엄마는 두 아이를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병치레에 들어간다. 그 바람에 디도와 남도 형제는 더욱 우울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는데, 그때 어둠 속의 별똥별처럼 반짝거리며 나타난 존재가 서른여덟 살 노총각 뜸부기형이다. 두 아이에게 뜸부기형의 존재는 그가 좋아하는 별똥별처럼 세상의 기준으로는 힘없고 미미한 빛이다. 하지만 그 빛은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맘먼 신과 음란의 물결로 혼탁한 도시를 밤에도 잠들지 못하게 하는 현란한 네온사인과는 전혀 다른 빛이다.

이러한 이야기 구조에 맞추어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탄탄하게 이끌어 나가는 이야기꾼이다. 재미와 든든한 문장력, 문학이 가진 미덕 중 하나인 위로와 따스함을 갖춘 감동. 게다가 작가는 영민하다. 각 장마다 나오는 디도의 짤막한 일기 같은(때로는 잠언이나 경구 같은) 문장은 이 작품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어린이 문학’에 걸맞는 튼튼한 구조와 단단한 문장력을 갖춘 호흡이 긴 책을 만나게 되어 나는 지금도 즐겁다.

[쌉싸름한 한마디] 그런데 왜 이런 책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냉정히 말하자면 우선 책의 외형이 내용을 전혀 따르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신간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바쁘고 정보가 부족한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기 딱 좋은 상품(?)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의 섹션이 ‘21세기 신예작가 특선’이라 하였지만 독자의 눈에는 한물간 구간으로 보일 정도다. 책도 독자의 귀중한 돈과 마음을 요구하는 상품이다. 남의 돈, 남의 시간, 그리고 남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 의미만으로는 부족하다.
노경실│1982년 중앙일보사의 ‘소년중앙 문학상’에 동화 「누나의 까만 십자가」가 당선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상계동 아이들』『동화책을 먹은 바둑이』『복실이네 가족사진』『갑수는 왜 창피를 당했을까』들을 비롯한 많은 동화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