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웹진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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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에 나누는 이야기]
가을. 生의 스승으로 찾아온 날

정인화 | 2002년 10월

그림책으로의 여행

항상 느끼지만 자연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마음까지 영글게 하는 이 계절, 아이와 감홍빛 가을이 물드는 그림책으로의 여행은 어떨는지요.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이 돋보이는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의 그림책은 이 가을 아이들을 기꺼이 환상의 세계로 이끌 것입니다. 색은 그림의 구성요소 중 상상력이 가장 적게 발휘되는 요소라고 하지요. 하지만 색의 마술사라고도 불리는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는 그림책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색으로 진정한 상상력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는 듯합니다. 그의 그림책에 나오는 동물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색을 가지고 자신의 성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다람쥐』『산양을 따라갔어요』『펠리컨』『토끼와 거북이』등의 동물들의 색과 성격을 비교해 보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 중『다람쥐』는『아기 곰의 가을 나들이』처럼 다람쥐의 생태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알려주며 아이를 자연으로 한 발 더 다가서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다람쥐』『산양을 따라갔어요』『펠리컨』『토끼와 거북이』표지

가을 냄새 짙은 자연 속에 들어서면 굳이 보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바람’이죠. 그림책 속에 바람을 불어넣은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색깔대로 바람을 만들어 냅니다.

부드러운 수묵화로 아이들의 눈에 비친 모습을 담아 낸 정순희의『바람 부는 날』은 늘 우리 곁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하면서도 순수한 아이들과 우리 동네 어딘가를 등장시킴으로써 친숙하게 다가섭니다. 날아가는 연을 쫓아가는 여자 아이를 통해서 바람 부는 날의 정경을 수채화로 차분하게 잘 표현한 그림책입니다.

같은 바람이 부는 날의 모습이지만 팻 허친즈의 바람은 또 다릅니다.『바람이 불었어』에서는 이국적인 모습의 등장 인물들과 거리, 그리고 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바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소리가 있습니다.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나무에 힘차게 불어대는 바람이 휘~~윙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불어 올 듯 보입니다. 그리고는 이내 영국의 거리를 커다란 외투를 꼭꼭 여미고 바람의 수다를 들으며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림책 속에서 계속 불어대는 바람은 신나게 놀다가 어느 한 순간 놀기를 멈춘 장난꾸러기 아이와도 같은 모습입니다. 그래서 밉지가 않은……. 이것은 아마도 단순한 본문 내용과 발랄한 그림으로 재미있는 그림책을 창작해내는 팻 허친즈만의 매력일 것입니다.

『바람 부는 날』『바람이 불었어』『바람이 멈출 때』표지

샬로트 졸로토 글에 스테파노 비탈레가 그린『바람이 멈출 때』는 눈에 보이는 정경 대신에 마음에 새겨지는 삶의 진리를 담고 있는 그림책입니다.

“ 왜 낮이 끝나야 하나요? ”
“ 끝나는 것은 없어. 어딘가 다른 곳에서 시작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시작한단다.”

작가의 vision을 잘 보여 주는 그림책 『바람이 멈출 때』는 함께 읽는 어른에게 깊은 사색과 삶에 대한 경건함을, 아이에게는 새로운 시작과 이어짐을 희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크기를 넓히는 감동적인 그림책입니다.

가을. 生의 스승으로 찾아온 날

마루에 길고 긴 해 그림자가 수줍게 청명함을 가지고 들어서면, 아이의 기다란 그림자가 어우러져 그림 그려지는 아침……. 창가에 기대서 순식간에 키가 훌쩍 커버린 자신의 모습을 뽐내기에 신이 난 아이가 마냥 좋기만 한 날. 우리 집에 가을이 시작 됐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왜 설레는지, 무엇이 변하게 하는지는 몰라도, 그 작은 마음속에서는 벌써 가을 바람을 맞이한 모양입니다. 창 밖의 싸한 공기가 가슴에 닿을 때쯤 일상의 평범함을 아주 조금씩 붉게 물들이는 가을 바람이 이제 다시 시작되는 우리 生의 스승으로 찾아온 것을 가슴으로 먼저 받아들인 거겠지요.

이런 날엔 성장해 가는 아이의 모습을 가을 풍경 속에 아름답게 담아낸 참 좋은 그림책 하나가 떠오릅니다. 판화에 묻혀진 처음 물감이 그대로 가슴에 쿡 눌러 찍힌 듯 진하게, 깊게 그리고 오래오래 새겨지는 가을 이야기. 『아기 곰의 가을 나들이』가 그것입니다.

지극히 절제된 색.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풍성하게 다가서는 가을의 숲. 청량한 가을 산 울긋불긋 물든 울창한 숲에서 바람 따라 작은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엄마 곰과 아기 곰은 겨울준비를 하느라 바쁩니다. 잘 익은 머루를 실컷 먹고,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오른 아기 곰의 가슴은 마냥 두근거립니다. 너무 높이 올라온 탓만은 아닙니다. 오늘 밤 달빛 가득한 강으로 연어를 잡으러 가는 설렘과 기다림이 차갑게 반짝이는 파란 하늘만큼이나 좋기 때문입니다.

『아기곰의 가을 나들이』표지와 본문

붉게 물든 노을. 어느 새 저녁놀이 사라지고 자연의 등불이 밝혀진 강가에서 연어를 기다리는 엄마 곰과 아기 곰.
드디어 반짝이는 연어 떼가 몰려들고,
“엄마처럼…….”
혼자…….
“잡았다!”

자기 힘으로 잡은 연어 맛이란! 오늘 밤 아기 곰은 신기한 물 속 세계와 별처럼 반짝이는 물고기의 꿈을 꾸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자라날 것입니다.

글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어미 곰의 애틋한 사랑과 아기 곰의 용감한 성장 일기가 판화로 한 조각 한 조각 새겨진 참 좋은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의 즐거움은 아기 곰의 홀로서기를 함께 지켜보며 그 성공에 짜릿한 전율과 감동을 맛보는 이야기의 흐름에서도 찾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섬세하게 그려진 판화의 매력일 것입니다. 아기 곰의 설레는 눈빛과 긴장된 털, 만지면 느껴질 듯 거칠게 조각된 나무껍질, 숲, 그리고 빠르게 흐르는 물살과 훅~! 빨려들듯 차가운 가을밤이 정말이지 참 아름답습니다.

그려진 색 하나 하나는 그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우러진 몇 안 되는 색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하기에 충분히 화려합니다. 선명한 파란 하늘은 아기 곰의 설렘이 되어 가슴으로 느껴지고, 그림책 가득한 저녁놀의 주황빛은 기다림의 끝과 긴장으로 상기된 아기 곰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또 깜깜한 밤의 색 검정을 한 가득 눈에 담고 그림책을 보노라면 노란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기 곰의 털이, 해냈다는 뿌듯함과 자신감을 더해 주고 밤 하늘 가득 떠 있는 꿈의 물고기는 아기 곰의 성장을 축복하는 듯 마음에 새겨집니다.

『아기곰의 가을 나들이』본문, 자연과 환상이 넘나든다
자연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아이의 마음에 자연을 닮은 나를 남겨 주는 그림책이면서 나를 닮은 자연 속 생명의 삶을 전해 주는 좋은 정보 책으로도 괜찮은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덮자니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내가 아기 곰이야!”

가을을 가슴에 깊이 담은 듯이 들립니다.
정인화/오랜 시간 교사였다가 한 아이의 평범한 엄마로 자리를 옮기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며 그림책 교육전문가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책이 마냥 좋기만 한 사람들이 모여 그림책 그림 읽고 글 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으로 주중의 하루를 만드는 모임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