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웹진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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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버지니아 리 버튼

김서정 | 2002년 10월

버지니아 리 버튼
버지니아 리 버튼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사람 얼굴이 아니라 집 얼굴이 떠오릅니다. 비유로 말하는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집이 얼굴인 겁니다. 지붕은 머리고, 한가운데 현관문은 코, 양쪽 유리창은 눈, 현관 밑 계단은 입이에요. 『작은 집 이야기』표지만이라도 한 번 본 적이 있다면 그게 무슨 소린지 당장에 아시겠지요.

버지니아 리 버튼의 작은 집은 그렇게 인간의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집을 부분 부분 뜯어보면 사람 눈, 코, 입처럼 보이도록 그린 게 전혀 아닌데도 전체로는 그렇습니다. 들여다볼수록 절묘합니다. 지붕 위의 빨간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마치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 머리카락을 머리 꼭대기에서 빨간 끈으로 길게 묶어 위로 솟게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창문 양쪽 두 개의 자그만 덧문 가운데로 펼쳐 세워 놓은 하얀 공책 같은 커튼 밑의 까만 공간은 마치 눈동자 같습니다. 그래서 눈썹은 치켜올리고 눈은 잔뜩 내려뜬,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보입니다. 현관 문 밑 두 개의 둥그스레한 계단은 영락없이 웃음을 머금은 도톰한 입술입니다. 아랫입술이 더 두껍고 거무스레한 게 흑인 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점점 변해가는 작은 집의 표정
이렇게 묘한 얼굴 노릇을 하는 이 집은 책장을 하나 하나 넘겨갈수록 우리에게 여러 가지 표정을 보여 줍니다. 눈을 착 내리뜨고는 발 아래 데이지를 흐뭇하게 쳐다보는 얼굴, 마차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 내다보는 얼굴, 학교로 달려가는 꼬마들을 다정하게 지켜보는 얼굴.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는 그저 환하기만 하던 이 얼굴이, 둘레가 도시로 바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차츰 어두워집니다. 눈은 찌푸린 듯하고 입은 더 이상 웃지 않습니다. 당혹스러워하다가 완전히 낙담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집 양옆으로 마천루가 들어서고 머리 위로 기찻길이 지나갈 때쯤 되면 그 얼굴은 완전히 표정이 없어집니다. 윗 부분 깨어진 유리창 뒤로 보이는 까만 공간은 그야말로 넋이 나간, 공허한 눈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죽은 눈도, 작은 집이 커다란 트레일러에 올라앉아 시골로 가는 장면에서는 다시 살아납니다. 머리 위 사과나무와 힘차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그리운 듯 올려다보는 표정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사과나무 꽃 피는 언덕 위에 자리잡은 작은 집은 완전히 행복한 얼굴을 회복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인공의 물체에 이토록 생생한 표정을 부여한 그림책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이 방면에 아주 뛰어난 선수입니다. 그녀가 그렇게 생생하게 살려낸 사물은 집뿐 아니라 기차(『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트렉터(『케이티와 폭설』), 증기 삽차(『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 케이블카(『케이블카 메이블Maybelle the Cable Car』)등 다양합니다. 커다랗고, 차갑고, 시끄러운 이 기계들의 어떤 점이 그녀를 그렇게 매혹시켰을까요.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표지와 본문
다양한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는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아이들은, 특히 사내 아이들은 정말이지 차를 좋아하거든요. 그 중에서도 크고 복잡한 차를 좋아하지요. 갓난아기 때부터 버스, 트럭, 포크레인, 기차 같은 것들에서 휘둥그레진 눈을 떼지를 못하더라고요. 두 아들을 자기 작품의 일차 독자로 삼아 그 아이들이 모든 장면을 다 마음에 들어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는 작가로서는, 소재 선택에 이 두 아들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도 크게 자리잡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그녀는 삽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작은아들 마이클을 위해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를 만들고, 책머리에 마이클에게 바친다는 헌사까지 적어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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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좋아한다는 것 이외에도 이 기계 선호 경향에는 버튼이 활약했던 3, 40년대의 역동적인 기계 문명 발달 현상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급속히 진전됐던 도시화 현상이 버튼의 작품 세계를 상당 부분 형성했습니다. 『작은 집 이야기』가 바로 그 결정체입니다. 그녀는 그 당시 기계 문명에 의해 눈이 핑핑 돌 정도로 급변하던 사회와 그 안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한 작은 집의 운명을 그려냈습니다. 사과꽃과 데이지가 피던 조용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을 야금야금 도시가 먹어 들어오더니 급기야는 흔적도 없이 삼켜 버립니다. “아주 먼 곳에서 도시의 불빛”을 보면서 작은 집은 “도시란 어떤 곳일까, 도시에 살면 기분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정작 도시 한복판에 자리잡게 된 뒤에는 “왠지 도시하고는 친해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거쳐 “도시가 싫어지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밤마다 시골 꿈”을 꿉니다. 데이지꽃이 피고 사과나무가 달빛 속에서 춤을 추는 꿈을요. 그리고 결국은 그 꿈속의 시골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케이티와 폭설』 표지와 본문
이 책에 대한 한 연구 글에 ‘과학 기술의 변화와 근본적인 진실성’ 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도시와 시골을 양 대조점에 놓고 도시는 과학 기술의 변화를, 시골은 근본적인 진실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여기는 시각이었습니다. 『작은 집 이야기』에서 도시와 시골이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시골이 근본적인 진실성을 나타내고 도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건 조금 비약이 아닌가 싶었더랬습니다. 버지니아 리 버튼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진실과 허위의 대비가 아니라 ‘어울림’ 혹은 ‘자리 찾기’의 문제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위협적이거나 위선적인 곳이 아니라 그저 바쁘고, 시끄럽고, 먼지 많고, 무심한 곳일 뿐입니다. 이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그림에서 적대감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작은 집은 그저 그곳에 어울리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자기 자리를 찾아 행복한 얼굴로 시골로 돌아올 때에는 그 싫었던 도시조차 배경 속에 조화롭게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작은 집이 트레일러에 실려 가는 장면을 보세요. 그 유명한 S자 구도가 아무 방해도 없이 매끈하게 펼쳐지고, 맨 꼭대기에 마천루가 솟아 있는 도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작은 집 둘레에서 도시와 교외와 시골이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집 이야기』 표지와 본문
버튼의 다른 책에서도 자연과 도시, 옛날과 오늘날의 그런 어울림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에서는 증기 삽차가 언덕을 밀고 굽이를 반듯하게 펴기 위해 땅을 마구 파헤치지만 구불구불 언덕 위의 작은 집들이 발 밑으로 반듯하게 난 고속도로를 쳐다보는 얼굴에는 경쾌한 놀라움의 표정이 어려 있습니다. 텍스트도 으쓱거리는 분위기로 나갑니다. 그리고 결국,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구시대의 증기 삽차가 최신식 시청 건물의 터를 파고 나중에는 난방장치가 되어 언제까지나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화목한 결말을 보여 줍니다. 『케이티와 폭설』에서는 거대한 자연의 힘이 도시를 마비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한 판의 신나는 모험 놀이처럼 펼쳐집니다. 『장난꾸러기 기관차 추추』에서 사람들 통제를 벗어나 갖은 말썽을 부리던 증기 기관차 추추는 인적 없는 깊은 산골까지 들어갔다 나온 후에 도시에 적응할 새 힘을 얻습니다.

버튼은 어떤 생명체, 어떤 사물이든, 자기가 자신의 주인 노릇을 할 장소와 상황을 각각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설득력 있게, 낙천적이고도 활달하게 그려냅니다. 태양이 탄생하던 때부터 지금 우리가 사는 때까지 그 엄청난 시간의 흔적을 한달음에 달려 보여 주는 놀라운 책 『생명의 역사』 결말 부분에는 그녀의 그런 생각이 집약되어 담겨 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역사의 끝자락에 “자 이제부터는 여러분 자신의 이야기가 펼쳐질 차례예요.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죠.” 하며 초대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드라마는 영원히 끝나지 않으며,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변화하며, 언제나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눈을 가지고 있는 버지니아 리 버튼의 책이니, 사물들이 그토록 생생하게 살아 대서사시를 펼쳐 보여 주는 게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 표지와 본문
버튼의 책은 그림도 좋지만, 직접 쓴 텍스트도 일품입니다. 더하고 뺄 것 없이 짱짱합니다. 번역본은 문제가 좀 달라지지만, 영어 원문은 아주 리드미컬해서 읽어 주기 딱 좋다고 합니다. 그녀는 우선 스케치를 해서 그림들을 벽에 빙 둘러 붙여 놓는다는군요. 그렇게 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그림을 고치고 또 고치고, 그러다가 ‘더 이상 미룰 핑계가 없어졌을 때’ 에야 타이프 앞에 앉아 글을 썼다나요. 그림책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가를 말해 주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글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붙여 놓고 들여다보면, 그림이 말을 해 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작은 집과 기관차와 트렉터가 벽에 붙은 채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버튼은 또 어떻게 글을 써야 아이들이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령이 좋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본질을 파악했다는 말입니다. 아들들을 위해 그렸던 그림책이 바로 그 아들들에게 외면당한 후 절치부심 노력해서, 드디어 깨달았던 것입니다. 『작은 집 이야기』로 칼데콧 상을 받으면서 그녀가 한 말을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맺겠습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방법론이지만, 글을 쓰면서 실천으로 옮기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생명의 역사』표지와 본문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나는 몇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우리는 절대로 아이들에게 ‘낮춰 쓰지’(write down : 적어 내려가다, 아이들을 위해 쉽게 쓴다는 뜻이 있지만 ‘평가 절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버튼은 지금 ‘말놀이 pun’를 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색내는 것을 즉시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려 버립니다. 게다가 아이들의 직관력은 명확하고 예리합니다. …… 모든 세부 묘사들은, 아무리 작고 하잘것없는 것이라도, 그것 특유의 흥미와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책의 전체 디자인에 딱 들어맞아야 합니다."
김서정 / 1959년에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독일 뮌헨 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한국프뢰벨 유아교육연구소의 수석 연구원과 공주 영상 정보 대학 아동 학습 지도과 교수를 지냈습니다. 동화 작가와 아동 문학 평론가,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화『믿거나 말거나 동물 이야기』『유령들의 회의』를 썼고,『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행복한 하하호호 가족』『용감한 아이린』『어린이 문학의 즐거움』(시리즈)『용의 아이들』등 옮긴 책이 아주 많습니다. 평론집 『멋진 판타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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