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08월 웹진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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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작가를 찾아서]
어린이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 작가 김세현

공혜조 | 2002년 08월

이포대교에 올라 남한강을 건너 강하면으로 들어섭니다. 항금리 이정표를 따라 길을 잡으니 한껏 한가로워 보이는 시골 풍경이 그림 같습니다. 마을 뒷산에 금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하여 황금리라 했는데, 금이 많다는 사실을 감추느라 항금리라 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된 항금리 옛마을로 가는 고갯마루를 힘겹게 올라서면 요 몇 년 새 새로 지은 전원 주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 고만고만한 전원 주택 한 채에 김세현 선생님이 살고 있습니다.

김세현 선생님과 니콜
집 앞에 멈추는 낯선 차를 보고 컹컹 짖는 듬직한 개 니콜의 이름을 부르며 선생님이 내다보십니다. 탁 트인 전망을 뒤로하고 현관을 들어서니 달리는 말이 잠시 뒤돌아보는 그림 아래 쓴 입춘대길이 손을 반깁니다. 점심으로 마련하신 열무 비빔국수를 먹으며 어떻게 여기 터를 잡으셨냐고 여쭈니 작년 가을에 하도 서울 살이가 답답해서 옮겨 살 곳을 알아보러 다니다가 단박에 여기가 마음에 들어서 바로 집을 계약하고 이사를 했노라며 웃으십니다. 아직은 대규모 전원 주택이 들어서지 않고 조용한 곳이라 마음이 끌리셨던가 봅니다. 도시의 소란을 피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보자고 마음을 정했던 게지요.

선생님은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초등 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오랫동안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학교 뒤에 있던 사택에서는 아래로 운동장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들판은 금강에 젖줄을 대고 있었다고 합니다. 비단 같은 강이라는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산골에서 태어난 선생님은 햇빛 아래 흐르는 강물이 만들어내는 물그림자 속에서 헤엄치는 무지개빛 물고기를 쫓으며 하루를 보내면서 자랐지요. 아직 자연이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그 때 그 호젓한 산골 마을에서 선생님은 풀과 바람과 강물과 나무의 품에 안겨 떠 다니는 구름에 마음을 싣기도 하면서 자랐던 게지요. 하지만 그런 행복한 어린 시절은 초등 학교 2학년이 되자 막을 내려 버리고 말았답니다.

“아버지가 대전으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야말로 몸부림을 치면서 울었죠. 대전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때만 해도 한창 도시가 만들어지던 시절이라 어수선했어요. 집 가까운 곳에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짜는 공장이 있었고, 집에서 한참 떨어진 천변에는 벽돌 공장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 개천에는 고작 올챙이나 개구리가 살 뿐이었지요.”

올챙이나 개구리뿐 물그림자에 어룽어룽 무지개빛을 내는 물고기가 없는 대전이라는 도회지에 살면서 선생님은 떠내려오던 물까마귀떼를 쫓곤 하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말없는 소년이 되어 갔습니다.

학교 관사 앞에서 찍은 사진
아버지 앞에 안긴 어린이
“시골, 특히 제가 태어나 자랐던 곳은 제게 아주 특별해요. 저는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이 사시는 대전에 갈 때도 고속도로로 안 가고 국도로 가면서 그 동네를 들렀다 가요. 그 동네에는 이모 신발을 훔쳤던 무서운 문둥이가 살았다는 기억이 있죠. 물론 어른이 되어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어렸을 때는 어찌나 무섭던지요. 지금이야 어릴 때 앉아 놀았던 높은 계단이나 넓은 뜰이 나지막한 계단으로, 좁은 마당으로 변해 보이죠. 제가 어렸을 때 느꼈던 것을 제 아이가 느꼈으면 좋겠어요. 자연의 아름다움, 환경의 아름다움을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싶지요. 나 자체도 자연의 한 부분이므로, 아버지로서의 내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싶고요. 그래서 나는 그림으로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대전으로 이사한 뒤에는 집 근처에 있던 벽돌 공장에 자주 놀러 갔지요. 동네 아이들은 벽돌 공장에 쌓아 둔 벽돌더미 위에 커다란 널빤지 따위를 얹어 각자의 집을 짓고 그 안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삼사학년이 될 때까지 학교만 갔다 오면 그 아지트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런 생활을 하던 중에 나보다 한 살 위인 벽돌 공장집 아들이 만화를 따라 그리는 것을 보았어요. 얼마나 놀랍던지요. 시골 살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만화를 처음 접하고 얼마나 황홀했는지 몰라요. 나는 그 아이에게 만화 책 찢은 것 두어 장을 얻어 집에 가지고 왔지요. 굉장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소중히 들고 말이에요. 그날부터 종이로 된 것은 공책이든 책이든 모두 내가 그린 만화로 채워졌습니다.

생활도 많이 달라지게 되었지요. 그날 이후로 만화방을 드나들게 되었고, 어깨동무 같은 책도 알게 되었고, 그림을 그리며 나를 달래게 되었던 것이죠. 그림은 도시 생활에 적응 못한 아이가 찾았던 탈출구였습니다. 누나와 여동생, 남동생 이렇게 2남2녀였는데, 장남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게다가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부딪치니 더욱 적응을 못했던 거지요.”

아마 그때 시골을 떠나지 않으려던 그 몸부림이 선생님을 산골 마을로 다시 불러들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실 한켠에 세워 둔 양궁을 바라보니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십니다.

거실과 부엌 사이에 서 있는 양궁
“초등 학교 4학년 때 학교 양궁부에 들었어요. 하도 도시 생활에 적응을 못하니 마음을 잡아보라고 아버지께서 권해서 시작했어요. 6학년 때 전국대회 우승도 했어요. 그래봤자 양궁대회에 참가한 학교가 두 학교뿐이었으니 두 학교가 대회를 열어 우승하면 그게 전국 우승이었던 거지요. 지금도 그 때 쓰던 양궁이 있어요.”

끝내 도시에 마음을 내어 주지 못하는 어린 소년을 둔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의 마음을 붙잡을 거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선생님의 마음을 붙든 것은 어른이 정해 준 취미인 양궁이 아니라 이웃 아이의 손에 이끌려 알게 된 만화, 곧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다 고등 학교 다닐 때 아버지께서 시외로 전근을 가셨어요. 아버지가 전근을 가시자 나는 미술부에 들었어요. 처음으로 학교 미술부에 들어가 ‘조직’ 생활을 하게 된 거지요. 우린 교련복을 입고, 이젤을 들고 밤기차를 탔어요. 그림 그리기 대회장이라면 전국 어디든 몰려다녔지요.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 누리는 해방감! 그 해방감에 빠져 고등 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도 미술 교육과를 들어갔지요.

대학 2학년 때 서양화를 전공으로 선택했어요. 그러다 군대에 가서 포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근무지가 향로봉 아래 최전방이었어요. 그때 경치를 보며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동양화에서 보던 경치가 바로 그곳에 있더라구요. 경치를 보면 그림이 떠올랐지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동양화에 대한 책을 보내 달라고 해서 열심히 읽었어요. 그때부터 동양화 이론 공부를 하게 된 거죠.

소년 그림
제대하고 난 뒤에는 인물, 특히 민중 지향적인 인물 중심의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난 사람을 그리는 게 참 좋았어요. 언젠가 친구랑 여행을 갔는데, 속초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터미널 안에 앉아 있는 아줌마를 스케치하기 시작했어요. 친구는 라면을 끓였지만 저는 그 아줌마를 그리느라 라면을 먹지도 못 하고 버스를 탔던 적도 있어요. 복학한 뒤에는 벽화, 다시 말해 민중 미술이라 불리는 그림 양식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군대 갔다 오고, 87년 6월을 보내고, 4학년 때는 그림만 그리다 졸업하고 민미협에 가입해 활동했어요.”

작업실로 들어서니 거실과 마찬가지로 온통 그림입니다. 자그마한 인물화가 화선지 위에 조로록 붙어 있고 그 아래에는 그림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맞은편 벽도 온통 작은 사람들 차지입니다. 다음 책에 그릴 그림을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인물들을 그려 본 것이라 합니다. 커다란 인물화에 시선이 갑니다. 할 말을 감추고 있는 듯한 소년의 표정이 시선을 오래 붙듭니다. 서교동 살 때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아이들 책 그림에 그린 그림에는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크게 그린 그림이 많습니다. 길벗어린이에서 나온『만년샤쓰』에는 창남이는 물론 체조 선생님, 반 동무들, 술주정뱅이 영감, 앞을 못 보시는 어머니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습니다.『열 평 아이들』에도,『땅에 그리는 무지개』에도 사람의 얼굴이 생생한 표정을 담고 커다랗게 그려져 있습니다. 작년에 나온『아름다운 수탉』에도 주인공 정희나 수탉 개비, 개비를 싫어하는 사람이든 좋아하는 사람이든 표정이 생생히 살아나 커다랗게 그려져 있습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관심을 두어 온 사람에 대한 사랑, 사람을 그리면서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던 선생님의 생각이 그렇게 그림이 되어 나왔나 봅니다.

『만년샤쓰』『첫눈 오는 날의 약속』『땅에 그리는 무지개』『열 평 아이들』『아름다운 수탉』 표지

전각 도장이 가지런히 놓인 책상에 시선을 주면 선생님은 또 말씀을 이으십니다. “동양화 그리는 사람이나 글씨 쓰는 사람이나 전각을 많이 하지요. 전각은 사방 2.5㎝ 안에서 우주를 표현하는 묘한 장르지요.” 그 중 하나를 찍어 보이시는데, 가족이 들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행복을 향해 같이했던 가족의 이름이 작은 우주 속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습니다.

책상 모서리에 이어 있는 벽에는 선생님의 마음이 글씨가 되어 붙어 있습니다. “담백하고 졸한 그림을 그려 보아야 할 것이다. 놓아야 한다.”이 말에 화제를 옮기며 다시 거실로 나섭니다.

“지금은 잘 그린 그림보다 못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사회적 형태의 그림, 형을 버리고 세를 잡고 망형을 하는 거죠. 인생을 살아가면서 덜어 내고 비워 내고 응축된 골자만으로 이룬, 닮지 않았으되 닮아 감흥을 주는 그런 나만의 그림 어법이 담긴 못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산을 그린다고 하면, 집착을 벗고 겨울산의 골계미를 그리는 거죠. 아름다운 힘을 느끼도록 그리고 싶어요. 요즈음은 특히 세를 잡아 내는 작업에 욕심이 나요.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생각하고 못나고 어눌한 것 같은 그림 속에서 새로운 내 생각을 발견하고 껍질을 벗어내고 싶은 거죠. 무거운 것을 덜어내고 명랑해지고 싶어요. 자기만의 조형 어법을 발견해야죠.

나이는 많아도 어린이 책 그림판에서는 초보죠. 글 그림 작업은 아직 좀더 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쉰살쯤 되면 자연도 알고 그림도 알고, 그때쯤이면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책은 소통에 관한 문제라고 봐요. 답답함을 제시하면 통로가 열릴 수도 있는 거죠. 우리가 주변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며칠 전 니콜과 얘기하는데, 새 다섯 마리가 날아들었어요. 니콜과 나는 조용하게 얘기를 하고 있었고, 주변에 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새들도 우리가 있는 줄 모르고 날아들었던 거죠.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그 순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지되었죠. 저도 움직이지 않고, 니콜도 움직이지 않고, 새들도 움직이지 않고……. 한 이삼십 초 가량 되었을까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요. 완벽한 정지의 시간이 흐른 후 새들은 푸드득 날아갔어요. 어떤 때는 안개 속을 지나가는 꼬리 없는 개를 본 적도 있어요. 바로 노루였지요. 여기는 여유를 찾아든 공간이에요.”

거실 여기저기에 씌어 있는 글은 여유를 찾아든 선생님이 자신에게 거는 말인 것 같습니다. 나직하기도 하고, 굳세기도 하고 글씨들은 여러 표정으로 낯선 이를 바라봅니다.

“서예는 형을 극도로 기호화하고 단순화시켰기 때문에 글씨를 쓸 때면 드로잉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글씨 쓰는 것이 그림 그리는 데 도움이 많이 되지요. 어떤 때는 반야심경을 다 쓰기도 해요.”

항금리에서 처음 생각한 것을 그린 그림
그림 그리는 분으로서 어떤 분을 좋아하냐고 묻습니다.

“장욱진 화백을 좋아하는데요, 그는 온전히 화가로서 살다 간 사람이죠. 그의 그림에는 절제미가 강한데, 알면서도 자신이 아는 것을 절제하는 힘이 보여요. 화면 안에서 자기를 절제하고 삶을 절제하는 거죠. 자신의 욕망을 확대시키는 삶과 반대로 자신을 비워내는 삶이 있는데, 저는 비워내는 쪽에 더 비중을 두어요.

또한 황창배 선생님도 제가 무척 존경하는 분이에요. 한 번도 직접 배운 적이 없는데, 내 그림에 관심을 주셨던 분이에요. 그 분은 틀 속에 갇히지 않고 20대의 신선한 기운과 필세로 언제나 젊게 작업하셨던 분이죠. 성공적인 작업이라는 세평에 연연해하지 않고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열정이 대단했던 분이에요. 그 분은 항상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갔어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요.

황창배 선생님은 ‘지금의 내 모습만 보지 말아라.’고 말씀하셨지요. 이 말은 곧 전통의 소중함을 생각하라는 말이고, 새로운 것을 찾으라는 말이지요. 사제지간이란 한 자리에 있지 않아도 존경하는 정신으로 만나는 사이가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은 또 ‘나는 고루하게 분재나 하고 수석을 모으지는 않겠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캠코드를 들고 나서겠다.’고 말씀하셨지요.

거실의 그림들
옛것을 느끼고 터득한 후에 새 것을 찾는 길, 그것이 바로 나만의 화법을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진정한 리얼리스트는 진정한 모드니스트죠. 전통과 현재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이지요. 내 그림이 어느 한 가지 스타일로 보여지는 게 싫어요.”

그래서 그럴까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림을 그리는 재료에 불과한 먹과 선지와 붓은 선생님에게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 언제까지나 탐구해야 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손목 한번 못 잡고 세레나데만 부르니 죽을 때까지 가야죠. 아무리 많은 시간을 넣어도 채워지지 않아요. 먹은 때로는 창 같고, 때로는 정 같고, 때로는 바늘 같기도 해요. 어떤 때는 속치마같이 부드럽고, 또 어떤 때는 가마니같이 거칠거칠하기도 하죠. 한 가지가 많은 이미지를 가진 게 먹이고 붓이고 선지이죠.”

그렇게 먹과 선지와 붓은 선생님에게 대로는 푸근하고, 때로는 까탈스럽고,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앵돌아지는 연인처럼 평생을 쫓아다니며 사랑을 고백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렇지만 뜻밖에도 색깔을 쓸 때는 길상 물감이나 서양화 물감을 쓰기도 하며 재료에 크게 무게를 두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에 작업한 그림들은 어디다 두셨냐는 말에 잠시 뜸을 들였다 말씀을 잇습니다.

작업실의 책상, 작업실 벽을 따라 가지런히 놓인 그림 도구들

“저는 밑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밑그림을 그려 그대로 그리거나, 그 그림을 보고 고쳐 그리거나 하면 처음 느꼈던 형의 느낌을 살릴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내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머리 속에 일구었던 생각, 그 생각이 형을 얻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의 느낌은 한 번 그릴 그때뿐이지, 그 그림을 보고 다시 그리면 그 그림은 이미 다른 그림이 되어 버려요.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는 마음에 잡았던 형을 잃지 않으려고 빨리 그려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욕심이 생기는 그림이 있어요. 어떤 그림을 만나면 내 마음이 신선해지는 그런 때가 있어요.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죠. 그러다 그림이 끝나면 허망하죠. 그러니 자꾸 설레임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 거지요. 스케치로 하도를 뜨면 죽은 그림을 그리게 되어요. 그래서 하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산을 오르기 전에 그 산에 오를 준비를 하는 설레임 같은 것을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는 거죠. 반복하지 않는 나를 지켜보는 것, 내 그림의 궤적을 통해 확인하는 것. 그림이 일기장처럼 되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일이 무섭고 조심스러워요.

작업실 벽을 차지하고 있는, 작업중인 책을 생각하며 떠올린 이미지들

한 작업을 끝내면 항상 문제가 생겨요. 다음 작업을 해야 하는데, 난리가 나는 것이죠. 한번 걸었던 길은 다시 걷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지요. 다른 식으로 접근하고 싶고……. 내가 눌러앉을까 봐 두려운 것이죠. 작업을 할 때마다 매번 이번에는 이런 방식으로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방식을 그림으로 구현하려 애쓰지요. 대개 한 방식으로 그리는 기간은 한 해 남짓인 것 같아요.

내가 만약 새로운 이야기 방식을 찾지 않고 멈춘다면, 그림이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을 것 같아요. ‘오, 니 생각이 변했네!’라고 말해 주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요즈음은 물처럼 낮은 데로 흐르고 싶다는 생각을 주로 해요. 어린 아이 그림처럼 말이죠. 완당도 다섯 살 때 썼던 글씨와 똑같은 글씨를 죽기 전에 봉은사에 썼어요. 어린 시절의 그림을 되찾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치졸하지만 맑고 꾸밈이 없는 그림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런 그림으로 아이와 소통한다면 좋겠습니다. ‘회화’를 하든 ‘그림책’을 하든 ‘천진한 눈’을 만나면 너무 기뻐요. 고이고 넘치고 흐르다 막히면 갈라지고……. 그런 식으로 흘러가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나간 그림은 선생님 곁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온 마음을 바쳐 사랑을 고백했던 먹과 붓과 선지는 선생님과 헤어져 재로 바스라져 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마음으로 새 사랑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양아치 반, 선비 반’이면 좋겠어요. 그림이든 삶이든 어딘가에 세게 부딪고 나면 시간이 지나서야 아프죠. 갈비뼈가 부러지는 그 순간은 아픈 줄 모르는 거예요. 사람을 몸서리치게 하는 부분은 바로 부딪고 난 뒤, 아픔을 느낄 때죠.”

『부숭이는 힘이 세다』 표지와 본문
이전의 그림들에서는 선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부숭이는 힘이 세다』에서 차츰 사라진 선이, 『약초 할아버지와 골짜기 친구들』에서는 거의 숨은 것 같다고 말씀 드리니 빙긋 웃으십니다.

“『약초 할아버지와 골짜기 친구들』 그림을 그리면서 저는 밀도를 낮추어 공간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형태를 만들고 형태를 꺼내는 거죠. 바람이 통하는 길을 만들고 공기를 흐르게 해 주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거지요. 결국 나하고의 싸움이죠. 고민하는 바를 설명해 나감으로써 새로운 점을 찍는 것이죠. 요즈음 저학년 동화에 나오는 그림과는 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독자를 끌어들이는 그림이 아니라 바라보면서 글과 함께 흘러가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요.

다른 때는 확대한 그림을 많이 그린 편이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여백이나 원경을 많이 그렸어요.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건 ‘나’를 보는 사람들이죠. 각각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들이 본 ‘나’가 모여 ‘나’를 이루는 것이죠.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외부의 공간이 형상을 결정하고 설명하지요.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인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환의 구조로 보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그림으로 설명할지가 문제인 것이지요. 그림은 작업이 끝나더라도 남아 작업을 증명하게 되지요. 그래서 자기만의 순결성이 없으면, 진정한 고민이 묻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요. 그림이란 그리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다함께 즐겁고자 하는 것이고, 그 즐거움이 칭찬이나 경제적 보상으로 드러나면 또 즐거운 것이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경제적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을 만치 작업을 많이 하지는 않습니다. 경제적 보상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곧 선생님이 그려야 할 그림이 많아지는 것인데, 선생님은 요즈음, 여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만큼만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 작품을 놓고 뜸들이는 시간은 길어지고, 만족할 만한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그 작업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약초 할아버지와 골짜기 친구들 1』 표지와 본문
“지금까지 내가 그려 온 과정을 보더라도 사회적으로 성공하자는 것은 아니었어요. 난 그림이 좋았고, 사회적 평가가 내게 중요한 건 아니었어요. 앞으로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 꾸준히 해 나가고 싶어요. 여태까지 살아온 것을 보더라도 그림을 그리려고 많은 것을 잃었고, 앞으로도 잃게 되겠지만 딱 한 작품이라도 좋은 작품을 했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앞산은 모습을 달리합니다. 처음에는 나뭇가지 하나도 또렷하게 보이더니 차츰 흐릿해지고, 해가 좀 더 넘어가는 지금은 오히려 다시 뚜렷한 모습으로 나무가 다가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어떤 날은 이렇게 거실에 앉아 산이 변하는 보습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꼬박 보내기도 한답니다. 자연의 신비로운 모습은 바로 선생님이 생각하는, ‘사물을 설명하는 것은 그 사물이 아니라 주변’이라는 생각을 펼쳐 보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 속에 있으면 그림이 살찌기 십상이에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해야겠지요. 외로움과 그림책은 내가 피할 수 없는 어떤 것이지요. 지금도 아직 제게는 욕심이 많아요. 순수하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지요. 욕심을 절제하려 애써요.

천상병이나 김수영이란 이름을 떠올릴 때, 그들에게서 ‘시’를 빼고 나면 남는 게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삶은 바로 ‘시’ 때문에 아름다운 거죠. 그림에 대해 좋은 생각을 지키고 싶어요. 그림은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원시 시대에도 그림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림을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곧 원시 시대 그림이라고 해서 옛 그림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어떤 분은 ‘그림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저는 부끄럽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고, 살아가는 방식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림에 대한 반성이 결국 나를 반성하는 것이어야죠. 정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그림을 돈과 바꾸지 않았어요. 돈을 버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이 묻혀서는 안 되는 것이죠.

『약초 할아버지와 골짜기 친구들 2』 표지와 본문
저는『채근담』을 자주 읽어요. 아마 늙어 죽을 때까지 이 책을 읽을 것 같아요.『채근담』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아요. 즐거운 삶은 절제하는 삶이라고 말하죠, 욕심을 버리는 일이죠. 나에게 지금 문제는, 내 공간을 폐쇄당했던 기억이 아직 크게 아픔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 조절해야 하는데 힘들어요.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린이에게 주고 싶은 것은 바로 행복이에요. 어떤 작업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얘기하고 싶고, 어린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나는 점이고 나와 누군가가 이어져 선을 만들고……. 월드컵 경기를 보면, 이번 경기에서 축구 선수들은 경기에 이기는 것 이상을 얻었지요.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준 것이죠.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 그런 행복이 만발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갈구하지만 충족되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지요. 난 ‘고생하십니다’라는 인사말을 들으면 무척 답답해요. 일하는 사람에게 ‘고생하십니다’라니? 누가 고생하는 것 모르나요? 제발 그런 인사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내가 진실해지면 나를 바라보게 되어 있어요. 자기 삶에 성실하면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배우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 책 그림을 그리는 저는 아이들 눈높이에 집착하지 말고 내 작업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혼자 살고 있습니다. 아직 초등 학교 4학년인 아이는 가끔 아빠를 만나러 와서 며칠씩 지내다 가지요.

“부모가 따로 살아도 각자가 열심히 행복하게 살면 아이가 행복할 거라고 믿어요. 부모는 자전거 바퀴의 앞뒤와 같은 것이죠. 그 자전거가 쓰러졌을 때, 아이의 현실과 부부의 현실을 생각했어요. 이런 내용을 그림책으로 그려 보고 싶어요. 지금도 소통의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공중 전화 박스 안에서 누가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전화 박스 밖의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고 형체만 보게 되지요. 이럴 때 나는 전화 거는 사람을 보고 있지만 그 사람을 완전히 알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요. 답답함을 느끼게 하면 소통할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그런 답답함을 느끼게 하여 스스로 소통의 방식을 찾아 내게 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림을 그릴 때는 늘 내가 내 아이에게 이 책을 보여 줄 수 있느냐고 생각하지요. 아직 초등 학교 4학년이지만, 좀더 자라면 아빠에 대해 입체적으로 볼 텐데, 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그림을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진정성을 가지고 그려야지요. 그림을 좋아하고 순결한 생각으로 고민을 하는 내가, 내 아이에게 한 인간으로, 소중한 사람으로 인식이 되고, 그 아이가 자기 아이를 가졌을 때 너의 할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조각들만 주워 담아 일어섭니다. 넉살좋게 저녁까지 얻어먹고, 하나둘 떠오르는 별을 헤이면서 그림을 품에 안고 세상을 거니는 여행자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듣다가 일어섭니다. 점심 먹고 한 고랑 캐어 둔 감자를 한아름 받아 안고 꾸벅 인사를 드립니다. 입춘대길, 박차고 나가다 잠시 뒤돌아보는 말에게 눈인사를 하고 집을 나섭니다. 보름이 가까워 산골이라도 밖은 그다지 어둡지 않습니다. 사람 떠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개, 니콜이 짖습니다. 도시와 달라 크게 나무라지 않아도 되겠지요. 선생님은 객이 떠나고 나면 혼자 남아 먹과 붓과 선지에게 고백할 새로운 마음을 마련하느라 힘드시겠지요. 그렇지만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나온 그림을 보면서 우리 어린이들은 또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요.
공혜조/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권해 주고 싶어서 좋은 어린이 책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어린이』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린이 책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린이들이 행복에 겨워 웃음 터뜨릴 날을 기다리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