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08월 웹진 제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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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 이야기]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될래?

신경화 | 2002년 08월

나른한 오후, 여섯 살 된 우리 꼬마에게 물어봅니다.
“너 커서 뭐가 될래?”
“집 짓는 아저씨!”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뒤로 건물이 들어서는데 며칠 사이 뚝딱 집 모양을 완성시키니 녀석의 눈에는 아저씨들이 대단한 마술사로 보였나 봅니다.
저는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너 정말 공사장 아저씨 될래? 그거 말고, 다른 거. 자알 생각해 봐.”
그래도 아이는 끝까지 집 짓는 아저씨가 되겠답니다. 저는 그만 맥이 빠져
“그래, 실컷 해라. 이 자식아.”
제가 지금 아이한테 무슨 대답을 바라는 걸까요?

흔히 3D업종이라고 하지요. 어렵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 (Dangerous) 일을 말입니다. 경기가 안 좋아 취업이 힘든데도 그 업종에서는 사람 구하기가 참말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누군가는 그 힘든 일을 해야만 하지요. 최고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현실에서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만의 잣대로 삶을 너끈히 살아가는 분들이 있기에 우리 짧은 삶이 빛나는 게 아닐까요. 이런 보통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들어보시겠어요?

『바구니 달』 표지와 본문

『바구니 달』은『달구지를 끌고』로 잘 알려진 바바라 쿠니의 작품입니다. 잔잔하면서도 초록색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고호가 자주 사용했다는 프러시안 블루가 주는 묘한 색감이 신비함과 함께 고독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산골 마을에 사는 소년은 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나갑니다. 바구니를 파는 것은 소년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지요.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산골짝 촌뜨기’란 말만 듣게 되니 이를 어쩌지요? 너무 비참해진 소년! 그러나 살며시 바람이 다가옵니다. 아니 어쩌면 바람은 그대로인데 아이의 마음이 움직인 게 아닐까요? 마치 아이의 마음을 달래듯 바람은 아이의 몸을 감쌉니다. 그래요. 어떤 사람은 바람 소리를 듣고 노래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바람 소리를 듣고 시를 짓듯 소년은 바람 소리를 듣고 바구니를 짜는 거지요.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은 아이, 바구니 짜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때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 길이 외롭고 힘들지라도 아이는 꿋꿋이 살아가겠지요.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생각을 바꾸면 탈출구가 있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 표지
자, 이번에는 아파트에서 채소를 키우는 농부 아저씨 얘기 『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입니다. 우리 아이들 채소 잘 안 먹지요?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져 있어 정말이지 큰일입니다. 작가도 아이들이 걱정스러운지 채소를 안 먹는 아이들한테 이 책을 바친다고 써 두었네요. 맥도널드 아저씨는 도시 한복판 아파트 관리인이에요. 참 나중에는 농사도 지어요. 아저씨를 농부로 만든 건 시들시들해진 토마토 한 그루였어요. 나무가 창문을 가리자 나무 울타리를 베어 내고 온갖 채소를 심게 됩니다. 채소들이 아파트 벽을 뚫을 만큼 쑥쑥 자라자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지요. 그러나 아저씨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요. 어찌 보면 아파트에 사람보다 채소들이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하나 둘씩 떠나는 사람들, 대신 갖가지 채소와 동물이 이사를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 렌탈씨가 집세를 받으려고 들립니다. 자기 아파트에 사람 대신 채소와 가축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렌탈 씨! 맥도널드 아저씨한테 당장 떠나라고 하지요. 채소가 어떻게 집세를 내느냐 하면서요. 그렇지만 렌탈 씨는 전혀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되고, 다행히도 맥도날드 아저씨는 렌탈 씨의 배려(?)로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지요.

『맥도널드 아저씨의 아파트 농장』 본문
이 그림책의 배경은 모두 흑백입니다. 아파트가 상징하는 도시라는 칙칙한 공간에 초록색 토마토와 온갖 채소는 우리가 찾아야만 하는 자연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아파트로 대표되는 문명 자체는 선한 것이지만 지나친 맹신으로 인해 우리 삶이 칙칙해진 건 아닐까요? 작가는 칙칙해진 우리 삶에 빛깔을 실어 줄 구세주로 농부 맥도널드 아저씨를 제시합니다. 소비만을 일삼는 이 순간 가장 필요한 사람은 어쩌면 맥도널드 아저씨처럼 실천하는 농부가 아닌가 해요. ‘채소를 심어야지’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채소를 심고 일어나는’ 창조하는 그런 사람이 있기에 우리가 이렇게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게 아닐는지요?

언젠가 청소부 아저씨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깨진 유리를 그냥 버리는 통에 손을 베고 만 거지요. 조금만 배려를 해서 쓰레기를 버렸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터. 그러나 그 청소부 아저씨는 그런 일은 아주 흔한 일이라며 웃어넘기시더군요. 그런 맑은 눈을 가진 청소부 아저씨가 여기 또 있네요. 바로 『행복한 청소부』예요.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 무슨 일로 저렇게 행복해 하는 걸까요? 청소하시다 동전이라도 주웠을까요? 맞아요. 아저씨는 요즘 음악과 글의 세계에 폭 빠져 길을 가다 우연히 동전을 주운 것보다 더 행복하답니다.

『행복한 청소부』 본문
아저씨는 아침 일곱 시면 일하기 위해 집을 나선대요. 그리고는 탈의실에서 파란색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파란색 고무 장화를 신고, 거리의 표지판을 닦으러 갑니다. 아저씨는 “바흐 거리, 베토벤 거리, 하이든 거리, 토마스 만 광장” 같은 곳에서 거리의 표지판 닦는 일을 하세요. 그러다 문득 이 예술가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그 때부터 아저씨의 공부는 시작되지요. 대부분의 어른들이 생각하는,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고 시와 음악을 아는 사람 따로 있다는 고정관념을 와르르 무너뜨립니다. 아저씨는 하나하나 알아 가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자, 아저씨가 음악회장에서 무얼 느꼈는지 한번 보세요.

“음악 소리가 솟아오르기 시작했어. 조심조심 커지다가, 둥글둥글 맞물리다, 산산이 흩어지고, 다시 만나 서로 녹아들고, 바르르 떨며, 움츠러들고, 마지막으로 갑자기 우뚝 솟아오르고는, 스르르 잦아들었어.”

음악 소리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우리 아저씨 정말 대단하지요?
혼자서 표지판을 닦는 동안에도 중얼중얼 강연을 합니다. 듣는 사람 없어도 그저 자신을 위해 강연을 하는 거래요. 결국 아저씨는 굉장히 유명해져 대학 강연까지 부탁 받지만 자신이 강연을 하는 것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며 대학 강연을 과감히 거절합니다. 어떠세요? 이 아저씨처럼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가요?

『나무가 되고싶은 화가 박수근』 표지
이번에는 힘들게 살았던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볼까요?
예술가의 삶은 정말 고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그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데는 인색하지요. 흔히 밥 굶는 일쯤 여겨 재능이 있음에도 스스로 예술가가 되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많구요.

여기 궁핍했던 시절 따스한 시각으로 우리 삶의 한 자락을 담아낸 책이 습니다. 바로 『나무가 되고싶은 화가 박수근』이지요. 그의 작품을 보면 어떤 말주머니를 달아도 가능할 만큼 풍성함을 안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선과 색채……. 그림에 문외한인 제가 봐도 가슴이 벅차네요.

본문 중에 ‘한 집에서 세 개씩’이라는 내용을 옮겨 볼게요.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방안에서 아이를 돌보던 박수근의 아내는 외출하여 아직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걱정입니다. 우산도 없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빗방울은 점점 더 거세어집니다. 아내는 우산을 준비하여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남편을 기다립니다.

잠시 후 버스에서 내리는 박수근을 봅니다. 아내를 알아보지 못한 박수근은 버스에서 내려 비를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과일 장수에게로 갑니다. 한 아주머니에게서 과일 세 개를 산 박수근은 그 옆의 아주머니에게 다시 세 개를 삽니다.

비를 맞는 모습이 안쓰러워 남편을 부르려던 아내는 박수근의 행동이 이상하여 그저 지켜 보고 있습니다. 세 집에서 합하여 과일 아홉 개를 산 박수근은 그제서야 아내를 알아보고 웃습니다. “당신, 비도 오는데 과일을 아무데서나 사면 어때서…….” “한 아주머니에게서만 사면 다른 아주머니들이 섭섭해하지 않아.”

『나무가 되고싶은 화가 박수근』 본문


어떠세요? 박수근 선생님의 세상을 바라보시는 넉넉함이 느껴지지요. 그 분의 작품 속에는 여인들의 모습이 많습니다. 흙 속에서 평생을 살아낸 모습을. 고랑진 주름 속에서 삶의 생채기를, 무엇이든 안길 듯한 그 품안의 모습에서 저는 그만 고통스럽기까지 하더군요. 그래요. 진정한 예술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또는 앞질러 엿보게 하는 것. 많은 사람들에게 삶을 추스릴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일이 아닐는지요?

지금까지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눈높이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만나봤습니다. 우리가 따뜻한 집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먹고살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힘든 곳에서 궂은 일을 가리지 않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꿈을 어른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때,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잣대로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살아가는 용기 있는 그들의 향기를 닮고 싶습니다.
신경화 / 두 아들 도현, 도환과 매일 전쟁을 치르면서 사는 서른 살 된 엄마입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대전 동화 읽는 어른에서 동화 공부를 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아이들을 위해 동화 공부를 시작했는데 할수록 재미있어서 동화와 그림책에 푹 빠져 지냅니다. 책 본답시고 매일 아이들과 산과 들로 놀러다니면서 책은 안 읽고, 놀기만 하다 오는 날이 더 많은 엄마이지만, 그런 시간을 통해 아이들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답니다. 사람을 너그럽게 만드는 자연의 힘에 반해 자연으로 자주 나가고, 아이들을 가슴으로 만나는 시간이 가장 소중한 엄마입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