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01월 웹진 제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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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다른 나라 그림책]
뛰어난 상징의 작가 Anthony Browne

서남희 | 2002년 01월

Anthony Browne
미장원에 갔다. 미용사가 말했다.
“염색하셨나봐요?”
“네?”
“까만 색으로 염색하셨나봐요.”
“아뇨! 그거 원래 제 머리색인데요.”
내 머리는 ‘midnight black’이다. Anthony Browne의 머리색은 ‘dark brown’이다.
내 신발은 크기가 ‘7 (235mm)’이다. 오호! 그도 ‘7’을 신네! 벗어 놓은 그의 신발과 내 신발은 크기가 같겠군.
내가 힘들 때마다 기어 들어가는 곳은 침대다. 그도 그렇다.
우리 집에서 가장 뒤죽박죽인 곳은 내 책상이다. 그 역시 자기 스튜디오가 제일 아수라장이란다.
일할 때 꼭 있어야 하는 도구는? 나는 컴퓨터, 그는 연필.

아, 바로 여기서 그와 나는 결정적으로 차이가 난다. 그렇다. 그는 데생을 좋아한다. 1946년생 치고는 아직 보이쉬한 모습 (그대여, 위의 사진은 언제 찍은 건가요?). 영국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병원, 의사, 의료……. 뭐 이런 것과 관계된 일러스트레이션을 주로 하다가 카드와 포스터 쪽으로 고개를 갸웃 돌리고, 마침내는 어린이 그림책 쪽으로 휙 돌아선 영국 작가다.

연필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선이 가는 그의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헬렌 옥슨버리처럼 담백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상은 디테일과 상징으로 꽉 차 있어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상징이 많은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재미가 있고, 상상력의 별을 하늘에 흩뿌릴 수 있어 좋다.

우리 나라에도 이미 번역된 PIGGYBOOK을 본다. 엄마는 거의 무표정. 이 엄마에게 업혀 있는 아빠, 아빠에게 업혀 있는 아이들은 아주 신이 났다. 그런데 그 뒤를 장식하고 있는 벽지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튜울립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돼지들이다. 첫번째 장에서 아빠가 양복 깃에 달고 있는 분홍색 뱃지는 흐릿해서 뭔지 잘 안 보이고, 아이들 역시 팔짱을 끼고 있어서 돼지가 안 보인다. 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그들이 달고 있는 뱃지가 돼지 모양이라는 게 확연히 드러난다. 끊임없이 ‘엄마’, ‘여보’를 불러 대는 아이들과 아빠의 그림자를 자세히 보라. 그만, 돼지가 꿀꿀거리고 있지 않는가? 아침엔 아침대로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 이불 개고 청소하고 일터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피곤한 엄마. 아이들은 ‘아주 아주 중요한 학교’에서 돌아왔고, 아빠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돌아왔으니 저녁 때도 또 ‘엄마’, ‘여보’를 불러제낄 수밖에.

PIGGYBOOK 표지와 본문 그림들
엄마가 저녁 차리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다림질하고, 또 음식을 조금 더 만들 동안, 소파에 길게 누워 텔레비젼을 보는 아빠와 아이들은 모두 다 돼지다. 심지어 소파 위에서 흐뭇하게 엎드려 있는 고양이의 그림자도 돼지 모양을 벗어나지 못한다. 벽지에 피어난 그대 작은 튜울립이여. 그대들 또한 돼지들이 아니던가! 문 손잡이에서부터 꽃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엄마의 손이 가야 하는, 엄마를 부려먹고 자신들은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 돼지들 모양으로 그려진다. 이 이야기는 물론, 돼지우리를 나가 버린 엄마와 그 뒤에 자신들을 반성하고 사이좋게 일을 나누어 함으로써 다시 ‘one little happy family’의 사랑스런 모습을 보이는 가족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스토리 자체보다는 디테일과 상징의 묘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또 한 권을 펼친다. 이번에는 HANSEL AND GRETEL. 그림 형제(The Brothers Grimm)가 설화를 채집해서 다시 쓴 이 이야기는 마땅한 스토리를 찾기에 목이 마른 그림작가들에게 늘 생명수가 되어 주고 있다. 숲에서 길을 잃고 하루밤을 지새는 아이들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표지 그림을 보시라. 울퉁불퉁한 나무 껍질은 마녀의 코를 상징하고, 잔디 위에 예쁘게 돋아 있는 빨간 버섯은 독버섯을 상징한다. 뿐인가, 첫장을 보면, 흉년이라 이 아이들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아버지와 아이들은 근심이 가득한데, 현대판 계모는 가슴이 깊게 패인 분홍색 옷을 입고 딴청을 하고 있다. 넷 중 셋의 시선이 한군데 모이는데, 다른 한 명의 시선은 다른 데 꽂히는 이 콩가루 집안. 이 첫장은 나중에 계모가 죽고 나머지 세 명이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결말을 이미 담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곱슬머리가 되라고 클립을 말고 자는 계모. 그녀의 화장대 위는 이런 저런 화장품들과 목걸이, 스타킹들로 가득하다. 하다 못해 아이들을 숲으로 버리러 가는 길에도 계모는 부츠 신고, 귀걸이하고, 모피 외투 입고, 담배를 꼬나물고 있다. 담배의 독은 어디로 가는가? 계모는 결국 나중에 ‘갑자기 죽을’ 운명이 아니던가?

HANSEL AND GRETEL 표지와 본문 그림들

HANSEL AND GRETEL 본문 그림들

숲에 버려진 아이들이 빵과 케이크와 설탕, 사탕으로 만든 집 앞에 머뭇거리며 서 있는 모습을 본다. 역시 빨간 버섯들이 그 집으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을 만들어 주고 있다.(요즘 나는 버섯 전골, 버섯 덮밥 등을 계속 먹었다. 그 중 빨간 버섯은 없었기에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HANSEL AND GRETEL 본문 그림

그 집의 창문에서 내다보고 있는 할머니. 양쪽으로 젖혀진 커튼 때문에 만들어진 실내는 정확히 길다란 이등변 삼각형 모양. 게다가 그 실내는 깜깜하다. 그 검은 삼각형은 마녀의 모자를 뜻한다. 그리고 허옇게 드러나는 할머니의 얼굴. 결국 이 마녀는 나중에 오븐에 들어가 구워질 테니(!) - 얼굴색이 아직은 밀가루반죽색이겠지. 제일 마지막 장면을 편다. 현관문에서 아이들이 아빠와 다시 만나 껴안고 있는 장면. 어두운 집 안으로 이제 환한 햇빛이 들어오고, 작은 화분에서 수줍게 돋아난 아주아주 작은 새싹. 이들의 삶이 앞으로 연둣빛으로 피어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The Tunnel 표지와 본문
그는 The Zoo에서 동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우리와 울타리들을 그려 낸다. 심지어 상자에 갇혀 있는 이미지도 있으니, 어려서부터 공부, 공부, 공부에 시달리는 우리 나라 아이들은 이 책을 보고 어떤 느낌을 가질까……. The Tunnel에서는 돌이 된 오빠를 껴안음으로써 다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여동생이 나온다. 그리이스 로마 신화에서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차용한 이 이야기는 사랑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Through the Magic Mirror에서 이젤 위에 얹어 놓은 그림 속에 또 그림이, 그 그림 안에 또 그림이 있는 것을 보며 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거울을 향해 또 거울을 비춰 본 장난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느낌을 알 것이다. 세계는 스스로를 비추고, 그 이미지를 또 비추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지 않던가……. 그러다 보면 과연 어느 세상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인지 헷갈리기도 할 것이다.

그를 세상에 알려 준 그림책인 Gorilla는 또 어떤 맛이냐고? 한 번 직접 맛보시고, 상징 또한 찾아 보시라.
서남희 / 개인 홈페이지 ‘The Cozy Corner(http://cozycorner.new21.net)’에서 영어 그림책 이야기를 엮어 올리고 있습니다. 서강 대학교와 서강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UCLA Extension에서 TESOL(영어 교수법)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10년간 살면서 Haslett Adult Education의 영어 클래스에서 보조교사, 이스트 랜싱에 있는 ‘한마음 한글학교’의 외국인반 교사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답니다. 그림책, 소설책, 시를 좋아하고, 북한산, 도봉산, 지리산, 속리산, 소백산 등 바위산을 좋아하며, 무엇보다 잠 자는 것을 제일 좋아한답니다. 스스로 뾰족뾰족하다고 말하면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과 더불어 누구보다 둥글고 넓게 살고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