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 웹진 제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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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작가를 찾아서]
자유로운 영혼을 담아 내는 그림 작가 김환영

공혜조 | 2001년 12월

대문 앞 돌층계에 앉은 김환영 선생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 남이섬을 바라보며 강을 따라 꼬불꼬불 난 이차선 도로를 따라갑니다. 강과 산이 어우러진 경치에 정신을 빼앗겼다가는 자칫 물 속으로 곤두박질치거나 마주오는 차와 부딪기 십상인 그런 아름다운 길입니다. 김환영 선생님 댁이 있는 금대리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제법 달리다 금대리로 꺾어 듭니다. 교회 아랫집이라고 하셨는데, 가까운 아랫집에는 작은 건조장이 달려 있고, 조각품들이 몇 서 있습니다. 바로 그 옆집 마당을 살피니 창이 유난히 커다란 컨테이너 건물이 한 채 보입니다. 멀리서 기웃거리니, 전화 통화중이던 김환영 선생님께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십니다. 다정한 시골집 그대로인 본채에서 조금 떨어진 컨테이너를 보니 넉넉하지 않은 선생님의 살림살이가 느껴집니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 표지
가스 난로로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컨테이너 작업실 안, 밖을 바라보며 작업할 수 있도록 창 앞에 길게 놓인 작업 책상 위에 얼마 전에 나온『나비를 잡는 아버지』가 놓여 있습니다. 그림책으로서는 참 오랜만에 하신 작업입니다. “1999년 2월에 작업 의뢰가 들어왔어요. 2000년 2월에 밑그림을 그려 출판사로 가져갔지요. 출판사에서는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현덕 선생의 동화를 워낙 좋아하긴 했지만 감동이 크다고 다 잘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그런데 이사를 와 보니 손봐야 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더라구요. 지붕도 새고……. 집도 손보고『마당을 나온 암탉』도 그리고 하느라『나비를 잡는 아버지』작업이 미뤄졌지요. 그렇다고 생각을 중단했던 건 아니에요. 머리 속으로 계속 생각했지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2월에 그렸던 밑그림에서 여섯 장면만 남고 열네 장면은 새로 그리게 되었어요. 더미 상태에서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고 판단한 게 2001년 초였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작업한 기간은 여섯 달 남짓인 셈이지요.”

처음에 생각했던 바우와 경환이의 대조적인 모습
무엇이 선생님을 그토록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었을까요? “초등 학교 고학년 어린이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그림책의 경우 독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 좀 멀고 험하잖아요. 그림책은 보통 어린아이들이 보기 때문에 일단 그림책이라고 하면 서점에서는 어린아이들 책 진열하는 데 꽂아 두거든요. 그래서 내용이 상당히 어려운 이 글을 어떻게 그려야 어린아이들도 볼 수 있게 하나 많이 고민했어요. 어쨌든 그림책을 보는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글을 못 읽기 때문에 그림만 쭉 보고도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현덕 선생의 동화를 여러 번 베껴서 써 보았습니다. 열 번은 넘게 베꼈을 거예요.”

파스텔로 그렸던 초기 그림
그렇게 현덕 선생의 동화를 베끼면서 선생님은 그 글을 써내려 간 현덕 선생의 마음을 느끼려 했나 봅니다. 그런 다음에 선생님은 색깔을 어떻게 입힐 것인지 무척 고민을 하셨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수성 파스텔과 로트링 잉크로 그린 그림을 좋아하지요. 밝고 화사하고 부드럽거든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 작업을 해야 하는 책으로 들어오면 문제가 좀 달라지거든요. 더욱이나『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어렵던 시절 이야기라 색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해져요. 그 시절의 신산함을 표현하려면 낡은 흑백사진 같은 분위기로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그런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지요. 그래서 색을 과감하게 줄이기로 했습니다. 파브리아노 수채화 종이에 그렸는데, 전체적으로 흑백 스틸 사진 같은 느낌을 살리려 애를 썼지요.

제 그림의 특징이 붓선이 활달한 거거든요. 그런데 이 활달한 붓선이 심리 묘사를 방해해요. 그러니 붓선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고민스러웠지요, 어떻게 선을 죽이나……. 문득 ‘아, 파스텔이 있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 배경의 분위기나 캐릭터로 등장 인물의 심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것도 수월하지가 않았어요. 파스텔은 자꾸 뭉개져 덧칠을 해야 되는데 그런 작업 방식이 저와 맞지 않더라고요. 문질러 정착시킬 때 닦아 내고 또 지우개로 깨끗이 닦고, 다시 파스텔을 쓰고……. 못하겠더라고요.

온갖 재료로 만든 다양한 펜들
결국 펜을 선택했어요. 심리를 잘 묘사하려면 붓보다는 펜이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보통 펜으로 그리면 까칠까칠하고 차갑거든요. 선의 굵기도 일정하고……. 어떻게 하면 다양한 심리를 펜으로 잘 묘사할 수 있을까, 그 때부터는 그게 고민이었지요. 철로 된 펜을 치우고 대나무를 깎아 그 끝에 물감을 찍어 그려 보았어요. 여러 모양의 선이 나오더군요. 이번에는 온갖 것을 다 깎아서 펜처럼 만들어 써 보았어요. 나무 젓가락, 대젓가락, 삶은 갈대, 우리 나라 대, 중국 대……. 그렇게 강도와 유연성이 다른 여러 재료로 만든 펜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먹물의 농담도 바꾸어 보았지요. 그러던 어느 순간에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왔어요.”

제 크기의 밑그림 책과 축소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들여다보던 밑그림 책
그렇습니다.『신통방통 도깨비』나『나귀 방귀』같은 책을 보아도 그렇고 선생님의 붓선은 무척 유려합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화가가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그런 그림들이지요. 그림이 주는 유쾌한 미감을 맛보게 하는 그런 붓선입니다. 그런데『나비를 잡는 아버지』에는 움직이는 선이 거의 없습니다. “예전에는 너무 내멋대로 그린 것 같아서 이번에는 좀 더 생각을 깊고 길게 했어요. 그림을 그리고 나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날 그날 머리 속에서 바뀌는 장면들을 한 장면으로 결정화시켜 내는 작업을 해야 해요. 그렇게 결정화 작업이 끝나면 단번에 그릴 수 있지요. 책이 되어 나온 뒤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아쉬워하며 후회하지 않으려고 내딴에는 꼼꼼하게 그렸어요.”

그러면서 출판사에서 기획할 때 엮어 본 책과 손으로 쥐면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을 꺼내 보이십니다. 그 작은 종이 한 장 한 장에『나비를 잡는 아버지』그림이 앙증맞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작업실 한쪽에 있는 복사기를 써서 그렇게 작은 책을 만들어 들고 다니면서 장면 장면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해서 나온 그림책이『나비를 잡는 아버지』입니다.

보리에서 새로 펴낸 개똥이 그림책으로 이야기가 옮아갔습니다. “1989년부터 그림을 그렸고 기획은 그 전에 시작되었어요. 보리에서 기획하고 웅진에서 내었지요.” 선생님이 그 때 맡아 그린 책은『오줌싸게 누리』 『나도 잘 해』『찌르릉찌르릉』『아빠는 깜둥이야』『어른이 되고 싶어요』 다섯 권입니다. “그 때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작업하기가 쉬웠어요. 집에 있는 두 아이가 바로 소재가 되었으니까요.” 그 시절이 생각나는 듯 웃으시던 선생님은 금새 아쉬운 표정을 지으십니다.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데, 마을에 아이들이 없거든요. 여기 사시는 분들 모두 연세 많으신 분들이에요. 아들딸은 다들 도시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아 농사를 짓고 계시지요.”

선생님이 그린 개똥이 그림책들
선생님께서 그린 책의 발행 연도를 보면 1990년대 초에 발행된 책이 많습니다. “1990년대 초에 책 그림을 무척 많이 그렸지요. 어린이 책에도 그리고 어른 책에도 그렸지요. 지금까지 한 백여 권 그렸나 봐요. 그 가운데 지금 살아남은 책도 있고, 절판된 책도 있어요. 그 시절에는 몸도 마음도 무척 고달팠어요. 작은애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큰 병이 걸려 수술을 받았어요. 당시 아내는 출산 휴가중이었고, 애가 아파서 정신이 없는데, 전교조 탈퇴 각서를 받으러 교장 선생과 교감 선생이 병원으로 왔더라고요. 아내와 나는 병원까지 찾아온 그 사람들과 대판 싸우고 내쫓았어요. 그렇게 아내는 해직 교사가 되었지요. 아내가 복직할 때까지 4년 동안 정신없이 책 그림을 그렸어요.”

1990년대 초반에 그린 책들
선생님은 만화책을 그린 적도 있습니다. 금성 출판사에서 기획을 했는데, 좀 특이한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까지 만화를 그리지는 않았지만 만화에 관심 있는 사람을 모아서 색다른 만화를 해 보자는 의도로 만화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 때 저는,『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원작으로 삼아 1년이나 작업을 했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출판사의 기획 방향이 어정쩡하게 변하는 바람에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 작업을 하는내내 저는 참 행복했어요. 만화 작업은 참 매력적인 작업이었어요. 내가 갖고 있는 감각 기관을 모두 건드리더라구요. 마치 아주 마음에 드는 여자 앞에 섰을 때 꼼짝도 못하고 온몸이 전율하는 그런 느낌이었죠. 만화를 그리는 일 년 동안 그토록 좋아하는 술을 다 끊었으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만화를 해 보니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졌어요. 만화로는 불가능한 여러 기법을 써서 등장 인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눈을 깜박이는 속도라든가, 다리를 달달 떠는 것 등 여러 표현으로 인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척 마음이 끌렸어요. 그런데 우리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이 세트화되어 있고, 도제식인 데다 자본도 거칠고……. 그래서 오돌또기로 들어갔어요. 방송국에서 텔레비전 시리즈물 기획도 했어요. 오돌또기에서 활동하던 시절이었지요.「아구찜과 빠가사리」라는 8분 30초짜리 애니메이션 감독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오돌또기 제작 작업이 지지부진해서 오돌또기 활동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그린 선생님 모습
“그 뒤 한겨레 문화 센터의 아동 문학 작가 학교에 등록을 했어요, 1999년 12월이었지요. 유년 시절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쓰기로 마음 먹은 건 10년 전 이런 저런 까닭으로 방향을 못 잡아 어려웠을 때였는데, 저하고의 끊임없는 말걸기에서 제 어린시절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거지요. 원고지 300매 정도의 분량에서 150매 정도를 썼는데, 5학년 시절까지 진행되어 있어요. 여섯 달 동안 작가 학교에 다니면서 동화 형식으로 나를 극화시켰던 거지요. 기억이라는 것이 자신의 보호본능에 의해 얼마나 왜곡되고 편집되는지 새삼 깨달았어요. 비극적인 기억들은 스스로를 영웅시하기도 하고 무책임해지면서 버티기도 합니다.

올 여름 초등 학교 동기들 사이트를 만들었다는 연락을 받고 모임에 한 번 참석했어요. 형인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다가와 다짜고짜로 물었어요. ‘환영아, 너 그거 기억하냐?’ 그러더니 색연필 깐 종이로 코를 간지럽히는 장난을 치다가 담임선생님께 혼뜨검났던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어린 시절, 나는 참 불행했다고 생각했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재미있었던 적도 많았더라구요. 풍선껌을 씹으면서 색연필을 같이 씹어 색깔 풍선껌을 만들던 얘기도 했어요. 억압된 환경에서조차도 나름대로 즐겁게 지냈던 거지요. 그런 기억들이 되살아나니 참 좋았어요. 어렸을 때 내 기억 속의 나는 늘 비극적인 아이였거든요. 철봉대에서 혼자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친구와 잘 어울리지도 못했어요. 다만 한 가지, 친구들이 나더러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니까 자꾸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한 서른 넘어 생각해 보니까 문득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결국 내가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린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의지할 것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버틸 수 있는데, 저의 경우에는 그게 그림인 것 같아요.”

『마당을 나온 암탉』표지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 작업을 하게 된 경로가 좀 특이합니다. “동료와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었는데,『나비를 잡는 아버지』작업으로 생각이 복잡할 때였어요. 머리도 아프고 해서 뭐 읽을거리 없냐고 했더니 그 동료가 작업 의뢰 들어와 있던 원고를 주었어요. 머리를 식히자고 잡은 원고를 단숨에 읽어 버렸지요. 작품을 읽는데 너무나 강력한 느낌에 이끌렸어요. 이미지가 머리 속에 마구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날 암탉 잎싹을 그려 책상 위에 붙여 놓았지요. 나중에 제가 출판사에 전화를 했어요. 글이 너무나 감동적이라고 했더니 출판사에서 한번 해보겠냐고 했어요. 그래서 기쁘게 작업을 시작했지요. 그 때가 2000년 1월이었습니다. 그런데 5월에 책을 내어야 한다고 그래요.『나비를 잡는 아버지』그림도 정리가 안 되고 해서 일단 『마당을 나온 암탉』그림을 먼저 그렸어요. 머리 속에 이미지들이 많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거지요.”

해가 떨어지려 하기에 나가서 저녁을 드시지 않으시겠냐고 했더니 “여기서 먹지요, 밥도 있는데.”하시면서 성큼 일어서십니다. 선생님을 따라 집 앞 텃밭으로 나가니 고양이 세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옵니다. “올해는 배추씨 뿌리는 시기를 놓쳤어요. 한 일 주일 가량 늦게 씨를 뿌렸더니 서리가 내렸는데도 저렇게 속이 안 들어차네요. 그래도 맛은 있어요.” 하시면서 발치에서 몸을 비비는 고양이에게 손을 주십니다. “이 녀석들이 참 재미있어요. 요녀석은 넙죽넙죽 사람을 잘 따라서 넙죽이라 하고, 요녀석은 주춤주춤거려서 주춤이라 하고, 요녀석은 까매서 까목이라 불러요. 셋 다 한 배에 나온 놈들인데, 이 녀석들 어미가 얼마 전에 없어졌어요. 그런데 그 뒤로 둘째인 주춤이가 어미 역할을 해요. 넙죽이와 까목이에게 젖 주는 시늉을 하는 거예요. 희한하게도 넙죽이와 까목이가 주춤이 젖을 빨더라고요, 나오지도 않는 젖을 말이죠. 그래서 주춤이의 배 털이 항상 축축해요. 만져 보세요.” 셋 가운데 둘째인 주춤이가 어미 노릇을 하는 게 신기하고 또 저희들끼리 의지하고 살아가는 생명이 고마운지 그 말씀을 하시는 선생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집니다.

어디에 어떤 씨앗을 언제 뿌릴지 그려 둔 그림
대문 옆 외양간 벽에 의지한 마른 수세미 덩굴을 가리키면서 “여름 내내 수세미 보는 재미로 보냈어요. 얼마나 장하고 시원하던지……. 그런데 서리 한 번 내리니 이렇게 다 말라 버리네요. ” 그 덩굴 아래 번져 가는 박하 한 줄기를 떠서 봉지에 담아 주시고 선생님은 거실 겸 주방으로 쓰는 곳으로 들어가십니다. 거실의 출입문 유리에 붙어 있는 텃밭 그림에는 무슨 씨앗을 언제 뿌린다는 일년 계획이 깨알처럼 씌어 있습니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안 되거든요. 그렇게 써 놓지 않으면 잊어 버려서요.” 커다란 밥사발에 담아 주시는 밥을 처음에는 많다고 사양했다가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컴퓨터 옆 작은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원래 이 방을 작업실로 썼는데, 여름에 비가 오거나 겨울에 눈이 오면 심하게 습해지더라고요. 흙벽에다 시멘트를 발라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그림을 망쳤지요.”그런데 습기 피해를 막아 보려 마련한 컨테이너 작업실은 난방이 문제라면서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십니다. “글 쓰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림은 원화 보존 문제 때문에 아무 데서나 작업하기가 어려워요.”말씀을 하시면서도 선생님은 곧 작업을 해야 하는 책에 들어갈 법한 아이들을 종이 위에 하나씩 불러냅니다. 그 손길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셨는지 “며칠 동안 손을 놀리면 손이 저절로 가요.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개인적으로 참 어려운 작업이에요. 참 좋은 글이고, 해야 겠다는 생각에 출판사와 약속을 했는데, 한동안 작업 진행이 잘 안 되었어요. 정적인 원고여서 작업하기가 더 어려워요. 저는 경쾌하고 활동적인 책이 맞는 것 같아요. 어둡고 힘든 것들은 다른 식으로 표출하고 싶어요. 내 영혼이 불안해서 그런지 움직임이 있는 그림을 좋아해요.” 불안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의 꼬리에 길게 따라붙는 쓸쓸함에 마음이 아픕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표지로 쓰려고 처음에 마음먹었던 그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동적인 장면을 즐겨 그렸고, 그런 그림을 즐겨 그리다 보니 회화라는 고정 관념에서 자유롭고 싶어 만화로 갔다가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해 보셨다는 선생님은 이제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림책을 하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 요소를 적극적으로 데리고 올 겁니다. 언젠가는 내 책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어요.”

행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안 여기저기에 지도가 붙어 있습니다. 컨테이너 작업실 출입문 옆에 붙은 전국 지도, 주방 겸 거실이라 불러도 좋을 방 벽에 붙은 경기도 지도, 전에 살던 사람이 두고 갔다는 장롱 문을 가리는 커다란 대동여지도가 붙어 있습니다. 젊은 날,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걸어서 온 나라를 다니신 이력이 이렇게 지도로 남아 벽에 붙어 있습니다. “이 집에 온 뒤로는 많이 다니지 않게 되었어요. 여기 들어앉으니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안 나더라구요. 그런데 여기 시골집에 있다 보면 그냥 흘러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채소밭을 좀 돌보거나 가만히 앉아 풍경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가거든요. 세월을 정지시키는 방법은 작품을 남기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종이 위에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불러내면서 말씀하십니다. “앞으로도 펜을 계속 써 볼 생각이에요. 펜으로 그리는 것이 재미도 있고 내게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연필은 갑갑해서 못 쓰겠고, 매만지는 그림은 제 성격과 맞지 않고요. 저는 매만지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아주 성실하게 한 화면을 만드는 사람, 그림을 밑색에서부터 찬찬히 끌어올리는 사람이 부럽고 고마워요. 저는 성격이 꼼꼼하지 않아 그런 작업을 잘 못 하거든요.”그 말씀에 이어 누구의 그림을 좋아하시냐는 물음에 전혀 망설이지 않고 답을 주십니다. “빈센트의 그림을 참 좋아해요. 저는 고흐가 생각을 오래 하고 한 번에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해요. 그의 그림을 보면 물감을 덕지덕지 칠해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개의 경우 한번에 완성까지 간 그림으로 보입니다. 순간 순간 판단하고 결정해서 한 터치 한 터치가 완성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실지 여쭈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그림책은 '성장하는 존재로서의 아이'에 대한 것과 '옛이야기'에서의 상징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이야기 가운데 꼬부랑 할머니 등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등을 다룬 형식담 연구 성과들을 찾아내어야 해요. 형식담 그림책이 창작 그림책의 토대를 잡는 길로 즐겁게 갈 수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년 3월쯤 시작할 예정입니다. 또 하나는 창작그림책인데, 이 경우는 한 십년전 무심코 스케치해 놓은 것까지도 도움이 되더군요. 이건 되겠다 하고 반짝 드는 생각은 대부분 차분히 들여다보면 너무 얇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요. 갑자기 파편 같은 것이 잡혀 스케치해 보면 십 년 전에 그린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사오 년 전에 그린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머리 속에 묵은 이미지가 힘이 되는 거지요, 서사의 대목 대목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일을 하다가 놀랠 때가 많아요. 오래 묵힌 생각은 그림으로 쑥 빠져나옵니다. ”

『신통방통 도깨비』표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면 여러 힘든 일이 많으시겠다고 걱정하는 말씀을 드리니 껄껄 웃으시면 “안동에 계신 대장을 비롯해서 도처에 독립군이죠.”하십니다. 얼른 못 알아듣는 제게 “우리끼리 그렇게 불러요. 독립군 대장 권정생 선생님을 비롯하여 온 나라 도처에 독립군들이 창작 작업을 하고 있다고요.”하며 웃으십니다. 이렇게 여기 저기 우리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작업하는 분들이 많으니 우리 어린이들이 앞으로 더욱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일찍 내리는 산 속 마을의 어둠과 벗하며 여러 정보를 수집하게 해 주는 선생님의 컴퓨터에는 아주 오래 전에 만들었다는 손가락 한 마디만한 연탄이 두 장 놓여 있습니다. “그림을 한 30년 정도 그렸으니 이제는 자기 무게를 싣고 책을 낼 수 있을 것도 같다.”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 어린이 그림책으로 쏟아지는 밝은 빛 같습니다. 그 빛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기 바라면서 선생님 댁을 나옵니다. 산골의 밤하늘은 초롱초롱한 별빛이 수를 놓았습니다. 그 별처럼 빛나는 사랑 가득 실은 선생님의 다음 작업을 기다립니다.
공혜조/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권해 주고 싶어서 좋은 어린이 책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어린이』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린이 책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린이들이 행복에 겨워 웃음 터뜨릴 날을 기다리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