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웹진 제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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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작가를 찾아서]
참됨의 가치를 깨우쳐 주는 작가, 권정생

공혜조 | 2001년 11월

갈 길이 멉니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탯줄 끊은 고향을 변함없이 지키면서 어려운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 인물다운 인물이 그 마을에 살고 있기에 그보다 더 훌륭한 삶터가 없다.”고 누군가가 노래한 바로 그 조탑리, 그 삶터를 빛내고 계시는 권정생 선생님을 뵈러 가는 길입니다.
『강아지똥』에 실린 권정생 선생님 사진
평일인데도 가을 나들이를 떠난 차들 때문에 길이 더 아득합니다. 굽이굽이 조령을 지나면서 선생님이 살아오신 구비를 헤아려 봅니다. 아무리 헤아리려 해도 한 구비라도 제대로 헤아릴 성싶지 않은 힘든 삶을 살아오신 선생님을 뵈러 갑니다. 전화도 드리지 않고 나선 길입니다. 도시에서 왔다고 만나 주시지 않으시면 하릴없이 돌아올 양으로 오래 전에『몽실언니』를 읽고 또 읽어 눈물로 감동을 표했던 아이와 함께 떠나는 길입니다.

선생님 사시는 곳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저물었습니다. 어둠 속에 작은 창 하나만 빛을 내는 선생님 사시는 곳에 이르러 조심스레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불러 봅니다. 몸피 작은 검둥 강아지가 반갑게 짖고, 작은 창 옆으로 난 역시 작은 문 문살 사이로 빛이 쏟아집니다. “누구십니까?” 낮은 음성이 귓가에 이르기 전에 문이 열리고 선생님께서 나오십니다. 기별도 않고 들이닥친 낯선 방문객과 아이를 보신 선생님께 선생님을 뵈러 왔으나 이렇게 늦어 버렸다고, 내일 아침에 다시 와 뵙겠다고 말씀 드립니다. 인사를 드리려 하는데 뜻밖에도 방문 아래로 내려서십니다. “들어 오십시오.”

제 생긴 모양 그대로인 작은 돌계단에 얹힌 낡은 빨래판에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빛 속에 서신 선생님 얼굴을 바로뵙는 순간, 아득해집니다. 살아오면서 얼굴에서 빛이 나는 분을 세 분 뵈었습니다. 십사 년쯤 전에 그런 분을 처음 뵈었고, 삼 년 전에 또 한 분 뵈었지요. 그리고 오늘 조탑리에서 얼굴에 빛이 나는 또 한 분의 진정한 사람을 뵙습니다. 권정생 선생님, 낮은 목소리로 누구십니까? 라며 작은 방문을 열어 주신 권정생 선생님이 바로 세 번째 뵙는 ‘얼굴에 빛이 나는 분’입니다.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집니다.

뒤따라 들어온 강아지가 저도 방에 앉아 있겠다고 하다가 제 있던 자리로 물러나고 방문을 닫습니다. 두어 평 남짓한 부엌겸 거실 공간입니다. 선생님 앉으시기를 기다리는데, 선생님께서 꿇어앉으십니다. 놀랍고 송구한 마음에 “그러시면 제가 어떻게 앉겠습니까?” 하고 말씀 드리니 그제서야 편안하게 앉으십니다. 아이도 저도 고개 숙여 인사 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이런 만남을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불편하시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힘들어서 그랬어요. 몸이 아프다 보니……. 저녁 먹고 이제 막 좀 누워 있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기운을 얻어 조심스레 몇 말씀 여쭈었습니다.

『비나리 달이네 집』표지와 본문
최근에 나온 작품집『비나리 달이네 집』을 읽으면 산문이 아니라 운문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고 여쭈었습니다. “달이하고 아빠하고 주고받는 말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겠네요.” 하십니다. 그럼 처음부터 그림이 많이 들어갈 책으로 생각하고 일부러 그렇게 쓰신 건 아니시냐고 여쭈니 잠시 뜸을 들였다 말씀하십니다. “우리말에 원래 운율이 있지 않습니까. 가사 문학을 보아도 4·4조나 3·4조로 씌어 있고……. 처음에는 근처에 있는 장애인 학교 소식지에 스물 다섯 장 남짓 써서 실었어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출판사에서 단편 동화를 한 편 써 달라고 연락이 왔기에 서른다섯 장 가량 되게 다듬었지요. 한 열댓 편 모아 작품집으로 묶는 게 좋을 것 같았는데…….” 끝을 흐리시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 속으로 제발 이제부터라도 조금 덜 아프시고, 우리 어린이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 주셔야 할 텐데 하는 염려와 욕심이 생깁니다.

『비나리 달이네 집』에 실린 그림을 보면『손수 우리 집 짓는 이야기』에 나온 그림과 무척 닮았습니다. “그림 작가분이 와서 사진을 찍어 갔어요. 달이도 참말로 있는 강아지고요.” 1991년에 나온『짱구네 고추밭 소동』에 쓰신 ‘지은이의 말’에 선생님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동화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어린이들이 즐겨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나 거짓말을 써서는 안 되겠지요. 거짓말을 만들어 진짜인 것처럼 들려 주면 어린이든 어른이든 저절로 거짓말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첫째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참말을 전해 줘야 한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일지라도 거기 거짓이 들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읽지 않고 듣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 참되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너무도 많은 올가미가 있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나쁜 쪽으로 걸어가 버리기가 일쑤입니다.”그러니 선생님 동화가 우리 가슴을 울리며 주는 감동은 참됨이 갖는 힘인 듯합니다.

『짱구네 고추밭 소동』『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표지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의 머릿말에 “어린이들에게 힘겨운 일이 얼마나 많아요. 학교 가서 공부하고, 집에 와서 숙제하고, 학원 가야 하고, 하루 종일 눈코뜰새없이 바쁜데 책까지 읽는다는 건 얼마나 힘들까 걱정스럽답니다. 그래서 감히 책을 읽으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동화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쓰신 말씀을 기억해서 여쭈니 그 말씀 그대로 되뇌이십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아요? 학교도 가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그런데 책에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 보자고 얘기하면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세상과 내가 들려 주는 이야기 사이에서 갈등을 할 것 아닙니까?” 아이들이 선생님 책을 읽고 마음이 아플까 봐 더 이상 동화를 쓰고 싶지 않다는 선생님, 어떤 식으로든 다른 생명에게 아픔을 주고 싶지 않으신 선생님입니다.

“초등 학교 3학년이나 4학년 정도 되면 단편 동화 열 편 정도가 실린 책은 거뜬히 읽거든요. 한 3백 쪽 가량 되는 책이면 한 두 달이면 읽지요. 딱 그만큼만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건 어떻게 보면 못할 짓이지요. 요즈음 재미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맛있는 것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맛난 것을 앞에 두고 그것을 금하는 어른들, 그러니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보기에 참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점득이네』『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표지
선생님 동화에는 어린이도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작품집『점득이네』『사과나무밭 달님』,『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에 실린「무명 저고리와 엄마」같은 작품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에 어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어린이 문학에 그런 주인공을 많이 쓰시는지 궁금하다고 여쭈니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까?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십니다.『밥데기 죽데기』『사과 나무밭 달님』에 나오는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삶의 방향과 방식을 알려 주시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인가 봅니다.

“중·고등 학생들은 어른들이 읽는 명작들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그 시기가 아니면 책을 읽기 어렵잖아요? 먹고사느라 일을 해야 하니 책 읽을 틈 내기가 어디 숴워야지요. 세계 명작, 우리 나라 명작을 읽으면서, 아직 살아 보지 못한 인생을 책을 통해 살아 보면 자기 삶을 더 잘 살 수 있지 않겠어요? 요즘 성교육, 성교육 말들 많이 하는데, 뛰어난 소설을 읽다 보면 그런 건 저절로 되지요.”

『밥데기 죽데기』『사과 나무밭 달님』표지
작가가 안 되었으면 어떻게 사셨을 것 같냐고 여쭈었더니 나직이 말씀하십니다. “그런 가정을 해 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누가 스스로 살아갈 길을 처음부터 마음먹고 사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건 하느님도 모르실 거예요.”

초등 학교를 겨우 마친 뒤 온갖 곳을 떠돌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재봉틀 상회 점원 노릇을 했던 선생님, 오랜 객지 생활로 늑막염과 폐결핵에 걸리고, 신장 결핵과 방광 결핵까지 앓은 선생님, 조탑리 조그만 예배당 문간방에서 새벽별을 바라보며 종을 울리는 삶을 살아오신 선생님, “책이 좋았습니다. 책을 통해 다 겪을 수가 있거든요. 나는 지금 여기 살고 있지만 다른 고장, 다른 나라, 또 먼저 살다 간 사람들도 만날 수 있지요.” 나직나직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강아지똥처럼 몸과 마음을 부숴 피워낸 아름다운 동화로 어린이를 만나십니다. 한여름 소나기가 쏟아지면 구멍난 창호지 사이로 개구리들이 뛰어들어 오고, 겨울이면 아랫목으로 생쥐가 파고들어 발가락을 깨물고 달아나던 문간방에서 쥐에게 겨울 양식을 내어 주기도 했던 선생님은 황소 아저씨, 또야 너구리, 깜둥바가지 아줌마, 비나리의 달이, 탑이 아줌마가 되어 어린이를 만나십니다.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던 것처럼 선생님 주변에는 낡았으나 제 쓰임을 다하고 있는 물건들이 참 많습니다. 방문 앞 작은 돌계단에 놓인 빨래판이 그러하려니와 방 한쪽 단출한 개수대 앞에 세워진 두레상의 접힌 다리를 감싸고 있는 운각 가운데 하나도 다른 색 나무로 대어져 있습니다.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어 “앞산에 산벚나무 꽃이 예쁘게 피”고 “하늘에 별님들도 더 예쁘게 반짝”거리는 것처럼 선생님도 작은 집에 적은 물건을 가졌기에 우리 어린이들의 마음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 주시는 것 같습니다.

『황소 아저씨』표지
외가가 청도쪽이신데 친척 분이라도 계시냐고 말머리를 꺼냈다가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사람은 다 외롭지요.”라는 나즉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동화에는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가족이 많이 나옵니다.「중달이 아저씨네」에서 가족이 된 떠돌이 소년,『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에 나오는 집 없는 소녀와 외로운 할머니와 하느님과 예수님 가족,『밥데기 죽데기』에서도 떠돌이 아저씨와 늑대 할머니, 밥데기와 죽데기는 가족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 가족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여느 가족보다 더 따뜻하게 살아가지요.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고 어디 외롭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너무 외로우시지 않냐고, 혼자 사는 것을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고 말씀드리니 “누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삽니까? 어쩔 수 없이 사는 거지요.” 하시는 선생님, 아이에게 몇 살이냐고 물으시더니 “48년 남았구나, 금방 간다. 육십 금방이야.”하시는 선생님의 긴 시간 가늠과 그 동안 사무친 외로움이 가슴 저려 옵니다. “어머니 마음 아프게 하지 마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어. 그러니 어머니 말씀 잘 들어라.”라고 두 번 세 번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선생님 병수발을 드시다가 과로로 돌아가셨다는 어머님에 대한 회한이 보입니다.

『벙어리 동찬이』『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표지
「사과나무밭 달님」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안강댁과 그런 어머니 때문에 장가도 못 들었지만 그 어머니를 업고 다니는 잘 생긴 아들 필준이가 떠오릅니다. 아마 선생님도 필준이처럼 어머님을 모시고 싶었겠지요. 그 말씀을 꺼내는 것조차 힘이드셨는지 “그래도 요즘은 학교가 좋아졌어요. 엄마 따라 이렇게 오면 결석으로 안 치지?”라며 웃으시며 말머리를 돌리십니다. “그런데 요즈음 교육도 문제가 많아요.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는데, 정말 문제가 많아요. 그럼 엘리트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엘리트가 아닌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십니다.「벙어리 동찬이」에 나오는 동찬이 같은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랫 동안 가슴을 앓으시다가 동화로 쓰셨을지 모를 일입니다.

“요즘 아이들 너무 빨리 자라요. 우리 동네 아이, 지금은 물론 대학생이 되었지만 그 아이가 초등 학교 6학년 때부터 연애 편지 받느라고 공부를 못 하는 걸 봤어요. 먹는 음식이 그러니…….” 생장 촉진제가 들어간 고기류를 많이 먹고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염려가 가득 담긴 말씀입니다. 말씀이 길어지시면 또 편찮으실까 봐 조마조마합니다. 말씀하시는 내내 힘드실까 봐 몇 번씩 선생님 안색을 살피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심에 “이제 가야겠습니다.”만 반복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일어났습니다.

밖으로 나와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얼른 방문을 닫으시도록 걸음을 재촉합니다. 한참을 걸어나온 후 뒤돌아서 닫힌 방문을 바라봅니다. 방문은 닫혔지만 그 방의 정경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의지할 틈이 조금이라도 있는 벽이라면 책등조차 못 보이고 빽빽하게 누워 철제 책꽂이에 몸을 의탁한 책들, 한쪽 벽을 채 못 차지한 작은 개수대와 그릇 받침, 누군가가 가져다 드렸다는 작은 텔레비전, 책꽂이 앞 공간을 빼곡이 채운 쌀이며, 간장, 소금 등의 식료품, 저녁에 드시고 남겼음직한 배추, 작은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프라이팬……. 어떤 멋진 서재가 이 방보다 더 제 할 일을 제대로 해내고 있을까 싶습니다. 돌아갈 길은 더욱 어둡고 멀어졌는데, 마음은 아침을 맞은 것처럼 환했습니다.
공혜조/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권해 주고 싶어서 좋은 어린이 책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어린이』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린이 책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린이들이 행복에 겨워 웃음 터뜨릴 날을 기다리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권정생 선생님께서 사진 찍히길 원치 않으셔서 『강아지똥』에 실린 선생님 사진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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