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 웹진 제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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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그림책 꼼꼼히 들여다보기]
프레드릭

엄혜숙 | 2001년 10월

‘열심히 일한다’는 것의 의미

예나 지금이나 행동이 굼뜨고 느린 나에게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두려움을 주는 이야기였다. 다들 아는 이야기겠지만, 기억을 떠올리는 의미에서 줄거리를 살펴보자. 여름날 노래나 부르며 신나게 놀았던 베짱이가 한겨울이 되자 살기가 막막해진다. 베짱이는 개미한테 양식을 꾸러간다. 그러자 개미는 한여름날 게으르게 노래나 했으니까 양식을 꾸어줄 수 없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베짱이는 한겨울에 굶어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읽고는 한겨울에 얼어죽은 베짱이가 불쌍하기도 하고, 어리석다고도 생각했다. 겨울 준비도 좀 하면서 노래를 하지, 아무 대책도 없이 노래만 불렀을까 하고 말이다.

『프레드릭』 표지
그런데 조금 커서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베짱이는 죽어도 쌀 만큼 게으른 놈일까?’하고 말이다. 개미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베짱이가 불러 주는 노래야말로 일에 지친 심신을 달래 주는 청량제가 아니었을까? 어찌 보면 노래하던 베짱이도 개미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베짱이를 꾸짖을 때는 꾸짖더라도, 개미들은 베짱이가 한겨울을 나게끔 양식을 꾸어 줄 수 없었을까? 진짜 나쁜 놈은 베짱이가 아니라 개미가 아닐까? 어쩌면 이 이야기에는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지배자의 철학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에 번쩍 뜨이는 그림책을 발견했다. 그 그림책이 바로 『프레드릭』이다.

『프레드릭』은 구조적으로 보면, 『개미와 베짱이』와 상동성이 있다. 노래나 하는 베짱이 / 공상이나 하는 프레드릭,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 / 열심히 일하는 들쥐들. 또 먹을 것이 넉넉하고 살기에 좋은 여름 / 먹을 것이 떨어지고 살기에 어려운 겨울이 대비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공통된다. 그러나 주제는 완전히 다르다. 이 점이 작가의 새로운 해석인 것이다. 이 그림책에서 프레드릭은 단순히 빈둥대는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다른 들쥐들과는 다른 일을 하는 예술가로 표현된다. 또, 들쥐들도 프레드릭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의 말을 믿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구조적 상동성을 지닌 이야기로 완전히 다른 주제를 표현했을까? 그림책을 꼼꼼히 보면서 알아 보기로 하자.

꽃을 든 들쥐 ‘프레드릭

이 그림책의 표지를 보면, 돌 뒤에서 눈을 반쯤 감은 채 꽃 한 송이를 든 들쥐가 있다. 바로 주인공 프레드릭이다. 뒷표지를 보면, 꽃을 든 프레드릭의 뒷모습이 담겨 있다. 꽃을 든 들쥐라……. 뭔가 흥미진진하지 않는가? 자, 그럼 책을 펴고 프레드릭의 이야기를 보고 듣기로 하자.

그림책의 첫 장을 펴면,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이 등장한다. 원경으로 잡힌 이 장면은 바로 풀밭을 따라 둘러진 돌담이다.(그림 1 : 롱샷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인 풀밭과 돌담을 보여 주고 있다.) 다음 장을 넘기면, 돌담이 근경으로 잡히면서 여기에 사는 수다쟁이 들쥐 가족 다섯 마리가 나온다.(그림 2 : 이번에는 장면을 근경으로 잡아서 들쥐들의 보금자리와 여기서 사는 들쥐 가족 다섯 마리를 보여준다. 프레드릭만이 반쯤 감은 눈으로 가만히 앉아 있다.)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면부터 다섯 장면은 잇달아 풀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들쥐들의 모습이 나온다. 들쥐들은 옥수수와 나무 열매와 밀과 짚을 모은다. 그런데 들쥐 네 마리는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데, 들쥐 한 마리는 여전히 조는 듯한 눈을 하고 있다. 들쥐들이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니?”하고 묻자, 프레드릭은 “나도 일하고 있어.”하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다른 들쥐 네 마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프레드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림 3 : 다른 들쥐들이 옥수수를 나르고 있는데 반해, 프레드릭은 눈을 감고 동그마니 앉아 있다.)

<그림 1 : 롱샷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인 풀밭과 돌담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림 2 : 이번에는 장면을 근경으로 잡아서 들쥐들의 보금자리와 여기서 사는 들쥐 가족 다섯 마리를 보여준다. 프레드릭만이 반쯤 감은 눈으로 가만히 앉아 있다.>

<그림 3 : 다른 들쥐들이 옥수수를 나르고 있는데 반해, 프레드릭은 눈을 감고 동그마니 앉아 있다.>

그림책을 넘기면, 계절이 겨울로 바뀌어 첫눈이 내리는 장면이다. 들쥐들은 이제 돌담 틈새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간다. 그림을 보면 이번에도 프레드릭은 가장 늦게 들어가고 있다, 여전히 눈을 반쯤 감은 채.(그림4 : 흰눈이 펑펑 내리자, 들쥐 가족들은 돌담 틈새에 있는 보금자리로 들어가고 있다.) 그 다음 장면부터는 돌담 틈새에 있는 들쥐 가족들의 보금자리에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장면은 먹을 게 넉넉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다음 장면을 보면, 먹을 게 다 떨어지고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는 상황이 나타난다. (그림 5-1, 5-2 : 두 장면을 견주어 보면, 먹을 것만 대비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슷해 보이는 들쥐 가족들의 눈 모양과 꼬리 모양에 변화를 주어서 다양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궁핍한 시절이 온 것이다.

<그림 4: 흰눈이 펑펑 내리자, 들쥐 가족들은 돌담 틈새에 있는 보금자리로 들어가고 있다.>

<그림 5-1>

<그림 5-2: 5-1과 견주어 보면, 먹을 것만 대비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슷해 보이는 들쥐 가족들의 눈 모양과 꼬리 모양에 변화를 주어서 다양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때 들쥐들은 프레드릭 말을 기억한다. 그래서 “네 양식들은 어떻게 되었니, 프레드릭?”하고 묻는다. 그러자 프레드릭은 다른 들쥐들의 눈을 감게 하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들쥐들에게는 따뜻한 햇살이 느껴지고 마음 속에 색깔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림 6-1, 6-2 : 이 두 장면에서는 프레드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다른 들쥐들이 눈을 살포시 감고 있다. 눈을 감고서, 마음의 눈으로 느끼고 보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6-1>

<그림 6-2 : 연속되는 이 두 장면에서는 프레드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다른 들쥐들이 눈을 살포시 감고 있다. 눈을 감고서, 마음의 눈으로 느끼고 보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들쥐들이 “이야기는?”하고 묻자, 프레드릭은 이야기를 한다. 하늘에 사는 들쥐 네 마리-봄쥐, 여름쥐, 가을쥐, 겨울쥐 -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들쥐들이 박수를 치며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하고 말하자, 프레드릭은 수줍게 말한다. “나도 알아.”하고 말이다. (그림 7: 돌 위에서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서 있는 프레드릭. 붉게 물든 얼굴이 인상적이다.)

<그림 7: 돌 위에서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서 있는 프레드릭. 붉게 물든 얼굴이 인상적이다.>


‘반쯤 감은 눈’과 ‘감은 눈’

이 그림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주인공 프레드릭의 캐릭터가 아닐까 한다. 햇살과 빛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시인 프레드릭. 「개미와 베짱이」에서 베짱이는 노래나 하며 일도 안 하고 노는 게으름뱅이에 불과했지만, 들쥐 프레드릭은 그냥 졸기만 하고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일을 하는 예술가인 것이다. 프레드릭은 그 계절에 풍부한 햇살과 빛깔과 이야기를 모아서, 한겨울 들쥐 가족들이 궁핍한 시절에 보금자리를 풍성하게 한다. 그런데 이 프레드릭의 캐릭터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특징이 바로 ‘반쯤 감은 눈’이다. 이 ‘반쯤 감은 눈’의 의미는 무엇일까?

‘눈’은 예로부터 ‘마음의 창’이라고들 했다. 창은 보통 바깥과 안을 구분하면서도, 밖에서는 안을 보게 하고,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창은 안과 밖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도 우리 몸에서 안팎을 구분하면서 동시에 안팎을 연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의 눈을 통해 들어온 다양한 정보는 그대로 우리 것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 우리가 이미 지닌 지식, 우리가 지닌 세계관을 통해 다시금 선별되고 재구성되어 자기만의 독특한 앎(지식)과 느낌(정서)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프레드릭의 ‘반쯤 감은 눈’은 바로 ‘내면을 향한 눈’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게 아닐까. 밖을 향한 눈을 반쯤 감고서, 그 대신에 프레드릭은 안을 향해 눈을 뜨고 상상력을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 게 아닐까. 다른 들쥐들이 부지런히 몸을 놀려 일을 하는 동안에, 프레드릭은 다른 방식으로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을 사용하는 일을 말이다.

이것은 다른 들쥐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프레드릭이 평소에 늘 눈을 반쯤 감고 있는 것과 달리, 다른 들쥐들은 ‘눈을 감아 보라’는 프레드릭의 말을 듣고서 눈을 감는다. 그런 다음에 프레드릭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말을 듣고, 프레드릭이 모은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함께 체험한다. 체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때에도 ‘감은 눈’이 인상 깊은데, 들쥐들이 바깥을 바라보는 눈을 감자, 안을 바라보는 내면의 눈이 열리면서 궁핍한 바깥 세계 너머의 풍요로운 또다른 세계, 즉 상상의 세계가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들쥐들 또한 눈을 감고서야 활발해지는 상상력의 힘으로 상상의 세계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책에서 ‘반쯤 감은 눈’은 바로 또다른 인식 방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 이전에 느끼고 본다. 자기가 느끼고 본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한참 이후의 일이다. 실제로도 눈을 통한 시지각이야말로, 우리의 지각능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결국 ‘반쯤 감은 눈’은 ‘몽상하는 눈’, 자기 내면을 지각하는 능력, 상상력을 가리킨다고도 할 수 있겠다.

‘꿈 꾸는’ 들쥐와 ‘일하는’ 들쥐

이 그림책은 이솝 우화를 상기시키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게 또하나 있다. 그것은 부지런한 개미, 게으른 베짱이 식으로 인물을 타고난 것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레드릭이나 다른 들쥐들이나 모두 들쥐인 점에서는 같다. 다만 프레드릭은 ‘꿈꾸는’ 일을 하는 들쥐이고, 다른 들쥐들은 몸을 움직여 ‘일하는’ 들쥐인 것이다. 다른 들쥐들은 프레드릭이 눈을 반쯤 감고 있자,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프레드릭이 자기가 하는 일을 이야기하자 인정해 준다. 또 한겨울이 되어 돌담 틈에 있는 보금자리에 들어갔을 때도, 프레드릭이나 다른 들쥐들이나 똑같이 나누어 먹고 즐겁게 지낸다. 이들은 같은 들쥐 가족인 것이다. 그러기에 먹을 것이 다 떨어진 다음에는 다같이 프레드릭의 양식을 나누어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한여름의 빛나는 햇살과 아름다운 색깔들,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말이다.

『프레드릭』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우선 ‘일’에 대한 관점을 달리하게 한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뿐이 아니라, 상상력을 활용하여 하는 일도 노는 게 아니라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현실이 궁핍할 때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또 프레드릭을 대하는 다른 들쥐들의 태도도 인상 깊다. 굼뜨고 게을러 보이는 프레드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다. 그리고 한겨울에 양식을 같이 나누고, 또 그 양식이 떨어졌을 때는 프레드릭이 간직한 또다른 양식을 함께 나눈다. 그야말로 ‘먹을 것을 함께 나누는 식구’인 것이다.

이 그림책은 시인-예술가인 프레드릭의 아이덴티티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더 넓게 생각해 보면, 예술과 노동, 예술가와 일반인 사이의 관계를 다룬 것이기도 하다. 예술가와 일반인, 예술과 노동, 이 둘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의 각각 다른 측면인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과 남을 위해 상상력을 발휘한다. 일반인들은 예술가의 창작물을 향유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감각과 인식을 풍부하게 한다. 이를 통해 일반 사람들의 생활은 더 윤택해지고, 아름다워지고, 그들이 하는 일 또한 더욱 즐거워지는 게 아닐까. 이런 즐거움을 주는 예술가는 일반인과 ‘다른 일’을 하지만, 그것 또한 ‘일’인 것이다.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일인 것이다.

제각기 자신이 잘하는 일을 통해 공동체에 기여하는 모습, 그런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프레드릭』에서 보았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살기가 척박할수록 시인과 예술가는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할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림책 『프레드릭』에는 시인과 예술가의 임무가 단순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으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을 보면, 프레드릭의 ‘반쯤 감은 눈’과 프레드릭과 같은 식구인 들쥐들을 등장시킨 것이 주효했다. 이를 통해 「개미와 베짱이」의 주제를 멋지게 전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엄혜숙 / 아동 도서를 편집하고 번역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였습니다. 책 읽기와 영화 보기, 술이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기가 취미이지요. 인하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을 다니면서 아동 문학을 공부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