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02월 웹진 제2호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열린 주제 열린 글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 주제 열린 글

[함께 생각해 볼까요]
마음을 넓혀 보아요

김수경 | 2001년 02월

아이들은 쉴새 없이 무언가를 합니다. 먹고 자는 것은 물론이고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렇게 많은 것을 해치우면서도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니, 참 대단한 생명력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발육도 좋아서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어른 몸집 만한 녀석들도 많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고 꼬물거리기만 하던 녀석들이 불쑥 자란 모습은 참 흐뭇하지요. 그러나 몸만 컸지 그래봤자 아이들입니다. 어떨 때 보면 욕심껏 과자를 쥐고 병에서 손이 빠져 나오지 않아서 낑낑대는 아기들 같습니다.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가 먼저입니다. 자기가 받는 것은 당연하고 남에게 주는 일은 참 힘듭니다. 몸이 자란다고 저절로 마음이 자라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보 이반의 이야기』표지 사진

하기는 우리 어른들도 자기를 누르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워낙 각박하다보니 남의 사정을 헤아려 주고 용서하며 살다가는 인생의 패배자가 될 것 같습니다. 어른도 그러니 아이들은 더 어렵겠지요.

『바보 이반의 이야기』는 우리 부모들도 어렸을 적에 많이 읽은 책이지요. 퍽 유명한 책이고, 그래서 무척 많은 출판사에서 소개를 한 것으로 압니다. 제가 본 것은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책인데, 이 책에는 제일 유명한「바보 이반의 이야기」외에도 아홉 편의 이야기들이 더 있습니다.

이 책에는 세상 다시없이 어리석게 보이는 사람들이 나옵니다.「하느님은 진실을 알지만 빨리 말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악쇼노프는 억울하게 살인자 누명을 쓰고 평생을 유배지에서 보냅니다. 진짜 살인자를 대면하여 복수할 기회가 생기지만 그는 용서합니다.「불을 놓아 두면 끄지 못한다」의 이반은 이웃과 오해와 반목을 거듭합니다. 이반도 잘한 것은 없었지요. 그러나 이반은 집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다 타 버린 후, 자기 집에 불까지 지른 바로 그 이웃을 용서합니다.「바보 이반 이야기」의 이반은 모두들 잘 알다시피 더할나위 없이 바보스럽지요. 형들에게 모든 것을 내 주고 일만 하며 계속 바보짓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곤경은 척척 해결되고 악마조차 바보 이반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왕자』 표지 사진
『행복한 왕자』 표지 사진

용서하고 베푸는 일은 도덕적으로 지당하고 옳지만 현실에서 무척 손해요, 지는 일 같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한없는 바보들이 실제로는 엄청나게 강하고 슬기롭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행복한 왕자』역시 우리 부모들이 어린 시절 많이 읽은 책이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특히「행복한 왕자」,「욕심쟁이 거인」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림책으로도 많이 소개되어 새삼스레 다시 읽기가 썩 내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법 독서력이 생긴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다시 읽는다면 새롭게 얻는 것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바보 이반의 이야기』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행복한 왕자』에는 그 외에 몇 편의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행복한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왕자나 왕 등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이야기마다 사파이어가 반짝이고, 커다란 루비가 붉게 빛납니다. 주인공들 외모조차 아름답습니다.「별에서 온 아이」의 주인공 별 아기는 얼굴이 상아같이 희고 고우며, 머리는 수선화 고리같이 곱슬거리고, 입술은 빨간 꽃잎 같고, 눈은 맑은 강가에 핀 제비꽃 같다고 책은 속삭입니다. 아마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호사스러움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이 책은 금방 전해 줍니다.「젊은 왕」의 주인공 왕은 대관식을 위해 준비한 찬란한 옷들을 보고 말합니다.

"이 예복은 슬픔의 베틀 위에서 고통으로 새하얘진 손이 짠 것이고, 이 루비의 심장에는 피가 흐르며, 진주의 심장에는 죽음이 있소."

비참함과 호화로움의 대비가 너무나 극명해서 섬뜩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이제 화려한 동화 속 세계의 이면에 조금씩은 눈을 뜨고, 세상을 알아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깨달음은 사실 좀 슬프지만, 따사로움 뒤에 숨어 있는 그늘진 곳을 늘 기억하는 마음을 심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 왕자』표지 사진

『어린 왕자』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이만큼 많이 출판된 책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어린 왕자』가 이야기하듯이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모자 속의 보아 뱀을 삼킨 코끼리를 알아보는 눈을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마음으로 보아야 진실이 보인다는 것, 정말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어린 왕자』는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아이들은 유행가를 참 좋아합니다. 주로 흥겨운 리듬과 춤에 빠져드는 것 같더군요. 그렇지만 경쾌한 리듬만큼이나 가벼운 사랑 타령에 여린 감수성들이 물들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여우가 말하는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영원한 책임을 갖는' 사랑을 아이들이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좀 이르겠지요. 그러나『어린 왕자』는 아이들에게 진지한 사랑에 대한 어렴풋한 밑그림이나마 그려 줄 것입니다.

물론 한두 권 책을 읽었다고 금방 마음의 눈이 반짝 떠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생각거리를 던져 주는 이런 책들을 두 번 세 번 다시 손에 잡으며 조금씩 아이들 마음은 넓어질 것입니다.
김수경 / 1961년에 태어났고,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여러 일을 하다가 지금은 에디노(www.edinno.com) 책 이야기 코너에서 독서 상담사 일을 하고 있답니다. 동화책과 그림책 읽는 것을 4학년 짜리 딸보다 더 즐겨해서 동화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부지런히 다닌답니다. 교육적인 정보에 관심이 많구요, 재미있는 책이 많이 나와 어린이들이 즐거워졌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