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02월 웹진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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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우리 동화 제대로 보기]
'나'를 찾아가는 멀고도 험한 길

김서정 | 2001년 02월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동화로는 보기 드물게 자기 정체성을 찾는 존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동화의 주인공인 암탉 잎싹은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끈질기게 따라가면서 행동과 사고 반경을 죽음의 구덩이에서부터 부활의 창공까지 넓고도 높게 펼쳐 보여 준다. 가족과 친구 사이의 에피소드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 아동문학계(얼마 전 몇몇 동인들과 함께 90년대 주요 동화 100여 편의 소재를 조사·분류해 본 적이 있는데 그 소재의 폭 좁음이 새삼 놀라웠다.)에서는 아주 소중한 시도이자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새 세기를 맞아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이는 작품 중 하나로 손꼽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표지 사진
양계장에 갇혀 사는 난용종 암탉 잎싹은 '마당'에 사는 암탉이 앙증맞은 병아리를 까서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본 뒤부터 자신도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소망을 품는다. 그것은 "암탉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바람"이다. 잎싹은 양계장 철망 안의 다른 닭들과 달리 자신의 본질을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까는 어미'로 스스로 규정하면서 독립적으로 자아를 확립하는 것이다. 작가는 난용종 암탉인 잎싹이 "혼자서 낳은 알은 아무리 품어도 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진작에 알았다면 알을 품고 싶다는 소망 따위는 아예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현실적 한계 앞에서 그렇게 쉽사리 물러나는 소망이라면 애초부터 소망이라고 이름붙여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잎싹은 그걸 알았더라도 여전히 병아리를 소망했을 것이다.

어린 초록머리를 어깨 위에 올리고 의기양양한 입싹
소망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낳지 않은 알도 끝까지 품어 까고, 자기와 다르게 생긴 아기 오리도 몸을 던져 끝까지 지켜내는 일. 그것은 꿈이나 소망을 공상처럼 품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하는 차원이다. 자신의 본질이며 의무라고 여기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험한 길도 마다 않고 가는 일, 그 길 끝에서 드디어 자신을 완성하고 환한 자유를 누리는 일이 바로 진정한 소망의 모습이며 가치라는 것을 한 볼품없는 양계장 암탉 잎싹은 우리에게 확인해 준다.

잎싹은 자기 이름을 자기 스스로 지어 붙인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독립성을 선언하는 동시에 자신을 어떤 존재로 규정지었는가, 어떤 생애를 살고 싶은가를 보여 주는 상징이다. 잎싹의 생의 목표는 생명의 밑바탕 되기, 아름답게 거듭나기이다. 그것은 철망 안에서 마당의 아카시아나무를 보며 품어 키운 생각이다. "처음에는 아카시아나무에 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줄" 아는 잎싹. 그러나 꽃이 눈송이처럼 날리며 진 뒤에도 남아 있던 초록색 잎사귀가 늦은 가을까지 거친 바람과 사나운 빗줄기를 견뎌내다 노랗게 물든 뒤 조용히 지는 것을 보며 감탄하고, 이듬해 봄에 연한 초록색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며 또 감탄한다. "그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던 마음은 결국 족제비의 밥이 될 뻔했던 알을 품어 오리를 탄생시키고, 자신의 몸뚱이는 "마지막으로 낳았던 알처럼 느껴졌"던 새끼족제비들의 먹이로 기꺼이 내어놓게 한다. 순환하는 생명 현상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 그 섭리 깨닫기. 진부할 정도로 흔하고 당연한 명제이지만 잎싹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서 그 명제를 실현해낸다. 상투적이고 어설픈 관념 섞인 설명이 아닌, 생생한 성격과 팽팽한 사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아나는 메시지는 보기 드문 설득력을 갖는다.

그 설득력을 담보하는 문학적 장치로 성격과 사건 외에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공간성이다. 우선 제목인 "마당을 나온 암탉"부터가 시사적이다. 왜 양계장을 나온 암탉이 아니라 마당을 나온 암탉일까. 마당은 무슨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이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양계장 철망 안을 시작으로 마당→밭→찔레덤불→저수지→(마당)→야산으로 뻗어나간다. 각각의 공간은 잎싹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자아 실현의 절대적 조건이 된다. 잎싹이 어떤 존재인지는 그녀가 지금 어느 장소에 있는지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양계장 안의 잎싹은 열렬히 소망하는 존재이다. 양계장 밖으로 나가기 위해 먹이를 거부하고 알 낳기를 거부하면서 야위어다가 폐계 판정을 받아 죽은 닭들의 구덩이에 내던져지기도 하고, 족제비의 앞발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후 그토록 소망하던 마당으로 들어선 잎싹. 그러나 잎싹의 몸은 이미 알을 만들어낼 수 없는 상태이고(가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마당 닭 가족과 오리 무리와 문지기 개로 이루어진 마당 동물 사회는 완강하게 잎싹을 몰아낸다. 죽음을 무릅쓴 소망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허망하고 혹독하다.

마당 안의 잎싹은 그래서 이제 좌절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마당을 '나간'다는 진술에는 잎싹이 그 분노와 슬픔과 좌절을 극복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양계장 안에서 마당만을 바라보던 잎싹은 분노와 슬픔의 힘으로 마당을 나와 더 넓은 세상을 발견한다. 그 세상은 밭과 찔레덤불이다. 싱싱하게 이슬 맺힌 배추와 꿈틀거리는 배추벌레를 먹을 수 있는 밭. 누군가 두고 간 알을 품어 어린 것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찔레덤불. 잎싹은 그토록 동경하던 '마당을 나온' 후에야 비로소 소망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잎싹에게는 자기와 종족이 다른 아기, 오리 새끼인 초록머리의 정체성을 찾아 주고 지켜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그것은 소망과는 또 다른, 지극한 사랑에서 나오는 숭고한 의무이다. 그래서 잎싹은 자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처인 저수지로 야산으로, 사는 곳을 옮긴다. 심지어는 초록머리의 청에 못이겨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마당으로 돌아가기까지 하지만, 마당은 초록머리를 위한 곳도 아니었다. 마당은 인간이건 동물이건, 더 많은 먹을 것과 더 확실한 자리 보존만이 목표일 뿐, 자유와 소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가 사는 곳이었던 것이다.

떠나가는 초록머리를 바라보는 잎싹
그런데, 잎싹과 초록머리의 종족이 다르다고? 아니다. 잎싹은 꽃과 잎이 한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것처럼 닭과 오리, 나아가서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닫고 있었는지 모른다. 먹고사는 일이 먹히고 살리는 일과 궤를 같이하다가 언젠가는 만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초록머리에게 "서로 다르게 생겼어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날개를 활짝 벌리고 족제비에게 자기 몸을 내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물풀에 매달려 알을 낳고 남아 있는 힘으로 마지막 여행을 마친 잠자리들"이 쪼아먹으려는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날개가 굳어가는 동안 수많은 눈"으로 "파란 하늘을 보고" 있었던 것처럼.

이제 잎싹은 자기에게 잡아먹히던 잠자리가 쳐다보던 파란 하늘을 날고 있다. 그 하늘은 그토록 애지중지 키웠던 초록머리가 동료 오리떼와 함께 가 버린, "그들을 빨아들이는 다른 세상"이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하늘 저쪽으로 빨려" 간다. "이쪽에 남은 껍데기"는 족제비 새끼들의 먹이로 내 주고 잎싹이 얻은 것은 살아 있는 것들의 장소인 하늘을 나는 날개였다. 자신도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소망, "소망보다 더 간절하게 몸이 원하던" 하늘을 나는 날개가 잎싹이 마지막으로, 그리고 영원히 얻은 놀라운 보상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어른들에게도, 아니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깊은 울림을 주는 동화이다.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새삼스럽게 돌아보도록 만드는 동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숱한 동물들 중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를 자문하자. 그러면 가슴털을 뽑아 알을 덮어 주는 암탉처럼 자기 가슴을 할퀴며 이 글을 썼을 작가에게는 상당한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서정 / 공주영상정보대학 아동학습지도과 교수이며 동화 작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어린이 문학을 너무나 사랑하는 선생님은 동화『유령들의 회의』를 썼고,『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행복한 하하호호 가족』『용의 아이들』등을 우리말로 옮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