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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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아줌마와 함께하는 과학책 산책]
과학책, 골라 읽는 재미가 있다?

이지유 | 2004년 01월

‘오늘은 무슨 책을 골라 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책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텔레비전에서 난데없이 비보가 울린다. 남극 세종 기지에서 연구를 하던 대원들이 실종되었다는 뉴스였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여덟 명씩이나!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다시 책장으로 눈을 돌리니 갑자기 이 책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바로 『야! 가자, 남극으로』다.

형식으로 보자면 이 책은 아주 교과서적이다. 남극에 대한 교과서와 같다는 말이 되겠다. 남극이 어디쯤 있는지, 우리 세종 기지는 어디 있는지, 그 곳에서 무얼 하는지, 어떻게 살아 가는지, 남극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아주 소상하게 보여 주는 교과서다. 이 책의 지은이 장순근 박사는 세종 기지에서 네 번이나 겨울을 보냈다. 그 동안 보고 겪은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책 속에 있다. 남극의 동식물 이야기, 화석과 지하 자원에 관하여, 남극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하여 자세히 적고 있다.

『야! 가자, 남극으로』표지와 본문

어린이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나라에는 없는 남극이라는 환경에서 사람과 동식물이 살아 가는 모습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대상을 주제로 다룬 책들을 보며 ‘학습 동기’가 부여되지 않아 아이들이 재미없어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말인즉 가까이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만 채워 줘야 하는지 그것은 또 다른 의문이다. 세계는 하나가 되어 가고 있고 이제는 세계인들과 겨루어야 하는데 우리의 호기심이 국내에만 머물러 있다면 곤란 하다. 이렇게 말했다고 우리 것은 다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냐, 공격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런 뜻이 아니니까.

내가 이 책을 아끼는 까닭은 시설 좋은 기지의 선진국 대원이 쓴 책이 아니라, 우리 말을 쓰는 우리 나라 사람이 지은 책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말로 쓴 책에는 그 나라 사람들의 가치관에 의해 한 번 걸러진 많은 사건들이 들어 있다. 결국 우리는 영어를 쓰는 사람의 관점으로 또는 불어를 쓰는 사람의 관점으로 사건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책의 형식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분야마다 이런 교과서적인 책들이 좀더 많이 나와야 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책들은 각 분야의 사전과도 같다. 어찌 보면 전문 서적에 가까운 이런 책들이 많아야 자료가 풍부해지고, 그런 뒤에야 그 발판을 딛고 다양한 형식을 지닌 책들이 나올 수 있다.

이와 비슷한 형식의 책을 또 들어 본다면 『화석, 오래된 내 친구야』가 있겠다. ‘눈으로 보고 발로 찾는 자연 다큐멘터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부제가 말해 주는 대로 우리 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화석을 찾아 볼 수 있게 꾸몄다. 화석의 정의와 화석이 갖는 의의를 짚어 본 뒤 도별로 어디에서 화석이 발견되었는지 알려 준다. 이렇게 전국에 흩어진 화석을 찾아다니며 습곡, 단층, 석회 동굴과 같은 지질 구조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준다.

수많은 답사를 다니며 지은이가 직접 찍은 사진과,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지도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교실에서 지층에 대해 잠깐 배우고 시험에 나올 내용만 외운다면 화석과 땅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없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화석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수 없다면 이 책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화석 오래된 내 친구야』표지와 본문

교과서적인 또는 전문성이 짙은 책을 다루면서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분석적, 논리적 과학이 발달한 서양에서는 어린이 용 과학책도 교과서같이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어떤 책은 쪽수가 적고 글자 크기가 커서 어린이 책 같지만 그 속에 있는 내용을 볼라치면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 있어 놀랄 때가 많다. 서양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과학 전문 용어가 그네들이 쓰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과학 전문 용어라는 것이 서양에서 먼저 생기고, 나중에 일본 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 말로 번역한 것이 많아 과학을 공부하는 과학도들도 용어만 듣고는 얼른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 이 땅에 사는 일반인과 어린이는 오죽하랴! 학자들은 외국 말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뜻이 통하게끔 우리 말과 글로 바꾸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동양에서는 과학을 철학과 종교와 연결해서 통합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자연의 이치를 알아 내는 것이 중요한 목적인 과학이 서양과 동양에서는 각자 다른 수단과 언어로 발전해 왔던 것이다. 이런 견해의 차이 때문인지 우리 나라에서는 전문 과학서보다 이야기에 좀더 비중을 두는 과학 이야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 용 과학책일수록 ‘과학 동화’라는 형식을 빌려 만든 책이 많은데, 가끔은 어린 아이들에게 과학 지식을 가르치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책들이 종종 있다. 즉, 세련되게 과학과 이야기를 결합하지 못했다는 그런 말이다.

『뚱보는 괴로워』표지와 본문

하지만 잘 만든 책도 많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음식 속에 숨은 과학’이라는 부제를 단 『뚱보는 괴로워』다. 비만 때문에 운동회에서 웃음거리가 된 엄마. 엄마는 식구들과 함께 체중 감량을 시작한다. 이 책의 재미난 점은 책 안에 다양한 형식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요리한 법을 설명할 때는 커다란 말 풍선이 사용되는가 하면 중간 중간에 여러 컷으로 이루어진 만화도 나온다. 또 어떤 그림은 원근법을 무시하고 아주 평면적으로 그려 마치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아이들은 그림이 세련되어서 이 책이 재미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그린 것 같아서 재미있다고들 한다.

과학과 이야기를 잘 결합한 책 가운데 또 하나를 들라면 『우리 몸의 구멍』을 들 수 있다. 유아 또는 초등 저학년 용으로 기획된 이 책에 대해서는 재미난 그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샤워기를 들고 혼자 몸을 씻는 아이의 모습은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각도에서 그림을 그렸다. 보통 유아 용 책 그림에서는 이런 각도로 사물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사물을 보는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 모른다. 이런 그림 한 장이 공간 감각을 키워 주는 일에서는 100쪽짜리 논문보다 낫다.

『우리 몸의 구멍』표지와 본문

또 재미난 것은 구차한 설명 없이 호흡의 원리와 청각, 시각의 원리를 한 컷에 보여 주는 그림들이다. 그 원리들을 설명하려면 어찌 그림 한 장으로 될까만, 이것저것 다 생략하고 ‘이렇다는 걸 보아라!’ 하고 용감하게 보여 주는 그림이 아주 재미나고 발랄하다.

약간은 딱딱한 과학책도 필요하고 재미난 이야기 과학책도 필요하다. 나는 오늘 이 두 가지 고리 안에 드는 책들을 고르며 무척 기뻤다. 왜냐? 내가 고른 책 가운데 번역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우리 과학책이 없다고들 하지만 잘 찾으면 보석 같은 책들이 있다. 욕심이 있다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이겠지.

글을 쓰는 도중 남극에서 실종된 대원 8명 가운데 7명이 살아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과 한 명은 목숨을 잃었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자연의 비밀을 풀려고 했던 27세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허나 모두 돈을 바라보고 ‘인기’ 전공을 택하는 요즘 같은 때 저런 젊은이가 아직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사회는 희망적이다. 그런 젊은이를 잃어서 우리 사회는 슬프다. 부디 이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할 텐데…….
이지유 / 대학에서 천문학과 과학 교육을 전공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재미난 과학 글을 쓰려고 천문대, 화산, 박물관, 열대 식물원, 병원 등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늘 디지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필요하다 싶으면 아무 때나 사진을 찍는 바람에 아들, 딸이 아주 괴로워한답니다. 어린이들을 위해 지은 책으로는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와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화산 이야기』가 있고, 초보 부모들을 위해 『그림책 사냥을 떠나자』를 썼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