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1월 통권 제182호
속 깊은 책 이야기
더불어 책 읽기
책 너머 세상 읽기
열린어린이 선정 이달의 좋은 책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어린이 책 이야기

[작가를 찾아서]
도깨비처럼 뚝딱! 책을 만들어내는 그림 작가 한병호

공혜조 | 2001년 08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한병호 선생님을 찾아 뵙자고 어렵게 마음을 먹었는데, 선생님께서 그린 책들을 모아 놓고 보니 더욱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나온『말썽꾸러기 또또』『경복궁 마루밑』, 또 바로 얼마 전에 펴내자마자 출판가의 화제가 되었던『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도깨비와 범벅 장수』를 비롯한 우리 옛 이야기 그림책들, 아주 오래 전에 삽화를 그렸던 위인전까지 꺼내 쌓아 놓고 보니 책상 귀퉁이가 한껏 무거워 보입니다.
작업실의 한병호 선생님
청평을 지나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듣습니다. 현리 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빗줄기가 세차게 내려꽂힙니다. 선생님 댁으로 가는 시골 골목길에 접어드니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얼굴로 시치미떼는 하늘이 얄밉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소풍이라도 가는듯 마음이 들뜹니다. 들뜬 마음만큼 높다란 곳, 길이 끝난 바로 그곳에 선생님의 작업실이 있습니다. 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히 가꾸었는지 자랑하며 하늘 향해 가슴 연 마당에 내려섭니다.

탁 트인 창 밖 경치에 시선이 머물러 있지 못합니다. 작업실 여기 저기 장난스레 서 있는 도깨비와 우리 옛 생활 도구들이 창 밖으로 빠져나가는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들입니다.

작업실 벽에 걸린 우리 옛 생활 도구들
옛 생활 도구들이 작업실 한쪽 벽을 온통 차지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쓰던 부지깽이며, 빨래 방망이, 소제용 솔, 국자, 숟가락, 너까래, 호미, 인두, 부엌에서 쓰던 작은 풀무, 엿장수 가위, 인두에서 밤을 구워 먹던 손바닥 만한 회오리 모양 석쇠, 다식판 등이 작업실 한쪽 벽에 주렁주렁 실한 곡식들처럼 매달려 있어요. 모두 우리 조상들이 일상 생활에서 긴요하게 쓰던 것이지요. 선생님은 이런 것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이런 저런 생활 용기들을 이용해 만든 선생님의 도깨비나, 화선지에 그린 여러 색깔 도깨비든 먹으로만 그린 까만 도깨비든 눈만 하얀 빨간 도깨비든, 선생님의 손길을 거쳐 나온 도깨비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그러니 어째서 도깨비 작업을 그토록 많이 했는지 여쭙는 것조차 어리석어 보입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개인 작업을 할 때 선배 한 분이, 전공이 동양화인데 동양화의 특징을 살려서 일러스트 작업을 한번 해 보라고 하더군요.”

『도깨비와 범벅 장수』표지 사진
이 말을 듣고 선생님은 동양화의 특징을 살린 일러스트, 우리 문화의 특징을 담고 있는 일러스트 작품을 생각하다 도깨비 일러스트를 출미협 전시회에 냈답니다. 그 때 낸 도깨비 일러스트 작품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을 해서 도깨비 이야기를 그리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해서 선생님의 첫 도깨비 그림책, 태어난 지 십 년이 넘어도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도깨비와 범벅 장수』라는 책이 1992년 8월에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이후로 여러 출판사에서 선생님께 도깨비 그림책을 그려 달라고 하여 선생님은 도깨비 화가로 이름을 드날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황소와 도깨비』 『도깨비 방망이』 등의 책에 그린 도깨비는 다른 어떤 도깨비보다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선생님을 도깨비 화가로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이 만든 도깨비들
물론 선생님도 도깨비를 무척 좋아해요. 1998년에는 선생님이 그리거나 만든 도깨비를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도깨비 전시회를 하기도 했지요. 신틀로 얼굴을 만든 도깨비, 오래된 빗자루로 만든 도깨비, 낫으로 뿔을 세운 도깨비, 인두로 뿔을 세운 도깨비, 숟가락 귀를 가진 도깨비, 삼베 바지를 입은 도깨비. 솔로 몸통을 만든 도깨비, 괭이 하나로 삼은 다리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선 도깨비, 혹은 선생님이 직접 쇠판을 깎아 만든 도깨비들과 여러 도깨비 그림을 한곳에 모아 전시를 했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키득키득 웃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작품을 즐겼습니다.

닭을 무서워하는 낮도깨비
오랫동안 도깨비를 그린 선생님이 가슴에 품고 있는 또 다른 도깨비는 낮도깨비입니다. 도깨비가 왜 밤에만 다니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시원한 웃음 한 줄기를 뚝딱 던져 줄 책입니다.
“요즈음은 작업하는 것이 힘에 부쳐요. 하고 싶은 작업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씨익 웃는 선생님의 표정 아래 지수와 규일이 남매를 길러야 하는 아빠의 근심과 행복이 슬몃 드러납니다. 그림을 그리며 사시니 얼마나 행복하시냐고, 저도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가 많다고 하자, 빙긋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세요.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되지요. 잘 그리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그리면 정이 가는 그림이 나오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직접 만들거나 그린 도깨비들을 작업실에 세워 두고 있나 봅니다. 내가 좋아서 내가 만든 작품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신 틀로 만든 도깨비들
매미 소리를 벗삼아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로 이야기가 옮아갑니다.
“십 년 동안 매년 대여섯 번씩 다녔어요. 갔다 올 때마다 책으로 펴내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우리 민물고기에 대해 자료를 보려고 했는데, 도감들도 틀린 부분이 많아서 안타까웠지요.”
민물고기와 친해진 특별한 계기라도 있냐고 여쭙니다.
“벌써 십 년쯤 되었나 봐요. 어느 집에 갔는데, 그 집에서 민물고기를 기르기에 몇 마리 얻어 길렀지요. 그 뒤로 근처 강에서도 고기를 잡아와 도감도 펼쳐 보곤 하면서 민물 고기 기르는 재미에 흠뻑 빠졌어요.”
그러던 즈음에 오지를 소개하는 작은 신문 기사를 보았다고 합니다.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표지 사진
“천연 기념물인 어름치가 사는 곳으로 미산 계곡을 소개했어요. 반가운 마음에 미산 계곡에 갔고, 강물에 손을 넣어 내 손바닥 안에 든 어름치를 황홀하게 바라보다가 놓아주고 돌아왔지요.”
그런데 그 말을 하면서 선생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그런데 그때 정말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됐어요. 사람들이 어름치를 잡아먹더라구요. 그래서 이 고기가 천연 기념물인 줄 모르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는 사람도 있고, 알긴 아는데 잡았으니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요리해 먹는 것을 봤어요. 그걸 보고 얼만 놀랐던지…….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고기와 같이 산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민물고기의 아름다움을 어른들에게 이야기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린이들에게 우리 민물고기의 아름다움을 알려 주어서 커서도 자연스레 민물고기와 더불어 사는 환경을 지키고,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마음먹은 지 십 년이 지나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이지요.”
퉁가리,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선생님이 미산 계곡을 찾아다닌 십 년 동안 사람들은 미산 계곡을 끼고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아스팔트를 닦았습니다.
“그 십 년 동안 환경이 얼마나 파괴되었을까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파요. 미산 계곡에서조차 그 물고기가 사라지면 이제 우리 나라 어디를 가든 다시는 그 물고기를 볼 수가 없을 텐데 말이지요. 천연기념물 서식지라도 제대로 보호해야 하는 건데……. 미산 계곡의 진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물고기들인데, 사람들이 과연 물고기들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제대로 평가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었어요.

새알과 둥지,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얼마 전에 자연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분을 만났는데, 그 분도 자연 생태에 대한 통계 조사나 환경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진 곳이 없다고 하더군요. 이 책이 환경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환경 보호라고 하면 늘 남의 일 같았는데, 오랫동안 미산 계곡에 다니면서 지난해에 보았던 물고기를 이듬해에 못 보게 되는 일을 자주 겪으면서 바로 나부터 환경을 보호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산 계곡같이 한정된 곳이 아니라 아이들이 흔히 가서 볼 수 있는 조종천이나 한강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살고 있는 물고기와 곤충과 식물, 환경과 어떻게 어울려 있고, 또 그들이 오래도록 살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책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림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환경 보호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바위 아래 붙은 알을 지키는 채색 꺽지 그림과 수묵 꺽지 그림
그런 염원으로 선생님은 때로는 섬세하게 채색화로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힘차게 튀어오르는 먹선으로 우리 물고기의 여러 모습을 공들여 표현했나 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니 ‘오랜 자연 사랑이 첫 열매를 거두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에게는 애써 풀이며 벌레, 물고기 이름을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계시듯, 자연 속에 오면 자연 자체가 스승이 되거든요. 아이들을 자연 속에 대려다 놓는 데까지가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자연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기회를 주는 것이 바로 어른들이 할 일이지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도감을 들고 확인할 수도 있고……. 아파트에서 자연 속으로 아이들을 옮겨 놓는 것으로 어른이 할 일은 끝났다고 봐요.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면 삶이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어린 시절에 자연을 배워야 합니다.”

채집해 둔 벌레들
미산 계곡을 갈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 까닭도, 큰 아이 지수가 초등 학교 3학년 때 그린 물고기 그림을 책에 실은 까닭도 알겠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어린이이자 딸인 지수가 그린 그림이야말로 어쩌면 선생님이 어린이들과 가장 나누고 싶은 부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지만 선생님이 자랄 때 신림동은 시골이나 마찬가지였고, 동네 개천이 맑았으니 자연 속에서 자란 셈이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 살면서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만든 도깨비
“초등 학교 3학년 때쯤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공책을 사면 앞은 공부하는 내용을 적고 뒤에서부터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런데 글씨를 써 나간 낱장보다 그림을 그려 온 낱장이 더 많을 공책이 수두룩했지요. 그런데 어른들은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으셨어요. 중학교 때부터 미술반에 들어 그림을 그렸는데, 집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니까 도서실에 간다고 하고 미술실에 남아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물론 미술 학원 보내 달란 말은 꺼내지도 못했지요. 고등 학교 때는 막 대학을 졸업한 분이 미술 선생님으로 오셨는데, 그 선생님이 국전을 준비했기에 선생님을 도우면서 그림을 많이 배웠지요. 그러다 대학을 가고, 졸업 후에는 곧바로 취직을 했어요. 문구 회사인 바른손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3년 동안 일한 뒤로는 주욱 개인 작업을 했지요.”

선생님이 낸 책 가운데서 그림 가운데서 다른 그림과 달리 불쑥 고개를 든 『말썽꾸러기 또또』를 이야기 속으로 불러들여 봅니다.
『말썽꾸러기 또또』표지 사진
“왜 갑자기 펜화를 그리게 되셨지요?”
그 질문에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십니다.
“그건 판화예요. 동판화.”
확인하지 않고 온 부끄러움을 감출 새도 없이 선생님은 성큼 일어나 동판화를 싸둔 종이를 풀고 동판을 보여 주십니다.
“대학 때 부전공으로 판화를 했어요. 학기 중에는 전공으로 동양화를 그리고, 방학 때는 판화 작업을 했지요. 그런데 졸업하고 나니 판화를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말씀을 이으면서 작업실 한켠에 놓인 판화 인쇄기를 흐뭇하게 바라보십니다.
동판과 그라운드 및 각종 니들과 동판화 작업 도구들
“유학 가서 판화 공부를 하고 온 친구가 한국에 돌아와서 작업하다가 잘 안 되어서 다시 이민을 갔어요. 그때 내게 선물로 주고 간 것이지요. 판화기를 둘 공간이 없었으면 받을 엄두를 못 내었을 텐데, 다행히 작년에 작업실을 마련해서 내 차지가 되었지요.”

말씀하는 동안 선생님은 동판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꺼내 보여 주십니다. 새로 마련한 도구들이라 아직 상표가 그대로 붙어 있는 도구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판화 작업을 하니까 생각이 안 나는 부분도 있고 해서 자료도 구해 보고, 기억을 더듬고 해서 작업을 했어요. 판화의 매력은 예기치 못한 효과를 거둔다는 데 있지요. 특히 동판은 질산에 들어감으로 인해 원치 않은 우연한 효과를 많이 만들어 내지요. 동판이 부식되면서 생기는 가는 선들, 생각지도 못했던 미세한 선을 보는 게 참 재미있어요.”

부식된 동판과 동판으로 찍어 인쇄한 책의 본문
딱딱한 재료를 사용해서 부드러운 효과를 얻는 재미에 푹 빠져 선생님은 앞으로도 판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합니다.

“동판에 그라운드를 발라 말린 다음에 니들로 긁어요. 그 다음에는 질산염을 희석시킨 부식액에 담그지요. 적당한 시간 동안 두었다가 동판을 건져내어 말리고, 잉크를 바르고 표면의 잉크를 닦고, 프레스로 누릅니다. ”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출판사에서 그림 작가의 작업 방식을 책에 자세히 써 두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들이 여러 그림 재료를 알고 재료가 다름에 따라 나타나는 효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직은 공부하는 기간인 것 같아요. 어느 것이 내게 잘 맞고 내 생각을 올바로 표현하는 길인지 아직 확실히 모르겠어요. 판화 작업도 계속할 생각이고, 자연 생태계를 담은 그림책은 평생 해 나가고 싶은 작업이고요……. ”

주로 밤에 그림을 그린다는 선생님께 밤에 그리면 색깔 쓸 때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시선을 천장으로 돌립니다. 천장에는 하얀 등이 아홉 개나 달려 있습니다. 그 등에는 각각 두 개씩의 전구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동생이 인테리어를 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자연광에 가깝게 전기를 설치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별로 불편을 못 느껴요.”
낮에는 주로 생각을 하거나 사물을 관찰하거나 하는 일로 시간을 쓰는 선생님은 마음을 정하고 작업대에 앉으면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그림을 그린답니다. 그래서 두 시, 세 시까지 마음에 찰 때까지 꼬박 작업을 하고 잠자리에 든다고 합니다.
빨간 도깨비
“일단 작업을 시작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라요. 그래서 새벽까지 작업하는 날도 많고……. 원고를 받으며 어떻게 원고를 풀어나갈지 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어떤 구도로,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일단 시작하고 나면 금방 작업을 마치는 편이예요.”
하하, 밤 도깨비들이 선생님의 작업을 도와주는 것일까요?

그 많은 그림책에 그렸던 그림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는 사람이 하는 공장에 보관하고 있어요. 공간을 워낙 많이 차지해서……. 일본에 갔을 때 이와시키 치히로 선생의 미술관에 가 보았는데, 참 좋았어요. 일년 내내 어린이들이 찾아와 계절에 맞는 그림을 감상하고 돌아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어요. 그렇지만 나도 미술관을 갖고 싶다는 욕심은 나지 않더군요. 단지 잘 모아 두었다가 어떤 단체 같은 데서 전시를 할 목적으로 내 그림을 원한다면 기증을 하든가 할 생각이에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린 그림책 가운데 아주 특이한 책이 있어요. 바로 중국의 전래 동화에 그림을 그린 『재주 많은 다섯 형제』라는 책입니다.
“어쩜 그렇게 중국 분위기가 물씬 나게 그리셨지요?”
하고 짓궂게 여쭈어 봅니다.
『재주 많은 다섯 형제』본문
『해치와 괴물 사형제』 본문
“다른 나라 이야기에 그림을 그러거나 우리 옛 이야기에 그림을 그릴 때는 고증이 아주 중요해요. 그 책의 그림을 그릴 때는 명동에 있는 중국 대사관 앞에 있는 중국 서점에 들러 자료를 찾았어요. 그런 작업은 참 어렵고 힘겨워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복식사가 그런 대로 정리된 편이지만 그 윗대로 올라가면 정리된 게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고려 시대나 삼국 시대, 등 아주 오래된 옛 이야기에 그림을 그리려면 무척 힘이 들어요. 그리는 사람이 고증 작업까지 하면서 그려야 하지요.”
어떤 질문에든 진지하게 설명하는 선생님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잇습니다.
“일본 갔을 때 참 부러웠던 것이, 일본 화가들은 ‘자료가 없어서 못한다.’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료 정리가 잘 되어 있었어요. 어떤 자료든 구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다 구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일일이 자료를 뒤져 찾아내어야 해요.”
우리 옛 이야기를 자주 그린 선생님의 고충이 느껴서 마음이 안타까워지는데, 선생님의 말머리는 다시 민물고기로 돌아갑니다.

“오래된 옛것뿐 아니라 우리 옆에 늘 있는 자연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에요. 민물 고기를 그리려 해도 도감에 있는 것은 실제 고기와 달라요. 물고기는 잡고 나면 주위 색에 맞추어 몸 색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정성껏 사진을 찍어 제대로 펴낸 도감이 아니면 그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려서는 엉터리가 되기 십상이지요.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그림을 그릴 때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와 어름치를 그릴 때 참 힘들었어요. 책에 그림을 그리려고 잠깐 사진만 찍고 놓아 주겠다고 해도 학술적인 목적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더군요. 잠깐 잡는 것뿐 아니라 손만 대어도 안 된다는 게 공무원들의 답변이었어요.”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읽힐 책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배가사리 사진과 지수가 그린 그림,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
“우리 민물고기는 예쁘긴 하지만 어항에서 많이 기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열대어는 어항에서 부화를 하는데, 우리 민물고기는 송사리를 제하면 거의가 어항에서 알을 낳지 못하거든요. 자연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알을 낳는데, 집에서는 그러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어항에서 우리 민물고기를 기르게 되면 그 물고기는 그 세대로 끝이 나는 거지요. 자손을 못 퍼뜨리고 말이에요.”
그 말씀에서 그림을 그리려고 늘 민물고기를 어항에 가두어 두고 길러 물고기에게 미안해 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자연을 보호해야 된다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서 수유리 계곡에도 붕어와 꺽지뿐 아니라 버들치와 어름치, 가재도 산대요. 그 말을 듣고 참 기분이 좋았어요. 게다가 얼마 전에는 한강의 물고기 수가 20년 전과 비슷해졌다고 해서 아주 기분이 좋았는데, 한강 수중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산란하러 오는 참게를 잡는 사람을 보니 무척 마음이 아팠어요. 알을 낳아 자손을 퍼뜨리려 올라오는 참게를 알도 낳기 전에 잡아 먹다니……. 정말 안타깝고 슬펐어요.”

작업실에서 마당으로 나오니 선생님의 딸 지수가 “아빠, 낚시하러 가요.” 하면서 매달립니다. 선생님은 두 말 없이 낚시 도구를 챙기십니다. 잠깐 사이에 선생님은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에 나오는 바로 그 모습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한 아름 안고 조종천으로 향합니다. 첨벙대는 아이들 틈에서 낚싯밥을 덥석 문 물고기를 어망에 담습니다. 지수와 규일이는 색동 옷 입은 쉬리를 금세 알아봅니다. 아이들의 왁자한 웃음을 뒤로하고 고스란히 강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우리 민물고기를 보면서 아이들은 자연의 소중함을 온 마음으로 배웁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물고기와 풀과 꽃과 벌레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그들과 아름답게 더불어 살 것입니다.


십 년을 생각하고 공들여 만든 『미산 계곡에 가면 만날 수 있어요』가 어린이들과 어린이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에 힘입어, 선생님께서 평생토록 우리 꽃, 곤충, 물고기. 벌레와 산과 강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책을 만들 수 있도록 말이에요.
공혜조/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여러 일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린이에게 좋은 읽을거리를 권해 주고 싶어서 좋은 어린이 책 이야기를 나누는 『열린어린이』 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좋은 어린이 책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린이들이 행복에 겨워 웃음 터뜨릴 날을 기다리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