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통권 제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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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어둠 그리고 밝음

얼마 전에 북해 연안 몇 도시를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베를린에서 며칠 보낸 후 함부르크옆 휴양 도시 뤼베크에서 잠시 머물며 북해의 기운을 느껴보았지요. 베를린은 오래 전부터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베를린 장벽 자리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지난 백년 역사의 핵심이 무엇인지 가늠해보고 싶었습니다. 훔볼트 대학 거리에서 세계 지성을 지배해온 철학과 이념의 무게를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니와 신구 박물관들에서는 오래도록 세계 최고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예술문화의 극치를 맛보고 싶었습니다.

제 또래가 살아온 시대가 어땠는지, 지금 괜찮은 건지, 앞으로는 어떨지, 실마리들을 찾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물론, 겨우 며칠 머물면서 그런 거창한 바람을 채울 수는 없었지요. 그저 약간의 발품을 팔며 여기저기 헤매 다니면서, 그곳을 그리워한 까닭이나마 정리할 수 있었기에 좋았습니다. 차분한 분위기의 운터덴린덴 거리, 워낙 넓어 텅 빈 것만 같던 티어가르텐, 아담하고 소박한 필하모니, 남이냐 북이냐 묻던 베를린 장벽 기념관의 관리인, 훔볼트 대학 앞을 지키던 헤겔과 하이네 등의 흉상, 그리고 홀로코스트 통곡의 벽 광장…. 각 장면들을 눈과 마음에 잘 새겼습니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것 같던 함부르크를 거쳐 뤼베크에서 북해를 만났습니다. 약간은 어둡고, 조용하면서 고즈넉하던 해변에 앉아 베를린의 무거움과 밝음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자유로움, 해방감, 역동성 같은 것들을 기대했던 베를린은 겉으로는 그저 소박하고 조용했습니다. 여행 초반, 파리에서 오랜 인연의 선배 가족과 한국의 문화, 사회현상, 이른바 ‘진보’에 대해 길게 떠들던 일도 생각났습니다. 여기 일들에 대해 중압감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먼 곳에서 날선 비판을 들이대는 선배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둠이란 주제를 생각하다가 북해의 낮은 하늘과 어두운 수평선, 베를린까지 떠올랐습니다. 무엇인가 상대를 볼 때, 잘 드러나지 않는 반대의 측면까지 가늠해 보는 것, 좋은 일일까요 아닐까요. 개인과 세대, 사회 조직의 빛과 어둠, 밝음과 그 뒤편을 상상해봅니다. 그보다 내 안의 어둠을 먼저 보고 그 정체를 이해하는 일, 과연 가능할지요.

글쓴이 편집인 조원경 | 201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