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통권 제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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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작은 기쁨


며칠 전부터 다시 트럼펫 소리가 들려옵니다. 해 떨어져 어스름할 무렵이면 매일 동네 공원 계단참에 자리 잡고서 트럼펫으로 가곡들이나 성가들을 연주하시는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이 트럼펫 소리도 사라졌었는데, 이제 날 풀리면서 그 할아버지가 다시 나오시나 봅니다. 생활 속에서 이러저러하게 압박감을 크게 느낄 때면 음악회나 전시회 들을 찾아가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음 안에서 시끌벅적거리던 소리들이 한결 가라앉더라고요. 그런 것들 모두 귀족놀음이지 않니, 한 귀퉁이에서 들려오는 이런 소리는 모른 척하면서 말이지요. 어떤 날은 봄맞이 편지를 쓰기도 하고, 서점으로 나들이 나가기도 합니다. 멀리멀리 오랜 걷기 여행을 떠난다는 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워도 합니다.


꽃을 보이지 않은 채 작년 한 해를 넘겨 버려 걱정스러웠던 동백이 꽃봉오리를 틔우고, 군자란도 굵은 꽃대를 내밉니다. 여러 달 동안 시들시들 마르면서도 아주 사그라지지는 않던 산세베리아 꽃대도 이제 새 기운을 들이키며 힘을 내는지, 빳빳해집니다. 차들이 쌩쌩 지나는 방죽 출근길에서 목련이 인사하고, 개나리가 어느 결엔가 무성해집니다. 개나리는 함께 무리지어 필 때 가장 아름답고 귀한 모습을 보이지요. 요즈음은 이런 애들과 만나면서 마음에 작은 기쁨을 차곡차곡 포개놓을 수 있는 때인 것 같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일 년에 딱 하루, 아이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이 날 처음 들은 말이 있습니다. ‘월담 지도.’ 아이들 점심시간에 학교에 와서 ‘월담 지도’를 해 달라고, 교장 선생님께서 부탁하더군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학교 담을 잘 타넘을 수 있도록 가르치라는 말인 건가요? 왜? 이 학교에서는 학생회가 몇 해 동안 애쓰며 교사들의 도움까지 받아 ‘두발 자율화’ 교칙을 만들어 놓은 과거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학부모들이 요청해 왔다는 이유로, 교장께서 이번 학기부터 교칙을 바꾸었더군요. 그 업적을 학부모들에게 자랑하면서 부탁하는 내용이란 것이 아이들 소지품 검사 허락과 단정한 용모 유지, 그리고 ‘월담 지도’였습니다. 몇 년 동안 ‘자율 관리’해 오던 제 머리카락을 싹둑 잘린 아이들은 개학 후 아직까지도 가족과 눈을 맞추려 하지 않을 정도로 속을 끓이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작은 기쁨일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작은 화분들에서 피어나는 꽃에 감사하며,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책을 아끼고 가까이 하며, 가끔은 ‘문화’란 뭘까 생각도 하면서 제가 발견하는 작은 기쁨들을 전할 방법이 있을까요? 모쪼록, 오는 봄날 잘 맞으시고 충분히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네요.

글쓴이 편집인 조원경 | 2009년 0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