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통권 제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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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먼 길 떠나시는 권정생 선생님

열차가 문산에서 개성까지 달리고 또 개성에서 문산으로 달려, 57년 동안 허리 끊어져 있던 남북을 드디어 잇게 되었다고 환호하는 날이었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이 달 주제로 잡고서 북녘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 있을 꽃제비 이야기, 이라크 전쟁 화염 속 아이들 이야기, 방공호 속에서 마주쳐 용서 빌던 나치 군인과 그를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한 유대인 이야기를 다룬 꼭지 따위를 마무리하며 월간지를 마감하던 때였습니다. 제 앞자리 후배는 내일이면 5·18 광주민중항쟁 기념일이니 어느 책을 편집자 추천으로 고를까, 궁리하던 순간이기도 했지요. 권정생 선생님께서 먼 길 떠나신 2007년 5월 17일.

경북 안동시 외곽에 처한 일직면 조탑리. 수십 년 전 많이 스산하고 외졌을 이 지역 어딘가에 선생님은 교회 종지기로 처음 거처 잡으셨다고 합니다. 어느 누추한 곳에서 약한 몸을 추스르며 선생님은 새벽마다, 일요일마다, 수요일에도 종을 쳐 울리셨겠지요. 종을 쳐 맑은 종소리를 세상에 퍼뜨리면서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 종소리에 묻어 몽실이와 꽃밭 오소리와 누추한 똥덩이 들이 우리에게까지 와 닿은 듯합니다. 특히 어린이와 어린이 문학, 어린이 책을 귀히 여기신 선생님의 사랑이 종내는 몽실이를 이 땅의 모든 언니로, 길가 강아지 똥을 민들레 꽃으로 피워 내신 것 아닐까요.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셨고, 당신이 떠난 후에는 자신을 기억하는 어떤 의도된 작업이나 행동도 하지 말 것을 부탁하셨다는 선생님의 겸손함에서, 오히려 존귀함을 느낍니다.

대략 15년 전쯤이던가요. ‘전태일은 부활 예수다.’는 글을 발표해 직장에서, 교단에서, 결국은 이 나라에서까지 쫓겨난 제 선생님이 마침 이 날 제게 글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글을 쓸까? 그 영리한 아이들, 어른들이 무슨 짓들을 하는지 진즉 알아차리는 아이들한테 말이야. 당신(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임이 분명해…….” 분명, 우리 종지기 선생님은 가장 용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작았지만 크고, 낮았지만 존귀하고, 약했지만 강인하고, 조용했지만 큰 발자취를 남기신 선생님, 아마도 평안한 발걸음이시겠지요. 그리고 이제 편히 쉬시겠지요. 하찮은 것들에 대한 사랑과 용기, 존귀함,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까지 저희도 배우고 따르도록 애쓰겠습니다.

글쓴이 편집인 조원경 | 2007년 06월